接閱尊論至為明晰欽佩奚似惟此症自夏至以後至初秋發者謂之癉瘧目深秋至初冬發者謂之伏暑其實皆傷暑得來伏暑者秋涼已深暑邪伏於營分也而尊見以為伏暑自有伏暑之病癉瘧古有癉瘧之名似以此病忽分為二矣然劃古有癉瘧之名自有癉瘧之實將以何症為癉瘧耶抑古有癉瘧而今無癉瘧耶捧讀之下令人不能無疑仲師制白虎加桂枝湯自有深義而足下以程云來註解為紙上空談則從古聖賢所論都在紙上豈亦謂之空談而不能見諸實事耶僕非精於此道亦非行道之人然既有疑不能不問還當明以教我為幸
존론을 읽으니 매우 명료하여 탄복합니다. 다만 이 증은 하지 뒤부터 초가을에 발하면 단학, 늦가을부터 초겨울에 발하면 복서라 하며 실제로 모두 상서에서 얻은 것입니다. 복서는 가을의 서늘함이 깊어져 서사가 영분에 잠복한 것입니다. 그런데 존견은 복서에는 복서의 병이, 단학에는 옛 단학의 이름이 있다 하시니 이 병을 갑자기 둘로 나눈 듯합니다. 옛날 단학의 이름이 있으면 그 실제도 있을 텐데 어떤 증을 단학이라 하겠습니까? 아니면 옛날에는 단학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는 것입니까? 읽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경이 백호가계지탕을 만든 데에는 깊은 뜻이 있는데 족하가 정운래의 주해를 종이 위의 빈말이라 한다면 예부터 성현의 논의도 모두 종이 위에 있으니 그것도 실제로 보일 수 없는 빈말이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이 도에 정밀하지도, 이 도를 행하는 사람도 아니지만 의심이 있어 묻지 않을 수 없으니 밝게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黃帝內經千古不磨之作所言經絡臟腑腧穴陰陽五行連氣非神聖不能道隻字仲景傷寒金匱亦千古不磨之作有論有證有方有法多一味便不是此方異一脈便不是此證非神聖不能道隻字第內經所言者是體仲景所言者是用此二書實體用相須之要道也癉瘧一症內經金匱俱載之但未竟其詳耳太凡四時為病冬月即發者謂之正傷寒然冬寒而反暖即有冬溫至於冬傷於寒至春變溫至夏變熱即謂之伏氣矣故發於春末夏初者便謂之溫熱病溫熱病中間或有溫瘧癉瘧之形舉俗所稱春溫似瘧春溫癉瘧濕溫似瘧濕溫癉瘧或師承相授或習俗相傳亦非漫然而稱之也大抵夏至以後而病熱者謂之熱病新書溫病條辨中所云暑溫是也挾濕者謂之濕溫濕溫症治古方用蒼朮白虎則知無濕而但熱者白虎湯是治暑熱之正法矣今時酷暑炎蒸忽起涼風雷雨而病者是暑熱為暴寒遏伏先用香薷解表數劑之後忽變大熱大煩大渴而又背獨惡寒骨節煩疼白虎加桂枝恰當由是觀之白虎湯治暑熱之正方挾濕則加蒼朮兼寒則加桂枝豈不明且確也程云來註解白虎清氣桂枝入營非不有理然欠暢達鄙人無學何敢批駁前賢然而認證用藥要歸著實加柯氏來穌集改正越婢湯證非有膽識者不能讀古人書須自具見識勿為古人瞞過者類如此夫大暑以後立秋初際每多但熱不寒即是癉瘧寒熱往來便為瘧疾當此之時其治尚易因暑邪內伏未深也逮至秋分之後寒露霜降則邪伏遽深而其為病亦重矣夫豈伏暑門中而無癉瘧之症哉仲景云太陽病或巳發熱或未發熱必惡寒體痛嘔逆脈緊無汗者名曰傷寒若脈緩有汗者名曰中風是從傷寒中分出中風也若夫癉瘧是熱症也雖當初起必見熱重煩冤舌紅無苔或有苔而亦甚薄與伏暑之初起微熱淹淹舌上苔滑者不同由是觀之雖屆深秋其病初起熱重煩冤者即屬癉瘧便不得謂之伏暑矣暑濕內蘊微熱淹淹舌苔白膩雖系秋初便與伏暑相類但不名伏暑而名濕熱病耳尤在涇解風傷衛寒傷營二句云寒之淺者僅傷於衛風而甚者並及於營衛之實者風亦難泄衛而虛者寒猶不固古稱大青龍治風寒兩傷營衛之法詎知是中風衛實之方風為陽邪內郁化火煩躁特甚故用石膏衛實無汗發熱惡寒故用麻桂此語獨超千古又有暑病解云暑屬火暑必挾濕故陰虛多火者暑即寓於火之中陽虛多濕者暑即伏於濕之內此亦名言非同泛泛由是觀之患癉瘧者陰虛火盛之人為多即經旨肺素有熱之來路也患伏暑者陽虛濕勝之人不少即濕性滯濡之意也惟濕鬱必化熱六氣皆從火化故濕熱伏暑病亦有化燥而用清法者不可不知乃若癉瘧燥熱居多清解是其正法清解維何辛涼是也如薄荷牛蒡桔梗連翹豆卷青蒿竹葉蘆根等味因其病方初起後人不敢用白虎開場但用輕清涼解取意則同而命劑懸殊矣儀翁先生好學深思特舉葛升為癉瘧開首之法豈不另具卓見第伏暑之病邪居足太陰脾為多用升葛從脾胄提出伏邪頗有意義若癉瘧邪居手太陰肺為最多肺主一身氣化為清肅之臟似宜輕清解散為穩病情變化不可勝數處方定法統以見症為憑故癉瘧見虛者加沙參麥冬洋參之屬挾濕者加蘆根滑石川通草之流果熱甚而大煩大渴者則竟用白虎熱甚而挾虛則白虎加人參或竹葉石膏之類熱甚煩渴過飲水而挾濕者河間五苓三石甘露飲最妙如上症挾濕而又停濁者子利甘露飲尤妙要皆不離肺熱二字而後傳布三焦生津降火補氣養陰總以肺胃為主未及脾腎又為病後培元之著矣此癉瘧症治之大略未足為明者道也雖然病變無常方難執一以余閱歷同一病也而體氣不同則治法變矣悵璐玉醫通有兼症晰義兩卷最為明晰暇日觀之足令人心機活潑叨居愛末冒味直言伏祈垂察是荷
