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曰我思古人實獲我心獲之為言得也有得於心也聖人之於學也未得則發憤而忘食已得則樂之而忘憂學貴乎有得也如是醫之為道亦何獨不然粵稽古聖上自軒岐中及仲景為醫中之聖聖則得之全也厥後劉河間李東垣朱丹溪輩各執一見各成一家亦各有所得而為之也迄今如葉香岩之批刻陶氏金生集徐靈胎又評點葉氏方案孰非有得於心而為之歟余雖業醫半生碌碌於醫道茫無所得每念前人不勝惶愧乃無何而儀鄉宗臺來手執其所著醫中一得示余余受而讀之其中癉瘧一說發前人之肋未發葛升一方制前人之所未制至如產後房勞與蓐勞異既有明辨又有定方余以之治人無不應手知儀鄉先生固有得於心而為之也一得之所以名書也願世之閱是書者勿以管見視之以之行世參以己見旁推類及或者更有所得並不止一得何莫非是書之有所裨益而垂之不替耶是為序
《시》에서 “내가 옛사람을 생각하니 참으로 내 마음을 얻었다”고 하였다. 얻었다는 말은 득이니 마음에 얻은 바가 있다는 것이다. 성인은 학문에서 아직 얻지 못하면 분발하여 먹기를 잊고 이미 얻으면 즐겨 근심을 잊으니, 학문이 얻음을 귀하게 여김이 이와 같다. 의술의 도라고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옛 성인을 살피면 위로 헌원·기백에서 가운데 중경에 이르기까지 의학의 성인이니 성인은 온전히 얻은 이이다. 뒤의 유하간·이동원·주단계 등은 각각 한 견해를 지키고 일가를 이루었으니 역시 각자 얻은 바가 있어 한 것이다. 지금에 이르러 섭향암이 도씨의 《금생집》을 비평하여 새겨 내고 서영태가 또 섭씨의 방안을 평점한 것도 어찌 마음에 얻은 바가 있어 한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비록 반평생 의업에 종사하였으나 평범하여 의도의 얻음이 아득하고 앞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두렵고 부끄럽다. 얼마 전 의향 종대가 자신이 지은 《의중일득》을 들고 와 보여 주기에 받아 읽었다. 그중 단학의 설은 앞사람이 아직 밝히지 못한 것을 밝혔고 갈승탕 한 처방은 앞사람이 아직 만들지 않은 것을 만들었다. 산후방로가 욕로와 다르다는 것도 분명히 가리고 정한 처방이 있어, 내가 이를 가지고 치료하니 손을 대는 대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의향 선생이 참으로 마음에 얻은 바가 있어 한 것임을 알겠으니 일득이라 책을 이름한 까닭이다. 세상에서 이 책을 읽는 이들이 좁은 견해로 보지 말고 세상에 시행하며 자기 견해를 참작하여 두루 미루어 같은 부류에 적용한다면 혹 더 얻는 바가 있어 일득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어찌 이 책이 이롭게 하여 후세에 전해 쇠하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서문을 쓴다.
癸亥仲春月梁溪七世家醫雅亭氏顧爾元拜撰時年七十有四
계해년 중춘에 양계의 칠대 세가 의사 아정 고이원이 삼가 지었으며 당시 나이는 일흔넷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