商友王定安庵 , 幼在京 , 權子母 , 工於心計而貪詐蝟鎖 , 兼嗜麵食 , 年四十後 , 得脾勞病 , 遇冬更甚 , 醫藥數年矣 。 余常勸其節食節勞 , 而以經營生息 , 刻無暇晷 。 每食過飽 , 則痰嗽喘滿 , 終夜不寢 。 壬子冬 , 疾增劇 , 乃俯余治 。 余進以健脾諸品 , 痰嗽少止 , 而狂啖如故 , 因之時發時愈 。 病甚則服藥 , 稍痊則不肯 , 余以其不能調攝 , 置之不問 。 年終 , 風事匆匆 , 勞擾更甚 , 一日早起 , 則面目四肢俱浮腫 , 而煩滿益不堪 , 余告其同事曰 : 脾絕矣 。 尚未立春 , 雖交木令 , 尚可到家 , 立春後則不能矣 。 蓋肝木克脾土 , 促春必難過也 。 同事者不為意 , 延之 。 繼請一同鄉醫視之 , 則曰 : 此水病 , 下之則愈矣 。 問用何藥 ? 則曰 : 舟車丸 。 余力陳不可 , 而病者誤信之 , 急服三錢 , 腫未減 , 而臥不能興 。 診其脈若有若無 。 同事惟恐其歿於鋪 , 急覓車傅人送還 , 出京甫數日 , 歿於松林店 。 計其時 , 立春後五日也 。 籲 ! 人生固有命 , 而始則不知愛養 , 繼則不信良言 , 迨疾不可為 , 又信庸醫 , 以速成其烈屬 , 亦愚之甚至矣 。 故錄之 , 以為不知調攝者戒 。
상인 벗 왕정안암은 어려서 북경에 있었고 원금과 이자를 헤아리는 일을 하였다. 계산에 능하였으나 탐욕과 속임수는 위쇄(蝟鎖)하였고 면식을 좋아하였다. 마흔 뒤에 비로병을 얻어 겨울이면 더 심하였으며 의약을 쓴 지 여러 해였다. 나는 늘 음식과 수고를 절제하라고 권하였으나 생업을 경영하고 이자를 불리느라 잠깐의 한가한 시간도 없었다. 과식할 때마다 담수가 나고 숨이 차며 그득하여 밤새 잠들지 못하였다. 임자년 겨울 병이 더욱 심해져 비로소 몸을 낮추고 내 치료를 받았다. 내가 비를 튼튼하게 하는 여러 약을 먹이자 담수는 조금 그쳤으나 미친 듯 먹는 것은 여전하여 이 때문에 때로 발하고 때로 나았다. 병이 심하면 약을 먹고 조금 나으면 먹으려 하지 않아, 나는 그가 조섭하지 못하므로 버려두고 묻지 않았다. 연말에 풍사로 몹시 바빠 수고와 번거로움이 더욱 심하였는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나자 얼굴과 눈, 사지가 모두 부었고 번만을 더욱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동료에게 말하였다. “비가 끊어졌습니다. 아직 입춘이 아니니 목령과 접하더라도 집에 도착할 수는 있지만 입춘 뒤에는 불가능합니다. 간목이 비토를 극하므로 봄이 닥치면 반드시 넘기기 어렵습니다.” 동료는 개의하지 않고 미루었다. 이어 동향의 의사 한 사람을 불러 보게 하니 “이는 수병으로 설사시키면 낫습니다”라고 하였다. 무슨 약을 쓰느냐고 물으니 주거환이라고 하였다. 내가 힘써 불가함을 설명하였으나 환자는 잘못 믿어 급히 3돈을 복용하였다. 부기는 줄지 않고 누워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맥을 진찰하니 있는 듯 없는 듯하였다. 동료는 그가 가게에서 죽을까 두려워 급히 수레를 구하고 사람을 붙여 집으로 보냈는데, 북경을 떠난 지 겨우 며칠 만에 송림점에서 죽었다. 때를 계산하니 입춘 뒤 닷새였다. 아아! 사람의 삶에는 본래 명이 있으나 처음에는 아끼고 기를 줄 모르고, 이어 좋은 말을 믿지 않다가 병을 어찌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용의를 믿어 그 열속(烈屬)을 속히 이루었으니, 어리석음도 지극하다. 그러므로 이를 기록하여 조섭할 줄 모르는 이의 경계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