典史宋曉嵐 , 同鄉也 。 丙辰春 , 與余同攜眷入秦 。 將至臨潼 , 其孫女甫周歲 , 坐車為雨泥所滑 , 女失手墜車下 , 輪輾其腹 , 頃刻而斃 , 亦氣數也 。 其媳以慟女故 , 日切悲哀 , 兼介入 , 安土重遷 , 鄉思頗切 , 曉嵐尤吝於財 , 雖宦遊而飲食衣服 , 不遂婦願 。 至夏忽患胸脅大痛 , 喘嗽不寧 , 飲食俱減 。 曉嵐來求治余 , 診其左脈弦而牢 , 右寸堅而滑 , 知為氣鬱 , 乃以左金丸合顛倒木金散進 。 二服後 , 吐痰涎數碗 , 再視之 , 則左少軟 , 而右亦漸乎矣 。 因以逍遙散加木香青皮等疊進之 , 半月後始就平復 。 因勸曉嵐曰 , 兒女情懷 , 須少寬假 。 前日之病 , 久則成癲 , 若不去其痰 , 遙遙千里 , 攜帶而來 , 競成廢人 , 不悔之甚乎 。 曉嵐遵之 , 辭色稍溫 , 三月後 , 如居故土矣 。
전사 송효람은 동향 사람이다. 병진년 봄에 나와 함께 가족을 데리고 진 땅에 들어갔다. 임동에 이르려 할 때 그의 손녀는 막 한 돌이었는데, 타고 있던 수레가 비에 젖은 진흙에 미끄러지면서 아이를 놓쳐 수레 아래로 떨어졌고 바퀴가 배를 깔아 순식간에 죽었다. 이 또한 기수였다. 며느리는 딸을 잃은 슬픔으로 날마다 비통해하였고, 또 개입(介入)으로 살던 땅을 편히 여기고 옮겨 사는 것을 어려워하여 향수가 깊었다. 효람은 특히 재물에 인색하여 타향에서 벼슬하면서도 음식과 옷을 며느리의 뜻에 맞게 주지 않았다. 여름에 이르러 갑자기 가슴과 옆구리가 몹시 아프고 숨차며 기침하여 편하지 않고 먹는 것도 모두 줄었다. 효람이 와서 치료를 청하기에 진찰하니 왼쪽 맥은 현뢰하고 오른쪽 촌맥은 단단하고 활하였다. 기울임을 알고 좌금환에 전도목금산을 합하여 주었다. 두 번 먹은 뒤 담연을 여러 사발 토하였다. 다시 보니 왼쪽은 조금 부드러워지고 오른쪽도 점차 고르게 되었다. 이에 소요산에 목향·청피 등을 더하여 거듭 주니 보름 뒤 비로소 회복되었다. 효람에게 권하여 말하였다. “자식들의 마음은 조금 너그러이 받아 주어야 합니다. 지난번 병은 오래되면 전병이 됩니다. 담을 없애 주지 않았다면 아득한 천 리 길을 데리고 와서 끝내 폐인이 되었을 터이니 크게 후회하지 않았겠습니까?” 효람은 이를 따라 말과 안색이 조금 온화해졌고, 석 달 뒤에는 고향에 사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