玉臺新案
옥대의 새로운 의안
寒證醫案
한증 의안
發熱惡寒 , 頭疼身痛之暴證 , 人易辨之 。 惟久郁肺經而成喘嗽 , 有似陰虛勞嗽者 , 不可不辨 。 郡城西門外奚藕莊客幕於外 , 上年道途受熱 , 曾患喘嗽 , 服自便而愈 , 今復患喘嗽 , 投自便而加劇 , 醫亦概用清肺補肺 , 終不見效 。 自疑為陰虛重證 , 彷徨無措 , 遂延予診 。 余為脈象見緊 , 似數非數 , 前患暑熱 , 故自便可愈 。 今患寒邪 , 故反增劇 , 用小青龍湯而愈 。
갑자기 열이 나고 오한하며 머리가 아프고 몸이 쑤시는 증상은 사람들이 쉽게 구별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폐경에 울체하여 천수가 되어 음허의 노수와 비슷한 경우는 구별하지 않을 수 없다. 군성 서문 밖의 해우장은 외지의 막부에서 객으로 일하였는데, 지난해 길에서 열을 받아 천수를 앓다가 자편을 복용하여 나았다. 이번에 다시 천수를 앓아 자편을 투여하니 더 심해졌으며, 의원도 일률적으로 폐를 맑게 하고 보하는 약을 썼지만 끝내 효과가 없었다. 스스로 음허의 중증이라 의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나는 맥상이 긴하여 삭한 듯하지만 삭하지 않은 것을 보고, 앞에는 서열을 앓았으므로 자편으로 나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사를 앓으므로 도리어 심해진 것이라 여겼다. 소청룡탕을 써서 나았다.
魏湘舟郡城北門外猛將廟人 , 瘍醫也 , 患喘嗽二載 , 遍試醫人 , 總不出清肺補肺 , 自亦疑為陰虛勞證 。 予囑其常服乾薑 、 五味子 , 堅守一月 , 果得全效 。
위상주는 군성 북문 밖 맹장묘 사람으로 부스럼을 치료하는 의원이다. 천수를 앓은 지 2년 동안 여러 의원을 두루 시험하였지만 모두 폐를 맑게 하고 보하는 데서 벗어나지 않았으며, 스스로도 음허의 노증이라 의심하였다. 나는 건강·오미자를 늘 복용하며 한 달 동안 굳게 지키라고 당부하였고, 과연 완전한 효과를 얻었다.
郡廟道士徐兆奎久患三瘧 , 堅不服藥 , 二年方愈 。 愈後冬月又病傷寒 , 壯熱頭痛 , 醫疑冬溫 , 誤投辛涼之劑 , 即昏嘿不省人事 。 醫者以其昏嘿不省 , 以為熱邪內陷 , 束身告辭 。 其師楊承宗求治於予 , 予診其脈 , 虛軟無神 , 似數非數 , 亦為驚徨 , 但知其瘧後中氣素虧 , 復傷於寒 , 非冬溫也 。 即投溫中之劑 , 一劑稍蘇 , 二劑方醒 , 三劑乃安 。 粥飲日漸增加 , 但膈中似有冷塊 , 即於溫中劑內加附子三分 , 始得平復 , 調理一月而安 。
군묘의 도사 서조규는 오랫동안 삼학을 앓으면서 굳게 약을 먹지 않아 2년이 되어서야 나았다. 나은 뒤 겨울에 다시 상한을 앓아 열이 심하고 머리가 아팠다. 의원은 동온이라 의심하여 맵고 서늘한 약제를 잘못 투여하였고, 곧 정신이 흐려 말이 없으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의원은 정신이 흐리고 말이 없으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열사가 안으로 빠진 것이라 여기고 몸을 추슬러 작별하였다. 그의 스승 양승종이 나에게 치료를 구하였다. 내가 맥을 진찰하니 허하고 부드러우며 신이 없고, 삭한 듯하지만 삭하지 않아 나도 놀라고 당황하였다. 다만 학질 뒤에 중기가 본래 부족한데 다시 한에 상한 것이지 동온이 아님을 알았다. 곧 중초를 덥히는 약제를 투여하니 한 제에 조금 소생하고 두 제에 비로소 깨어났으며 세 제에 편안해졌다. 죽을 먹는 양이 날마다 점차 늘었지만 흉격에 찬 덩이가 있는 듯하였다. 이에 온중제 안에 부자 3푼을 더하자 비로소 평복되었고, 한 달 동안 조리하여 편안해졌다.
