養老論 人生至六十七十以後 , 精血俱耗 , 平居無事 , 已有熱症 , 何者 ? 頭昏目眵 , 肌癢溺數 , 鼻涕牙落 , 涎多寐少 , 足弱耳聵 , 健忘眩運 , 腸燥面垢 , 發脫眼花 , 坐久兀睡 , 未風先寒 , 食則易飢 , 笑則有淚 , 但是老境 , 無不有此 。 或曰 《 局方 》 烏附丹劑 , 多與老人為宜 , 豈非以老年氣弱下虛 , 理宜溫補 。 今吾子皆以為熱 , 烏附丹不可施之老人 , 何耶 ? 予曉之曰 : 奚止烏附丹劑不可妄用 , 至於好酒膩肉 , 濕面肉汁 , 燒炙煨炒之類 , 辛辣甜滑 , 皆在所忌者 。 或又曰 : 甘旨養老 , 經訓具在 , 為子與婦 , 甘旨不及 , 孝道便虧 , 而吾子之言若是 , 其將有說以通之乎 ? 願聞其略 。 予愀然應之曰 : 正所謂道並行而不相悖者 。 請詳言之 。 古者井田之法行 , 鄉閭之教具 , 人知禮讓 , 比屋可封 , 肉食不及幼壯 , 五十方才食肉 , 當時之人 , 血氣衝和 , 筋骨堅凝 , 腸胃清厚 , 甘旨養老 , 何由致病 。 今則不然 , 幼小食肉 , 強壯恣饕 , 比及五十 , 疾已蜂起 , 氣耗血竭 , 筋柔骨痿 , 腸胃壅閼 , 涎沫充溢 。 而況人身之陰 , 難成易虧 , 六七十後 , 陰不足以配陽 , 孤陽幾欲飛越 , 因天生胃氣 , 尚爾留連 , 又藉水穀之陰羈縻而不走耳 。 所陳前證 , 皆是血少 。《 內經 》 曰 : 腎惡燥 。 烏附丹劑非燥而何 ? 夫血少之人 , 若防風 、 半夏 、 蒼朮 , 但是燥劑 , 且不敢多 , 況烏附丹劑乎 ! 或者又曰 : 一部 《 局方 》, 悉是溫熱養陽 , 吾子之言 , 無乃繆妄乎 ? 予曰 :《 局方 》 用燥劑 , 為劫濕病也 , 濕得燥則豁然而收 。《 局方 》 用暖劑 , 為劫虛病也 , 補脾不補腎 , 脾得暖則易化而食進 , 下雖暫虛 , 亦可少回 。《 內經 》 治法 , 亦許用劫 , 正是此意 。 蓋為質厚而病淺者說 , 此亦儒者用權之意 。 若以為經常之法 , 豈不大誤 。 彼老年之人 , 質雖厚 , 此時亦近乎薄 , 病雖淺 , 其本亦易以撥 , 而可用劫藥以取速效乎 ? 若夫形肥者血多 , 形瘦者血實 , 間或有可用劫藥者 , 設或失手 , 何以收救 。 吾寧稍遲 , 計出萬全 , 豈不美乎 ! 烏附丹劑 , 其不可輕餌也明矣 。 至於飲食尤當謹節 。 夫老人內虛脾弱 , 陰虧性急 , 內虛胃熱 , 則易飢而思食 。 脾弱難化 , 則食已而再飽 。 陰虧難降 , 則氣鬱而成痰 。 至於視聽言動 , 皆成廢懶 , 百不如意 , 怒火易熾 。 雖有孝子順孫 , 亦是動輒扼腕 , 況未必孝順乎 。 所以物性之熱者 , 炭火製作者 , 氣之香辣者 , 味之甘膩者 , 皆不可食也明矣 。 雖然 , 腸胃堅厚 , 福氣深壯者 , 世俗觀之 , 何妨奉養 。 縱口固快一時 , 積久必為災害 。 由是觀之 , 多不如少 , 少不如絕 , 爽口作疾 , 厚味臘毒 , 古人格言 , 猶在人耳 , 可不慎歟 。 或曰 : 如子之言 , 殆將絕而不與 , 於汝安乎 ? 予曰 : 君子愛人以德 , 小人愛人以姑息 , 況施於所尊者哉 。 惟飲與食 , 將以養生 , 不以致疾 。 若以所養轉為所害 , 恐非君子之所謂孝與敬也 。 然則如之何則可 ? 曰 : 好生惡死 , 好安惡病 , 人之常情 。 為子與孫 , 必先開之以義理 , 曉之以物性 , 旁譬曲喻 , 陳說利害 , 意誠辭確 , 一切以敬順行之 , 又須以身先之 , 必將有所感悟 , 而自無捍格之逆矣 。 若子所謂絕而不與 , 施於有病之時 , 尤是孝道 。 若無病之時 , 量酌可否 , 以時而進 , 某物不食 , 以某物代之 , 何傷於孝敬乎 。 