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綿山血見愁

綿山為吾介一巨觀 , 峰巒秀美 , 洞壑幽深 , 而抱腹崖 、 蜂房泉尤為奇絕 。 夏秋間遊人如織 , 其山產奇花異草 、 藥材尤多 , 綿黃耆 、 汾甘草 , 載在本草 , 傳之古今 , 卓然不朽 。 惜介人性不辨藥 , 甘草尚有土人掘而市之 , 余則無采之者矣 。 其高山之陰 , 產一藥 , 名 「 血見愁 」, 土人游綿者 , 輒攜以歸 , 治血症 , 無不奇效 。 余家常藏之 。 其枝杆類枯蒿 , 味色極其平淡 。
면산은 우리 개 땅의 큰 경관으로, 봉우리들이 수려하고 동굴과 골짜기가 깊고 그윽하며 포복애와 봉방천은 더욱 기이하고 빼어나다. 여름과 가을에는 유람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산에는 기이한 꽃과 풀이 나고 약재가 특히 많다. 면산 황기와 분주 감초는 본초에 실려 고금에 전해지며 뚜렷하게 이름을 남겼다. 아쉽게도 개 땅 사람들은 본디 약을 분별하지 못하여 감초는 그래도 토박이가 캐어 팔지만, 그 밖의 것은 캐는 사람이 없다. 그 높은 산의 그늘진 곳에 한 약초가 나는데 이름은 ‘혈견수’이다. 면산을 유람하는 토박이들은 곧잘 가져와 혈증을 다스리는데 기이한 효험이 없는 경우가 없다. 우리 집에서도 늘 간직한다. 그 줄기는 마른 쑥과 비슷하고 맛과 빛깔은 매우 평범하다.
余十歲後 , 得便血疾 , 更數十醫無效 。 有老農以此藥遺之 , 煎而當茶飲 , 不數日 , 血竟止 。 後服理脾藥廿日遂瘥 。 乃珍視之 。
나는 열 살이 지난 뒤 변혈병에 걸려 수십 명의 의사를 바꾸어도 효험이 없었다. 한 늙은 농부가 이 약을 주기에 달여 차 대신 마셨더니 며칠 지나지 않아 피가 마침내 멎었다. 뒤에 비를 다스리는 약을 스무 날 먹고 완전히 나았다. 이에 소중하게 여겼다.
後鄰人有患吐血者 , 以少許服之 , 吐亦止 。 庚申秋 , 內人產後血暈 , 諸藥無效 , 忽憶此藥 , 服之遂醒 。 越數日 , 余在縣署談及此藥 , 適比部劉麟甫在座 , 請曰 , 親患吐血數月矣 , 參茸服斤許 , 而血不止 , 君盍賜一撮 。 乃封寄兩許 , 數日而愈 。 又縣幕錢席賓季剛先生之侄媳 , 產後血暈 、 百藥無效 , 季剛已為置殮具矣 , 余以此藥遺之亦愈 。 後與鄰里談及 , 凡得此藥治血暈 , 無不愈 。 故婦人又呼為血暈草 。
뒤에 이웃에 피를 토하는 사람이 있어 조금 먹였더니 토혈도 멎었다. 경신년 가을 아내가 출산 뒤 혈훈을 앓았는데 여러 약이 효험이 없었다. 갑자기 이 약이 생각나 먹였더니 마침내 깨어났다. 며칠 뒤 현 관아에서 이 약을 이야기하는데 마침 비부 유인보가 자리에 있다가 “어버이가 피를 토한 지 몇 달 되었습니다. 인삼과 녹용을 한 근쯤 먹었어도 피가 멎지 않으니 선생께서 한 줌 주시지 않겠습니까”라고 청하였다. 이에 한 냥쯤 봉하여 보냈더니 며칠 만에 나았다. 또 현의 막료인 전석빈 계강 선생의 조카며느리가 출산 뒤 혈훈을 앓아 온갖 약이 효험이 없었다. 계강은 이미 염할 물품을 마련하였는데, 내가 이 약을 주었더니 역시 나았다. 뒤에 이웃 사람들과 이야기하였는데, 이 약을 얻어 혈훈을 다스린 사람은 낫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부인들은 또 혈훈초라고 불렀다.
余以此藥名問之藥肆 , 持出 , 則自禹州來者 , 形類赤首烏 , 絕非綿產 。 後遍翻本草 , 亦無載此藥者 。 因思奇才異品 , 護世無窮 , 而味不經神農之口 , 品不列金匱之書 , 遂至淹沒深山窮穀 , 醫林無知之者 , 亦此物之不幸也 。 噫 ! 獨血見愁也乎哉 ! 附志於此 , 以補本草之缺 , 有心者 , 幸勿忽焉 。
내가 이 약의 이름을 약방에 물었더니 내놓은 것은 우주에서 온 것으로 생김새가 적하수오와 비슷하여 결코 면산에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뒤에 본초들을 두루 뒤졌으나 이 약을 실은 책도 없었다. 이에 생각하니 기이한 재주와 특별한 품질을 지닌 것들이 세상을 돕는 데는 끝이 없지만, 그 맛이 신농의 입을 거치지 않고 그 품목이 금궤의 책에 오르지 못하면 마침내 깊은 산과 외진 골짜기에 묻혀 의림에서 아는 이가 없으니, 이것 또한 이 물건의 불행이다. 아, 어찌 혈견수만 그러하겠는가! 여기에 덧붙여 기록하여 본초의 빠진 부분을 보충하니, 뜻있는 사람은 부디 소홀히 여기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