徽人夏履成年六十有餘 , 素日無疾 , 忽於三更時候 , 氣喘痰升 , 昏昏嘿嘿 , 不能自言所苦 。 余系寓鄰 , 即來叩門索治 。 予即往診 , 見有出氣而無入氣 , 即投大劑腎氣湯 , 頃刻氣平而愈 。 此證若待來朝索治 , 必致不救 。
휘주 사람 하리성은 나이가 예순이 넘었고 평소 병이 없었다. 갑자기 삼경 무렵 숨이 차고 담이 올라와 정신이 흐리고 말이 없어 스스로 괴로운 것을 말하지 못하였다. 나는 이웃에 묵고 있었으므로 곧 와서 문을 두드리며 치료를 구하였다. 내가 바로 가서 진찰하니 내쉬는 숨은 있으나 들이쉬는 숨은 없어 곧 많은 양의 신기탕을 투여하니, 잠깐 사이에 호흡이 고르게 되어 나았다. 이 증상에서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치료를 구했다면 반드시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發斑醫案
발반 의안
發斑初用辛涼 , 繼用鹹寒 , 人人知之 。 而陰斑之證 , 最不可誤 。 南匯承役許龍之子 , 身熱發斑 , 有似火證 , 醫用犀角等化斑套劑 , 病勢轉危 , 不省人事 , 口中歌唱不休 , 有時譫語 。 余診其脈 , 浮越無倫 , 按之不實 , 舌絳而潤 , 並不燥渴 , 疑是陰證 。 細詢病因 , 其妻言未病時 , 大叫腳冷 , 其為陰證無疑 。 遂用姜附等藥冷服一劑 , 夜即安睡 。 但元陽喪敗之餘 , 神疲倦怠者半月 , 服歸脾湯二十餘劑而愈 。
반이 생기면 처음에는 맵고 서늘한 약을 쓰고 이어 짜고 찬 약을 쓰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음반증은 가장 잘못 치료해서는 안 된다. 남회에서 역무를 맡은 허룡의 아들이 몸에 열이 나고 반이 생겨 화증과 비슷하였다. 의원이 서각 등 화반의 상투적인 약제를 쓰자 병세가 위태로워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입으로 노래를 그치지 않으며 때로는 섬어하였다. 내가 맥을 진찰하니 떠서 넘치기가 비할 데 없고 누르면 실하지 않았으며, 혀는 짙게 붉지만 촉촉하고 마르거나 목마르지도 않아 음증이라 의심하였다. 병의 원인을 자세히 물으니 그의 아내가 병들기 전에 발이 차다고 크게 외쳤다고 하므로 음증임이 의심 없었다. 마침내 건강·부자 등의 약 한 제를 차게 복용하게 하니 밤에 곧 편안히 잤다. 다만 원양이 손상되고 무너진 뒤여서 정신이 피로하고 나른한 것이 보름 동안 지속되었으며, 귀비탕 스무여 제를 복용하고 나았다.
火證醫案
화증 의안
火證清之 , 此其常也 。 而有不得不急下者 , 最當堅決 。 得勝渡範某 , 初病即昏沉 , 醫用辛散 , 汗後不解 , 即驚徨推委 。 余曰 : 汗之不解 , 治須下之 。 前醫曰 : 下之利不止奈何 ? 余曰 : 右關沉實 , 攻下無虞 。 用大承氣合涼膈而愈 。
화증을 맑게 하는 것은 보통의 법이다. 그러나 급히 하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가장 단호해야 한다. 득승도의 범모는 병의 초기부터 정신이 흐렸는데, 의원이 맵게 흩는 약을 써서 땀을 내도 풀리지 않자 곧 놀라고 당황하여 책임을 미루었다. 나는 “땀을 내어도 풀리지 않으니 치료는 하법을 써야 한다.”라고 하였다. 앞의 의원이 “하법을 쓴 뒤 설사가 그치지 않으면 어찌하겠는가?”라고 하기에, 나는 “오른쪽 관맥이 침실하므로 공하해도 염려가 없다.”라고 하였다. 대승기탕에 양격산을 합하여 써서 나았다.
