審證與慎藥

治病之道 , 如鑰之啟鎖 , 無論顯然相反 , 即相近者 , 辨之不明 , 治之不當而亦無效驗 。 其間毫釐之差 , 千里之謬 , 如痰之與飲 , 皆水也 , 而有陰陽之分 。 溫之與熱 , 皆火也 , 而有微甚之別 。 其間或虛 、 或實 、 在腑 、 在臟 , 尤須詳審 。 審之奈何 ? 形 、 氣 、 脈 、 證是也 。 合而參之 , 斷無背謬 。 俗醫知有心肝脾肺腎 。 而置六腑於不問 , 不知人生全以胃氣為主 , 胃氣盛 , 則臟腑皆盈 , 胃氣衰則臟腑皆敗 。 不但飲食穀氣 , 全憑胃經生髮 , 即病者服藥 , 亦先入胃腑 , 而後達於它臟 , 故曰 :「 得胃者生 。」 又診脈以胃氣為驗 。 然則胃者生死之關也 , 不明乎此 , 而能達精妙者 , 未有也 。 且一病只有一法 , 故余治病未嘗私自立方 , 所開皆古人成方 , 又不敢妄為增減 。 每見病者粗識字 , 則厭故喜新 、 求日易方藥 , 不知藥之為物 , 非五穀平和之氣 , 利此則害彼 , 醫士用之不當 , 必有誅伐無過之慮 。 久之 , 胸中混淆 。 病者非病病 , 乃藥病也 , 富貴之家 , 尤易犯此 , 曾屢屢言之 , 以為以藥餌調養者成 。
병을 치료하는 이치는 열쇠로 자물쇠를 여는 것과 같다. 분명히 서로 반대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 비슷하더라도 분별이 명확하지 않고 치료가 마땅하지 않으면 역시 효험이 없다. 그 사이의 털끝만 한 차이가 천 리의 잘못을 만든다. 담과 음은 모두 물이지만 음양의 구별이 있고, 온과 열은 모두 불이지만 미약하고 심한 차이가 있다. 그 사이에서 허한지 실한지, 부에 있는지 장에 있는지를 더욱 자세히 살펴야 한다. 무엇으로 살피는가? 형·기·맥·증이다. 이를 합하여 참작하면 결코 어긋나지 않는다. 세속의 의사들은 심·간·비·폐·신이 있는 줄은 알면서 육부는 버려두고 묻지 않으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온전히 위기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것을 모른다. 위기가 왕성하면 장부가 모두 충실하고, 위기가 쇠하면 장부가 모두 쇠패한다. 음식의 곡기가 온전히 위경의 생발에 의지할 뿐 아니라 환자가 약을 먹을 때도 먼저 위부에 들어갔다가 다른 장에 도달한다. 그러므로 “위를 얻으면 산다”라고 하였고, 또 진맥할 때 위기를 증거로 삼는다. 그렇다면 위는 생사의 관문이다. 이를 밝히지 않고 정묘한 경지에 통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또 한 병에는 하나의 법만 있으므로 나는 병을 치료할 때 일찍이 사사로이 처방을 만들지 않았고, 쓰는 것은 모두 옛사람이 완성한 처방이며 감히 함부로 더하거나 빼지도 않았다. 환자가 글자를 조금 안다 싶으면 옛것을 싫어하고 새것을 좋아하여 날마다 처방과 약을 바꾸어달라고 하는 것을 흔히 본다. 약이라는 물건은 오곡처럼 화평한 기가 아니므로 이것에 이로우면 저것에는 해로우며, 의사가 합당하게 쓰지 않으면 반드시 잘못 없는 것을 치고 해칠 염려가 있음을 모르는 것이다. 오래되면 가슴속이 뒤섞이고, 환자는 병 때문에 병든 것이 아니라 약 때문에 병든 것이다. 부귀한 집에서 특히 이를 범하기 쉬우므로 일찍이 거듭 말하여 약으로 조양하는 이들에게 성(成)으로 삼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