乾隆己亥 , 先人病臂痛 , 不能舉 , 時學師夏君善醫術 , 往乞其診 , 以為將成偏枯 。 時余與史壽莊同筆硯 , 壽莊祖蓮溪徵君 , 指求翁視之 。 翁笑曰 : 天下無此偏枯證脈 。 署方黑豆半升 , 蠶砂二兩為末 , 服之盡即已 。 服未盡而痛失 。 近問之 , 翁已不記矣 。 是年為識翁之始 , 庚戌冬十月㬠 , 余病嘔血 , 夜嘔數升 , 嘔已而咳 。 或曰陰虛 , 所為服瓊玉膏 , 咳益甚 。 余極駭 , 血已而咳者 , 多不治也 。 訪翁 , 翁曰 : 病在濕 , 舒其陽則愈 。 咳果已 。 當是時 , 猶未信翁之神也 。 歲丁巳 , 婦妊脈 , 忽嘔逆不已 , 每嘔必厥 , 日十數度 , 七晝夜不進飲食 , 進飲食則嘔 , 嘔時時有蛔 。 族人有自謂能醫者 , 日投以藥 , 皆不應 , 厥益劇 。 急迎翁 , 翁診良久曰 : 咳否 ? 婦頷曰 : 有之 , 每嘔則有微咳倡其先 。 翁曰 : 是宜從脈 。 立秋幣月 , 肺金乘權 , 而右寸獨沉 , 病得之失治表 , 表鬱於里 , 肺失疆而肝火擾 , 寒熱相擊 , 所以嘔且厥也 。 用桂枝十六分 , 乾薑五分 , 黃連七分 , 半夏 、 甘草各等分 。 手摘藥趨之服 , 曰服已必熟睡 。 或疑其語之決也 。 已而服藥果然 , 蓋七夜不能瞑 , 至是呼吸聞於外 , 舉家相慶 。 二更許 , 睡醒 , 突大呼 , 目上視 , 手振搐搖 , 首面赤而厥 。 族人以醫不效自慚 , 復妒翁之能見是狀 , 大言歸咎於桂枝 、 乾薑 , 迫令灌以梨汁 。 齒齘不受 。 家母曰 : 仍宜問翁 。 翁時猶未睡 , 聞是即入診 。 病者仰臥不知人 , 喉中喘息 。 翁曰 : 非厥也 。 兩寸脈浮 , 藥已有效 。 左右或咻之 。 翁耳語謂余曰 : 無畏 , 適席間豬蹄湯甚濃 , 吹去浮脂 , 灌之以醒為度 。 如其言 , 且灌且醒 , 復酣睡 , 遂霍然 。 翁曰 : 嘔七日 , 胃中液涸 , 寒氣升而枯竭露也 。 嗚乎 ! 向令翁不診 , 必殺於他藥 , 且以薑桂詈矣 , 則世之謗翁者 , 果翁之咎耶 。 自是至明年戊午四月 , 婦產女 , 次日稱胸背急痛 , 少選嘔厥如舊年市 , 一日命在呼吸 。 家母即命迎翁 , 翁至 , 值婦痛輾轉於狀 , 慘切不忍言 , 少時嘔逆手掣搐而厥 。 翁曰 : 此時脈不可據 。 然去年之厥 , 責在嘔 , 今日之厥 , 責在痛 , 吾觀其由痛而嘔 , 由嘔而厥 , 痛已則嘔與厥皆已矣 , 不可遲 , 速治藥 。 乃書炙甘草二十分 , 芍藥十分 , 阿膠十分 。 曰 : 此血虛而肝氣乘之 , 急食甘 , 肝急自緩 , 藥入口 , 痛必平 , 藥熟 , 值痛起 , 趨飲之 。 如翁言 。 是秋 , 余在省病腸澼 , 阻風燕磯 , 日數十利 , 痛苦實甚 。 俟至揚迎翁診之 。 余意用姜附 , 或曰宜大黃也 。 翁曰 : 此表證 , 何澼為 , 暑淫血分耳 , 一藥可愈 。 用藿香 、 半夏之輩 , 加當歸以入血 , 五穀蟲以通大腸 , 一服而日夜之利盡除 。 惟雞鳴後腹痠痛 , 連利數次 , 以告翁 , 翁以金銀花治之 , 二服全已 。 癸丑夏 , 吾母病衄 , 衄已 , 出黃涕 , 醫令服蔗漿 、 阿膠 、 羚羊角 , 服之困甚 。 於是頭痛 , 右臂右足掣痛而倦 。 翁曰 : 病得之陰虛 , 天令炎熱 , 肝陽上衝 , 故衄黃涕者 , 肝之餘氣也 。 頭屬胃 , 胃之絡脈行於右 , 故見諸證 , 不必治衄 , 惟宜養肝 , 滋胃土 , 用白芍 、 山藥 、 扁豆 、 甘草四劑而愈 。 甲子冬 , 余每日大便後 , 則由肛門達於尻骨 , 痠痛不可耐 , 得飯乃已 。 翁曰 : 此水氣也 。 