南匯本城楊熙宗令郎 , 病瘧寒熱俱輕 , 飲食如故 , 守不服藥之戒 。 一日自神廟燒香而歸 , 忽發狂言 , 似有神靈所作 。 邀余診視 。 脈象沉鬱 , 魄汗淋漓 , 未能審其果為熱厥 , 不敢驟用寒涼 , 姑用膽星 、 竹瀝與服 , 服下人事頓清 。 詢其近日所服何物 , 曰薑棗湯日服兩次 。 視其舌色 , 面白底絳 , 唇若塗朱 , 知為熱邪無疑 , 時已三更 , 余見其病勢稍持 , 約其明日轉方 。 天明覆來邀診 , 據述醒時未及三刻 , 旋又發厥 , 遂用犀角地黃湯合大承氣 , 許其大便一行即愈 。 奈他醫謂下則必死 , 病家轉多疑慮 , 時有張二川系楊內戚 , 力動本家定服余方 , 煎藥已近下午時候 , 病者牙關緊閉 , 強將羊角灌入 , 服至半劑 , 大便即解 , 前恙頓除 。
남회 본성 양희종의 아들은 학질을 앓으면서 추위와 열이 모두 가볍고 먹고 마시는 것이 평소와 같아 약을 먹지 말라는 경계를 지켰다. 어느 날 사당에서 향을 피우고 돌아온 뒤 갑자기 미친 말을 하며 신령이 시키는 듯하였다.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맥상은 침울하고 백한이 흥건하였으나, 정말 열궐인지 자세히 알 수 없어 감히 갑자기 한량약을 쓰지 못하고 우선 담남성·죽력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정신이 갑자기 맑아졌다. 근래 무엇을 복용했는지 물으니 생강대조탕을 날마다 두 번 복용했다고 하였다. 혀의 빛깔을 보니 겉은 희고 바탕은 짙게 붉으며 입술은 주사를 바른 듯하여 열사임에 의심이 없음을 알았다. 때가 이미 삼경이었고 병세가 조금 지탱되는 것을 보아 내일 처방을 바꾸기로 약속하였다. 날이 밝자 다시 와서 진찰을 청하였는데, 말에 따르면 깨어 있은 지 세 각도 못 되어 곧 다시 궐이 생겼다고 하였다. 이에 서각지황탕에 대승기탕을 합하여 쓰면서 대변이 한 번 통하면 곧 나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다른 의원이 하법을 쓰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므로 환자 집에서 더욱 의심하고 걱정하였다. 그때 양씨의 인척인 장이천이 있어 힘써 본가를 설득하여 내 처방을 복용하기로 결정하였다. 약을 달이니 이미 오후에 가까웠고 환자는 이를 꽉 다물고 있어 양뿔로 억지로 약을 부어 넣었다. 반 제까지 복용하자 대변이 곧 나오며 앞의 병이 갑자기 없어졌다.
南匯姚裕豐 , 醫士也 。 秋月寒熱 , 雜投藿香正氣 、 香薷飲之類 , 醫中來問病者 , 必定一方 , 其自己亦不能主持矣 。 其父沛寰因其病勢危劇 , 始來邀余 。 余用急下之劑 , 前醫交沮 , 謂此屬不治之證 , 何用下為 。 余坐等其家煎服 , 大下宿垢 , 繼服滋補半月而愈 。
남회의 요유풍은 의원이다. 가을에 추위와 열을 앓아 곽향정기산·향유음 등의 부류를 뒤섞어 투여하였다. 의원 가운데 병문안 온 사람은 반드시 처방 하나를 정하였으므로 그 자신도 주관할 수 없었다. 아버지 패환은 병세가 위급해진 뒤에야 나를 불렀다. 내가 급히 사하하는 약제를 쓰려 하자 앞의 의원들이 함께 막으며, 이는 불치증인데 하법을 써서 무엇 하느냐고 하였다. 나는 앉아서 그 집에서 약을 달여 복용하기를 기다렸고, 묵은 찌꺼기가 크게 내려간 뒤 이어 보름 동안 자보약을 복용하여 나았다.