《황제내경》은 천고에 지워지지 않을 저술로 경락·장부·수혈·음양·오행·운기를 말한 것은 신성한 이가 아니면 한 글자도 말할 수 없습니다. 중경의 《상한》·《금궤》도 천고에 지워지지 않을 저술로 논·증·방·법이 있어 한 약재만 더해도 그 처방이 아니고 한 맥만 달라도 그 증이 아니니 신성한 이가 아니면 한 글자도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내경》은 체를 말하고 중경은 용을 말하므로 두 책은 체용이 서로 의지하는 요도입니다. 단학은 두 책에 모두 실렸으나 자세함을 다하지 않았습니다. 사시의 병에서 겨울에 곧 발하는 것을 정상한이라 하나 겨울에 추워야 하는데 도리어 따뜻하면 동온도 있습니다. 겨울에 한에 상하여 봄에 온으로, 여름에 열로 변하는 것은 복기입니다. 그러므로 봄 말과 여름 초에 발하면 온열병이라 하고 그중 온학·단학의 모습도 있습니다. 속칭 춘온사학·춘온단학·습온사학·습온단학은 스승에게 받거나 풍속으로 전해진 것으로 함부로 부른 것이 아닙니다. 하지 뒤 열병을 앓는 것은 《온병조변》의 서온이며 습을 끼면 습온입니다. 습온에 고방의 창출백호를 쓰므로 습 없이 열만 있으면 백호탕이 서열의 정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혹서에 갑자기 서늘한 바람과 뇌우가 일어 병드는 것은 서열이 갑작스러운 한에 억눌린 것입니다. 먼저 향유로 해표하고 몇 제 뒤 갑자기 큰 열·번민·갈증이 생기며 등만 오한하고 뼈마디가 번거롭고 아프면 백호가계지가 알맞습니다. 이로 보면 백호탕은 서열의 정방이며 습을 끼면 창출, 한을 겸하면 계지를 더하니 분명하고 확실하지 않습니까? 정운래의 백호청기·계지입영 해석도 이치가 없지는 않으나 충분히 소통되지 못하였습니다. 제가 무학하여 감히 선현을 비판하겠습니까만 증을 알고 약을 쓰는 것은 실제에 귀착해야 합니다. 가씨의 《내소집》이 월비탕증을 바로잡은 것처럼 담식이 없으면 할 수 없습니다. 옛 책을 읽을 때에는 스스로 식견을 갖추어 옛사람에게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대서 뒤 입추 무렵에는 열만 있고 추위가 없는 것이 많아 곧 단학이고 한열이 오가면 학질입니다. 이때는 서사가 깊이 잠복하지 않아 치료가 쉽지만 추분 뒤 한로·상강에는 사기가 깊어 병도 무겁습니다. 어찌 복서문 안에 단학증이 없겠습니까? 중경은 태양병에서 이미 발열하거나 아직 발열하지 않아도 반드시 오한·체통·구역·긴맥·무한이면 상한, 완맥·유한이면 중풍이라 하였습니다. 이는 상한에서 중풍을 나눈 것입니다. 단학은 열증이어서 초기에도 반드시 열이 무겁고 번원하며 혀가 붉고 태가 없거나 있어도 얇습니다. 복서 초기의 미열과 오래 끄는 양상, 혀의 미끄러운 태와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늦가을이라도 처음부터 열이 무겁고 번원하면 단학이므로 복서라 해서는 안 됩니다. 서습이 안에 쌓여 미열이 오래가고 설태가 희고 끈끈하면 초가을이라도 복서와 비슷하되 복서라 하지 않고 습열병이라 할 뿐입니다. 우재경은 풍상위·한상영을 풀이하며 ‘얕은 한은 위만 상하고 심한 풍은 영에도 미치며, 위가 실하면 풍도 새게 하기 어렵고 위가 허하면 한에도 견고하지 못하다. 옛날에는 대청룡을 풍한이 영위를 모두 상한 것을 치료하는 법이라 했으나 중풍으로 위가 실한 처방임을 어찌 알았겠는가? 풍은 양사로 안에서 울체하여 화로 바뀌어 번조가 특히 심하므로 석고를 쓰고, 위가 실하여 무한·발열·오한하므로 마황·계지를 쓴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천고를 뛰어넘는 말입니다. 또 서병 해석에서 ‘서는 화에 속하고 반드시 습을 끼므로 음허로 화가 많은 이는 서가 화 속에 있고 양허로 습이 많은 이는 서가 습 안에 잠복한다’고 한 것도 명언입니다. 단학은 음허화성한 사람이 많아 경의 폐소유열의 내력이 되고, 복서는 양허습승한 사람이 적지 않아 습의 정체하고 젖는 성질을 뜻합니다. 다만 습울은 반드시 열로 바뀌고 육기는 모두 화를 따르므로 습열·복서도 조로 변하여 청법을 쓰는 경우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학에는 조열이 많으므로 청해가 정법이며 청해란 신량입니다. 박하·우방·길경·연교·두권·청호·죽엽·노근 등은 병의 초기에 후인이 백호로 시작하기를 감히 못하여 가볍고 맑게 서늘히 푸는 약만 쓴 것입니다. 뜻은 같으나 처방은 크게 다릅니다. 의옹 선생이 깊이 배우고 생각하여 갈승으로 단학의 첫 법을 세운 것은 탁견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복서는 사기가 족태음비에 많이 있으므로 승마·갈근으로 비위에서 복사를 끌어내는 데 뜻이 있습니다. 단학은 수태음폐에 사기가 가장 많고 폐는 온몸의 기화를 주관하는 청숙의 장이므로 가볍고 맑게 풀어 흩는 것이 온당할 듯합니다. 병정의 변화는 다 셀 수 없으므로 처방은 드러난 증을 근거로 합니다. 단학에 허가 보이면 사삼·맥동·양삼을 더하고 습을 끼면 노근·활석·천통초 등을 더합니다. 열이 심해 크게 번갈하면 곧 백호를 쓰고 열이 심하면서 허를 끼면 백호가인삼이나 죽엽석고를 씁니다. 열과 번갈로 물을 지나치게 마셔 습을 끼면 하간의 오령삼석감로음이 가장 묘하고, 위 증에 습을 끼면서 탁이 정체하면 자리감로음이 더욱 묘합니다. 모두 폐열 두 글자를 떠나지 않다가 뒤에 삼초로 전포되니 생진강화·보기양음도 폐위를 주로 하고 비신에는 아직 미치지 않은 것이며 병 뒤 원기를 기르는 일입니다. 