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人有言 : 病臥於床 , 委之庸醫 , 比於不慈不孝 。 是以為人父子者 , 不可以不知醫 。 雖然 , 醫豈易知乎哉 ! 知其淺而不知其深 , 猶未知也 ; 知其偏而不知其全 , 猶未知也 。 以卑鄙管窺之見 , 而自稱神良 , 其差誤殆有甚焉 。 予少多病 , 每遘疾則纏綿難愈 。 因爾酷嗜醫學 , 潛心玩索者有年 , 而四方求治者日益繁 , 四方從遊者日益眾 。 然此衷常慄慄危懼 , 凡書理有未貫徹者 , 則晝夜追思 ; 恍然有悟 , 即援筆而識之 。 歷今三十載 , 殊覺此道精微 。 思貴專一 , 不容淺嘗者問津 ; 學貴沉潛 , 不容浮躁者涉獵 。 蓋以上奉君親 , 中及僚友 , 下逮卑幼 , 性命攸關 。 其操術不可不工 , 其處心不可不慈 , 其讀書明理 , 不至於豁然大悟不止 。 爰作是書 , 以教吾徒 , 而名之曰 《 醫學心悟 》。 蓋警之也 。 然心悟者 , 上達之機 ; 言傳者 , 下學之要 。 二三子讀是書 , 而更加博覽群言 , 沉思力索 , 以造詣於精微之域 , 則心如明鏡 , 筆發春花 , 於以拯救蒼生 , 而藥無虛發 , 方必有功 。 仰體天帝好生之心 , 修證菩提普救之念 , 俾閭閻昌熾 , 比戶安和 , 永杜夭札之傷 , 咸登仁壽之域 。 豈非業醫者所深快乎 ! 況為父者 , 知此可以言慈 ; 為子者 , 知此可以言孝 。 以之保身而裕如 , 以之利人而各足 , 存之心則為仁術 , 見之事則為慈祥 , 尤吾道中所當景慕也 。 二三子識之 , 予日望之 。
옛사람은 “병으로 자리에 누웠을 때 용렬한 의사에게 맡기는 것은 자애롭지 못하고 효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남의 아버지나 자식이 된 사람은 의술을 알지 않을 수 없다. 그렇기는 하나 의술을 어찌 쉽게 알 수 있겠는가! 얕은 것만 알고 깊은 것을 알지 못하면 여전히 모르는 것이며, 치우친 면만 알고 전체를 알지 못해도 여전히 모르는 것이다. 얕고 좁은 관견을 가지고 스스로 신통한 명의라고 일컫는다면 그 착오가 자못 심할 것이다.
나는 어려서 병이 많았고, 병이 들 때마다 오래 끌어 낫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의학을 몹시 좋아하여 마음을 깊이 기울여 탐구한 지 여러 해가 되었고, 사방에서 치료를 구하는 사람은 날로 많아졌으며 사방에서 찾아와 배우는 이도 날로 늘어났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늘 떨리고 두려웠다. 책의 이치에 아직 꿰뚫지 못한 것이 있으면 밤낮으로 생각하고, 문득 깨달은 것이 있으면 곧 붓을 들어 적었다. 지금까지 삼십 년을 지내면서 이 도리가 참으로 정미함을 깨달았다. 사색은 오로지 한결같음을 귀하게 여기므로 조금 맛보기만 하는 사람은 들어설 수 없고, 학문은 깊이 잠겨 탐구함을 귀하게 여기므로 경솔하고 조급한 사람은 두루 살필 수 없다. 위로는 임금과 어버이를 받들고, 가운데로는 동료와 벗에게 미치며, 아래로는 낮은 이와 어린 이에게 이르니, 생명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 의술은 정교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음씀은 자애롭지 않을 수 없으며, 책을 읽고 이치를 밝히는 것은 환하게 크게 깨닫는 데 이르기 전에는 그쳐서는 안 된다.
이에 이 책을 지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름을 『의학심오』라고 하였으니, 경계하는 뜻이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닫는 것은 높은 이치에 도달하는 계기이고, 말로 전하는 것은 아래에서 배우는 요체이다. 그대들이 이 책을 읽고 더욱 여러 학설을 널리 살피며 깊이 생각하고 힘써 탐구하여 정미한 경지에 이른다면,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고 붓끝에서는 봄꽃이 피어날 것이다. 이를 통해 백성을 구제하면 약을 헛되이 쓰는 일이 없고 처방은 반드시 공을 거둘 것이다. 우러러 천제의 살리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본받고, 보리의 널리 구제하는 뜻을 닦아 증득하여, 마을이 번성하고 집집마다 편안하고 화목하게 하며, 요절과 역병의 해를 영원히 막고 모두 인덕과 장수의 경지에 오르게 한다면, 어찌 의술에 종사하는 사람이 깊이 기뻐할 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아버지 된 사람이 이를 알면 자애롭다고 할 수 있고, 자식 된 사람이 이를 알면 효도한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몸을 보전하면 넉넉하고, 이로써 남을 이롭게 하면 저마다 충족하게 된다. 마음에 간직하면 인술이 되고 일에 나타내면 자애와 상서로움이 되니, 더욱이 우리 도에서 마땅히 우러러 사모할 바이다. 그대들은 이를 기억하라. 나는 날마다 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