水氣傷腎 , 陽腎陽虛 , 而脾氣下乘 , 故脹於便後 , 得食少緩者 , 陽氣足而能攝也 。 此水氣非附子不能祛 , 非多服不能效 。 乃以鹿角膠 、 熟地黃 、 枸杞 、 菟絲子 、 山茱萸 、 山藥 、 當歸 , 合附子服之 。 始服小便夜多 , 而汗且瀉 。 翁曰 : 此水氣外泄也 , 何疑之 ? 翁治病多用白朮 , 至此獨以術為戒 , 他醫以白朮合鹿角霜 、 鹿角膠 、 破故紙服之 , 則汗斂而痛復劇 , 仍服翁藥三十劑而愈 。 而族人之自謂能醫者 , 忌翁甚 , 每向余短之 , 余復惑於其言 。 歲乙丑六月 , 余幼孫病 , 竟為此族人誤藥致死 。 越一月 , 餘子廷琥病 , 每巳午未三時 , 則頭面熱如火蒸 , 兩肺前穴煩擾不可耐 , 氣促神躁 , 不大便 , 惡水不飲 , 溲短而黃 , 翁始以暑治之不應 , 溫以薑朮不應 , 面有紅跡似疹 , 日益見 。 時閏六月二十五日 , 翁清晨至曰 : 君之孫已為醫誤 , 此子所關甚重 , 然病情穩曲 , 今終夜思之 , 前此非所治也 , 當由心陰傷而心陽上越 , 姑試以甘溫 。 署甘草 、 大棗等令服 , 未服而身亦有疹大如戎豆色 , 且紫 , 他醫議用快斑發疹之劑 。 翁又至曰 : 脈弦微而不渴 , 何敢用涼藥 , 且未有疹出而躁若此者 , 是時躁甚 , 坐臥行立 , 皆不寧 。 翁曰 : 試以前藥服之 。 服已而躁定 。 翁曰 : 未也 。 俟之良久 , 果又躁 , 且呼手足不仁 , 臍下亦不仁 , 漸及於胃脘間 。 翁曰 : 急矣 , 吾今日必愈此疾 。 乃去急治藥 , 促煎之 。 跣足袒衣 , 自調其水火 , 診脈凡七八次 , 藥熟又診脈 , 久之自持藥令服日 。 是矣 , 服之必愈 。 時正躁急 , 持其母手而呼 , 藥既入 , 遂能臥 , 而諸苦頓失 , 面上之疹悉沒 , 惟熱蒸尚存 。 翁曰 : 腎氣虛 , 虛則寒 。 昨所服者 , 真武湯也 , 氣分之寒消 , 而血分之寒未去 , 宜溫血 , 服炮薑 、 當歸 、 山萸 、 熟地黃 、 甘草 。 入口遂酣睡 , 蒸熱悉除 。 越三日 , 便膿血 , 或曰 : 熱藥所致 。 翁聞之 , 急至曰 : 非澼也 。 少陰之寒 , 升於厥陰 , 用理中湯加吳茱萸服十劑 , 膿血自止 。 服之果然 。 余於此始恍然於忌之謗之者 , 真為庸醫 , 而翁之醫真能神也 。 方廷琥之服真武湯 , 而勢始定 。 其妻忽大呼遍體麻木 , 不知人 , 腹中胎上逼喘促欲笑 , 或曰 : 宜投紫蘇飲 。 時三鼓 , 翁方去 , 聞此復至 , 診良久曰 : 非子懸也 , 病得之悲傷驚恐 , 氣血虛且亂 , 治其虛則胎即安 。 署熟地黃 、 白朮 、 炙甘草 、 當歸 , 重其劑投之 , 而胎果定 。 是日也 , 非翁力 , 則兒與婦皆危矣 。 翁神於醫 , 而其拯人之急 , 不畏勞煩 , 不恤人言 , 尤當於道誼學問中求之 。 余嘗南遊吳越 , 北及燕齊 , 見醫者多矣 , 持一藥曰服之必熟睡 , 曰藥入口痛必平 , 曰服之必愈 , 危急在旦夕 , 而爭命於須臾轉移之機 , 其應如響 , 翁之外 , 有幾人能乎哉 ? 吾友汪叔震 , 述江漪堂侍讀之言曰 : 此翁老後 , 不可復得 , 惜市人無知之者 。 余與唐竹虛孝廉論醫於京師 , 竹虛亦稱翁不已 , 昔元好問述李東垣之醫 , 宋濂述戴原禮之醫 , 皆仿史遷之述倉公也 。 翁之可述者多矣 , 謹錄為余家治效者於上 , 其得諸傳聞者異其辭 。
