濕熱內淫實證遺精

黃庚垣先生 , 江西人 , 以捐餉奉特旨議敘舉人加藩司銜並賞花翎 , 補西安糧道 。 道缺甚優 , 兼家貲優厚 , 而觀察性尚清廉 , 接下以寬 , 故屬下皆頌之 。 年五十許 , 曾患遺精病 。 觀察侍妾數人 , 幕友有善醫者 , 以為許多姬妾 , 必致虛損 。 用三才封髓丹補之 , 而觀察又講頤養 。 日食燕窩 、 東參以調之 , 然遺精如故 。 幕友以為已成虛勞 , 不可救藥 。
황경원 선생은 강서 사람으로 군량 자금을 기부한 공으로 특별한 명을 받아 의서되어 거인에 번사 직함과 화령을 더해 받았고, 서안 양도에 임명되었다. 도의 자리는 매우 좋았고 집안 재산도 넉넉하였으나 관찰은 성품이 청렴을 숭상하고 아랫사람을 너그럽게 대하였으므로 부하들이 모두 칭송하였다. 나이 쉰쯤에 일찍이 유정병을 앓았다. 관찰에게 시첩이 여러 명 있었으므로 의술에 능한 막우는 여러 첩 때문에 반드시 허손해졌을 것이라 여겼다. 삼재봉수단으로 보하였고, 관찰도 보양에 힘써 날마다 제비집과 동삼을 먹어 조리하였으나 유정은 여전하였다. 막우는 이미 허로가 되어 약으로 구할 수 없다고 여겼다.
一日午後無事 , 忽召余至署 , 且命便服 , 余急趨命 , 觀察便衣而出 , 揖而延之上座 , 余驚問故 , 觀察曰 : 患遺精數年矣 , 曾服湯藥百余付 , 丸藥數斤 , 而毫無效 。 余問飲食何如 ? 觀察曰 : 雖不能多 , 然尚非不能食者 。 老夫子以我為虛癆 , 故不敢多食也 。 問咳嗽氣少 、 發熱自汗乎 ? 曰否 。 乃告之曰 , 既無此數者 , 恐有餘症 , 非不足證也 。 觀察驚曰 , 遺精尚有實症乎 ? 余對曰 , 大人未窺醫書 , 兼脾胃虛弱 , 不特醫者不敢以實論 , 即大人亦自疑其虛也 。 豈知遺精之由有數端 , 相火太旺 , 夜夢失遺 , 陽必壯健 , 宜滋之 ; 飲食厚味濕熱內淫 , 則迫而失精 , 宜銷導之 ; 久曠氣充 , 精滿而溢 , 宜疏泄之 。 此外 , 中氣下陷 , 清陽不升 , 則亦遺 ; 色欲過度 , 心腎不交 , 則亦遺 。 又有恐懼暴怒 , 精竅滑而不澀 , 皆能致遺 。 若或坐或臥 , 無故遺精 , 則為虛極之症 , 最為危險 。 俗醫不細求其故 , 不分虛寒實熱 , 見遺精者 , 則曰色欲過度也 ; 又曰年少好淫也 。 致病者 , 多受不白之冤 , 而治之多不效 。 遂歸咎於病之不可治 , 不亦惑乎 。
하루는 오후에 일이 없는데 갑자기 나를 관아로 부르면서 평상복으로 오라고 하였다. 급히 명을 받들어 가니 관찰이 평상복을 입고 나와 읍하고 윗자리로 맞아들였다. 놀라 까닭을 물으니 “유정을 앓은 지 몇 년 되었습니다. 탕약 백여 첩과 환약 몇 근을 먹었으나 전혀 효험이 없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음식을 어떻게 먹는지 물으니 “많이 먹지는 못해도 먹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부자께서 나를 허로라 하므로 감히 많이 먹지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기침·기단·발열·자한이 있는지 물으니 없다고 하였다. 이에 “이 몇 가지가 없다면 유여증일 듯하며 부족증은 아닙니다”라고 하니 관찰이 놀라 “유정에도 실증이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답하였다. “대인께서 의서를 살피지 않으셨고 비위도 허약하시니 의사도 감히 실증으로 논하지 못할 뿐 아니라 대인께서도 스스로 허증이라 의심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유정의 까닭에는 여러 갈래가 있습니다. 상화가 너무 왕성하여 밤에 꿈꾸며 유정하면 양이 반드시 장건하니 자양해야 합니다. 기름진 음식을 먹어 습열이 안으로 스며들면 핍박하여 정을 잃게 하므로 소도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홀로 지내 기가 충실하고 정이 가득 차 넘치면 소설해야 합니다. 이 밖에 중기가 아래로 꺼지고 청양이 오르지 못하여도 유정하며, 색욕이 지나쳐 심신이 서로 교통하지 못하여도 유정합니다. 또 두려움이나 갑작스러운 노여움으로 정규가 미끄러워 고삽하지 못한 것도 모두 유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앉거나 누워서 까닭 없이 정이 새면 극도로 허한 증상으로 가장 위험합니다. 