이것이 단학 증치의 대략으로 밝은 이에게 말할 만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병은 늘 변하고 처방을 하나로 고집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으로 같은 병이라도 체기가 다르면 치료법이 바뀝니다. 장로옥의 《의통》 중 겸증석의 두 권이 매우 명료하여 한가할 때 보시면 심기가 활발해질 것입니다. 말석에 있으면서 감히 곧게 말씀드리니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接閱高論引證明備說理精詳足徵學問淵深欽佩奚似煞內經金匱以及後賢方論諸書苟從事於醫者無人不覽無煩贅述也鄙人因見夏秋所患傷暑之症日久淹纏變症莫測醫家治之不能速愈是以稍杼所見發此微論專指有汗之癉瘧無汗之癉瘧二症而言並未旁及他病也若是春溫冬溫濕溫溫熱等症或有傷寒中來者或有感冒時邪者或有伏邪感新邪而發者症不一端治不一法若欲縷晰條分非一紙所能盡溫病條辨中亦已言其大略矣夏秋之症有但熱不寒而無起伏者有乍寒乍熱而無定時者俱與癉瘧有別不得以癉瘧之例一概治之此中有冬傷於寒邪伏在內至夏感暑引動而發者有極重之症不可不知即論夏月傷暑之病亦多而癉瘧則暑病中之尤甚者也古人謂夏傷於暑秋必痎瘧未當言夏傷於暑春必痎瘧也可見瘧疾為秋月之病而非春月之病明矣夫春月之病亦有似瘧者乃傷寒中之涉及少陽而然也如竟與秋後瘧疾同論則誤矣更有營衛虛而往來寒熱者此係大虛之候必於脈象見之應當議補醫者亦不可不知內經金匱將癉瘧列入瘧症一門則癉瘧為夏秋之病而非春月之病亦明矣古人謂先夏至為病溫後夏至為病暑可見時令亦不可不論七月為之初秋九月為之深秋若以初秋之病為伏暑轉以深秋之病為癉瘧而不為伏暑併為春間亦有癉瘧不知出於何書望為明示以廣見聞若習俗相傳雖有師承口授終非前賢確淪未可信為實然也傷暑之症本應有汗若癉瘧而至無汗必因內蘊暑邪外為涼風所遏則肺氣不達腠理閉塞故致無汗其有汗之癉瘧尚須辛涼解表至於無汗之癉瘧則非牛蒡薄荷桔梗豆卷等所能勝任矣非不知更為穩當其如屢投無效何舉世茫煞罔覺不能一悟良可慨已因而想到大青龍湯去薑棗加葛根為法方中重用石膏為君少加麻桂為反佐則無汁之癉瘧庶能發汗而邪可解矣反佐者如白通湯之用豬膽汁滋腎丸之用桂心是也癉瘧魏柏鄉注為熱毒視溫瘧較重仲師論溫瘧用白虎加桂枝湯則無汁之癉瘧用大青龍去薑棗加葛根亦可類推去薑棗者姜性更烈棗恐膩滯也加葛根者涼散陽明之邪也不過傷寒以麻桂為君癉瘧以石膏為君若用數錢石膏而以數分麻桂為反佐亦可無慮且無汗癉瘧必熱勢起伏日有定時口渴煩冤脈洪數重按實者方可用若似癉瘧而非癉瘧原不可用當須識此不可誤也古人處方此一味重彼一味輕與此一味輕彼一味重便即法不同而治各異醫者貴在臨症權衡也況此獨為癉瘧初超立法若延至日久則症已變而治汪亦變矣豈可膠柱鼓瑟哉金匱溫瘧條中有筋骨煩疼若謂背獨惡寒則未之及也至癉瘧之初起病情已載癉瘧淺說內茲不復贅至於病變無常方難執一無人不知不待言矣從前二弟媳素本耐性偶患瘧疾因將出汁心中煩躁遂令打扇以致汗不得出邪不能達終日煩躁異常遂請令業師醫治議用麻杏甘石湯似矣鄙意欲加桂枝數分伊囿於俗見堅執不肯以致不效至今深悔可見業醫者貴有膽識獨具卓見方能超乎流俗不致貽誤無窮斯可矣鄙人並非好為辨論因世俗醫之一道皆是浮光掠影隨聲附利毫無實際不能獨出已見此等本不足與深談惟旭翁先生博學明理超出庸眾心存濟世歷練已深故敢將鄙見直陳蓋醫理本不易明若能彼此討論刻意精求庶或差少錯誤也未識高明以為何如荒謬之見不知所云還請教以不逮為幸
고론을 읽으니 인용이 밝고 갖추어졌으며 이치가 정밀하여 학문의 깊이에 탄복합니다. 다만 《내경》·《금궤》와 후현의 방론은 의업에 종사하는 이라면 누구나 보므로 덧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여름가을 상서가 오래 얽히고 변증을 예측할 수 없으며 의사가 빨리 낫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작은 견해를 펼친 것입니다. 오로지 유한단학과 무한단학 두 증을 말했지 다른 병까지 미친 것은 아닙니다. 춘온·동온·습온·온열 등은 상한에서 오거나 시사를 감모하거나 복사가 새 사기를 만나 발하는 등 증과 치료가 하나가 아니므로 자세히 나누면 종이 한 장으로 다할 수 없고 《온병조변》도 대략 말하였습니다. 여름가을에 열만 나고 오르내림이 없거나 추웠다 더웠다 하되 정한 때가 없는 것은 모두 단학과 달라 단학의 예로 일률적으로 치료하면 안 됩니다. 겨울에 한에 상해 안에 잠복하였다가 여름에 서를 받아 움직여 발하는 위중한 증도 알아야 합니다. 여름 상서의 병은 많으나 단학은 그중 특히 심한 것입니다. 옛사람은 여름에 서에 상하면 가을에 반드시 해학이 된다 했지 봄에 해학이 된다 하지 않았으니 학질이 가을병이지 봄병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봄에도 학 같은 병이 있으나 상한에서 소양에 미쳐 그러한 것이므로 가을 학질과 함께 논하면 잘못입니다. 또 영위가 허하여 한열이 오가는 대허의 증은 반드시 맥에 나타나니 보법을 의논해야 합니다. 《내경》·《금궤》가 단학을 학증문에 넣었으므로 단학이 여름가을병이지 봄병이 아님도 분명합니다. 옛말에 하지 전은 온병, 뒤는 서병이라 하니 시령도 논해야 합니다. 칠월은 초가을, 구월은 늦가을인데 초가을병을 복서라 하고 늦가을병을 단학이라 하여 복서가 아니라고 하며 봄에도 단학이 있다 하신 것은 어느 책에서 나왔습니까? 견문을 넓히도록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습속의 전승이라면 사승의 구전이 있어도 선현의 확론이 아니므로 참이라 믿을 수 없습니다. 