寅春 , 同鄉尋管香太史 , 在文昌館作團拜 , 申未之交忽患身疼 , 眾以為坐久而倦也 。 囑之少息 , 晚餐初上 , 竟命駕歸矣 , 次早張太常炳堂 , 專車迎余 , 問何為 ? 曰 : 管香病篤危在傾刻 。 其紀綱乃多年舊人 , 涕泣長跪 , 求余救主人之命 , 余曰 : 昨在會中尚同席 , 何至如是 ? 因係心腹交 , 不暇櫛沐 , 而往視之 。 四肢椎床 , 昏不知人 , 提腕診脈 , 無一絲可見 ; 按太奚 , 則沸如湧泉 , 心頭突突亂動 。 余曰 : 此紅痧也 , 症雖危 , 卻無礙 。 乃刺其委中 、 尺澤 , 出黑血半盞 , 神氣稍定 。 急進柴葛解肌湯灌之 , 因囑眾人勿動 , 後半日當有紅紫點發於肢體 , 晚再進一劑 , 明早當再來也 。 越日往視 , 炳堂太常迎門云 , 君言果驗 , 此時紫斑夾痧而發 , 遍身如塗 , 而心地清明 , 約無害也 , 已進粥矣 。 余驚曰 , 誰使食粥 ! 痧最惡粥 , 恐增劇也 。 炳堂又惶恐自怨 。 逮余入 , 又手足亂動 , 煩悶顛倒矣 。 急取麥芽湯灌之 , 始少安 。 晚以犀角地黃湯解其熱 , 又以小陷胸湯解其煩 , 越五日而病安 。 惟餘熱未清 , 身如束縛 。 余曰 : 血熱傷陰 , 固應爾爾 。 命服滋補之劑 , 半月而後 , 安然如常矣 。
인년 봄, 동향의 심관향 태사가 문창관에서 단배를 하다가 신·미시가 교차할 무렵 갑자기 몸이 아팠다. 여러 사람은 오래 앉아 있어 피곤한 것이라 여겨 조금 쉬라고 권했는데, 저녁상이 막 나오자 기어이 수레를 대령하여 돌아갔다. 이튿날 아침 장병당 태상이 전용 수레로 나를 맞으러 왔다. 무슨 일인지 물으니 “관향의 병이 위독하여 위태로움이 경각에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집사는 여러 해 된 옛사람으로 울며 길게 꿇어앉아 주인의 목숨을 구해 달라고 청하였다. 내가 “어제 모임에서도 같은 자리에 앉았는데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까?”라고 하였다. 마음을 터놓는 벗이므로 머리를 빗고 씻을 겨를도 없이 가서 보았다. 팔다리로 침상을 두드리고 혼미하여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손목을 들어 맥을 진찰하니 한 가닥도 찾을 수 없었으나 태해(太奚)를 누르니 솟는 샘처럼 끓고 가슴이 툭툭 어지럽게 뛰었다. 내가 “이것은 홍사입니다. 증은 위태로워도 해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위중·척택에 자침하여 검은 피 반 잔이 나오자 정신과 기운이 조금 안정되었다. 급히 시갈해기탕을 넣어 먹이고 사람들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반나절 뒤에는 팔다리와 몸에 붉고 자줏빛인 점이 나타날 것이니 저녁에 다시 한 제를 먹이고, 내일 아침에 다시 오겠다고 하였다. 다음 날 가서 보니 병당 태상이 문에서 맞으며 말하였다. “그대 말이 과연 맞았습니다. 지금 자반이 사를 끼고 나와 온몸이 바른 듯하지만 마음이 맑으니 아마 해는 없을 것입니다. 이미 죽도 먹었습니다.” 내가 놀라 “누가 죽을 먹게 하였습니까! 사는 죽을 가장 싫어하니 더 심해질까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병당은 또 두려워하며 자신을 탓하였다. 내가 들어가자 다시 손발을 어지럽게 움직이며 번민하고 뒤집고 있었다. 급히 맥아탕을 넣어 먹이니 비로소 조금 안정되었다. 저녁에는 서각지황탕으로 열을 풀고 또 소함흉탕으로 번을 풀어 닷새가 지나 병이 안정되었다. 다만 여열이 맑아지지 않아 몸이 묶인 듯하였다. 내가 “혈열이 음을 상하였으니 본래 그러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자보제를 복용하게 하니 보름 뒤 편안해져 평소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