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讀紀文達公五種筆記 , 載有一條 , 辯論人參 。 謂關東人參 , 得東方生髮之氣 , 偏於提補 ; 上黨人參 , 得中央土厚之氣 , 偏於培脾 , 其用頗疏 。 此語真前人所未發 , 余嘗因而思之 , 古方所載人參 , 即上黨之潞參也 。 其時關東未必有參 , 即有亦未必入中國 。
일찍이 기문달공의 다섯 가지 필기를 읽었는데 인삼을 논변한 조목이 있었다. 관동 인삼은 동방의 생발하는 기를 얻어 끌어올리고 보하는 데 치우치고, 상당 인삼은 중앙의 두터운 토기를 얻어 비를 기르는 데 치우치므로 그 쓰임이 제법 다르다고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앞사람이 밝히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를 따라 생각해 보니 고방에 실린 인삼은 곧 상당의 노삼이었다. 당시 관동에 반드시 인삼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있었다 해도 반드시 중국에 들어왔던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