상서에는 본래 땀이 있어야 하는데 단학에 무한이 된 것은 안에 서사가 쌓이고 밖으로 서늘한 바람이 억눌러 폐기가 도달하지 못하고 주리가 막혔기 때문입니다. 유한단학도 신량해표가 필요한데 무한단학은 우방·박하·길경·두권 등이 감당할 수 없습니다. 더 온당한 줄 몰라서가 아니라 여러 번 써도 듣지 않으니 어찌합니까? 온 세상이 깨닫지 못하여 개탄스럽습니다. 그래서 대청룡탕에서 생강·대추를 빼고 갈근을 더하며 석고를 무겁게 군으로, 마황·계지를 조금 반좌로 쓰는 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무한단학도 땀이 나 사기가 풀릴 것입니다. 반좌는 백통탕의 저담즙이나 자신환의 계심과 같습니다. 단학을 위백향은 열독이라 하여 온학보다 무겁게 보았고 중경이 온학에 백호가계지탕을 썼으므로 무한단학에 대청룡에서 생강·대추를 빼고 갈근을 더하는 것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생강은 더 맹렬하고 대추는 끈끈하게 정체할까 염려하여 빼고 갈근은 양명의 사기를 서늘하게 흩으려고 더합니다. 다만 상한은 마황·계지가 군이고 단학은 석고가 군이므로 석고 몇 돈에 마황·계지 몇 푼을 반좌로 쓰면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무한단학이면서 열이 날마다 일정하게 오르내리고 구갈·번원이 있으며 맥이 홍삭하고 깊이 눌러 실해야 쓸 수 있습니다. 단학 같지만 단학이 아니면 본래 쓸 수 없으니 알아서 그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옛 처방에서 어느 한 약은 무겁고 다른 약은 가벼운 것과 그 반대는 법도 치료도 다르므로 임증의 권형이 중요합니다. 더구나 단학 초기만을 위한 법이며 오래되면 증과 치료도 변하는데 어찌 아교로 기둥을 붙이고 거문고를 타겠습니까? 《금궤》 온학 조문에는 근골번통이 있으나 등만 오한한다는 말은 없습니다. 단학의 처음 병정은 《단학천설》에 있어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병이 변하고 처방을 하나로 고집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전에 둘째 아우의 아내는 평소 참을성이 있었으나 학질을 앓다가 땀이 나려 할 때 가슴이 번조하여 부채질을 시켜 땀이 나지 못하고 사기가 도달하지 못해 온종일 번조가 심해졌습니다. 당신의 스승에게 진료를 청하여 마행감석탕을 의논한 것은 맞는 듯했습니다. 저는 계지 몇 푼을 더하려 하였으나 그는 속견에 갇혀 굳게 반대하여 효과가 없었고 지금도 깊이 후회합니다. 의사는 담식과 탁견이 있어야 유속을 넘어 끝없는 그르침을 남기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제가 변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의 의술은 겉만 스치고 남의 말을 따라 실제가 없어 독자적 견해를 내지 못하니 깊이 이야기할 대상이 못 됩니다. 오직 욱옹 선생은 박학하고 이치에 밝아 범속을 넘으며 세상을 구하려는 마음과 깊은 경험이 있으므로 감히 제 견해를 곧게 말씀드립니다. 의리는 밝히기 어려우니 서로 토론하고 뜻을 다해 정밀히 구하면 오류가 조금 줄 수 있겠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황당한 견해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으니 미진한 곳을 가르쳐 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接閱高論謂時令不可不論誠然誠然夫春溫夏熱秋涼冬寒四時之正氣也然春正月八寒未解交驚蟄節而後陽氣方升秋七月餘暑未消交白露節而後陰氣始降夏至一陰生正為熱盛之候冬至一陽生正是寒極之時蓋剝不極則不復理勢使燃也經云先夏至日者為病溫後夏至日者為病暑由是推之則知先秋分日者為病暑後秋分日者為病涼(補天石有秋涼傷寒之說涼極而後燥交九十月燥病方生)先冬至日者為病燥(喻嘉言補秋燥論謂經文脫卻長夏傷於濕以致後人不明秋傷於燥冬生咳嗽云云)後冬至日者為病寒先春分日者為病寒後春分日者為病溫矣常見春未夏初溫病流行闔門傳染屢經反覆延至夏至後小暑節仍有戰汗而愈者原屬溫邪非關傷暑此則病之餘氣非時之餘氣也又常見夏至以後起病有似溫邪延及小暑節熱勢朝和過午則盛但熱不寒竟與癉瘧相同此溫暑之交抑或所謂溫瘧耶喻氏云夏傷於暑長夏傷於濕由是推之初秋癉瘧夏傷於暑之為病也深秋伏暑長夏傷於濕之為病也癉瘧由乎夏傷暑故熱症多而病勢重病重故不易速愈也伏暑由乎長夏傷濕故濕症多而病勢緩緩則淹纏故亦不易速愈耳