건륭 기해년에 선친이 팔이 아파 들지 못하는 병을 앓았다. 당시 학사 하군이 의술에 능하여 진찰을 청하러 갔더니 곧 편고가 되려는 것이라 하였다. 그때 나는 사수장과 함께 공부하였는데 수장의 조부인 연계 징군이 노인에게 진찰을 구하도록 일러 주었다. 노인은 웃으며 ‘세상에 이런 편고의 증상과 맥은 없다’고 하였다. 검은콩 반 되와 잠사 2냥을 가루로 만들어 다 먹으면 낫는다고 처방하였다. 다 먹기도 전에 통증이 없어졌다. 근래에 물으니 노인은 이미 기억하지 못하였다. 이 해가 노인을 처음 알게 된 때다. 경술년 겨울 시월 㬠에 나는 피를 토하는 병이 들어 밤에 몇 되를 토하고 토한 뒤에는 기침하였다. 어떤 이는 음허 때문이라 하여 경옥고를 먹였는데 기침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매우 놀랐다. 출혈이 멎고도 기침하는 경우는 대개 치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인을 찾아가니 ‘병은 습에 있으니 양을 펴면 낫는다’고 하였다. 과연 기침이 멎었다. 이때에도 아직 노인의 신묘함을 믿지는 못하였다. 정사년에 아내가 임신 중 갑자기 구역질을 멈추지 못하였다. 토할 때마다 반드시 궐하여 하루 십여 번씩 그랬고 칠 주야 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먹으면 토했고 토할 때 때때로 회충이 나왔다. 일가 가운데 스스로 의술을 할 줄 안다는 이가 날마다 약을 주었으나 모두 반응이 없고 궐은 더욱 심해졌다. 급히 노인을 모셔 오니 한참 진찰한 뒤 ‘기침하는가?’라고 물었다. 아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합니다. 토할 때마다 반드시 가벼운 기침이 먼저 시작됩니다’라고 하였다. 노인은 ‘이는 맥을 따라야 한다. 입추가 든 달이라 폐금이 권세를 잡았는데 오른쪽 촌맥만 침하다. 병은 표를 잘못 치료하여 표가 속으로 울체되고 폐가 제 영역을 잃어 간화가 어지럽힌 데서 생겼다. 한열이 서로 부딪치므로 토하고 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계지 16푼, 건강 5푼, 황련 7푼, 반하와 감초는 각각 같은 분량을 썼다. 손수 약을 골라 서둘러 먹게 하고 ‘먹고 나면 반드시 깊이 잠들 것이다’라고 하였다. 어떤 이는 그 말이 단정적인 것을 의심하였다. 그런데 약을 먹자 과연 그러하였다. 이레 밤을 눈 붙이지 못했는데 이제는 숨소리가 밖에서도 들려 온 집안이 서로 기뻐하였다. 이경 무렵 잠에서 깨어 갑자기 크게 소리치고 눈이 위로 치켜뜨이며 손이 떨리고 경련하였고, 머리와 얼굴이 붉어지며 궐하였다. 일가 사람은 자기 치료가 효과 없음을 부끄러워하면서 노인의 능력을 시기하였는데, 이 모습을 보고 큰소리로 계지와 건강을 탓하며 배즙을 억지로 먹이려 하였다. 이를 악물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다시 노인에게 물어야 한다’고 하였다. 노인은 아직 잠들지 않았고 이 말을 듣자 즉시 들어와 진찰하였다. 환자는 바로 누워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목에서 숨을 헐떡였다. 노인은 ‘궐이 아니다. 양쪽 촌맥이 부하므로 약이 이미 효과를 낸 것이다’라고 하였다. 