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氣下注腿腳作腫

趙梅村先生 , 崞縣人 , 工書 , 兼精筆劄 。 見者輒賞之 。 以廩生博廣文尚在需次 , 為榆林觀察芝田先生記室 , 後芝翁以內艱歸里 , 梅翁亦家居 , 近為定襄令同譜弟戴幼安翁司筆劄 。 壬戌夏 , 定襄縣試 , 幼翁邀余閱卷 , 與梅翁朝夕聚談 。 一日梅翁曰 : 弟素頗健 , 近不知何故 , 兩腿連腳作腫 , 午後益盛 , 悶滯不能屈伸 。 余問皮皺乎 ? 曰然 。 光亮乎 ? 曰然 。 小便不利乎 ? 曰然 。 胸膈發悶乎 ? 曰然 。 告曰 , 此必飲水太多 , 水氣下注 , 不治則成水腫 , 漸而至腰 , 至腹 , 則無救矣 。 梅翁請一診 , 余曰 , 不必診脈 , 但疏瀉其水 , 小便利則腫自已 。 至於茶水 , 渴而後飲 , 不渴時則絕之 , 勿過貪也 。 因進以五苓散加木通 、 牛膝 、 防己 、 瞿麥 , 至夜則小便五六次 , 覺肚腹寬舒 。 天明視之 , 腫消其半 , 連服三劑 。 則腫跡全無 , 步履矯健 。 梅翁為書對聯 、 橫幅 , 稱神者再再 。
조매촌 선생은 곽현 사람으로 글씨를 잘 쓰고 편지와 문서에도 정통하여 보는 이마다 칭찬하였다. 늠생으로 광문의 자격을 얻고도 아직 차례를 기다리며 유림 관찰 지전 선생의 기실이 되었다. 뒤에 지옹이 모친상으로 고향에 돌아가자 매옹도 집에 머물렀고, 근래에는 정양 현령인 같은 계보의 아우 대유안 옹을 위하여 문서를 맡았다. 임술년 여름 정양의 현시 때 유옹이 나를 불러 답안을 검토하게 하여 매옹과 아침저녁으로 모여 이야기하였다. 하루는 매옹이 “저는 본래 제법 건강하였는데 요즘 무슨 까닭인지 두 다리에서 발까지 붓고 오후에는 더욱 심하여 답답하고 막혀 굽히고 펴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피부가 주름지는지, 번들거리는지, 소변이 잘 나오지 않는지, 가슴과 횡격막이 답답한지 차례로 물으니 모두 그렇다고 하였다. 내가 “이는 반드시 물을 너무 많이 마셔 수기가 아래로 흘러든 것입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수종이 되고 점차 허리와 배까지 이르면 구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매옹이 진맥을 청하였으나 나는 “진맥할 필요 없이 물을 소통시켜 내보내기만 하면 소변이 잘 나오면서 부기도 저절로 낫습니다. 차와 물은 목마를 때에만 마시고 목마르지 않으면 끊어 지나치게 탐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오령산에 목통·우슬·방기·구맥을 더하여 주었더니 밤에 소변을 대여섯 차례 보고 배가 시원함을 느꼈다. 날이 밝아 보니 부기가 절반 빠졌고 연달아 세 제를 먹자 부은 흔적이 전혀 없으며 걸음이 날쌔고 건강해졌다. 매옹이 나를 위하여 대련과 횡폭을 써주며 거듭 신묘하다고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