세속 의사들은 까닭을 자세히 찾지도 않고 허한과 실열을 구별하지도 않은 채 유정하는 사람을 보면 색욕이 지나치다고 하거나 젊어서 음욕을 즐긴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환자가 억울한 누명을 많이 쓰고 치료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고는 병이 치료할 수 없는 것이라고 탓을 돌리니 또한 미혹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觀察蹶然起曰 : 聞君講解 , 無不確當曉暢 , 心為之開 , 然則我之遺精絕非虛症 , 請一視之 。 乃診其脈 , 緩而堅 , 右關尤甚 。 告之曰 , 大人之病 , 所謂濕熱內淫是也 。 胸膈常患悶滯 , 大便頗形後重 , 當消導之 。 進以震亨滲濕湯 。 觀察閱方內有黃連恐不宜 , 且厚朴 、 蒼朮恐傷胃氣 。 告曰 , 胃苓湯是濕熱要藥 。 平胃散者 , 培卑監而使之平 , 非削平之謂也 , 前輩言之甚明 , 此方用黃連川芎素亦疑之 , 細思其理 , 苦能燥濕用黃連而焦炒之 , 用其苦非用其涼也 。 濕熱能瘀血 , 用川芎以行之 , 震亨此方 , 具有深意 。 大人成見在胸 , 一誤豈容再誤 , 他人必謂此方 , 非治遺之藥 , 豈知治病必求其本 , 本治而末不治者 , 未之有也 。 請放心照服四付 , 常服香砂六君丸以調之 , 不但精不遺 , 即飲食亦當倍也 。 觀察如言服之 , 五日後 , 約晚飯 , 至則告曰 , 前聞君言甚有理 , 而心竊疑之 , 今服君藥 , 遺已止 , 果覺精神增健 , 食量亦佳 , 並陽事亦壯 。 非君妙達精微 , 幾乎冤我 , 可見醫道無方 , 在究其理而變通之耳 。 後余諸蒙獎許 , 即內艱而歸 , 猶寄函問訊者數四 。
관찰이 벌떡 일어나 “그대의 설명은 모두 정확하고 알기 쉬워 마음이 열립니다. 그렇다면 나의 유정은 결코 허증이 아니니 한번 살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맥을 진찰하니 완하면서 단단하고 우관이 더욱 심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대인의 병은 이른바 습열이 안으로 스며든 것입니다. 가슴과 횡격막이 늘 답답하고 막히며 대변을 본 뒤에도 뒤가 무거운 느낌이 제법 있으니 소도해야 합니다.” 진형삼습탕을 주었는데 관찰은 처방에 황련이 있어 마땅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후박과 창출도 위기를 상할까 염려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위령탕은 습열의 중요한 약입니다. 평위산이란 낮은 감(卑監)을 북돋아 평평하게 한다는 뜻이지 깎아서 평평하게 한다는 뜻이 아님을 선배들이 매우 분명히 말하였습니다. 이 처방에서 황련과 천궁을 쓰는 것은 저도 평소 의심하였으나 이치를 자세히 생각해보니, 쓴맛이 습을 말리므로 황련을 까맣게 볶아 쓰는 것은 쓴맛을 쓰는 것이지 서늘함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습열은 피를 어혈지게 하므로 천궁을 써서 운행시킵니다. 진형의 이 처방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대인께서 가슴에 선입견을 지니셨지만 한 번 잘못한 것을 어찌 다시 잘못하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반드시 이 처방이 유정을 다스리는 약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근본을 구해야 하며, 근본을 치료하였는데 말단이 치료되지 않는 경우는 없음을 어찌 알겠습니까. 마음 놓고 처방대로 네 첩을 먹은 뒤 향사육군환을 늘 먹어 조리하십시오. 정이 새지 않을 뿐 아니라 먹는 양도 마땅히 배가 될 것입니다.” 관찰이 말대로 먹었다. 닷새 뒤 저녁 식사를 청하여 가니 “앞서 그대의 말이 매우 이치에 맞는다고 들으면서도 속으로 의심하였습니다. 이제 약을 먹어 유정이 멎었고 과연 정신이 더욱 건실하며 먹는 양도 좋아지고 성기능도 왕성해졌습니다. 그대가 정미한 이치에 묘하게 통달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거의 억울하게 만들 뻔하였습니다. 의도에는 고정된 법이 없고 그 이치를 궁구하여 변통하는 데 달려 있음을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뒤에도 나는 여러 차례 칭찬을 받았으며,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돌아간 뒤에도 안부를 묻는 편지가 서너 번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