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年婁丙卿 , 壬子捷南宮(禮部考試告捷) , 得庶常(官名) , 亦寓於三忠祠 。 素有唾血疾 , 人不知也 。 一日宵坐 , 其僕攜湯藥來飲之 。 因問君何病 , 所服何藥 。 丙卿曰 : 弟有血疾 , 經數年矣 , 醫藥不啻百輩 , 竟無效 。 昨遇醫士 , 以為肺金受火傷 , 賜一方服之 。 雖不甚效 , 然尚平平無大誤 , 弟覺病非旦夕病 , 故藥亦無旦夕效也 。 余請一診視 , 丙卿曰 , 潤翁解此乎 ? 相處不知 , 幾交臂失之 。 乃伸其腕 , 覺六脈沉細而數 , 脾部尤甚 , 而肺部卻浮短而澀 , 非病脈也 。 乃告曰 : 君所患為陰虧生內熱 , 兼思慮傷脾 , 脾不統血 , 故午後有時發熱 , 水泛為痰 , 或夢遺失精 , 怔忡驚悸 , 然否 ? 丙卿曰 , 所言之證 , 無毫髮差 , 當作何治 ? 乃視其所服之方 , 則救肺飲也 。 告曰 , 君病在脾腎兩經 , 與肺並無干預 , 果肺病 , 當喘咳 。 君不喘咳 , 而以紫苑 、 兜鈴涼之 , 是誅伐無過也 。 久而肺寒氣餒 , 則成瘵矣 。 此時夏令 , 宜常服麥味地黃丸 。 令金水相生 , 水升火降 , 血亦當少止 。 秋後以人參歸脾丸攝之 , 不過二斤 , 保無病矣 。 丙卿乃買麥味丸服之 。 五日後 , 熱退神清 , 唾少止 , 繼以歸脾丸 。 至仲秋後分手時 , 則血全止而無病矣 。 次年散館作武邑宰 , 秋寄函問余 , 有曰 : 自服君藥 , 頓去沉屙 , 懷念良朋 , 時形夢寐 , 每公余獨坐 , 猶憶握腕清談時也 。 余復謝焉 。
동년 누병경은 임자년에 남궁에서 급제하여(예부 시험에 합격함) 서상(관직 이름)이 되었으며, 역시 삼충사에 머물렀다. 본래 피를 뱉는 병이 있었으나 사람들은 알지 못하였다. 하루는 밤에 앉아 있는데 그의 종이 탕약을 가져와 마시게 하였다. 이에 무슨 병이며 무슨 약을 먹느냐고 물었다. 병경이 말하였다. “저는 혈병을 앓은 지 여러 해입니다. 의원과 약을 쓴 것이 백 번뿐이 아니건만 끝내 효험이 없습니다. 어제 한 의원을 만났는데 폐금이 화에 상한 것이라며 처방 하나를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크게 효과는 없어도 그럭저럭 큰 잘못은 없습니다. 병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므로 약도 하루아침에 효과가 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번 진찰하겠다고 하니 병경이 말하였다. “윤옹께서 이를 아십니까? 함께 지내면서도 몰랐으니 거의 맞닥뜨리고도 놓칠 뻔하였습니다.” 이에 팔목을 내밀었다. 육맥은 침세하면서 삭하고 비부가 특히 심하였으나, 폐부는 도리어 부단하면서 삽하였고 병맥이 아니었다. 이에 말하였다. “그대의 병은 음이 부족하여 내열이 생긴 데다 사려가 비를 상하게 하여 비가 혈을 통섭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후에 때때로 열이 나고 수가 넘쳐 담이 되며, 혹 몽유로 정을 잃고 정충과 경계가 있지 않습니까?” 병경이 말하였다. “말씀하신 증상이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어떻게 치료해야 합니까?” 그가 먹는 처방을 보니 구폐음이었다. 내가 말하였다. “병은 비·신 두 경에 있고 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참으로 폐병이라면 숨이 차고 기침해야 합니다. 그대는 숨차거나 기침하지 않는데 자완·두령으로 식히니 죄 없는 것을 벌하는 셈입니다. 오래되면 폐가 차고 기가 쇠하여 노채가 됩니다. 지금은 여름이니 맥미지황환을 늘 먹어 금과 수가 서로 생하고 수는 오르며 화는 내리게 하면 피도 조금 그칠 것입니다. 가을 뒤에는 인삼귀비환으로 거두어 주면 2근을 넘기지 않아 병이 없어질 것을 보장합니다.” 병경은 곧 맥미환을 사서 먹었다. 닷새 뒤 열이 내리고 정신이 맑아졌으며 피를 뱉는 것도 조금 그쳤다. 이어 귀비환을 먹었고, 중추가 지나 헤어질 때에는 피가 완전히 그치고 병이 없어졌다. 이듬해 산관하여 무읍의 수령이 되었는데, 가을에 편지를 보내 내 안부를 물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의 약을 먹고 오랜 병이 단번에 없어졌습니다. 좋은 벗이 그리워 때때로 꿈에 나타나고, 공무를 마친 뒤 홀로 앉으면 지금도 손목을 잡고 청담을 나누던 때가 생각납니다.” 나는 답장을 보내 사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