戊午秋 , 張七兄親家之夫人 , 繼室也 。 即前病喉痛者之姑 , 年未四旬 , 得血崩疾 。 其家富甲一鄉 , 因距城頗遠 , 恐有倉猝病 , 醫藥不便 , 乃設藥肆於家 。 而鄉中貧苦者 , 輒造而請視疾 。 故亦時時觀醫書 。 以夫人病崩 , 自用血余散止之小效 。 更一醫 , 又以為熱 , 用寒涼清之 , 轉益甚 。 乃囑張俯求余治 , 余以路遠辭 , 而張哀懇至再 , 不得已 , 隨之去 。 入而視之 , 見病者面如石灰 , 唇指皆白 , 知為血虛之極 。 乃診其脈 , 則微弱特甚 。 乃曰 , 此中氣下陷 , 脾虛不能攝血 , 故崩不止 。 再服寒涼恐血脫也 。 此時不宜峻補 , 但提其中氣 。 氣能統血 , 則崩自止 。 澀之 , 截之皆非法 。 因為開補中益氣湯 , 宋似嫌其平平無奇 。 乃告之曰 , 君曾讀醫書 , 不聞士材先生之言乎 , 其云 :「 補氣有行血之功 , 補血無行氣之理 。」 二語極為明確 。 可見血隨氣行 , 氣升則血升 , 氣降則血降 。 若不攝其氣而徒止其血 , 所謂揚湯止沸也 。 今升其氣 , 使攝血而不下降 , 然後再用聖愈 、 養榮之類補其虛 , 氣血相調 , 並可受孕 , 治病猶余事耳 。 宋豁然悟 , 首肯者數四 。 更為開大劑聖愈湯 , 告曰 , 服補中湯不四帖血當止 , 後以聖愈湯繼之 , 如恐其煩 , 可易湯以丸 。 余去矣 , 不必再視也 。 歸不數日 , 時將春夏之交 , 宋遣人擔過牡丹二本 。 並道病已痊癒 。 再三申謝 。 余受而栽於盆 , 培植灌溉 , 以吾鄉水土雜鹽鹵 , 其性極惡 。 除石榴 。 葡萄而外 , 凡花果皆不宜此水 , 宋所送之牡丹 , 來時正含苞欲吐 , 余遣人灌溉 , 不數日 , 苞痿而枝漸枯 , 拔而棄之 , 增惜焉爾 。
무오년 가을, 장 칠형 사돈의 부인은 후처였으며 앞서 목이 아팠던 딸의 시어머니였다. 나이 마흔이 안 되었는데 혈붕을 얻었다. 집안은 한 고을에서 가장 부유하였으나 성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급한 병이 나면 의약을 쓰기 불편할까 염려하여 집에 약방을 차렸다. 마을의 가난한 이들이 곧잘 찾아와 병을 보아 달라고 하므로 그도 때때로 의서를 보았다. 부인이 혈붕을 앓자 스스로 혈여산을 써서 멎게 하니 조금 효과가 있었다. 다른 의원은 열이라 여겨 한량한 약으로 식혔으나 도리어 더욱 심해졌다. 이에 장에게 부탁하여 나에게 치료를 청하게 하였다. 나는 길이 멀어 사양하였으나 장이 거듭 애원하여 부득이 따라갔다. 들어가 보니 환자의 얼굴은 석회 같고 입술과 손가락이 모두 희어 혈허가 극심함을 알았다. 맥을 진찰하니 미약함이 특히 심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중기가 아래로 빠지고 비가 허하여 혈을 거두지 못하므로 붕루가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한량한 약을 다시 먹으면 혈탈이 될까 염려됩니다. 지금은 세게 보해서는 안 되고 다만 중기를 끌어올려야 합니다. 기가 혈을 통섭하면 붕루는 저절로 그칩니다. 수렴하거나 끊는 것은 모두 법이 아닙니다.” 이에 보중익기탕을 처방하니 송은 평범하여 기이할 것이 없다고 여기는 듯하였다. 내가 말하였다. “의서를 읽으셨다니 사재 선생의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기를 보하면 혈을 움직이는 공이 있으나 혈을 보한다고 기를 움직이는 이치는 없다’고 하였습니다. 두 마디가 매우 명확합니다. 혈은 기를 따라 움직여 기가 오르면 혈도 오르고 기가 내리면 혈도 내림을 알 수 있습니다. 기를 거두지 않고 한갓 피만 멎게 하려는 것은 이른바 끓는 물을 퍼 올려 끓기를 멈추려는 것입니다. 이제 기를 올려 혈을 거두고 내려가지 않게 한 다음 성유·양영 같은 약으로 허를 보하면 기혈이 조화되어 임신도 할 수 있으니 병을 치료하는 것은 오히려 나머지 일일 뿐입니다.” 송은 환히 깨달아 서너 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성유탕을 대제로 처방하고 말하였다. “보중탕을 네 첩 먹기 전에 피가 그칠 것이니 뒤에 성유탕으로 이으십시오. 번거로울까 염려되면 탕을 환으로 바꾸어도 됩니다. 나는 돌아가니 다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돌아온 지 며칠 안 되어 때는 봄과 여름이 바뀔 무렵이었다. 송이 사람을 시켜 모란 두 포기를 메어 보내며 병이 이미 완쾌하였다고 하고 거듭 감사하였다. 나는 받아 화분에 심어 가꾸고 물을 주었다. 우리 고장은 물과 흙에 소금기가 섞여 그 성질이 매우 나빠 석류와 포도 외에는 온갖 꽃과 과실이 이 물에 맞지 않았다. 송이 보낸 모란은 올 때 막 꽃봉오리가 벌어지려 하였으나 사람을 시켜 물을 주자 며칠 안 되어 봉오리가 시들고 가지도 점차 말랐다. 뽑아 버리고 더욱 애석해하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