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襄西廳程裕堂 , 都中人 , 春初到任 , 而定缺苦甚 , 歲入不足二百金 , 而定俗尤鄙陋不堪 , 一切起居日用多不遂意 。 又以老母在京 , 迎養則不給 , 不迎又不可 , 憂思抑鬱 , 手生一疔 , 延本處牛醫治之 , 牛屢施針灸 , 半月而後愈 。 然程素有積滯 , 兼日來憂鬱 , 遂胸膈張滿 , 飲食不思 , 精神餒惰 , 面目瘦削 , 牛以為病後大虛 , 用桂附補之 , 二服而滿益甚 。 知余在縣署 , 急衣冠來拜 , 幼安問其病 , 即指余告之曰 , 潤翁醫道如神 , 山陝諸相好 , 無不服者 , 宜請治之 。 余診其脈 , 六部沉數 , 右關堅欲搏指 。 笑曰 , 君腹中如塞井而下之石 , 積滯無隙 , 宜乎飲食之減少也 。 此有餘之症 , 急下之 , 則舒暢 。 誤認為虛 , 則相悖矣 。 程曰 : 精神餒困 , 肌肉消瘦 , 非虛而何 ? 余曰 , 俗醫但知書上病 , 不如身上病 , 焉有是處 。 精神不足者 , 氣血不流通之故 ; 肌肉消瘦 , 飲食不生髮之故也 。 蓋脾胃為容受轉輸之官 , 積則無所容受 , 滯則不能轉輸 , 胃氣一停 , 百脈皆敗 , 無怪其然也 。 程請一方 , 以對金飲合保和湯合進之 。 兩服而胸腹作聲 。 洞下穢物數次 , 頃刻間 , 饑不可忍 , 神氣亦清 。 晚籠燈而來 , 伏地作叩曰 : 此方真靈丹妙藥 , 前尚未深信 , 今乃知俗醫之多誤也 。 余曰 , 人腹中如常平倉 , 最須年年出陳易新方好 , 但舊積既去 , 胃氣尚弱 , 新物入口 , 停滯尤易 , 須節儉也 。 程首頷之 。 即折柬相邀 , 余憐其苦力辭之 。 越日余束裝歸里 , 程乃飭差送數里外 。 時雨後多泥 , 凡難行處 , 即轉輪負轂 , 余遣之去 , 則曰 , 家主之命不敢違 。 過十里而後返 。
정양 서청의 정유당은 도성 사람으로 초봄에 부임하였다. 정양의 자리는 매우 곤궁하여 한 해 수입이 이백 금도 못 되었으며 풍속도 특히 비루하여 모든 일상생활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늙은 어머니가 서울에 계셔 모셔 와 봉양하려면 부족하고 모셔 오지 않을 수도 없어 근심하고 우울해하다가 손에 정 하나가 생겼다. 현지 우씨 의사를 불러 치료하였는데 여러 차례 침과 뜸을 놓아 반 달 뒤에 나았다. 그러나 정씨는 본래 적체가 있었고 요즘 우울함까지 더해져 가슴과 횡격막이 팽팽하고 그득하며 음식 생각이 없고 정신이 지치고 나태해져 얼굴이 여위었다. 우씨는 병후에 크게 허해진 것이라 여겨 계(桂)·부자로 보하였는데 두 번 먹자 그득함이 더욱 심해졌다. 내가 현 관아에 있음을 알고 급히 의관을 갖추어 찾아왔다. 유안이 병을 묻고 곧 나를 가리키며 “윤옹의 의술은 귀신같아 산서와 섬서의 여러 친지가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치료를 청하십시오”라고 하였다. 진맥하니 육부가 침삭하고 우관은 손가락을 치려 할 만큼 단단하였다. 내가 웃으며 “그대의 배 속은 우물을 메우려고 돌을 내려 넣은 것처럼 적체가 틈 없이 차 있으니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는 유여증이므로 급히 아래로 내려 보내면 시원해집니다. 허증으로 잘못 알면 서로 어긋납니다”라고 하였다. 정씨가 “정신이 지치고 살이 여위는데 허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세속 의사들은 책에 있는 병만 알고 몸에 있는 병은 알지 못하니 어찌 옳을 수 있겠습니까. 정신이 부족한 것은 기혈이 흐르지 않기 때문이고 살이 여윈 것은 음식이 생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위는 받아들이고 옮겨 보내는 관인데, 쌓이면 받아들일 곳이 없고 막히면 옮겨 보내지 못합니다. 위기가 한번 멎으면 백맥이 모두 쇠하니 그럴 만합니다.” 정씨가 처방을 청하기에 대금음과 보화탕을 합하여 주었다. 두 번 먹고 가슴과 배에서 소리가 나며 더러운 것을 여러 차례 쏟아냈다. 잠깐 사이에 배고픔을 참을 수 없고 정신도 맑아졌다. 저녁에 등불을 들고 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 처방은 참으로 영단묘약입니다. 앞서는 깊이 믿지 못하였는데 이제야 세속 의사들의 잘못이 많음을 알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내가 “사람의 배 속은 상평창 같아서 해마다 묵은 것을 내보내고 새것으로 바꾸어야 가장 좋습니다. 다만 묵은 적체는 없어졌어도 위기는 아직 약하니 새 음식이 들어가면 더욱 쉽게 정체되므로 절제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정씨가 고개를 끄덕이고 곧 초대장을 써서 청하였으나 나는 곤궁한 형편이 안쓰러워 힘써 사양하였다. 다음 날 내가 짐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가자 정씨는 하인에게 명하여 몇 리 밖까지 전송하게 하였다. 당시 비가 온 뒤라 진흙이 많았으므로 지나기 어려운 곳마다 바퀴를 돌리고 수레바퀴통을 떠받쳤다. 내가 돌아가라고 하였으나 “주인의 명을 감히 어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며 십 리를 지난 뒤에야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