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譜王丹文茂才之父 , 余執子侄禮 , 少游江湖 , 權子母 , 工於心計 , 故握算持籌資無少缺 。 晚年出資在永寧州生息 , 忽為典商負千金 , 州郡控訴 , 未獲歸趙 , 憂鬱而病 , 兼家務多舛 , 遂得氣逆症 。 腹滿身痛 , 轉側不安 。 他醫投補劑 , 轉增劇 。 丹文邀余診視 , 其脈多伏 , 惟肝部沉堅而澀 , 且三二至輒一息 。 知力肝鬱 , 因以蘇子降氣湯合左金丸進 , 三服而氣稍舒 。 又視之 , 肝部有長象 , 又益顛倒木金散進之 , 十劑後 , 腹減而氣舒 , 飲食進 , 精神作矣 。 一日留晚餐 , 座中仍令診之 , 脈息如故 , 余未便明言 , 歸語家人云 : 三伯肝臟已絕 , 病恐不起 。 家人曰 , 已愈矣 , 何害 ? 余曰 , 此脈不關此病 , 此病易愈 , 此脈不可轉也 。 況見肝臟 , 必死於立春前後 。 家人以余故神其說 , 置不信 , 余遂北上 。 至冬病作 , 竟醫藥無效 , 於臘月廿四日終於家 。 余由京歸 , 家人語其事 , 咸詫異焉 。
같은 족보에 속한 무재 왕단문의 아버지에게 나는 자질의 예를 행하였다. 그는 젊어서 강호를 다니며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돈을 늘렸고 계산에 능하였으므로, 산가지를 잡고 셈하여 재산이 조금도 모자라지 않았다. 만년에 돈을 내어 영녕주에서 이자를 받다가 갑자기 전당포 상인에게 천금을 떼였다. 주와 군에 소송하였으나 돌려받지 못하여 근심하고 울적해 병이 들었고, 집안일도 어긋나는 것이 많아 마침내 기역증을 얻었다. 배가 그득하고 몸이 아프며 이리저리 몸을 돌려도 편하지 않았다. 다른 의원이 보제를 쓰자 더욱 심해졌다. 단문이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는데 맥은 대체로 숨어 있었고 간부만 침하고 단단하며 삽하였으며, 두세 번 뛰면 한 번씩 쉬었다. 간울임을 알고 소자강기탕에 좌금환을 합하여 주니 세 차례 먹고 기가 조금 펴졌다. 다시 보니 간부에 긴 맥상이 있어 전도목금산을 더하여 주었다. 열 제 뒤 배가 줄고 기가 펴지며 음식을 먹고 정신도 살아났다. 하루는 저녁밥을 먹으라고 붙들고 앉은자리에서 다시 진찰하게 하였으나 맥은 여전하였다. 나는 분명히 말하기 어려워 돌아와 집안사람에게 말하였다. “삼백의 간장이 이미 끊어졌으니 병에서 일어나지 못할 듯하다.” 집안사람이 “이미 나았는데 무엇이 해롭습니까?”라고 하기에 내가 말하였다. “이 맥은 이 병과 관계없다. 이 병은 쉽게 낫지만 이 맥은 돌릴 수 없다. 더구나 간장이 나타났으니 반드시 입춘 전후에 죽는다.” 집안사람은 내가 일부러 말을 신기하게 꾸민다며 믿지 않았다. 나는 곧 북쪽으로 올라갔다. 겨울에 병이 나더니 끝내 의약이 듣지 않아 섣달 스무나흗날 집에서 죽었다. 내가 서울에서 돌아오자 집안사람이 그 일을 말하며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