若夫平居閒話 , 素無開導誘掖之言 , 及至飢腸已嗚 , 饞涎已動 , 飲食在前 , 馨香撲鼻 , 其可禁乎 。 經曰 : 以飲食忠養之 。 忠之一字 , 恐與此意合 , 請勿輕易看過 。 予事老母 , 固有愧於古者 , 然母年逾七旬 , 素多痰飲 , 至此不作 。 節養有道 , 自謂有術 , 只因大便燥結 , 時以新牛乳豬脂和糜粥中進之 , 雖得暫時滑利 , 終是膩物積多 , 次年夏時 , 郁為黏痰 , 發為脅瘡 , 連月苦楚 , 為人子者 , 置身無地 , 因此苦思而得節養之說 , 時以小菜和肉煮進之 , 且不敢多 , 又間與參 、 術補胃生血之藥加減 , 遂得大腑不燥 , 面色瑩潔 , 雖瘦弱終是無病 , 老境得健 , 職此之由也 。 因成一方 , 用參 、 術為君 , 牛膝 、 芍藥為臣 , 陳皮 、 茯苓為佐 , 春加川芎 , 夏加五味 、 黃芩 、 麥冬 , 冬加當歸身 , 倍生薑 。 一日或一帖 , 或二帖 , 候其小水才覺短少 , 便進此藥 , 小水之長如舊 , 即是卻病捷法 , 直到八十有七 , 一旦無病而死 , 顏貌如生 。 後到東陽 , 因聞老何安人 , 性聰敏 , 七十以後 , 稍覺不快 , 便卻粥數日 , 單服人參湯數帖而止 , 後九十餘無疾而卒 , 以其偶同 , 故筆之 , 以求是正 。
노인을 봉양한다는 논설. 사람은 예순이나 일흔이 넘으면 정과 혈이 모두 소모되어 평소 아무 일이 없어도 이미 열증이 있다. 어떤 것인가? 머리가 어지럽고 눈곱이 끼며, 살갗이 가렵고 소변이 잦으며, 콧물이 흐르고 이가 빠지며, 침이 많고 잠이 적으며, 발이 약하고 귀가 먹으며, 잘 잊고 현훈이 있으며, 장이 마르고 얼굴에 때가 끼며,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앞이 아른거리며, 오래 앉아 있으면 꾸벅꾸벅 졸고, 바람이 불기 전부터 추워하며, 먹어도 쉽게 배고프고, 웃으면 눈물이 나는 것들이다. 노경에 이르면 이런 것이 없는 사람이 없다.
어떤 이가 말하였다. “《국방》의 오부 단제는 대부분 노인에게 알맞다고 하였으니, 노인은 기가 약하고 아래가 허하여 이치상 온보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그대는 모두 열이라고 하며 오부단을 노인에게 쓸 수 없다고 하니 어째서입니까?” 내가 깨우쳐 말하였다. “어찌 오부 단제만 함부로 써서는 안 되겠는가? 좋은 술과 기름진 고기, 습면과 고기 국물, 태우고 굽고 잿불에 익히고 볶은 것에 이르기까지 맵고 달고 미끄러운 것은 모두 꺼려야 한다.” 어떤 이가 다시 말하였다. “달고 맛있는 음식으로 노인을 봉양한다는 가르침은 경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자식과 며느리가 되어 달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지 못하면 효도가 곧 이지러집니다. 그런데 그대의 말이 이와 같으니, 그 뜻을 통하게 할 설명이 있겠습니까? 그 대강을 듣고 싶습니다.” 내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답하였다. “바로 도가 함께 행해져도 서로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세히 말하겠다.