고론에서 시령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하신 것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봄의 온, 여름의 열, 가을의 량, 겨울의 한은 사시의 정기입니다. 그러나 봄 정월에는 남은 추위가 풀리지 않고 경칩 뒤에야 양기가 오르며, 가을 칠월에는 여서가 사라지지 않고 백로 뒤에야 음기가 내려갑니다. 하지에 한 음이 생기는 때가 바로 열이 성한 때이고 동지에 한 양이 생기는 때가 바로 한이 극한 때이니, 박이 극하지 않으면 복하지 않는 것은 이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경에서 하지 전은 온병, 하지 뒤는 서병이라 하였으니 미루면 추분 전은 서병, 추분 뒤는 량병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천석》에는 가을의 량이 상한한다는 설이 있으며 량이 극한 뒤에 조해져 구·시월에 조병이 생깁니다. 동지 전은 조병입니다. 유가언의 《보추조론》은 경문에서 ‘장하상어습’이 빠져 후인이 가을에 조에 상하면 겨울에 기침한다는 등을 알지 못했다 하였습니다. 동지 뒤는 한병, 춘분 전은 한병, 춘분 뒤는 온병입니다. 봄 말 여름 초에 온병이 유행하여 온 집안에 전염되고 여러 번 반복되어 하지 뒤 소서까지 전한하고 낫는 것을 흔히 보는데, 본래 온사이지 상서와 관계없으니 이는 병의 여기가 남은 것이지 계절의 여기가 남은 것이 아닙니다. 또 하지 뒤 병들어 온사 같은데 소서까지 이어져 아침에는 열이 누그러지고 오후에는 성하며 열만 있고 추위가 없어 단학과 같은 것도 보니, 온과 서가 교차하는 때의 이른바 온학일까요? 유씨는 여름에는 서에 상하고 장하에는 습에 상한다고 하였으므로 초가을 단학은 여름에 서에 상한 병이고 늦가을 복서는 장하에 습에 상한 병이라 미룰 수 있습니다. 단학은 여름의 서에서 오므로 열증이 많고 병세가 무거워 빨리 낫기 어렵습니다. 복서는 장하의 습에서 오므로 습증이 많고 병세가 완만하여 오래 얽히므로 역시 빨리 낫기 어렵습니다.
再閱高論所云無汗之癉瘧必因內蘊暑邪外為涼風阻遏肺氣不達腠理閉塞亦誠確論借用大青龍湯重用石膏少佐麻桂亦無不可但必重用石膏清肺胃之熱劃知癉瘧責重肺胄無疑矣尊見亦明知癉瘧病在肺胃弟以為肺胄之病意見相同不遑多贅至於白虎加桂枝骨節煩疼見金匱背獨惡寒句見傷寒審證集引證用方要歸著實此即著實處也語云讀書多不如臨症多果能讀書臨症二者皆到更為美備惜言之易而行之難其惟終日勞勞荒疏無學辱承教示冒瀆粗陳伏維哂政
고론에서 무한단학은 안에 서사가 쌓이고 밖으로 서늘한 바람이 막아 폐기가 도달하지 못하고 주리가 막힌 것이라 하신 것도 확론입니다. 대청룡탕을 빌려 석고를 무겁게 쓰고 마황·계지를 조금 돕는 것도 무방합니다. 다만 반드시 석고를 무겁게 써 폐위의 열을 맑히니 단학의 책임이 폐위에 있음은 의심이 없습니다. 존견도 이를 분명히 아시고 저도 폐위의 병이라 보므로 뜻이 같아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백호가계지의 골절번통은 《금궤》에, 등만 오한한다는 구절은 《상한심증집》에 있습니다. 인용하여 처방하는 것은 실제에 귀착해야 하니 이것이 실제에 맞추는 곳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임증이 많은 것이 낫다 하지만 둘을 모두 이루면 더욱 훌륭하겠습니다. 말은 쉽고 행하기 어려움이 아쉽습니다. 저는 온종일 분주하여 학문이 거친데 가르침을 받고 감히 소견을 말씀드리니 웃으며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金匱癉瘧條中雲陰氣孤絕陽氣獨發此二句是仲師發明癉瘧之病原蓋陰陽不相配為之孤往來不相通為之絕陰氣孤絕故陽氣獨發也此所以脾不能為胄行其津液而為病也若非如此解須知仲師原文一字不苟內經云陰氣先傷此特易以孤絕二字其義甚重試細思之人可陰氣孤絕耶此等精義從來未經人道雖讀仲師書猶之未讀耳書義未明何能識病既不識病何能治病徒誇臨症多無益也可兒醫之一道行之固難言之亦非易須知此症因脾為暑濕所阻不能為胃行其津液為病則其病在脾之暑濕可知然則脾之暑濕將何從而使之也乎其暑濕先既從肺胄而入脾自必仍從脾而達之肺胃方為正治也醫亦知從肺胃達邪然於無汗之癉瘧但用牛蒡薄荷前胡桔梗等恐不勝任方中並夾入厚朴檳榔焦查神麯枳實等類以為非此不能解其滿悶消其積滯不知此等之藥其性溫燥耗氧既非暑濕之邪所宜並恐牽制肺胃之藥不能得力又恐屢投多服更傷元氣津液是邪未達而正已傷並因正傷而邪易入里貽誤可勝言哉從以為胸中懊憹煩滿必須積去而邪可解殊不知邪解而煩滿自除此所以治病必求其本也古人治暑濕制六一五苓四苓等散為法蓋以暑中之濕宜滲宜利之故耳至於白虎加桂枝湯後人不明制方之義以為既用白虎以治熱邪河以參入桂枝之辛溫殊不可解苦思力索想到必因背獨惡寒之故其為款悟獨神隨令一人唱之百人利之矜為著實之處不知仲師於白虎湯加入桂枝大有深意因濕瘧之濕熱蘊阻中宮若投白虎恐或格拒必用桂枝之性溫為石膏之反佐又以桂枝之味辛助石膏之辛散並能入營發汗更將陽明之熱邪導其從太陽之表太陽之裡而出以為溫瘧之引路也若必待背獨惡寒方始用白虎加桂枝湯倘遇溫瘧而背不惡寒之症竟不能用此方坐失機宜貽誤不少矣夏月傷暑之症甚多而癉瘧為暑病中之最重最難治者歷來名醫不少獨於癉瘧略而不詳以致後人罔有指歸只得恪守師承口授之妙法表裡雙解不辨經絡不明營衛不分虛實概以世俗所用之藥世俗所用之方雜進亂投以致邪氣由表入里變成或痢或閉或陷之病而不一悟深可哀也即如屢承明示亦不過博採群書所載夏秋各症為言並未專指癉瘧一症究竟如何治法方為的確以使無學人頓開茅塞也鄙見如此特請大才斧政如以為不然還祈指示何處未是何處不從理上說來何妨絀加駁斥使之佩服眼見之多胸中之亮為囑竚望竚望按素問瘧論帝曰癉瘧何如岐伯曰癉瘧者肺素有熱氣盛於身厥逆上衝中氣實而不外泄因有所用力腠理開風寒舍於皮膚之內分肉之間而發發則陽氣盛陽氣盛而不衰則病矣其氣不及於陰故但熱而不寒
