內人之妹適武舉張某之長子 , 產後患心胃痛 。 發則飲食俱絕 , 氣促口乾 。 其翁延人視之 , 皆曰虛 , 況產婦尤無實症 , 當培其氣血 , 氣血流通 , 則痛止 。 始服八珍湯 , 繼服十全大補湯 , 月余不止 。 乃來外家求余治 。 診其左寸關脈 , 堅凝而澀 , 知為瘀血停於胸膈 。 乃曰 , 胸膈痛 , 非心胃痛也 。 發則內如針刺 , 口渴氣喘 , 宜散瘀以定痛 , 不宜補氣以益瘀也 。 前服多補藥 , 何能有效 。 乃命服失笑散二劑 , 而痛若失 。 三日後視之 , 則其兒始歲余 , 手足發熱 , 神癡氣粗 , 乳食不進 , 喉中時時如鋸聲 , 眾以為驚風 , 延一鄰媼針灸之 。 余曰 : 此痰也 , 針灸則益甚 , 必平日多置曖處 , 其母臥而乳之所致也 。 矚服白玉餅(方 : 滑石半夏巴霜朱砂苦礬各一錢神麯糊為丸 , 滑石為衣)數粒 , 至晚則下綠色糞如許 , 乳食進熱退而安 。 後返其家未逾月 , 乃婿忽來 , 下車入門 , 面目黑膩 , 胸高氣喘 。 問係吐血疾 , 自言心中時時作嘔 , 兩脅刺痛發咳 。 來求治之 。 診其脈弦而滑 , 乃曰 : 此氣秘也 , 必有大遂事 , 暴怒傷肝 , 乃致是疾 。 張曰 : 然 。 余曰 : 曾施治否 ? 張曰 : 有村醫以余為陰虧 , 命服地黃湯 , 轉增腹張 , 乃辭 , 而求閣下 。 余為開蘇子降氣湯 , 又開逍遙散方 , 付之曰 : 路遠病勞 , 歸先服降氣湯 , 氣當舒 , 再服逍遙散 , 血當止 , 十數日保無恙 , 無煩再來也 。 張謝而去 , 如言服之 , 月余 , 遣人來言 , 主人病痊癒 , 恐在念 , 令小人先告知 , 有暇必衣冠來謝也 , 余固止之 。
내 아내의 여동생은 무거 장 아무개의 맏아들에게 시집갔는데, 해산한 뒤 심위통을 앓았다. 발작하면 음식이 모두 끊기고 숨이 가쁘며 입이 말랐다. 시아버지가 사람들을 불러 보였으나 모두 허증이며 더구나 산부에게는 실증이 없으니 기혈을 길러 주어야 하고, 기혈이 유통하면 통증이 그친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팔진탕을 먹고 이어 십전대보탕을 먹었으나 한 달 남짓 그치지 않았다. 이에 친정에 와서 나에게 치료를 청하였다. 왼쪽 촌관맥을 진찰하니 단단하게 맺히고 삽하여 어혈이 흉격에 머무른 것임을 알았다. 내가 말하였다. “흉격통이지 심위통이 아닙니다. 발작하면 안이 바늘로 찌르듯 하고 목이 마르며 숨이 차니 어혈을 흩어 통증을 멎게 해야지, 기를 보하여 어혈을 더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보약을 많이 먹었으니 어떻게 효험이 있겠습니까?” 곧 실소산 두 제를 먹게 하니 통증이 씻은 듯 사라졌다. 사흘 뒤 보러 가니 그 아이가 겨우 한 살 남짓인데 손발에 열이 나고 정신이 멍하며 숨이 거칠고 젖과 음식을 먹지 않으며, 목에서 때때로 톱질 같은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경풍이라 여겨 이웃 할머니를 불러 침구를 하게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담이니 침구를 하면 더욱 심해집니다. 반드시 평소 따뜻한 곳에 많이 두고 어미가 누워 젖을 먹인 탓입니다.” 백옥병(처방: 활석·반하·파상·주사·고반 각 1돈을 신국 풀로 환을 만들고 활석으로 겉을 입힌다) 몇 알을 먹게 하였다. 저녁에 푸른 변을 그만큼 보고 젖과 음식을 먹으며 열이 내려 편안해졌다. 뒤에 시집으로 돌아간 지 한 달이 안 되어 사위가 갑자기 왔다. 수레에서 내려 문에 들어서는데 얼굴은 검고 번들거리며 가슴이 높이 솟고 숨이 찼다. 물으니 토혈병이라고 하며, 스스로 가슴속이 때때로 메스껍고 양 옆구리가 찌르듯 아프며 기침이 나서 치료를 청하러 왔다고 하였다. 맥이 현활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이는 기비입니다. 반드시 크게 수(遂)한 일이 있어 갑자기 성을 내 간을 상한 탓에 이 병이 된 것입니다.” 장이 그렇다고 하였다. 내가 치료한 적이 있느냐고 묻자 장이 말하였다. “마을 의원이 음이 부족하다고 하여 지황탕을 먹게 하였는데 배가 더욱 불러 그를 사양하고 각하께 왔습니다.” 나는 소자강기탕과 소요산의 처방을 써서 주며 말하였다. “길이 멀어 병든 몸이 지쳤으니 돌아가면 먼저 강기탕을 먹으십시오. 기가 펴질 것입니다. 다시 소요산을 먹으면 피가 그칠 것이니 열흘 남짓이면 무탈할 것을 보장합니다. 수고롭게 다시 오지 마십시오.” 장은 사례하고 돌아가 말대로 먹었다. 한 달 남짓 뒤 사람을 보내 “주인께서 병이 완쾌하였습니다. 염려하실까 하여 소인에게 먼저 알려 드리게 하셨습니다. 틈이 나면 반드시 의관을 갖추고 와서 사례하겠다고 하셨습니다”라고 하기에 나는 굳이 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