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讀紀文達公五種筆記 , 載有一條 , 辯論人參 。 謂關東人參 , 得東方生髮之氣 , 偏於提補 ; 上黨人參 , 得中央土厚之氣 , 偏於培脾 , 其用頗疏 。 此語真前人所未發 , 余嘗因而思之 , 古方所載人參 , 即上黨之潞參也 。 其時關東未必有參 , 即有亦未必入中國 。
일찍이 기문달공의 다섯 가지 필기를 읽었는데 인삼을 논변한 조목이 있었다. 관동 인삼은 동방의 생발하는 기를 얻어 끌어올리고 보하는 데 치우치고, 상당 인삼은 중앙의 두터운 토기를 얻어 비를 기르는 데 치우치므로 그 쓰임이 제법 다르다고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앞사람이 밝히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를 따라 생각해 보니 고방에 실린 인삼은 곧 상당의 노삼이었다. 당시 관동에 반드시 인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었다 해도 반드시 중국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
前明 , 吳守備到遼沈 , 聞東參能延年益壽 , 乃服至半斤 , 遂至腹瀉不止 , 可見關東人參 , 至明始入中國 。 明以前所用之人參 , 即潞參也 。 不過在前古則潞參皆地中自植 , 年深日久 , 其力頗厚 ; 近則以此為利 , 年年種而收之 , 其力較薄耳 。
지난 명나라 때 오 수비가 요심에 가서 동삼이 수명을 늘린다는 말을 듣고 반 근이나 먹었다가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이를 보면 관동 인삼은 명나라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중국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명나라 이전에 쓴 인삼은 곧 노삼이다. 다만 옛날에는 노삼이 모두 땅에서 저절로 자라 여러 해 오래되었으므로 그 힘이 제법 두터웠고, 근래에는 이를 이익으로 삼아 해마다 심어 거두므로 그 힘이 비교적 약할 뿐이다.
本草謂用參多則宣通 , 少則壅滯 , 此言尤要 。 蓋草木之性 , 全以氣勝 , 況參俱甘溫 , 甘溫則能滑瀉 , 吳守備之腹瀉 , 蓋由於此 。 不比五穀之性 , 專有益於脾胃也 。
본초에서 인삼을 많이 쓰면 소통시키고 적게 쓰면 막히게 한다고 한 말은 특히 중요하다. 초목의 성질은 전적으로 기가 우세하며, 더구나 인삼은 모두 달고 따뜻하여 활설하게 할 수 있으니 오 수비의 설사는 이 때문이었다. 오곡의 성질이 오로지 비위에 이로운 것과는 다르다.
每見近日士大夫家 , 日日用參 , 且用東參 , 以求調養 , 少則足以減食 , 多則必致瀉腹 , 亦何惑之甚耶 。
요즘 사대부 집안에서 날마다 인삼을 쓰되 동삼을 써서 조양하려는 것을 늘 본다. 적게 쓰면 식욕을 줄이기에 충분하고 많이 쓰면 반드시 설사하게 되니, 어찌 그리도 미혹되었는가.
余嘗本文達公之意 , 凡氣虛而怯 , 或痘瘡危急 , 平板不起 , 用東參輒應手而效 。 治脾胃虛弱 , 土濕下陷 , 飲食不思者 , 專用潞參 , 以益健運 , 亦無不驗 。
나는 일찍이 문달공의 뜻을 바탕으로, 기가 허하여 약하거나 두창이 위급하여 납작하고 솟지 않을 때 동삼을 쓰면 곧 손에 따라 효과가 나게 하였다. 비위가 허약하고 토습이 아래로 빠져 음식 생각이 없는 이를 치료할 때는 노삼만 써서 건운을 도왔는데 역시 효험이 없던 적이 없다.
每見近世業醫者多貨藥 , 臨一症則用參 、 用茸 , 惟恐其藥之不售 , 其罪惡豈淺鮮哉 ! 因附志於此 , 以為妄而無知者 , 示之戒焉 。
근세에 의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약을 파는 경우를 많이 보는데, 한 증을 만나면 인삼과 녹용을 쓰며 오직 약이 팔리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그 죄악이 어찌 작겠는가! 이에 여기에 덧붙여 기록하여 망령되고 무지한 자에게 경계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