《금궤》 단학 조문의 음기고절·양기독발은 중경이 병원을 밝힌 두 구절입니다. 음양이 짝하지 않음을 고, 오가며 통하지 않음을 절이라 하니 음기가 고절하여 양기만 발하며 비가 위를 위해 진액을 운행하지 못해 병이 됩니다. 이렇게 풀지 않는다면 중경의 원문 한 글자도 소홀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내경》의 ‘음기가 먼저 상한다’를 특별히 고절로 바꾼 뜻은 매우 무겁습니다. 자세히 생각하면 사람이 음기가 고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정미한 뜻은 지금까지 말한 이가 없어 중경의 책을 읽고도 읽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책의 뜻이 밝지 않으면 병을 어떻게 알고, 병을 모르면 어떻게 치료하겠습니까? 임증이 많다고 자랑만 해도 무익합니다. 의도는 행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비가 서습에 막혀 위를 위해 진액을 운행하지 못하는 병임을 알면 병이 비의 서습에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비의 서습을 어디로 내보내겠습니까? 먼저 폐위로 들어와 비에 이르렀으니 다시 비에서 폐위에 이르게 하는 것이 정치입니다. 의사도 폐위로 사기를 도달시킬 줄은 알지만 무한단학에 우방·박하·전호·길경만 쓰면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처방에 후박·빈랑·초사·신곡·지실 등을 섞으며 이것 없이는 만민을 풀고 적체를 없앨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약은 따뜻하고 건조하여 기를 소모하므로 서습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폐위약을 견제하여 힘을 내지 못하게 할까 두렵습니다. 여러 번 많이 먹이면 원기와 진액을 더 상하여 사기는 나가지 않았는데 정기가 먼저 상하고 그로 인해 사기가 쉽게 리로 들어가니 그르침을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가슴의 오뇌와 번만은 적이 제거되어야 사기가 풀린다고 여기지만 사기가 풀리면 번만도 저절로 없어짐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병을 치료할 때 반드시 근본을 구해야 합니다. 옛사람이 서습에 육일·오령·사령 등의 산을 만든 것은 서 속의 습은 스며 배출하고 통하게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백호가계지탕의 제방 뜻을 모르는 후인은 이미 백호로 열사를 치료하면서 왜 신온한 계지를 넣는지 풀지 못하여 고심하다가 반드시 등만 오한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를 신묘한 깨달음처럼 여겨 한 사람이 말하면 백 사람이 따라 실제에 맞는 곳이라 자랑합니다. 그러나 중경이 백호탕에 계지를 더한 깊은 뜻을 모릅니다. 습학의 습열이 중궁에 쌓여 막힌 데 백호를 주면 거부할까 염려하여 따뜻한 계지를 석고의 반좌로 삼고, 매운맛으로 석고의 신산을 도우며 영에 들어가 땀내고 양명의 열사를 태양의 표와 리로 나오게 하여 온학의 길잡이로 삼은 것입니다. 반드시 등만 오한하기를 기다렸다가 백호가계지탕을 쓰면 온학인데 등이 오한하지 않는 경우 이 처방을 못 써 기회를 놓치고 그르침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 상서의 증은 많으나 단학은 그중 가장 무겁고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역대로 명의가 많았지만 단학만은 소략하여 후인이 지침을 얻지 못하고 사승 구전의 표리쌍해만 지킵니다. 경락·영위·허실을 가리지 않고 세속의 약과 처방을 마구 섞어 투여하여 사기가 표에서 리로 들어가 이질·폐·함 등의 병으로 변해도 깨닫지 못하니 깊이 슬픕니다. 여러 번 가르침을 주셨으나 여러 책에 실린 여름가을의 증을 널리 취해 말씀하셨을 뿐 단학 한 증의 적확한 치료법을 전적으로 가리켜 무학한 사람의 막힘을 열어 주신 것은 아닙니다. 제 견해가 이러하니 큰 재주로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고 여기시면 어디가 옳지 않고 어디가 이치에서 나오지 않았는지 지적하고 물리쳐 반박해 주셔도 좋습니다. 많이 보신 눈과 밝은 가슴에 탄복하게 해 주시기를 거듭 기다립니다. 《소문》 학론을 살피면 황제가 “단학은 어떠한가?”라고 묻자 기백이 말하였다. “단학은 폐에 본래 열이 있어 기가 몸에 성하고 궐역하여 위로 치밀며 중기가 실하여 밖으로 새지 않는다. 힘을 쓰는 일이 있어 주리가 열리고 풍한이 피부 안과 분육 사이에 머물러 발한다. 발하면 양기가 성하고 성한 양기가 쇠하지 않으면 병이 된다. 그 기가 음에 미치지 않으므로 열만 있고 추위가 없다.”