治脈伏醫案
복맥을 치료한 의안
前營遊擊舒公 , 初夏病感 , 寒熱頗輕 , 但右脅以下掣痛不安 , 頭痛亦在右邊 , 大便不實 。 醫以為類傷寒證 , 用辛溫表散不效 。 余按其脈隱伏不彰 , 舌上灰色 , 苔厚而濕潤欲滴 , 初疑濕勝於熱 , 用吳氏達原飲 , 繼疑寒熱互結 , 用進退黃連湯 , 但有二三分效驗 。 舒公深信不疑 , 然必終奏全效 , 余心始安 。 沉思良久 , 頭痛脅痛俱在右邊 , 此熱氣鬱遏陽明 , 故脈象不彰 , 遂揀去溫藥 , 專用三黃石膏 , 堅服二十餘劑而愈 。 時前營守備邢公亦患熱病 , 初起即舌絳神昏 , 醫皆用蔥豉湯透表 , 余用涼膈散清中 , 授方不服 , 聽其津干液涸五日而亡 , 官在同營 , 病在一時 , 或信或不信 , 判若恩仇 , 舒公曰 : 總難逃一命字 。
전영의 유격 서공은 초여름에 감병하였는데 추위와 열은 꽤 가벼웠으나, 오른쪽 옆구리 아래가 당겨 아파 편안하지 않고 두통도 오른쪽에 있었으며 대변이 실하지 않았다. 의원은 유상한증이라 여기고 맵고 따뜻하게 표를 흩는 약을 썼지만 효과가 없었다. 내가 맥을 짚으니 숨어 드러나지 않고, 혀는 회색이며 태가 두껍고 축축하여 물방울이 맺힐 듯하였다. 처음에는 습이 열보다 성한가 의심하여 오씨의 달원음을 썼고, 이어 한열이 서로 맺혔는가 의심하여 진퇴황련탕을 썼으나 효과는 이삼 할뿐이었다. 서공은 깊이 믿어 의심하지 않았지만 반드시 끝내 완전한 효과를 거두어야 내 마음도 편안할 것이었다.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니 두통과 협통이 모두 오른쪽에 있으므로 이는 열기가 양명을 막아 맥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다. 마침내 온약을 가려 빼고 오로지 삼황·석고를 써서 스무여 제를 굳게 복용하게 하니 나았다. 그때 전영의 수비 형공도 열병을 앓아 초기부터 혀가 짙게 붉고 정신이 흐렸는데 의원들은 모두 총시탕으로 표를 뚫으려 하였다. 나는 양격산으로 중초를 맑게 하는 처방을 주었으나 복용하지 않아 진액이 마르도록 두다가 닷새 만에 죽었다. 같은 영에 있는 관리로 같은 때에 병들었지만 믿거나 믿지 않은 것이 은인과 원수처럼 갈렸다. 서공은 “결국 명이라는 한 글자를 피하기 어렵다.”라고 하였다.
