丙辰春 , 余需次入秦 , 西安守沈小梅 , 余內閣前輩也 。 時稅驂 , 即召余入讞局 , 昕夕相從 , 蒙其獎拔 , 信足感也 。 是年至四月不雨 , 至於六月旱甚 , 大吏憂之 , 謀所以祈雨者 , 星甫年伯以八卦壇進 。 遂延僧道數十人諷經設醮 。 派余及州縣數人監其事 。 小梅素壯 , 自是夙興夜寐 , 奔走不惶 , 兼旱天酷暑 , 事務增煩 , 遂得熱病 , 煩躁不安 , 精神昏瞀 。 余在雨壇未知其事 , 越日 , 小梅不來 , 問兩首縣則曰 : 太尊病兩日矣 。 問何病 , 兩縣不能悉言 。 次候補府何保如僕從而來曰 : 小梅之病甚危 , 外似實症 , 內實虛寒 , 已進桂附理中湯 , 不知可獲效否 ? 因問其脈 , 保如以微對 。 余心竊以為不然 。 而未知形症 , 不敢辨也 。 蓋小梅浙人 , 保如亦蘇產 , 恐俗醫誤事 , 故延保如治之 。 次日 , 星甫惶恐而來曰 , 小梅病危在旦夕 , 昨服藥後 , 益僵不能動 , 僅存余息而已 。 余告同人恐不至此 , 小梅病當是藥誤 , 急登輿而視之 。 至署 , 則閣家環泣 , 幕僚咸嘖嘖耳語 。 余急止之曰 : 病才數日 , 未必不可治 , 請一視之 。 其子似竹 , 急揖余曰 : 老伯既解此 , 宜施拯救 , 前實不知 。 隨入視之 , 小梅橫臥 , 呼之不知 , 面汗出如油膩 , 氣息粗急 , 視其腹 , 渾身如赤 , 按之鼓甚 , 且鼻有血涕 , 兩目白珠全紅 , 口吻腫破 , 舌強不可卷伸 。 問飲食乎 ? 曰 , 不食三日矣 , 惟飲水而嫌熱 。 問二便乎 ? 曰 , 點滴全無 。 診其脈則絲毫不見 , 而血絡棱起帶紫色 。 乃告其家人 , 此實熱內鬱 , 外傷於暑 。 保翁誤認為虛寒 , 投以桂附 , 若再服 , 則九竅出血 , 遍體紫黑而斃矣 ! 幸氣息尚盛 , 雖危尚可治 , 勿憂也 。 為立一方 , 以大承氣湯 , 白虎湯 , 六一散合之 。 其幕孫桂珊曰 : 南人畏大黃石膏如鳩毒 , 今用至數兩之多 , 恐虎狼之性戕人命也 ? 余曰 , 病勢至重 , 輕劑斷不能達 。 孫曰 , 南人脾胃虛弱 , 不比北人強壯 , 宜少減之 。 余不得已請之曰 : 古人留石膏大黃專為北人耶 ? 抑為天下後世耶 ? 君如此多疑 , 以為可 , 則進 , 不可 , 則否 , 余不能誤人性命 , 急拂衣而起 。 其家見余言激切 , 急煎服之 。 而其子留余不使出署 , 越二刻許 , 小梅呻吟求涼水 , 目開而語出 。 家人禁其飲涼 , 余曰 , 盡飲之無傷也 , 乃飲涼水兩碗 。 刻許 , 而呼小便 , 下如血 。 余曰 : 何如 ? 至晚 , 則胸腹雷鳴 , 下黑糞數十粒 , 精神漸爽 。 家人共喜 , 急告以故 , 次早肩輿迎余 , 握余手曰 , 蒙君再生 , 感激無既 , 前藥尚可服否 ? 余曰 , 一服始通 , 病尚未清 , 連服三四乃可 , 君何怯焉 。 凡五服 , 而病全除 。 數日後 , 小梅問余曰 , 大黃素實不敢沾口 , 今借此得愈 , 深為南人賣 。 余曰 , 前輩固南人 , 而京居十數年 , 脾胃亦與北人等 。 況醫之一道 , 認病為先 , 不必存南北之見 。 小梅又欲服參補虛 。 余曰 , 本不虛 , 何容補 。 如參茸能壯人 , 則神農 , 後稷 , 何不教人食參茸而食五穀乎 ? 小梅拍案曰 , 痛快之論 , 得未曾有聞者 , 咸首肯焉 。
병진년 봄, 나는 임용 차례를 기다리며 진 땅에 들어갔다. 서안의 수령 심소매는 내각에서 나의 선배였다. 막 수레를 멈추었을 때 곧 나를 불러 언국에 들게 하여 아침저녁으로 따르게 하였고, 장려하고 발탁해 주니 참으로 감사할 만하였다. 그해는 사월이 되도록 비가 오지 않았고 유월에는 가뭄이 매우 심하였다. 대관이 근심하며 기우할 방법을 의논하자 성보 연백이 팔괘단을 제안하였다. 이에 승려와 도사 수십 명을 불러 경을 외우고 초제를 베풀게 하였으며, 나와 주현의 몇 사람을 보내 그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소매는 본디 건장하였는데 이때부터 새벽에 일어나 밤에 자며 쉴 틈 없이 뛰어다녔다. 가문 날씨에 더위가 혹독하고 일도 더욱 번잡하여 마침내 열병을 얻어 번조하고 편하지 않으며 정신이 어두워졌다. 나는 기우단에 있어 그 일을 몰랐다. 다음 날 소매가 오지 않아 두 수현에게 물으니 태존이 병든 지 이틀이라고 하였다. 무슨 병인지 물었으나 두 현령은 자세히 말하지 못하였다. 다음으로 후보 지부 하보여가 종을 거느리고 와서 말하였다. “소매의 병이 매우 위중합니다. 겉은 실증 같지만 안은 실로 허한하므로 계부이중탕을 주었으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맥을 물으니 보여는 미하다고 답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렇지 않으리라 여겼으나 형증을 알지 못하여 감히 논변하지 않았다. 소매는 절강 사람이고 보여 역시 소주 출신이어서, 속된 의원이 일을 그르칠까 염려하여 보여를 불러 치료하게 한 것이었다. 이튿날 성보가 황급히 와서 말하였다. “소매는 목숨이 조석에 달렸습니다. 어제 약을 먹은 뒤 더욱 굳어 움직이지 못하고 겨우 숨만 남았습니다.” 