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譜王丹文 , 續弦至四而仍病 。 始以為不禮於姑 , 鬱症也 。 清陰雨蒼茂才治之 , 用逍遙散或效或否 。 月余又請李笛仙茂才治之 , 問其癸水不至者兩月矣 , 始疑為孕 , 繼覺其非 , 以瘵治之 , 用十全大補湯加桂附 , 初服則可 , 繼服而熱增矣 。 遷延之久 , 無計可施 , 專車迎余 。 診之脈細數 , 而肺部尤兼滑象 。 告曰 , 此熱入血室症也 。 初因少陽感冒而起 , 宜小柴胡湯加生地 、 丹皮等 , 以涼其血 , 則病當愈 。 陰之逍遙尚近理 , 李之桂附 , 則直陰本虛 , 又加熱藥以熬煎之 , 是油沃火也 。 此時必喘咳並作 , 午後發熱 , 頭目昏暈 , 精神倦怠 。 解外感 , 則外感已散 ; 清內熱 , 則真金久為銷爍 , 恐無效也 。 丹文急請一方 , 乃以東垣拯陰理癆湯進 。 告曰 , 服後當有效 , 然此病總以癸水為主 , 癸水至則可治 , 若癸水不至 , 雖效亦無益也 。 越兩日 , 丹文來喜曰 : 服兄藥凡兩劑 , 病已減半 , 再服可乎 ? 余曰 : 可再服兩劑 , 再看可也 。 又兩日 , 迎余去 , 診之 , 數象稍變 , 而虛弱特甚 。 惟肺部火不退 , 乃易以人參救肺湯 。 三服後 , 丹文又迎余 , 問其癸水仍不至 , 乃辭焉 。…… 午月末 , 余由定回介 , 問之 , 則四月中已歿矣 。
같은 계보의 왕단문은 후처를 맞이한 것이 넷에 이르렀으나 또 병이 들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에게 예우받지 못하여 생긴 울증이라 여겼다. 음우창 무재에게 치료를 청하여 소요산을 썼으나 효과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였다. 한 달 남짓 뒤 다시 이적선 무재에게 치료를 청하였는데, 월경이 끊긴 지 두 달임을 묻고 처음에는 임신이라 의심하다가 뒤에 아님을 깨닫고 채병으로 치료하였다. 십전대보탕에 계(桂)·부자를 더하였는데 처음 먹을 때는 괜찮았으나 이어 먹자 열이 더해졌다. 오래 끌어 방법이 없자 수레를 따로 보내 나를 맞아갔다. 진맥하니 세삭하고 폐 부위는 특히 활한 양상도 있었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열이 혈실에 들어간 증상입니다. 처음에는 소양감모에서 일어났으니 소시호탕에 생지황·목단피 등을 더하여 혈을 서늘하게 하면 병이 나았을 것입니다. 음씨의 소요산은 그래도 이치에 가깝지만, 이씨의 계·부자는 참으로 음이 본래 허한 데 다시 열약을 더하여 졸인 것이니 불에 기름을 붓는 것입니다. 지금은 반드시 숨참과 기침이 함께 나고 오후에 열이 나며 머리와 눈이 어지럽고 정신이 피곤할 것입니다. 외감을 풀려 해도 외감은 이미 흩어졌고, 내열을 맑히려 해도 진금이 오래 녹아 손상되었으니 효과가 없을까 두렵습니다.” 단문이 급히 처방 하나를 청하기에 동원의 증음이로탕을 주며 말하였다. “먹은 뒤 효과는 있어야 하나 이 병은 결국 월경을 근본으로 삼습니다. 월경이 오면 치료할 수 있지만 오지 않으면 효험이 있어도 도움이 없습니다.” 이틀 뒤 단문이 기뻐하며 와서 “형의 약을 모두 두 제 먹자 병이 이미 절반 줄었습니다. 더 먹어도 됩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두 제 더 먹고 다시 보아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또 이틀 뒤 나를 맞아가 진맥하니 삭한 양상은 조금 달라졌으나 허약함이 특히 심하였다. 폐 부위의 화만 물러가지 않아 인삼구폐탕으로 바꾸었다. 세 번 먹은 뒤 단문이 다시 나를 맞으러 왔는데 물어보니 월경은 여전히 오지 않았으므로 사양하였다. …… 오월 말 내가 정에서 개로 돌아와 물으니 사월 중순에 이미 죽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