暴怒傷肝熱入血室

同譜弟李曉圃 , 以茂才得廣文 , 後隨其堂兄裕州牧理幕事 。 裕州多得其力 , 後其堂兄以撚匪滋擾罷任 , 曉圃隨後任守城出力 , 保舉五品銜 。 辛酉回介 , 與余往來甚契 。 一日余至其家 , 適其侄在坐 , 似有所求 。 曉圃代白曰 , 舍侄因侄孫婦病甚危 , 已閱十數醫矣 。 愈治癒甚 。 而此時尚不知何病 , 擬請大兄一視 , 果不可為 , 好備一切 。 余以至好隨入視之 , 見病者蒙衾側臥 , 形如露骨雞 , 而面唇甲爪俱白無色 。 即曰 , 此血脫象也 , 得毋產後乎 。 其母在旁曰 , 自四月小產後至今不起數月矣 。 因私計曰 , 此血大虛之症 , 用聖愈湯當有效 。 細視其頭面 , 血絡帶紫色而棱起 , 又疑其血分有熱 , 診之 , 則六部沉數 , 左關肝堅欲搏指 。 乃頓悟曰 , 此暴怒傷肝 , 熱入血室之候 。 其人必性情素暴 , 此病因忿怒而生 , 此時必兩脅脹痛 , 目赤耳鳴 。 且土受木克 , 脾經大虛 , 脾虛則肺亦傷 , 當時而咳嗽 , 時而泄瀉 , 時而發熱 , 時而心驚 , 雖非癆瘵相離不遠 。 趕緊施治尚有轉機 , 若再遲延 , 恐無及也 。 病者就枕點首 , 嫗婢亦以為然 。 出而告曉圃 , 大家皆稱快 , 因以加味逍遙散合左金丸並處之 。 告曰 , 雖不全愈 , 亦當有效四服後再視也 , 越五日 , 遇曉圃於酒市 , 問之 , 則病人不願服藥 , 緣家務不齊 , 曉圃亦只聽之而已 。
같은 계보의 아우 이효포는 무재로 광문이 되었고, 뒤에 사촌 형인 유주목을 따라 막부의 일을 처리하였다. 유주목은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뒤에 사촌 형이 염비의 소요로 파면되자 효포는 후임자를 따라 성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어 보거로 오품 직함을 받았다. 신유년에 개로 돌아와 나와 매우 마음이 맞아 왕래하였다. 하루는 내가 그의 집에 갔는데 마침 조카가 자리에 있으며 무엇인가 청하려는 듯하였다. 효포가 대신 말하였다. “제 조카의 며느리가 병이 몹시 위태로워 이미 의사 십수 명을 보았습니다. 치료할수록 더 심해지는데 지금도 무슨 병인지 모르므로 형님께 한번 보아주시기를 청합니다. 과연 어찌할 수 없다면 모든 일을 준비하려 합니다.” 나는 지극히 친한 사이이므로 따라 들어가 보니 환자가 이불을 덮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몸은 뼈가 드러난 닭 같고 얼굴·입술·손발톱이 모두 희어 핏기가 없었다. 곧 “이는 혈탈의 모습인데 혹시 출산 뒤가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곁에서 “사월에 유산한 뒤 지금까지 몇 달째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속으로 이는 혈이 크게 허한 증상이니 성유탕을 쓰면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머리와 얼굴을 자세히 보니 혈락이 자줏빛을 띠고 도드라져 있어 또 혈분에 열이 있는지 의심하였다. 진맥하니 육부가 침삭하고 좌관의 간맥이 손가락을 치려 할 만큼 단단하였다. 문득 깨닫고 말하였다. “이는 갑작스러운 노여움으로 간을 상하고 열이 혈실에 들어간 징후입니다. 이 사람은 반드시 평소 성품이 사나웠을 것이며 이 병은 분노 때문에 생겼습니다. 지금 반드시 양쪽 옆구리가 더부룩하고 아프며 눈이 붉고 귀가 울릴 것입니다. 또 토가 목의 억제를 받아 비경이 크게 허하고, 비가 허하면 폐도 상하여 때로 기침하고 때로 설사하며 때로 열이 나고 때로 가슴이 놀랄 것입니다. 비록 노채는 아니어도 그리 멀지 않습니다. 서둘러 치료하면 아직 전기가 있지만 더 지체하면 미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환자는 베개에 누워 고개를 끄덕였고 노파와 계집종도 그렇다고 하였다. 나와 효포에게 알리니 모두 속 시원해하였다. 이에 가미소요산과 좌금환을 함께 처방하며 “완전히 낫지 않더라도 효과는 있어야 하니 네 번 먹고 다시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닷새 뒤 술 시장에서 효포를 만나 물으니 환자가 약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집안일이 화합하지 못한 탓이어서 효포도 그대로 둘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