張介賓注云肺素有熱者陽盛氣實之人也故邪中於外亦但在陽分而不及於陰則但熱不寒也
장개빈의 주에서 “폐에 본래 열이 있다는 것은 양이 성하고 기가 실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사기가 밖에서 맞혀도 양분에만 있고 음에는 미치지 않아 열만 있고 추위가 없다”고 하였다.
又接邪氣內藏於心而外舍於分肉之間令人消爍脫肉故命曰癉瘧帝曰善注云氣藏於心陽之藏也熱在肌肉之間故令人消爍然則癉瘧之所舍者在肺心兩經耳
또 이어 “사기가 안으로 심에 감추어지고 밖으로 분육 사이에 머물러 사람의 살을 소모시키고 빠지게 하므로 단학이라 이름한다”고 하자 황제가 좋다고 하였다. 주에서 “기가 감추어진 심은 양의 장이다. 열이 근육 사이에 있어 살을 소모시키니 단학이 머무는 곳은 폐와 심 두 경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其但熱而不寒在陰氣先絕陽氣獨發則少氣煩冤手足熱而欲嘔名曰癉瘧注云癉熱他陽邪獨亢故但熱不寒而煩冤少氣表裡俱病放手足熱而欲嘔以熱邪及於胃也
열만 있고 추위가 없는 것은 음기가 먼저 끊어지고 양기만 발하기 때문이다. 기가 적고 번원하며 손발에 열이 나고 토하려 하니 단학이라 이름한다. 주에서 “단은 열이다. 양사가 홀로 항성하므로 열만 있고 추위가 없으며 번원하고 기가 적다. 표리가 모두 병들었으므로 손발에 열이 나고 토하려 하는데 열사가 위에 미쳤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愚按此內經專言癉瘧之病原也首條所云肺素有熱以風寒舍於皮膚之內分肉之間而發等文即世俗所謂新涼引動伏熱先宜解表
내가 살피건대 이는 《내경》이 단학의 병원을 전적으로 말한 것이다. 첫 조문의 폐에 본래 열이 있고 풍한이 피부 안과 분육 사이에 머물러 발한다는 말은 세속에서 이르는 새 서늘함이 복열을 끌어 움직이는 것으로 먼저 해표해야 한다.
儀翁先生所云無汗之癉瘧宜仿大青龍湯重用石膏反佐麻桂內清肺熱而外散風寒深與經旨相合再接第二條邪氣內藏於心而外舍於分肉之間即儀翁先生所引白虎加桂枝症也肺主氣白虎專清氣分之邪熱桂枝能入心營引領白虎入營清熱外解分肉之邪論理甚合似乎不必有骨節煩疼背獨惡寒之見症然醫者之用古方必憑症憑脈更合之以病情而後用之若但任意測度病情舍症舍脈而曰某病在某經必用某藥吾恐論理雖是而用藥則非矣
의옹 선생이 말한 무한단학에 대청룡탕을 본떠 석고를 무겁게 쓰고 마황·계지를 반좌로 삼아 안으로 폐열을 맑히고 밖으로 풍한을 흩는 것은 경의 뜻과 깊이 맞는다. 이어 둘째 조문의 사기가 안으로 심에 감추어지고 밖으로 분육 사이에 머문다는 것은 의옹 선생이 인용한 백호가계지증이다. 폐는 기를 주관하고 백호는 기분의 사열을 맑히며 계지는 심영에 들어가 백호를 영으로 이끌어 청열하고 밖으로 분육의 사기를 풀어 준다. 논리가 매우 맞으니 반드시 골절번통이나 등만 오한하는 증이 있어야 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의사가 고방을 쓸 때에는 반드시 증과 맥에 근거하고 병정과도 맞춘 뒤에 써야 한다. 병정을 마음대로 추측하여 증과 맥을 버리고 어느 병은 어느 경에 있으니 반드시 어느 약을 써야 한다고 한다면 논리는 옳아도 약은 잘못 쓸까 염려된다.
附薛生白先生論溫瘧癉瘧辨白虎加桂枝之不合薛生白曰溫瘧癉瘧金匱云但熱不寒以桂枝白虎湯主治程云來解云用桂枝於白虎湯中引白虎之辛涼而出入營衛制其陽邪之亢害此論理之當然究屬紙上空談余屢用不應則知是方不中病情投之不見其撤熱之功反見其營熱煩躁之害細推其理瘧為久伏之邪非一劑二劑可愈之症石膏徒足以郁邪桂枝反熱其營故不中病情也余制一方治溫瘧癉瘧頗效今載是編告之後人
설생백 선생이 온학·단학을 논하며 백호가계지가 맞지 않음을 가린 글을 붙인다. 설생백은 말하였다. “온학·단학에 대하여 《금궤》는 열만 있고 추위가 없는 것을 계지백호탕으로 주치한다고 하였다. 정운래는 백호탕에 계지를 써 백호의 신량을 이끌어 영위로 출입하게 하고 양사의 지나친 해를 제어한다고 풀이하였다. 논리상 마땅하지만 결국 종이 위의 빈말이다. 내가 여러 번 써도 반응하지 않아 병정에 맞지 않음을 알았다. 투여하면 열을 거두는 공은 보지 못하고 도리어 영열과 번조의 해를 본다. 이치를 자세히 미루면 학은 오래 잠복한 사기로 한두 제에 나을 증이 아니며, 석고는 사기를 울체시킬 뿐이고 계지는 도리어 영을 덥히므로 병정에 맞지 않는다. 내가 한 처방을 만들어 온학·단학에 제법 효과가 있었으므로 이 책에 실어 후인에게 알린다.”