좌우에서 떠들어 대는 이가 있었다. 노인은 내 귀에 대고 ‘두려워하지 말라. 아까 상의 돼지 족발국이 아주 진하였으니 떠 있는 기름을 불어 걷어 내고 정신이 들 때까지 먹이라’고 하였다. 말대로 하니 먹이면서 깨어났고 다시 깊이 잠들어 마침내 시원하게 나았다. 노인은 ‘이레 동안 토하여 위의 진액이 말랐다. 한기가 올라가면서 말라 고갈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아, 그때 노인이 진찰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다른 약에 죽고도 생강과 계피를 욕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노인을 헐뜯는 것이 과연 노인의 잘못인가? 그 뒤 이듬해 무오년 사월에 아내가 딸을 낳았다. 다음 날 가슴과 등이 몹시 아프다 하더니 잠깐 뒤 작년처럼 토하고 궐하여 하루 만에 목숨이 숨 한 번에 달렸다. 어머니가 곧 노인을 모셔 오라 하였다. 노인이 도착했을 때 아내는 통증으로 침상에서 몸을 뒤척이며 차마 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해하였다. 조금 뒤 구역질하고 손이 당기며 경련하다 궐하였다. 노인은 ‘이때의 맥은 근거로 삼을 수 없다. 작년의 궐은 구토에 원인이 있었고 오늘의 궐은 통증에 원인이 있다. 보니 아파서 토하고 토해서 궐하므로 통증이 그치면 구토와 궐도 모두 그친다. 지체하지 말고 빨리 약을 마련하라’고 하였다. 자감초 20푼, 작약 10푼, 아교 10푼을 적고 ‘이는 혈허에 간기가 올라탄 것이다. 급히 단맛을 먹으면 간의 급함이 저절로 누그러진다. 약이 입에 들어가면 통증이 반드시 가라앉는다’고 하였다. 약이 달여졌을 때 통증이 일어나 급히 마시게 하니 노인의 말과 같았다. 그해 가을 나는 성에서 장벽을 앓았고 연기에서 바람에 막혀 하루 수십 번 설사하니 고통이 참으로 심하였다. 양주에 이르러 노인을 청해 진찰받았다. 나는 건강과 부자를 쓸 생각이었고 어떤 이는 대황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노인은 ‘이는 표증인데 무슨 장벽인가? 서사가 혈분에 침범했을 뿐이니 약 한 번으로 낫는다’고 하였다. 곽향·반하류에 혈로 들어가게 당귀를 더하고 대장을 통하게 오곡충을 더하니 한 번 먹고 밤낮의 설사가 모두 없어졌다. 다만 닭이 운 뒤 배가 시큰하게 아프며 연달아 몇 번 설사하여 노인에게 알리니 금은화로 치료하여 두 번 먹고 완전히 멎었다. 계축년 여름에 어머니가 코피를 앓았다. 코피가 멎은 뒤 누런 콧물이 나와 의사가 사탕수수즙·아교·영양각을 먹게 하였으나 먹고 매우 지쳤다. 이어 머리가 아프고 오른팔과 오른발이 당겨 아프며 피로하였다. 노인은 ‘음허로 생긴 병인데 날씨가 뜨거워 간양이 위로 치밀었으므로 코피가 났다. 누런 콧물은 간의 남은 기운이다. 머리는 위에 속하고 위의 낙맥은 오른쪽으로 다니므로 여러 증상이 나타났다. 코피를 치료할 필요 없이 간을 기르고 위토를 자양해야 한다’고 하였다. 백작약·산약·편두·감초를 네 첩 써서 나았다. 