脾虛食滯月事不調

越數月 , 余送堂幾府試 , 與觀察日日見面 。
몇 달 뒤 나는 당기(堂幾)를 부시 보러 보내며 관찰과 날마다 만났다.
談及共如君云 , 癸水不調 , 臍腹常疼 , 精神委頓 , 飲食不思 , 偶受孕 , 三四月輒墜 。 前在崞 , 曾服藥無數 , 茲又請教授齊老師治之 , 又請府幕錢老夫子治之 , 病仍不愈 。 皆以為癆矣 , 請一決之 。 如君出則荊釵裙布 、 寒素依然 , 向余展拜 , 余答之 。 診其脈則六脈俱虛 , 而無數象 , 右關尤甚 。 告觀察曰 , 此乃脾虛土衰之證 , 故精神少 , 飲食滯 。 至月事不調 , 懷孕輒墜 , 則中氣不能健固之故 。 極可治 。 但須積日累月 , 非旦夕可愈之病也 。 若遲延不治 , 則久而泄瀉 , 或久而咳嗽發熱 , 面赤惡寒 , 真癆症矣 。 余先進以六君子湯加益智 、 乾薑 、 芡實 , 命服八劑後 , 服資生健脾丸 。 觀察問 , 丸藥服幾斤 ? 余曰 , 多多益善 。
그 여군(如君)의 일을 이야기하며 말하였다. “월경이 고르지 않고 배꼽과 배가 늘 아프며 정신이 쇠약하고 음식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혹 임신하여도 석 달이나 넉 달이면 번번이 유산합니다. 앞서 곽현에 있을 때 약을 수없이 먹었고, 이제 또 교수 제 선생에게 치료를 청하고 부의 막료 전 노부자에게도 청하였으나 병은 여전히 낫지 않습니다. 모두 노병이라 하니 한번 판단해주십시오.” 여군이 나왔는데 가시나무 비녀와 베 치마 차림으로 여전히 검소하였다. 나에게 절하기에 답하였다. 맥을 진찰하니 육맥이 모두 허하였으나 삭한 양상은 없고 우관이 더욱 심하였다. 관찰에게 말하였다. “이는 비가 허하고 토가 쇠한 증상이므로 정신이 적고 음식이 막힙니다. 월경이 고르지 않고 임신하면 번번이 유산하는 것은 중기가 튼튼히 붙들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충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날과 달을 쌓아야 하니 하루아침에 나을 병은 아닙니다. 지체하여 치료하지 않으면 오래되어 설사하거나 기침과 발열이 나며 얼굴이 붉고 오한이 생겨 참으로 노증이 됩니다.” 먼저 육군자탕에 익지·건강·검실을 더하여 주고 여덟 제를 먹은 뒤 자생건비환을 먹게 하였다. 관찰이 환약을 몇 근 먹어야 하는지 묻기에 “많을수록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後余歸介 , 觀察解帳歸崞 。 二年後 , 在會垣見其長子 , 問前病狀 , 則曰 , 邇來體甚壯碩 , 去年冬 , 竟舉一女 , 家父猶時時道及而銘感焉 。
뒤에 나는 개 땅으로 돌아가고 관찰은 강학을 그만두어 곽현으로 돌아갔다. 이 년 뒤 성의 도시에서 그의 맏아들을 만나 앞선 병의 경과를 물으니 “요즘 몸이 매우 건장하며 지난해 겨울에는 마침내 딸 하나를 낳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도 때때로 그 일을 말씀하며 마음에 새겨 감사하십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