尊見以為陰氧孤絕是手太陰肺經之陰氣孤絕並非足太陰脾經之陰氣孤絕但內經云陰氣先絕而仲師特易以陰氣孤絕自有深義若如此說則孤字無著落矣孤字無著落則獨字亦無著落矣且肺之陰氣孤絕是竟為盡絕之絕若肺之陰氣盡絕尚得為之人耶前所言足太陰脾經之陰氣孤絕是脾中為濕熱所阻不與胃相配乃隔絕之絕也且此病之邪若未及太陰脾經何以熱勢起伏每日如是乎常見治不得法每致邪易入里而成滯下此症既與脾無涉則滯下亦與脾無涉乎此真所謂任意測度矣脾主四肢手足熱者即邪熱蘊脾之見症也至於白虎加桂枝湯乃仲師所制之方其義非尋常所能測識仲師為醫中之聖如薛生白不過近時之名家耳若以仲師之方為不足法而以薛氏之說為大可師是子貢賢於仲尼矣癉瘧既為熱邪是暑病無疑矣若云無濕則暑必夾濕之謂何不過濕有輕重也舌苔之黃膩即是濕熱之見症若夏月之症壯熱無汗口渴煩躁脈象洪數邪勢起伏有常而不為之癉瘧將如何之病而為之真正癉瘧乎考之內經金匱溫瘧與癉瘧大有不同癉瘧乃夏月傷暑之症溫瘧自傷寒中來化火而成熱症因骨節疼煩故用白虎加桂枝湯而薛生白以清瘧飲統治二症稱為頗效有識者似未敢深信葉氏云青蒿減柴胡一等自有此說醫家凡病中須用柴胡者則以青蒿代之多所貽誤蓋柴胡入氣分青蒿入營分柴胡主升青蒿主降大有分別也不過柴胡青蒿具屬少陽經藥耳若邪入營分而寒熱往來自用青蒿以清泄膽經之熱為宜若瘧邪初起尚在氣分早用青蒿有引邪入營反致淹纏之慮醫者亦不可不知愚見如此
존견은 음기고절이 수태음폐경의 음기고절이지 족태음비경의 음기고절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내경》의 음기선절을 중경이 특별히 음기고절로 바꾼 데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고 자가 붙을 곳이 없고 고 자가 붙을 곳이 없으면 독 자도 붙을 곳이 없습니다. 또 폐의 음기고절을 완전히 끊어짐으로 본다면 폐의 음기가 다 끊어진 뒤에도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앞서 말한 족태음비경의 음기고절은 비가 습열에 막혀 위와 짝하지 못하는 것으로 절은 격절입니다. 이 병의 사기가 아직 태음비경에 미치지 않았다면 왜 열세가 날마다 같은 때 오르내립니까? 치료가 잘못되면 사기가 쉽게 리로 들어가 체하가 되는 것을 흔히 보는데 이 증이 비와 관계없다면 체하도 비와 관계없습니까? 이것이 참으로 마음대로 추측하는 것입니다. 비가 사지를 주관하므로 손발의 열은 사열이 비에 쌓인 증입니다. 백호가계지탕은 중경이 만든 처방으로 뜻을 보통 식견으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중경은 의학의 성인이고 설생백은 근래 명가일 뿐인데 중경의 처방은 본받기 부족하고 설씨의 말은 크게 스승 삼을 만하다 한다면 자공이 중니보다 어진 셈입니다. 단학이 열사라면 서병임은 의심없습니다. 습이 없다면 서는 반드시 습을 낀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습에 경중이 있을 뿐이며 누렇고 끈끈한 설태가 곧 습열의 증입니다. 여름에 장열·무한·구갈·번조·홍삭맥이 있고 사세가 일정하게 오르내리는 것을 단학이라 하지 않으면 어떤 병을 참된 단학이라 하겠습니까? 《내경》·《금궤》를 살피면 온학과 단학은 크게 다릅니다. 단학은 여름 상서증이고 온학은 상한에서 와 화로 바뀐 열증으로 골절번통 때문에 백호가계지탕을 씁니다. 그런데 설생백이 청학음으로 두 증을 통틀어 치료하여 효과가 있다 한 것은 식견 있는 이라면 깊이 믿기 어려울 듯합니다. 섭씨는 청호가 시호보다 한 등 낮다고 하였는데 나름의 뜻이 있습니다. 의사들이 시호를 써야 할 병에 청호로 대신하여 그르침이 많습니다. 시호는 기분, 청호는 영분에 들어가며 시호는 상승, 청호는 하강을 주관하여 크게 다르고 둘이 모두 소양경약일 뿐입니다. 사기가 영분에 들어가 한열이 오가면 청호로 담경의 열을 맑혀 내리는 것이 마땅하지만 학사가 처음 기분에 있을 때 일찍 청호를 쓰면 사기를 영으로 이끌어 도리어 오래 얽히게 할까 염려되니 의사도 알아야 합니다. 제 견해는 이러하니
還請高明斧政為荷
고명한 분께서 다시 바로잡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七月中若能於無病時將此葛升湯原方分半月內預服三劑則暑邪表散秋後不致愚癉瘧瘧疾並無伏邪矣已試過幾人
칠월 중 병이 없을 때 이 갈승탕 원방을 보름 동안 나누어 미리 세 제 먹으면 서사가 표로 흩어져 가을 뒤 단학·학질을 앓지 않고 복사도 없게 된다. 이미 몇 사람에게 시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