나는 동료들에게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며 소매의 병은 약을 잘못 쓴 탓일 것이라 말하고, 급히 가마에 올라 보러 갔다. 관아에 이르니 온 집안이 둘러서서 울고 막료들은 수군거렸다. 나는 급히 말렸다. “병든 지 겨우 며칠이니 반드시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한번 보게 해 주십시오.” 아들 사죽이 급히 읍하며 말하였다. “노백께서 이를 아시니 구해 주셔야 합니다. 앞서는 참으로 몰랐습니다.” 따라 들어가 보니 소매는 가로누워 불러도 모르고, 얼굴의 땀은 기름처럼 끈끈하며 숨은 거칠고 급하였다. 배를 보니 온몸이 붉은 듯하고 누르면 몹시 팽팽하였다. 코에는 피 섞인 콧물이 있고 두 눈의 흰자위가 모두 붉었으며, 입 주변이 붓고 터지고 혀가 굳어 말거나 펴지 못하였다. 음식을 먹느냐고 물으니 “사흘째 먹지 못하고 물만 마시는데 더운 것은 싫어합니다”라고 하였다. 대소변을 물으니 한 방울도 전혀 없다고 하였다. 맥을 진찰하니 조금도 나타나지 않았고 혈락은 모가 나게 솟아 자색을 띠었다. 이에 집안사람에게 말하였다. “이는 실열이 안에 울체되고 밖으로 서사에 상한 것입니다. 보옹이 허한으로 잘못 알아 계·부를 썼으니, 다시 먹으면 구규에서 피가 나오고 온몸이 검붉어져 죽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숨이 아직 왕성하니 위중하지만 치료할 수 있습니다. 근심하지 마십시오.” 대승기탕·백호탕·육일산을 합하여 한 처방을 세웠다. 막객 손계산이 말하였다. “남쪽 사람은 대황과 석고를 구독(鳩毒)처럼 두려워합니다. 지금 여러 냥이나 쓰면 호랑이와 이리 같은 성질이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 않겠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병세가 지극히 무거우므로 가벼운 약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습니다.” 손이 말하였다. “남쪽 사람은 비위가 허약하여 북쪽 사람처럼 강건하지 않으니 조금 줄여야 합니다.” 부득이 내가 청하여 말하였다. “옛사람이 석고와 대황을 남긴 것이 오로지 북쪽 사람을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천하 후세를 위해서입니까? 그대가 이토록 의심이 많으니 옳다고 여기면 먹이고 옳지 않으면 먹이지 마십시오. 나는 사람의 목숨을 그르칠 수 없습니다.” 급히 옷소매를 떨치고 일어나자 집안사람이 내 말이 격하고 간절함을 보고 급히 달여 먹였다. 아들은 나를 붙들어 관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두 각쯤 지나 소매가 신음하며 찬물을 찾고 눈을 뜨며 말을 하였다. 집안사람이 찬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자 내가 “마음껏 마셔도 해롭지 않습니다”라고 하니 찬물 두 사발을 마셨다. 한 각쯤 지나 소변을 보겠다고 하였는데 피 같은 것이 나왔다. 내가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저녁에는 가슴과 배에서 우레 같은 소리가 나고 검은 변 수십 덩이를 보았으며 정신이 점차 맑아졌다. 집안사람이 함께 기뻐하며 급히 까닭을 알렸다. 이튿날 아침 가마로 나를 맞아 손을 잡고 말하였다. “그대 덕분에 다시 살아나니 감사함이 끝없습니다. 앞의 약을 더 먹어도 되겠습니까?” 내가 말하였다. “한 번 먹고 비로소 통하였으나 병은 아직 깨끗해지지 않았으니 서너 번 이어 먹어야 합니다. 무엇을 겁내십니까?” 모두 다섯 번 먹고 병이 완전히 없어졌다. 며칠 뒤 소매가 물었다. “대황은 본래 감히 입에 대지 못하였는데 이제 이것으로 나았으니, 남쪽 사람들에게 크게 속았습니다.” 내가 말하였다. “선배께서는 본래 남쪽 사람이지만 서울에 십수 년 사셨으니 비위도 북쪽 사람과 같습니다. 더구나 의술에서는 병을 알아보는 것이 우선이니 남북의 견해를 품을 필요가 없습니다.” 소매가 또 인삼으로 허를 보하려 하자 내가 말하였다. “본래 허하지 않은데 어찌 보할 여지가 있겠습니까? 인삼과 녹용이 사람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 신농과 후직은 어찌 사람들에게 인삼·녹용을 먹게 하지 않고 오곡을 먹게 하였겠습니까?” 소매가 탁자를 치며 “통쾌한 논의로 일찍이 듣지 못한 것을 들었습니다”라고 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