裕州牧蓮舫兄之夫人 , 號杏云 , 靈石漪泉翁女也 。 工書畫 , 善音律 , 一切博奕棋酒 , 無所不通 。 適李時 , 蓮舫尚諸生 , 勸之讀書 , 不數年得鄉舉 , 後以譽錄議敘牧裕州 。 杏云隨之往 , 日行事件 , 多經其手 。 而蓮舫多萎靡 , 且好狎邪遊 , 並取二妓 。 以防撚不力失官 , 後雖開復 , 而空坐省城 , 益不自釋 , 日與夫人反目 。 辛酉秋 , 夫人不得已回介 , 家道式微 , 翁姑俱老 , 諸事賴之保全 。 余曾一次 , 即為余畫桃花春燕扇幅 , 至足感也 。 壬戌夏 , 忽遣人邀余 , 問之 , 則杏云病矣 。 急隨之往 , 則衣飾楚楚 , 診其脈 , 則六部沉伏 。 余曰 : 此鬱滯也 , 宜逍遙散 。 夫人亦知醫 , 點頭稱是 。 二服而全 。 又隔月 , 余赴捕廳之飲 , 先見曉圃 , 曉圃曰 , 兄來正好 , 五嫂又病矣 , 何不一視 。 入而問之 , 杏云曰 , 以為感冒 , 但覺憎寒發熱 , 肢體沉困 , 用柴胡四物湯 , 一服而腹作痛 , 昨夕猶緩 , 朝來無止時矣 。 時疫氣流行 , 恐其為疫 , 故請大哥一視 。 診之則余脈俱平 , 惟右關頗實而滯 。 告曰 , 此非外感 , 亦非瘟疫 , 仍是食為氣滯 , 故中脘不通 。 不惟增痛 , 且多脹也 。 況胸間作悶 , 時時作噯氣 , 以霍香正氣散疏之則無病矣 。 杏是之 , 稱不謬 。 乃處一方 。 越二日 , 遇曉圃於酒市 , 問之 , 則日二服全愈 , 家五嫂命致謝焉 。
유주목 연방 형의 부인은 호가 행운이며 영석의 의천 옹의 딸이다.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률을 잘 알며 모든 박희·바둑·술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이씨에게 시집갈 때 연방은 아직 제생이었는데 독서를 권하여 몇 년 되지 않아 향시에 급제하였다. 뒤에 예록(譽錄)으로 의서되어 유주목이 되었다. 행운이 따라가 날마다 처리하는 일이 대부분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연방은 대개 무기력하였고 유흥을 좋아하여 기녀 둘을 데려오기까지 하였다. 염비를 막는 데 힘쓰지 못하여 벼슬을 잃었다가 뒤에 복직되었으나 성에 헛되이 머물며 더욱 스스로 마음을 풀지 못하여 날마다 부인과 다투었다. 신유년 가을 부인은 어쩔 수 없이 개로 돌아왔다. 집안 형편은 기울고 시부모는 모두 늙어 모든 일이 그에게 의지하여 보전되었다. 내가 일찍이 한 번 갔더니 곧 나를 위하여 복사꽃과 봄 제비를 그린 부채 그림을 그려주어 지극히 감사하였다. 임술년 여름 갑자기 사람을 보내 나를 부르기에 물으니 행운이 병들었다고 하였다. 급히 따라가 보니 의복과 장식은 단정하였고 진맥하니 육부가 침복하였다. 내가 “이는 울체이니 소요산이 마땅합니다”라고 하였다. 부인도 의술을 알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였다. 두 번 먹고 완쾌되었다. 또 한 달 뒤 내가 포청의 술자리에 가다가 먼저 효포를 만났는데 “형님이 마침 잘 오셨습니다. 다섯째 형수님이 또 병들었으니 한번 보시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들어가 물으니 행운이 말하였다. “감모라 여겼는데 추위를 싫어하고 열이 나며 팔다리와 몸이 무겁고 피곤하였습니다. 시호사물탕을 한 번 먹자 배가 아팠습니다. 어젯밤에는 그래도 덜하였으나 아침부터는 멎을 때가 없습니다. 지금 역기가 유행하므로 역병일까 걱정되어 큰오라버니께 한번 보아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진맥하니 나머지는 모두 평온하고 우관만 매우 실하면서 막혀 있었다. 내가 말하였다. “이는 외감도 아니고 온역도 아니며, 여전히 음식이 기에 막혀 중완이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통증이 더해질 뿐 아니라 더부룩함도 많으며, 더욱이 가슴이 답답하고 수시로 트림할 것입니다. 곽향정기산으로 소통시키면 병이 없어집니다.” 행운이 옳다고 하며 틀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에 처방 하나를 내었다. 이틀 뒤 술 시장에서 효포를 만나 물으니 “두 번 먹고 완쾌되어 저희 다섯째 형수님이 감사를 전하라고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