附錄與姚敬修書令愛之證 , 肝藏積熱 , 肺受暴寒 , 故沖氣上逆 , 咳嗽發喘 。 余用仲景麻杏甘膏湯 , 發散外邪 , 掃除內熱 , 失此不治 , 必延勞怯 。 因受足下重託 , 故再四沉思而用此方也 。 得汗後 , 用錢仲陽補肺阿膠散 , 大下宿垢瘀滯後 , 用喻氏清燥救肺湯 。 石膏搜剔餘邪 , 人參補氣 , 阿膠補血 , 乃虛實兼到之方 。 寫方時 , 賢喬梓細問畢竟吉凶何如 ? 予一口擔承 , 何嘗有片言驚駭 。 其方其案 , 尚在尊齋 , 可覆視也 。 足下受方不用 , 先自彷徨 , 更請某師診治 , 誤認虛脫之證 , 揚言左脈已無 , 遂令合家大小 , 涕淚交零 , 並通知媒氏 , 通知許字之家 , 謂此證已被石膏吃壞 , 今已不治矣 。 噫 ! 某師久負盛名 , 何徒恃妄才而不達古訓也 。 夫脈之郁也 , 被火逼勒耳 , 非無也 。 精究古大家書 , 則悟此奧義矣 。 某師言此是怯證 。 非時邪也 , 殊不知怯證初起 , 亦須下去惡物 。 古方百勞丸 , 許州陳大夫託名仲景而傳者也 , 某師亦嘗精究其義乎 。 人言某師所定之方 , 與予方相似 , 不知實判天淵 。 余以人參 、 石膏同用 , 意仍在於清火 , 某師以人參 、 五味 、 陳皮同用 , 意專在於補虛 , 不知此證大積雖去 , 餘火尚多 , 稍帶溫補 , 尚慮復焰之勢 , 人參只宜些少 , 足下過費人參 , 反致增病 。 尊居之北 , 有俞姓女病伏熱 , 綿延四十餘日 , 人用輕清不效 , 余用石膏而效 。 今歲少陰司天 , 陽明在泉 , 運氣使然也 。 某師讀景岳書 , 不達玉女煎用石膏之旨 , 其能升其堂而入其室乎 。 前俞姓女服石膏後 , 發出暑毒滿身 , 其母不以為藥之過 , 而以為藥之功 。 奇哉婦人有識 , 乃遠勝於丈夫也 。 敬修得書之後 , 其膽始壯 , 余仍大進寒涼 , 下利五日而全愈 。
부록: 요경수에게 보낸 편지. 따님의 증상은 간에 열이 쌓여 있고 폐가 갑자기 한을 받았으므로 충기가 위로 치밀어 기침하고 숨이 찬 것입니다. 나는 중경의 마행감고탕으로 외사를 발산하고 내열을 쓸어 없앴습니다. 이때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오래 끌어 노겁이 됩니다. 그대의 무거운 부탁을 받았기 때문에 거듭 깊이 생각하여 이 처방을 쓴 것입니다. 땀을 얻은 뒤에는 전중양의 보폐아교산을 쓰고, 묵은 찌꺼기와 어체를 크게 내려 보낸 뒤에는 유씨의 청조구폐탕을 썼습니다. 석고가 남은 사기를 찾아 제거하고, 인삼이 기를 보하며, 아교가 혈을 보하니 허실을 함께 살피는 처방입니다. 처방을 적을 때 그대 부자께서 결국 길흉이 어떠하냐고 자세히 물었고, 나는 한마디로 책임지겠다고 하였으니 언제 한마디라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까? 그 처방과 의안이 아직 댁에 있으니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그대는 처방을 받고 쓰지 않은 채 먼저 스스로 당황하고 다시 모 선생에게 진료를 청하였습니다. 그분은 허탈증으로 잘못 보고 왼쪽 맥이 이미 없다고 떠들어 집안의 어른과 아이가 눈물을 쏟게 하였으며, 중매인과 혼약한 집에도 알려 이 증상은 이미 석고를 먹여 망쳤으므로 이제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아! 모 선생은 오랫동안 높은 명성을 지녔는데 어찌 헛된 재주만 믿고 옛 가르침에 통달하지 못합니까? 맥이 울체한 것은 화에 몰리고 억눌린 것일 뿐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옛 대가의 책을 정밀하게 궁구하면 이 깊은 뜻을 깨닫습니다. 