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賡堂先生以武進土為溫州都司 , 後升江西參將 , 缺甚瘠 , 告而歸里 。 其長子號東樵 , 以北元作戶郎 , 次子號蓮峰 , 屢薦未售 , 博極群書 , 在里中與余往來甚契 , 賡堂先生雖林下 , 而性情伉爽 , 排難解紛 , 里黨中多賴之 , 庚申春 , 東樵以都中官錢鋪案發 , 下刑部獄 , 越年許 , 案未結 , 賡翁在家憂之 。 辛酉夏 , 忽患胸膈滿悶 , 飲食不進 , 遂致手足腫脹 。 延醫視之 , 疑為水腫 , 用利水藥不效 。 繼更一醫以為虛 , 用腎氣丸仍不效 , 而腫益甚 。 適余以其族人喪葬遇蓮峰 , 即請余治 。 診其六脈堅實 , 右關硬欲搏指 。 乃告日 , 此飲食傷胃 , 有餘病也 。 平日多食厚味 , 積滯胃中 , 胃主四肢 , 胃氣和 , 則四肢安 ; 胃氣滯 , 則四肢脹 。 必至之勢也 。 況胃氣既滯 , 杯勺茶湯皆能停積 , 雖見小便不利 , 其實非水能氾濫發為水腫 , 徒利水 , 必不效 。 且此病由濕熱內蘊 , 再用熟地以澀之 , 跗子以塞之 , 不增脹何待乎 ! 惟年老陽虛 , 脾胃素弱 , 治無速效 , 但欲消腫 , 則易易耳 。 用滲濕湯加枳實 、 木通 、 牛膝銷導之 。 蓮峰似嫌其峻 , 余曰 : 此急則治標之法 , 但令胃氣通 , 則積自銷 , 腫自愈 , 不必專治小便 , 小便必無不利 。 後再用健脾養胃藥治之 , 須三五月乃成功也 。 乃服之 , 一劑而腫皺 , 三服而十去其六 。 蓮峰來書云 : 不意君久持文譽 , 出其余技 , 竟使頓失沉屙 。 昔人云 : 事親者不可不知醫 , 弟真赭顏無地矣 。 明日更煩一視 , 敬當執帚一待 。 余往視之 , 脈稍和 , 而右關如故 。 告曰 , 胃氣已行 , 尚未通也 。 問小便利否 ? 曰 , 未利 , 乃加葶藶 , 二醜疏之 , 即小便十餘碗 , 肚腹寬舒 , 飲食亦進 。 繼以資生健脾丸方 , 湯服之 。 告曰 : 必厭湯藥 , 服丸可也 。 蓮峰以秋試在即 , 欲赴省 , 恐再發腫 。 余曰 : 但令勿服附子 、 東參 、 熟地之類 , 漸而培養之 , 必無恐 , 惟老人氣虛 , 多需時日耳 。 蓮峰見無礙 , 遂束裝赴試 。 賡翁之長女亦知醫識字 , 又有舊僕亦業醫 , 蓮峰走後見其羸瘠不堪 , 力勸其服熟地 、 麥冬並燕窩 、 東參等 , 大補氣血 ; 又見其能食 , 以雞鴨魚肉日日調養之 。 未半月 , 腫雖不作 , 而胸腹仍滯 , 小便仍不利矣 。
이갱당 선생은 무진사로 온주 도사가 되었다가 뒤에 강서 참장으로 승진하였는데, 자리가 매우 빈약하여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맏아들은 호가 동초로 북원 출신으로 호랑이 되었고, 둘째 아들은 호가 연봉으로 여러 번 천거되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으며 여러 책을 널리 읽었다. 마을에서 나와 마음이 매우 잘 맞아 왕래하였다. 갱당 선생은 비록 벼슬에서 물러나 있었으나 성품이 강직하고 시원하여 어려움을 풀고 분쟁을 해결하였으므로 마을 사람들이 많이 의지하였다. 경신년 봄 동초가 도성의 관전포 사건에 연루되어 형부 감옥에 갇혔는데 한 해쯤 지나도 사건이 끝나지 않아 갱옹은 집에서 근심하였다. 신유년 여름 갑자기 가슴과 횡격막이 그득하고 답답하며 음식을 먹지 못하다가 마침내 손발이 부었다. 의사를 불러 보니 수종이라 의심하여 이수약을 썼으나 효험이 없었다. 이어 다른 의사는 허증이라 여겨 신기환을 썼으나 여전히 효과가 없고 부종이 더욱 심해졌다. 마침 내가 그의 일가 사람의 장례에서 연봉을 만나자 곧 나에게 치료를 청하였다. 