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光庚子之秋 , 里中病利死者數十 , 其經余治者凡二十 , 以貧不能具藥而死者 , 一人耳 。 然或半月而愈 , 或十日而愈 , 或瀕死而復健 , 或病輕而更纏綿 , 准之古法 , 參差不齊 , 有莫解其故者 。 昔越人留五泄之名 , 仲景編下利之證 , 元方有利病之候 ,《 千金 》 具下利之方 。 若 《 外臺秘要 》, 家無購本 , 至宋 、 明以來數十家 , 則等諸自鄭以下可耳 。 吾日寢食於秦 、 張 、 孫 、 巢之書 , 而細思其義 , 輒不與病情合 , 唯 《 傷寒經 》 陽明 、 少陰 、 厥陰中有數條可按 , 若承氣湯 、 桃花湯 、 白頭翁湯 , 猶與今證相髣髴 , 自非數方無一相契者 。 乃追憶所治諸候 , 准之以 《 靈 》、《 素 》 陰陽 、 藏府之理 , 紬繹沉潛 , 頗得其解 , 因成一編 。
도광 경자년 가을, 마을에서 설사병으로 죽은 사람이 수십 명이었다. 내 치료를 받은 사람은 모두 스무 명이었는데, 가난하여 약을 갖추지 못해 죽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러나 어떤 이는 보름 만에 낫고 어떤 이는 열흘 만에 나았으며,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건강해진 이도 있고 병이 가벼운데 더욱 오래 끈 이도 있었다. 옛 방법에 견주면 들쭉날쭉하여 그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옛날 월인은 다섯 설사의 이름을 남겼고, 중경은 하리의 증을 엮었으며, 원방은 이병의 증후를 제시하였고, 『천금』에는 하리의 처방이 갖추어져 있다. 『외대비요』는 집에 구입한 책이 없으며, 송·명 이래 수십 의가는 정 이하의 반열에 놓아도 될 것이다. 나는 날마다 진·장·손·소의 책 속에서 자고 먹으며 그 뜻을 세밀히 생각하였으나 번번이 병세와 맞지 않았다. 오직 『상한경』의 양명·소음·궐음에 몇 조문이 있어 살필 수 있었는데, 승기탕·도화탕·백두옹탕은 그래도 지금의 증상과 비슷하였으나 이 몇 처방 외에는 하나도 들어맞는 것이 없었다. 이에 치료했던 여러 증후를 돌이켜 『영추』와 『소문』의 음양과 장부의 이치에 견주고 깊이 파고들어 풀어 보니 상당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 한 편을 이루었다.
新化鄒漢璜識
신화의 추한황이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