옛날에는 정전의 법이 행해지고 향리의 가르침이 갖추어져 사람들이 예의와 사양을 알아 집집마다 봉작을 줄 만하였다. 고기 먹는 일이 어린이와 장년에게 미치지 않아 쉰 살이 되어야 비로소 고기를 먹었다. 당시 사람들은 혈기가 조화롭고 근골이 굳고 단단하며 장위가 맑고 두터웠으니, 달고 맛있는 음식으로 노인을 봉양한들 무엇 때문에 병이 생겼겠는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려서 고기를 먹고 장년에는 탐식을 멋대로 하다가 쉰 살에 이르면 질병이 벌떼처럼 일어나고 기가 소모되고 혈이 고갈되며 근이 연약하고 뼈가 위약해지고 장위가 막히며 침과 거품이 가득 넘친다. 더구나 사람 몸의 음은 이루어지기 어렵고 손상되기 쉬워 예순이나 일흔 뒤에는 음이 양과 짝하기에 부족하므로 홀로 남은 양이 거의 날아올라 벗어나려 한다. 타고난 위기로 인하여 아직 머물고 있으며, 또 수곡의 음이 붙들어 매어 달아나지 않을 뿐이다. 앞서 열거한 증상은 모두 혈이 적은 것이다. 《내경》에서 ‘신은 건조함을 싫어한다.’라고 하였는데, 오부 단제가 건조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혈이 적은 사람에게는 방풍·반하·창출 같은 조제도 감히 많이 쓰지 못하는데, 하물며 오부 단제이겠는가!”
어떤 이가 또 말하였다. “《국방》 한 부는 모두 온열한 것으로 양을 기르는 것인데, 그대의 말은 그릇되고 망령된 것이 아닙니까?” 내가 말하였다. “《국방》에서 조제를 쓰는 것은 습병을 급히 몰아내기 위한 것이다. 습이 건조한 것을 만나면 확연히 걷힌다. 《국방》에서 따뜻한 약을 쓰는 것은 허병을 급히 다스리기 위한 것이다. 비를 보하고 신을 보하지 않으니, 비가 따뜻한 것을 얻으면 쉽게 소화하여 음식을 먹게 되고 아래가 잠시 허하더라도 조금 회복할 수 있다. 《내경》의 치료법에서도 급히 몰아내는 방법을 허용하였으니 바로 이 뜻이다. 대개 바탕이 두텁고 병이 얕은 사람을 두고 한 말이며, 이는 또한 유가에서 권도를 쓰는 뜻이다. 이를 늘 쓰는 법으로 삼는다면 어찌 크게 그르치지 않겠는가? 저 노인은 바탕이 두텁더라도 이때에는 이미 엷은 데 가까우며, 병이 얕더라도 그 근본은 쉽게 뽑힐 수 있는데, 급히 몰아내는 약으로 빠른 효과를 구할 수 있겠는가? 형체가 살찐 사람은 혈이 많고 형체가 마른 사람은 혈이 실하여 간혹 그런 약을 쓸 수 있는 이도 있지만, 만일 손을 잘못 쓰면 무엇으로 수습하여 구하겠는가? 나는 차라리 조금 더디더라도 만전을 기하겠으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오부 단제를 가볍게 먹어서는 안 됨이 분명하다.