모 선생은 이것이 겁증이지 시사가 아니라고 하였는데, 겁증의 초기에도 나쁜 물질을 내려 보내야 함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고방 백로환은 허주의 진대부가 중경의 이름에 의탁하여 전한 것인데, 모 선생도 그 뜻을 정밀하게 궁구한 적이 있습니까? 사람들은 모 선생이 정한 처방이 내 처방과 비슷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늘과 땅처럼 다름을 모릅니다. 나는 인삼과 석고를 함께 써서 뜻이 여전히 화를 맑게 하는 데 있지만, 모 선생은 인삼·오미자·진피를 함께 써서 뜻이 오로지 허한 것을 보하는 데 있습니다. 이 증상은 큰 적이 제거되었어도 남은 화가 아직 많아 온보를 조금만 띠어도 다시 타오를 형세를 염려해야 함을 모르는 것입니다. 인삼은 조금만 써야 하는데 그대는 인삼을 지나치게 써 도리어 병을 더하였습니다. 댁의 북쪽에 유씨 성을 가진 여성이 복열을 앓아 마흔 날 넘게 이어졌는데, 사람들이 가볍고 맑은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으나 내가 석고를 써서 효과를 보았습니다. 올해는 소음이 사천하고 양명이 재천하여 운기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모 선생이 경악의 책을 읽어도 옥녀전에서 석고를 쓰는 뜻을 통달하지 못한다면 그 학문의 당에 올라 방 안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앞서 유씨 여성이 석고를 복용한 뒤 온몸에 서독이 솟아났지만, 그 어머니는 약의 잘못이 아니라 약의 효능이라고 여겼습니다. 기이합니다! 부인의 식견이 도리어 남자보다 훨씬 낫습니다. 경수는 편지를 받은 뒤에야 담력이 강해졌고, 나는 여전히 한량약을 많이 투여하여 닷새 동안 설사한 뒤 완전히 나았다.
治老人醫案
노인을 치료한 의안
老人元虛 , 病宜扶元 , 人人知之 。 竟有陽氣充實 , 常服大寒之藥 , 常得帶病延年者 。 南匯本城謝凰鳴年七十有四 , 因上年秋間涉訟到郡 , 舟中冒暑 , 即發溫瘧 。 微寒惡熱 , 胸膈痞悶 , 余適寓郡城 , 用清心涼膈散而寒熱止 , 繼用半夏瀉心湯而痞悶除 , 旋即結訟回南 , 不再服藥 。 延至初冬 , 喘嗽大作 , 醫用疏散 , 愈治愈劇 。 至新正初十外 , 日夜不能交睫 , 痰涎盈盆盈碗 , 囑其子恩榮等速辦後事 , 無餘望矣 。 適有徽友汪郁廷在座 , 謂此證仍請予診治 , 必有出奇制勝之處 。 郡城僅一浦之隔 , 何不專舟邀歸以一診 。 凰鳴平日持家甚儉 , 因欲死裡求生 , 不得不從汪議 , 余亦以世好難辭 , 即束裝東歸 。 時已正月十六夜 , 診畢 , 即知其誤用辛溫 , 許以尚可挽救 , 方用大劑白虎 , 參入大劑犀角地黃 , 堅服四十餘日而全愈 。 若不細察其脈 , 而但拘年齒以施治 , 必至抱怨九泉 。 至嘉慶二十五年 , 重遊泮水 , 至道光五年 , 已八十有四 。 一日不飲蔗汁梨漿等味 , 即大便艱澀 , 辛溫誤人有如此 。
노인은 원기가 허하므로 병이 나면 원기를 도와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런데 양기가 충실하여 늘 매우 찬 약을 복용하면서도 병을 지닌 채 오래 사는 경우가 있다. 남회 본성의 사황명은 일흔네 살로, 지난해 가을 소송에 연루되어 군에 갔다가 배에서 더위를 받아 곧 온학이 생겼다. 추위는 가볍고 열을 싫어하며 가슴과 흉격이 막혀 답답하였다. 내가 마침 군성에 묵고 있어 청심양격산을 쓰자 추위와 열이 멎었고, 이어 반하사심탕을 쓰자 막히고 답답한 것이 없어졌다. 곧 소송이 끝나 남쪽으로 돌아가면서 다시 약을 먹지 않았다. 