脾虛失運大便不通

薛鶴亭侍禦名嗚皋 , 陵川人 , 古道照人 。 在吏部時掌選事 , 胥吏不敢欺以隱 。 後作禦使 , 數條奏忤上旨 , 而公正無阿識者服焉 。 甲寅夏 , 其夫人患大便不通 , 醫士或以為實熱 , 投承氣湯不效 ; 或以為腸燥 , 投火麻仁亦不效 ; 或以為食滯 , 投平胃散 , 通而旋塞 。 延余治之 。 診其六脈微弱 , 右關尤甚 , 右尺脈細如絲 。 乃曰 : 此脾虛不能轉運故也 。 遂立四君平胃湯 , 重用潞參至一兩 。 鶴翁曰 : 病苦不通 , 塞之不轉劇乎 ? 余曰 : 君不識此 。 內經云 :「 塞因寒用 」。 蓋人大小二便 , 全憑中氣轉運中氣不攝 , 則泄瀉 ; 中氣太虛 , 則不能下送 。 夫人之病 , 非不欲不便 , 蓋欲便而不下也 。 今以四君提其中氣 , 平胃散調其胃氣 , 再不通者事不復為此矣 。 晚即照方服之 , 次早即便數下 , 肚腹空虛 , 精神爽健 , 早餐已進三碗矣 。 午後來信云 : 同內之病 , 已十去八九 , 何神若是 , 昨日之言 , 思之不得其解 , 願暇時一請教也 。 次日即來拜謝 。 余曰 : 君未讀醫書 , 誠難下也 。 人之脾胃 , 何獨不然 。 鶴翁曰 : 聞所未聞 , 今乃知大便不通之不無虛證也 。 遂與余為至交焉 。
설학정 시어는 이름이 오고이며 능천 사람으로 옛 도리가 사람을 비추었다. 이부에 있을 때 선발하는 일을 맡아 아전들이 감춘 일로 감히 속이지 못하였다. 뒤에 어사가 되어 여러 조목의 상주가 임금의 뜻에 거슬렸으나 공정하고 아첨하지 않아 아는 이들이 탄복하였다. 갑인년 여름 그의 부인이 대변불통을 앓았다. 의사들은 혹 실열이라 하여 승기탕을 투여하였으나 효험이 없었고, 혹 장조라 하여 화마인을 투여하였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으며, 혹 식체라 하여 평위산을 투여하니 통하였다가 곧 다시 막혔다. 나를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육맥은 미약하고 오른쪽 관이 특히 심하며 오른쪽 척맥이 실처럼 가늘었다. 이에 “이는 비허하여 전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사군평위탕을 세워 노삼을 1냥까지 많이 썼다. 학옹이 “통하지 않아 괴로운 병인데 막으면 더욱 심해지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그대는 이를 알지 못합니다. 《내경》에서 ‘색인한용(塞因寒用)’이라 하였습니다. 사람의 대소변은 전적으로 중기의 전운에 의지합니다. 중기가 거두지 못하면 설사하고, 중기가 너무 허하면 아래로 보내지 못합니다. 부인의 병은 불욕불변(不欲不便)한 것이 아니라, 변을 보려 해도 내려가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사군으로 중기를 들어 올리고 평위산으로 위기를 조절하니, 다시 통하지 않으면 일은 더 이상 이와 같지 않을 것입니다.” 저녁에 곧 처방대로 복용하니 이튿날 아침 몇 번 대변을 보고 뱃속이 비어 정신이 상쾌하고 건실하였으며, 아침밥을 이미 세 사발 먹었다. 오후에 편지가 와서 “아내의 병이 이미 열에 여덟아홉은 없어졌으니 어찌 이처럼 신묘합니까? 어제 말씀은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으니 한가할 때 한번 가르침을 청하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음 날 곧 와서 사례하였다. 내가 “그대는 의서를 읽지 않았으니 참으로 내리기 어렵습니다. 사람의 비위도 어찌 홀로 그렇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학옹은 “듣지 못했던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야 대변불통에도 허증이 없지 않음을 알겠습니다”라고 하고, 마침내 나와 지극한 벗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