음식은 더욱 삼가고 절제해야 한다. 노인은 안이 허하고 비가 약하며 음이 부족하고 성질이 급하다. 안이 허하고 위가 뜨거우면 쉽게 배고파 먹고 싶어 한다. 비가 약하여 소화하기 어려우면 먹은 뒤에 다시 배가 그득하다. 음이 부족하여 내려가기 어려우면 기가 울체되어 담이 된다. 보고 듣고 말하고 움직이는 일까지 모두 못 하거나 게을러져 온갖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므로 노화가 쉽게 치성해진다. 효성스러운 자식과 순한 손자가 있더라도 걸핏하면 팔목을 움켜쥐며 분해하는데, 하물며 반드시 효순하지도 않은 경우이겠는가? 그러므로 물성이 뜨거운 것, 숯불로 만든 것, 기가 향기롭고 매운 것, 맛이 달고 기름진 것은 모두 먹어서는 안 됨이 분명하다. 비록 장위가 굳고 두터우며 복기가 깊고 튼튼한 사람이 있어 세속에서 보기에 봉양하는 데 무엇이 해롭겠느냐고 하더라도, 입맛을 멋대로 하면 한때는 시원하겠지만 오래 쌓이면 반드시 재앙과 해가 된다. 이로써 보면 많은 것은 적은 것만 못하고 적은 것은 끊는 것만 못하다. 입을 상쾌하게 하는 것이 병을 만들고 진한 맛이 심한 독이 된다는 옛사람의 격언이 아직 사람들의 귀에 있는데,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떤 이가 말하였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거의 끊고 주지 않으려는 것이니, 그대는 마음이 편안합니까?” 내가 말하였다. “군자는 덕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소인은 고식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데, 하물며 존경하는 분에게 행하는 일이겠는가? 마시고 먹는 것은 생명을 기르기 위한 것이지 질병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기르려는 것이 도리어 해가 된다면 군자가 말하는 효와 공경이 아닐 듯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하였다. “살기를 좋아하고 죽기를 싫어하며, 편안함을 좋아하고 병을 싫어하는 것은 사람의 상정이다. 자식과 손자는 반드시 먼저 의리로 마음을 열어 드리고 물성으로 깨우쳐 드리며 여러 방면으로 비유하고 뜻을 풀어 이로움과 해로움을 말해야 한다. 뜻은 성실하고 말은 확실하게 하며, 모든 일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태도로 행하고 또 반드시 자신이 먼저 실천해야 한다. 그러면 반드시 느끼고 깨닫는 바가 생겨 저절로 막고 거스르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대가 말한 끊고 주지 않는 일을 병이 있을 때 행한다면 더욱 효도이다. 병이 없을 때에는 가부를 헤아려 때에 맞추어 올리고, 어떤 것을 먹지 않으면 다른 것으로 대신하니 효와 공경에 무슨 손상이 있겠는가? 평소 한가로이 이야기하면서 일찍이 깨우치고 이끌어 주는 말이 없다가, 배고파 창자가 이미 울리고 군침이 이미 돌며 음식이 눈앞에 있고 향기가 코를 찌를 때에 이르러서야 금할 수 있겠는가? 경에서 ‘음식으로 충실히 봉양한다.’라고 하였다. 충이라는 한 글자는 이 뜻과 부합하는 듯하니 가볍게 보아 넘기지 말기 바란다.
나는 늙은 어머니를 섬김에 참으로 옛사람에게 부끄러움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칠십이 넘었고 평소 담음이 많았는데 이때에는 발작하지 않았다. 절제하여 기르는 데 도리가 있어 스스로 방법이 있다고 여겼다. 다만 대변이 마르고 맺혀 때때로 신선한 우유와 돼지기름을 미죽에 섞어 올렸다. 잠시 매끄럽게 통하게는 되었으나 결국 기름진 것이 많이 쌓여 이듬해 여름에는 울체되어 끈끈한 담이 되고 옆구리의 종기로 나타나 여러 달 동안 괴로워하셨다. 자식 된 사람으로서 몸 둘 곳이 없었다. 이 때문에 고심하여 절제하여 기른다는 설을 얻었다. 때때로 나물과 고기를 함께 삶아 올리되 감히 많이 드리지 않았고, 또 간간이 삼·출로 위를 보하고 혈을 생기게 하는 약을 가감하여 드렸다. 마침내 대부가 마르지 않고 얼굴빛이 맑고 깨끗해져 비록 여위고 약해도 끝내 병이 없었으니, 노경에 건강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한 처방을 이루었으니 삼·출을 군으로, 우슬·작약을 신으로, 진피·복령을 좌로 삼았다. 봄에는 천궁을 더하고, 여름에는 오미·황금·맥동을 더하며, 겨울에는 당귀신을 더하고 생강을 배로 하였다. 하루에 한 첩 또는 두 첩을 쓰되 소변이 조금이라도 줄어드는 듯하면 곧 이 약을 드렸으며, 소변이 전처럼 길게 나오면 곧 병을 물리치는 빠른 방법이 되었다. 여든일곱에 이르기까지 그러하다가 하루아침에 병 없이 돌아가셨으며 얼굴 모습은 살아 계실 때와 같았다. 뒤에 동양에 갔을 때 늙은 하 안인에 대해 들었다. 성질이 총명하고 민첩하여 칠십 이후 조금이라도 불편한 느낌이 들면 곧 며칠 동안 죽을 물리치고 인삼탕만 몇 첩 먹고 그쳤으며, 뒤에 구십여 세에 질환 없이 돌아가셨다고 하였다. 우연히 같기에 이를 적어 옳고 그름을 바로잡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