吾滕氏 , 自唐迄今六百餘年 , 科第聯芳 , 箸纓相繼 , 詩禮傳家 , 清明持守 , 至大父舉應 , 賢良方正 , 能言極諫 , 科不仕 , 蒙賜號廉靜處士 。 吾父國學進士 , 亦應是科 , 年一十六而奄棄 , 獨遺不肖 , 早孤失學無聞 , 唯謹是持 , 而唯善是務耳 。 寶慶改元 , 吾時年二十八 , 仲春具牲醴 , 詣墓拜掃封塋 , 途遇一老叟 , 貌古而奇 , 氣舒而泰 , 風度飄飄 , 精神落落 , 顧吾若欲與語者 , 以是趨進長揖 , 叟執吾手 , 笑而謂曰 : 子善人子也 , 何少讀書耶 ? 今雖不得貴 , 亦當致子富也 。 吾卒然感而思之 , 富貴果人心之所愛者 , 然吾向乏嗣 , 不若以此為請於叟乎 。 於是敬上白焉 。 叟曰 : 子既不以富貴為欲 , 而以子嗣為欲 , 宜乎 。 吾當以子壽 。 繼而出受一書 , 囑曰 : 願子將此多濟人子嗣 , 則子子嗣必多矣 。 使吾向日拜 , 起而叟遂失焉 。 駭感良久 , 謹捧書歸 , 焚香開讀 , 乃治小兒 《 急疳走馬真方 》 也 。 按方精修合 , 施於人 , 果甚奇驗 , 百發百中 。 未幾生珪 , 長仕吳江州司訓 , 珪生清 。 迨今吾年八十餘矣 。 噫 ! 叟之言 , 神且信也 , 其書敢不敬乎 ! 烏可易而視之哉 ? 是用識於篇首 , 示吾子孫當保是書 , 而精修藥餌 , 惟以濟人為心 , 不以利為心可也 。
우리 등씨(滕氏)는 당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600여 년 동안 과거 급제자가 잇따라 이름을 떨치고 벼슬아치가 대대로 이어졌으며, 시와 예를 집안에 전하고 맑고 바르게 지조를 지켰다. 조부께서는 천거되어 현량방정능언극간과(賢良方正能言極諫科)에 응하셨으나 벼슬하지 않고, 염정처사(廉靜處士)라는 호를 하사받으셨다. 아버지는 국학진사로서 역시 이 과거에 응하셨는데, 열여섯 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불초한 나 하나만 남기셨다. 나는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배움을 놓쳐 이름을 드러내지 못하였으므로, 다만 삼가며 살아가고 선행에 힘쓸 뿐이었다. 보경(寶慶) 원년, 내가 스물여덟 살이던 때였다. 중춘에 희생과 단술을 갖추어 무덤에 가서 절하고 묘역을 청소하고 봉분을 보수하였는데,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모습은 예스럽고 기이하였으며 기운은 느긋하고 평온하였고, 풍채는 표연하고 정신은 탁 트여 있었다. 나를 돌아보는 것이 말을 건네려는 듯하여, 앞으로 달려가 길게 읍하였다. 노인은 내 손을 잡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대는 선한 사람의 자손인데, 어찌하여 글을 적게 읽었는가? 지금 귀하게 되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그대를 부유하게 해 주겠네.” 나는 갑자기 마음이 움직여 생각하였다. 부귀야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 좋아하는 것이지만, 나는 이제껏 후사가 없으니 차라리 이것을 노인에게 청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에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노인이 말하였다. “그대가 부귀를 바라지 않고 자손을 바라는 것은 마땅한 일이네. 내가 그대를 오래 살게 해 주겠네.” 이어 책 한 권을 꺼내 주면서 당부하였다. “그대가 이것으로 다른 사람들의 자손을 많이 구해 준다면, 그대의 자손도 반드시 많아질 것이네.” 그리고 나에게 해를 향하여 절하게 하였는데, 일어나 보니 노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놀랍고 감격스러운 마음이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삼가 책을 받들고 돌아와 향을 피우고 펼쳐 읽으니, 바로 소아를 치료하는 『급감주마진방(急疳走馬真方)』이었다. 처방에 따라 정성껏 약을 법제하고 배합하여 사람들에게 베풀었더니, 과연 효험이 매우 기이하여 백 번 쓰면 백 번 모두 적중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규(珪)를 낳았고, 규는 자라서 오강주(吳江州)의 사훈(司訓)으로 벼슬하였으며 청(清)을 낳았다. 이제 나는 나이가 여든이 넘었다. 아! 노인의 말은 신묘하면서도 참되었으니, 그 책을 감히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찌 가벼이 볼 수 있겠는가? 이에 책머리에 적어 우리 자손들에게 일러 두니, 마땅히 이 책을 보존하고 정성껏 약을 마련하되, 오직 사람을 구제하는 데 마음을 두고 이익에는 마음을 두지 말아야 한다.
德佑元年歲次乙亥孟夏吉日樂善老人南陽滕伯祥撰
덕우(德佑) 원년 을해년 맹하의 길일에, 낙선노인(樂善老人) 남양(南陽) 등백상(滕伯祥)이 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