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鬱停痰喘咳不食

里中武庠楊樂齋之二嫂 , 廿餘而寡 , 撫一子 , 人頗精強 , 一切家政 , 皆經其手 , 諸妯娌不及也 。 然鬱鬱獨居 , 肝氣時作 , 發則喘咳交臻 , 呻吟不食 , 如此者經年矣 , 延醫數輩皆以癆瘵論 。 壬戌春 , 病復發 。 臥床月余 , 閣家無可措手 。 楊邀余視之 , 診其左關滑數 , 右寸關俱甚 。 乃告之曰 , 此氣鬱停痰 , 並非癆症 。 前必多服補藥 , 因而增劇 , 萬勿為慮 , 藥不十劑 , 保無恐矣 。 乃以平胃 、 二陳 、 四七湯合進之 , 藥入口才刻許 、 膈間漉漉作聲 , 頓覺寬展 , 二帖後 , 喘咳息 , 而食少進 。 家人皆驚其神 , 以為全愈 , 遂停藥 。 余亦忘之 , 未過三日病又作 。 又延余視 , 診之 , 脈少衰 , 而滑數未改 。 因問服幾帖 ? 以二對 。 告曰 : 二帖路已開 , 病未愈 , 少亦須四服 , 但得大解膠黏穢物 , 則全去矣 。 不必易方 , 宜照前服之 , 三日後再見也 。 病者聽之 , 越日晨起 , 暴下惡物數次 , 食大進 , 喘咳皆歸烏有 。 更告以香砂六君子丸調攝之 , 尤當穩固 , 而其家皆淡漠 , 不知聽之否也 。 倘調養不善 , 恐明春再作也 。
마을의 무상 양낙재의 둘째 형수는 스무여 살에 과부가 되어 아들 하나를 길렀다. 사람이 매우 영리하고 강하여 모든 집안일이 손을 거쳤으며 여러 동서가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울적하게 홀로 지내 간기가 때때로 발작하였고, 발작하면 숨참과 기침이 함께 닥쳐 신음하며 먹지 못하였다. 이렇게 지낸 지 여러 해였고 여러 의사를 불렀으나 모두 노채로 논하였다. 임술년 봄 병이 다시 발작하여 한 달 넘게 누워 있으니 온 집안이 손쓸 수 없었다. 양씨가 나를 불러 보게 하여 진맥하니 좌관이 활삭하고 우촌과 우관도 모두 심하였다. 이에 “이는 기가 울체되어 담이 정체된 것이지 노증이 아닙니다. 앞서 반드시 보약을 많이 먹어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열 제도 되지 않아 걱정이 없을 것을 보장합니다”라고 하였다. 평위탕·이진탕·사칠탕을 합하여 주었더니 약을 먹고 겨우 한 각쯤 만에 횡격막 사이에서 꾸르륵 소리가 나고 갑자기 시원해졌다. 두 첩 뒤 숨참과 기침이 멎고 음식도 조금 먹었다. 집안사람들이 모두 신기함에 놀라 완전히 나았다고 여겨 약을 끊었다. 나도 잊었는데 사흘이 지나지 않아 병이 다시 발작하였다. 다시 나를 불러 보게 하여 진맥하니 맥이 조금 줄었으나 활삭은 변하지 않았다. 몇 첩 먹었는지 물으니 두 첩이라고 하였다. 내가 “두 첩으로 길은 열렸지만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네 번은 먹어야 하며, 끈끈하고 더러운 것을 대변으로 내보내면 완전히 없어집니다. 처방을 바꿀 필요 없이 앞서대로 먹고 사흘 뒤 다시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환자가 따랐더니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나쁜 것을 여러 차례 갑자기 쏟아내고 먹는 양이 크게 늘었으며 숨참과 기침이 모두 사라졌다. 다시 향사육군자환으로 조섭하면 더욱 안정될 것이라고 일러주었으나 집안사람들이 모두 무관심하여 따랐는지 알 수 없다. 조양을 잘하지 않으면 내년 봄 다시 발작할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