초겨울에 이르러 천수가 크게 생겼는데 의원이 소산약을 쓰니 치료할수록 더욱 심해졌다. 새해 정월 초열흘 이후에는 밤낮으로 눈을 붙이지 못하고 담연이 대야와 사발을 가득 채워, 아들 은영 등에게 서둘러 장례를 준비하라고 당부하며 더는 희망이 없다고 하였다. 마침 휘주 친구 왕욱정이 자리에 있어, 이 증상은 여전히 나에게 진료를 청하면 반드시 뜻밖의 방법으로 이길 길이 있을 것이며 군성은 물길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어찌 배를 따로 내어 모셔 와 한 번 진찰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황명은 평소 살림을 매우 검소하게 하였으나 죽음 속에서 삶을 구하려 하여 왕씨의 의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도 대대로 친분이 있어 사양하기 어려우므로 곧 짐을 꾸려 동쪽으로 돌아왔다. 때는 이미 정월 열엿샛날 밤이었다. 진찰을 마치자 곧 맵고 따뜻한 약을 잘못 썼음을 알고 아직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많은 양의 백호탕에 많은 양의 서각지황탕을 섞어 마흔 날 넘게 굳게 복용하니 완전히 나았다. 맥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나이에만 얽매여 치료하였다면 반드시 구천에서 원망을 품게 하였을 것이다. 가경 25년에 반수를 다시 찾았고, 도광 5년에는 이미 여든네 살이었다. 하루라도 사탕수수즙·배즙 등의 맛을 마시지 않으면 곧 대변이 어렵고 껄끄러웠으니, 맵고 따뜻한 약이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 이와 같다.
瘧疾醫案
학질 의안
寒熱往來之瘧 , 治宜小柴胡湯 。 不知陰虛之體 , 用之轉增大患者 , 郡城姚敬修夏日病瘧 , 醫投小柴胡十餘劑 , 竟無增減 , 停藥二日 , 忽然發厥 , 舌短眩暈 , 危在頃刻 。 居與余寓相近 , 急來延診 , 余用大劑清肝之藥 , 一服而安 。 知其多服柴胡 , 肝陰虧乏 , 厥陽亢逆也 。 愈後四肢痠麻 , 用養陰藥調理半年 , 始得平復 。
추위와 열이 오가는 학질은 소시호탕으로 치료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음허한 몸에 이를 써서 도리어 큰 병환을 더하는 경우를 알지 못한다. 군성의 요경수는 여름에 학질을 앓아 의원이 소시호탕 열여 제를 투여하였지만 전혀 늘거나 줄지 않았다. 이틀 동안 약을 끊자 갑자기 궐이 생기고 혀가 짧아지며 어지러워 위급함이 잠깐 사이에 있었다. 사는 곳이 내 숙소와 가까워 급히 와서 진찰을 청하였다. 내가 많은 양의 청간약을 쓰자 한 번 복용하고 편안해졌다. 시호를 많이 복용하여 간음이 줄고 궐음의 양이 항성하여 치민 것임을 알았다. 나은 뒤에도 사지가 시큰하고 저려 음을 기르는 약으로 반년 동안 조리하고서야 평복되었다.
三陰久瘧 , 陽虛氣虛 , 人易知之 , 不知初因暑熱而起者 , 久瘧保陰為主 。 南匯本城沈熙曾堅信余言 , 服二十餘劑而愈 。 其他服溫補 , 而致斃者 , 余親見二人也 。
삼음의 구학에 양허와 기허가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쉽게 알지만, 처음 서열 때문에 생긴 구학은 음을 보전하는 것을 위주로 해야 함은 알지 못한다. 남회 본성의 심희증은 내 말을 굳게 믿고 스무여 제를 복용하여 나았다. 그 밖에 온보약을 복용하다 죽음에 이른 사람을 내가 직접 두 명 보았다.
