里中田大授 , 家少裕 , 而年老無子 , 妻悍不敢置妾 , 後以失業窘於財 , 鬱而為病 。 城中有老醫名榮同者 , 田素信之 , 請其診視 。 榮曰 : 風寒外感也 , 散之不效 。 又視之曰年老氣虛也 , 補之益甚 。 榮窮於朮 , 乃邀余治 。 診其肝脈滑數 , 脾部見弦急 , 且三至一息 。 乃曰 , 君所患為肝氣鬱結 , 木來侮土 , 土已敗矣 。 病可小愈 , 命不可保也 。 田似嫌其唐突 , 請示一方 , 余以逍遙散合左金丸進之 。 數服而病減 , 進飲食矣 。 又請視之 , 診其肝脈稍長 , 而脾脈如故 。 知不能愈 , 乃以逍遙散敷衍之 。 半月 , 精神爽健 , 出入遊行 。 值村中演優戲 , 相見於廟廡 , 告余曰 , 病已全除 , 當無恐 。 余曰 , 脈至不息方可 , 後半年 , 余赴都 , 及來春歸 , 詢之 , 已欹歿數月矣 。
마을의 전대수는 집안이 조금 넉넉하였으나 늙도록 자식이 없었다. 아내가 사나워 감히 첩을 두지 못하였고, 뒤에 생업을 잃어 재물에 쪼들리자 울적해 병이 되었다. 성 안에 영동이라는 늙은 의원이 있었는데 전이 평소 믿어 진찰을 청하였다. 영은 외감 풍한이라 하여 발산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다시 보고 늙어서 기가 허한 것이라 하여 보하자 더욱 심해졌다. 영이 기술이 다하자 나를 청하여 치료하게 하였다. 간맥은 활삭하고 비부에는 현급이 나타났으며 세 번 뛰면 한 번씩 쉬었다. 내가 말하였다. “병은 간기가 울결하여 목이 토를 업신여기는 것이며 토가 이미 무너졌습니다. 병은 조금 나을 수 있어도 목숨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은 그 말이 당돌함을 싫어하는 듯하였으나 처방을 청하여 소요산에 좌금환을 합해 주었다. 몇 번 먹자 병이 줄고 음식을 먹었다. 다시 보아 달라고 하여 진찰하니 간맥은 조금 길어졌으나 비맥은 여전하였다. 나을 수 없음을 알고 소요산으로 임시로 대처하였다. 보름 뒤 정신이 맑고 건장하여 드나들며 다녔다. 마침 마을에서 배우들이 연극을 하여 사당 행랑에서 만났는데, 나에게 “병이 이미 모두 없어졌으니 두려울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맥이 뛰며 쉬지 않아야 괜찮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뒤 반년이 지나 내가 도성에 갔다가 이듬해 봄 돌아와 물으니 죽은 지 이미 몇 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