鄰人趙楚仁 , 天津典商也 , 家小康而婦甚悍 , 生數女一男 , 極鍾愛之 。 戊午夏 , 其五女 , 年六七歲 , 發天花 。 遣人邀余視之 , 見其形密如蠶種 , 平板細碎 , 幾乎遍體 。 而口唇外 , 尤環繞無隙 , 且手足發厥 , 飲食不進 。 問幾日 ? 曰 , 兩日矣 。 余曰 : 發熱否 ? 曰 , 不甚發熱 。 問二便如常否 ? 曰 : 大便溏 , 小便過多 。 告曰 , 痘症發熱 , 三朝自頭至足 , 漸次見點 , 須顆粒分明 , 形色紅潤 , 飲食二便如常方好 。 今令嬡之痘 , 不兩日一齊擁出 , 且形色 、 飲食 、 二便如此 , 兼帶鎖口 , 真逆症也 , 恐治亦不效 。 其婦嫌余言唐突 , 語涉怨懟 , 其夫目怒之 , 乃止 , 余曰 : 來看病非生氣 , 請待以十日 , 果有能治之者 , 余當師之 , 拂衣欲出 。 其夫力求一方 , 乃以升麻葛根湯加參耆付之曰 , 此敷衍法也 。 趙服之 , 越日而痘稍起 , 急遣人告余曰 , 痘有轉機 , 可再視之 , 余力卻之 , 趙似怨余 , 乃請他醫 。 不十日 , 痘靨而斃 。 其家乃信余言 , 後遇趙於街 , 長揖作謝 。 余曰 , 病不能治 , 何謝為 ? 趙曰 : 早聽君言 , 可省藥錢數貫 。 余曰 , 此亦有定數 , 不費此錢 , 恐不歿也 。 趙含淚而去 。
이웃 사람 조초인은 천진의 전당포 상인이었다. 집안은 조금 넉넉하였으나 아내는 매우 사나웠고, 딸 여럿과 아들 하나를 낳아 지극히 사랑하였다. 무오년 여름 다섯째 딸이 여섯일곱 살에 천연두를 앓았다. 사람을 보내 나를 불러 보게 하기에 살펴보니 두창이 누에알처럼 빽빽하고 평평하며 잘고 조각조각하여 거의 온몸에 퍼져 있었다. 입술 바깥은 특히 틈 없이 에워싸였으며 손발이 싸늘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였다. 며칠 되었는지 물으니 이틀이라 하였다. 열이 나는지 물으니 심하지 않다고 하였다. 대소변이 평소 같은지 물으니 “대변은 묽고 소변은 지나치게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두창은 열이 난 뒤 사흘 동안 머리에서 발까지 차례로 점이 나타나고, 낱알이 뚜렷하며 모양과 빛깔이 붉고 윤택하고 음식과 대소변이 평소 같아야 좋습니다. 지금 따님의 두창은 이틀도 안 되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고 모양과 빛깔, 음식과 대소변이 이러하며 쇄구까지 겸하니 참으로 역증입니다. 치료해도 효험이 없을 듯합니다.” 아내는 내 말이 당돌하다고 싫어하여 원망하는 말을 하다가 남편이 성난 눈으로 노려보자 그쳤다. 내가 “병을 보러 왔지 화를 내러 온 것이 아닙니다. 열흘 기다려보십시오. 과연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스승으로 삼겠습니다”라고 하고 옷을 떨치며 나가려 하였다. 남편이 힘써 처방 하나를 청하기에 승마갈근탕에 인삼과 황기를 더하여 주며 “이는 임시로 대응하는 법입니다”라고 하였다. 조씨가 먹이자 다음 날 두창이 조금 솟아올랐다. 급히 사람을 보내 “두창에 전기가 있으니 다시 보아주십시오”라고 알렸으나 나는 굳게 사양하였다. 조씨는 나를 원망하는 듯하더니 다른 의사를 청하였다. 열흘이 못 되어 두창이 꺼져 죽으니 집안사람들이 비로소 내 말을 믿었다. 뒤에 거리에서 조씨를 만났더니 깊이 읍하며 감사하였다. 내가 “병을 고치지 못했는데 어찌 감사합니까”라고 하니 “일찍 선생의 말씀을 들었다면 약값 몇 관을 아낄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이것 역시 정해진 운수가 있으니, 이 돈을 쓰지 않았다면 아마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조씨는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