갑자년 겨울에 나는 날마다 대변 뒤 항문에서 엉치뼈까지 시큰하고 아파 견딜 수 없었으며 밥을 먹어야 그쳤다. 노인은 ‘이는 수기다. 수기가 신을 상하여 신양이 허해지고 비기가 아래로 올라타므로 대변 뒤 창만하다. 음식을 먹으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은 양기가 충족되어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수기는 부자가 아니면 없앨 수 없고 많이 먹지 않으면 효과를 얻지 못한다’고 하였다. 녹각교·숙지황·구기·토사자·산수유·산약·당귀에 부자를 합하여 먹였다. 처음 먹자 밤에 소변이 많아지고 땀과 설사가 났다. 노인은 ‘수기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인데 무엇을 의심하는가?’라고 하였다. 노인은 병을 치료할 때 백출을 많이 썼으나 이때에는 오직 출을 금하였다. 다른 의사가 백출에 녹각상·녹각교·파고지를 합하여 먹이자 땀은 거두어졌으나 통증이 다시 심해졌다. 다시 노인의 약을 서른 첩 먹고 나았다. 그런데 스스로 의술을 안다는 일가 사람은 노인을 몹시 꺼려 늘 내게 그의 단점을 말하였고 나는 또 그 말에 현혹되었다. 을축년 유월에 어린 손자가 병들었는데 끝내 이 일가 사람의 잘못된 약으로 죽었다. 한 달 뒤 아들 정호가 병들었다. 날마다 사·오·미 세 시각이면 머리와 얼굴이 불로 찌는 듯 뜨겁고 양 폐 앞의 혈자리가 번거롭고 어지러워 견딜 수 없었다. 숨이 가쁘고 정신이 조급하며 대변을 보지 못하고 물을 싫어해 마시지 않았으며 소변은 적고 누렜다. 노인은 처음에 서병으로 치료했으나 반응이 없고 생강과 백출로 덥혀도 반응이 없었다. 얼굴에는 진 같은 붉은 흔적이 날마다 더 나타났다. 윤유월 스무닷새에 노인이 새벽에 와서 ‘그대 손자는 이미 의사의 잘못을 겪었으니 이 아들의 일은 매우 중하다. 그러나 병정이 숨어 굽이쳐 있다. 오늘 밤새 생각하니 앞의 치료가 맞지 않았다. 심음이 상하고 심양이 위로 넘친 것일 터이니 우선 달고 따뜻한 약을 시험하겠다’고 하였다. 감초·대추 등을 적어 먹게 하였는데 먹기도 전에 몸에 융두만 한 진이 생기고 색도 자주색이었다. 다른 의사는 반을 빨리 내고 진을 발산하는 약을 쓰자고 의논하였다. 노인이 다시 와서 ‘맥이 현하고 미하며 목마르지 않은데 어찌 감히 찬 약을 쓰겠는가? 또 진이 나오면서 이렇게 조급한 경우는 없다’고 하였다. 그때는 몹시 조급하여 앉거나 눕거나 걷거나 서도 편안하지 못하였다. 노인은 앞의 약을 시험해 먹으라고 하였다. 먹자 조급함이 가라앉았다. 노인은 ‘아직 아니다’라고 하였다. 한참 기다리니 과연 다시 조급해지고 손발과 배꼽 아래 감각이 둔하다고 소리쳤으며 점차 위완 사이까지 이르렀다. 노인은 ‘급하다. 오늘 내가 반드시 이 병을 낫게 하겠다’고 하였다. 곧 가서 급히 약을 마련하고 빨리 달이게 하였다. 맨발에 옷을 풀어 헤친 채 손수 물과 불을 조절하고 맥을 모두 칠팔 번 짚었다. 약이 달여지자 다시 한참 맥을 짚은 뒤 직접 약을 들고 먹게 하며 ‘이것이다. 먹으면 반드시 낫는다’고 하였다. 