육맥을 진찰하니 단단하고 실하며 우관이 손가락을 치려 할 만큼 단단하였다. 이에 말하였다. “이는 음식으로 위를 상한 유여병입니다. 평소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 위에 쌓여 막혔습니다. 위는 사지를 주관하므로 위기가 화평하면 사지가 편안하고, 위기가 막히면 사지가 붓는 것은 반드시 이르는 형세입니다. 더구나 위기가 이미 막히면 한 잔 한 숟갈의 차나 국물도 모두 쌓일 수 있습니다. 소변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실제로는 물이 범람하여 수종이 된 것이 아니니, 물만 통하게 하면 반드시 효험이 없습니다. 또 이 병은 습열이 안에 쌓인 것인데 다시 숙지황으로 막고 부자(跗子)로 막으니 어찌 더 붓지 않겠습니까! 다만 연로하여 양이 허하고 비위가 평소 약하므로 치료가 빨리 효과를 내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부기만 없애려면 매우 쉽습니다.” 삼습탕에 지실·목통·우슬을 더하여 소도하였다. 연봉이 약이 준열하다고 꺼리는 듯하여 내가 말하였다. “이는 급하면 표를 치료하는 법입니다. 위기만 통하게 하면 적체는 저절로 삭고 부종도 저절로 나으며, 소변만 전적으로 다스리지 않아도 소변은 반드시 잘 나오게 됩니다. 뒤에 다시 비를 튼튼하게 하고 위를 기르는 약으로 치료해야 하니 석 달에서 다섯 달은 걸려야 성공할 것입니다.” 이에 먹으니 한 제에 부은 곳이 쭈그러지고 세 번 먹자 열 가운데 여섯이 없어졌다. 연봉이 편지를 보내 말하였다. “그대가 오래 문장으로 명성을 지니다가 나머지 재주를 내어 마침내 묵은 병을 갑자기 사라지게 할 줄 몰랐습니다. 옛사람이 어버이를 섬기는 사람은 의술을 몰라서는 안 된다고 하였는데, 저는 참으로 얼굴이 붉어 몸 둘 곳이 없습니다. 내일 다시 한번 보아주시기를 청하며 삼가 비를 들고 기다리겠습니다.” 가서 보니 맥이 조금 화평해졌으나 우관은 여전하였다. “위기가 이미 운행하나 아직 통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하고 소변이 잘 나오는지 물으니 아직 아니라고 하였다. 이에 정력과 이축을 더하여 소통시켰더니 곧 소변을 십여 사발 보고 배가 시원해지며 음식도 먹었다. 이어 자생건비환 처방을 탕으로 먹게 하고 “탕약이 반드시 싫을 것이니 환약으로 먹어도 됩니다”라고 하였다. 연봉은 가을 시험이 가까워 성으로 가려 하면서도 다시 부을까 걱정하였다. 내가 “부자·동삼·숙지황 같은 것을 먹지 않게 하고 점차 배양하면 반드시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노인이 기가 허하므로 시일이 많이 필요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연봉은 지장이 없음을 보고 마침내 짐을 꾸려 시험 보러 갔다. 갱옹의 맏딸도 의술을 알고 글을 알았으며 의업을 하는 옛 하인도 있었다. 연봉이 떠난 뒤 몹시 여윈 것을 보고 숙지황·맥문동과 제비집·동삼 등을 먹어 기혈을 크게 보하라고 힘써 권하였다. 또 먹을 수 있는 것을 보고 닭·오리·생선·고기로 날마다 조양하였다. 반 달도 되기 전에 부종은 생기지 않았으나 가슴과 배가 다시 막히고 소변도 다시 잘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