그때 마침 몹시 조급하여 어머니 손을 붙들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약이 들어가자 누울 수 있었고 여러 고통이 갑자기 없어졌다. 얼굴의 진도 모두 사라지고 찌는 듯한 열만 남았다. 노인은 ‘신기가 허하고 허하면 한하다. 어제 먹은 것은 진무탕이다. 기분의 한은 사라졌으나 혈분의 한은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니 혈을 덥혀야 한다’고 하여 포강·당귀·산수유·숙지황·감초를 먹였다. 입에 들어가자 깊이 잠들고 찌는 듯한 열도 모두 없어졌다. 사흘 뒤 대변으로 고름과 피가 나오니 어떤 이는 더운 약 때문이라 하였다. 노인은 듣고 급히 와서 ‘장벽이 아니다. 소음의 한이 궐음으로 올라간 것이다. 이중탕에 오수유를 더하여 열 첩 먹으면 농혈은 저절로 멎는다’고 하였다. 먹으니 과연 그러하였다. 나는 여기에서 비로소 그를 시기하고 비방한 사람들이 참으로 용의이며 노인의 의술은 참으로 신묘함을 깨달았다. 정호가 진무탕을 먹어 병세가 막 안정되었을 때 그의 아내가 갑자기 온몸이 저리고 감각이 없다며 크게 소리치고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뱃속의 태가 위로 치밀어 숨이 가쁘고 웃으려 하였다. 어떤 이는 자소음이 좋다고 하였다. 때는 삼경이었고 노인이 막 떠났으나 이 말을 듣고 다시 왔다. 한참 진찰하고 ‘자현이 아니다. 슬픔과 놀람과 두려움으로 생겨 기혈이 허하고 어지러운 것이다. 허한 것을 치료하면 태는 곧 안정된다’고 하였다. 숙지황·백출·자감초·당귀를 무겁게 처방하여 주니 과연 태가 안정되었다. 이날 노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아들과 며느리는 모두 위태로웠을 것이다. 노인은 의술이 신묘할 뿐 아니라 사람의 위급함을 구하면서 수고와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남의 말도 개의치 않았다. 이는 더욱 도의와 학문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일찍이 남으로 오월을 다니고 북으로 연제에 이르러 많은 의사를 보았다. 약 하나를 들고 ‘먹으면 반드시 깊이 잠든다’, ‘입에 들어가면 통증이 반드시 가라앉는다’, ‘먹으면 반드시 낫는다’고 하며, 위급함이 조석에 달린 때 잠깐 사이 바뀌는 기회에서 목숨을 다투어 그 반응이 메아리 같게 하는 일을 노인 외에 몇 사람이 할 수 있겠는가? 벗 왕숙진은 강의당 시독의 말을 전하며 ‘이 노인이 늙고 나면 다시 얻을 수 없는데 시중 사람들이 아는 이가 없으니 안타깝다’고 하였다. 내가 서울에서 당죽허 효렴과 의술을 논할 때 죽허도 노인을 칭찬해 마지않았다. 옛날 원호문이 이동원의 의술을 적고 송렴이 대원례의 의술을 적은 것은 모두 사마천이 창공을 서술한 것을 본뜬 것이다. 노인에 관하여 적을 만한 일은 많다. 삼가 우리 집을 치료하여 효험을 본 것을 위에 기록하고, 전해 들은 것은 그 서술을 달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