痢疾醫案
이질 의안
府廩生高菊裳(名崇瑚弟藥房名崇瑞選拔又中式)令堂 , 病陽虛久痢 , 醫頻服溫補延至半載 , 病反增劇 , 晝夜三五十次 。 余診時 , 但述腰脊空痛異常 , 遂用斑龍丸峻補奇脈 。 初服一劑 , 病勢大減 , 自後連服數劑 , 竟無增減 , 服參些少 , 略安片刻 , 而菊裳藥房昆仲 , 以尊人病怔忡經年 , 參藥大費 , 人參豈能常服 。 余為沉思良久 , 改用黃耆建中加鹿角 。 時有醫士李蘅堂(秀)在座 , 謂峻補之法 , 繼以宣通陽氣 , 亦是一法 。 力贊此方為中病 , 堅服二十餘劑而愈 。
부의 늠생 고국상은 이름이 숭호이며, 아우 약방은 이름이 숭서로 선발된 뒤 다시 시험에도 합격하였다. 그의 어머니가 양허의 구리를 앓아 의원이 온보약을 자주 복용시켜 반년까지 끌었지만, 병은 도리어 심해져 밤낮으로 30~50차례나 하였다. 내가 진찰할 때에는 다만 허리와 등뼈가 비어 아픈 것이 유달리 심하다고 하였다. 이에 반룡환으로 기맥을 강하게 보하였다. 처음 한 제를 복용하자 병세가 크게 줄었지만 뒤에 연이어 몇 제를 복용해도 전혀 늘거나 줄지 않았다. 인삼을 조금 복용하면 잠깐 약간 편안하였으나, 국상·약방 형제는 아버지가 정충을 여러 해 앓아 인삼 약에 많은 비용이 들었으므로 인삼을 어찌 늘 복용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뒤 황기건중탕에 녹각을 더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그때 의원 이형당, 이름 수가 자리에 있어 “강하게 보하는 법 뒤에 양기를 펼쳐 통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라고 하며, 이 처방이 병에 맞는다고 힘껏 찬동하였다. 스무여 제를 굳게 복용하여 나았다.
華庠生王羲令堂秋月病熱 , 初延李孝廉謹診視 , 用薄荷 、 連翹 、 山梔等 , 俱用薑汁製服 , 服後發厥 , 復延一時醫診視 , 用白虎湯清火 , 人事雖清 , 下痢不止 。 改用補劑 , 亦無效驗 。 王生系瑤峰先生令孫 , 餘本屬世好 , 來寓力懇專治 。 餘倍費苦思 , 用仲景桃華湯而愈 。
화(華)의 상생 왕희의 어머니가 가을에 열병을 앓아 처음 이효렴 근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박하·연교·산치자 등을 모두 생강즙으로 법제하여 복용하게 하였는데 복용 뒤 궐이 생겼다. 다시 당시의 한 의원에게 진찰을 청하여 백호탕으로 화를 맑게 하니 정신은 맑아졌으나 설사가 그치지 않았다. 보제로 바꾸어도 효과가 없었다. 왕생은 요봉 선생의 손자로, 나는 본래 대대로 친분이 있었으므로 숙소로 와서 오로지 맡아 치료해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였다. 나는 더욱 고심하여 중경의 도화탕을 써서 낫게 하였다.
南匯東門李連城病肝氣脹痛 , 因多服左金 , 遂至下痢不止 , 食飲不思 , 人亦不與之食 。 更醫則倏張倏李 , 用藥則惟術惟苓 , 僉云不治 , 已措辦後事矣 。 不得已而索治於余 , 予令其早上服大劑歸脾 , 晚間服大劑六味 , 並令家人誘其食肉 , 即有效驗 , 一月全痊 。
남회 동문의 이연성은 간기로 배가 불러 아픈 병을 앓다가 좌금환을 많이 복용하여 마침내 설사가 그치지 않고 먹고 마실 생각이 없었으며 사람들도 음식을 주지 않았다. 의원은 장씨였다가 이씨였다가 바뀌고 약은 오직 백출과 복령만 썼으며, 모두 치료할 수 없다 하여 이미 장례를 준비하였다. 부득이 나에게 치료를 구하였으므로, 나는 아침에는 많은 양의 귀비탕, 저녁에는 많은 양의 육미탕을 복용하게 하고 집안사람에게 고기를 먹도록 유도하라 하였다. 곧 효과가 나타나 한 달 만에 완전히 나았다.
勞倦內傷醫案
노권내상 의안
南匯南門張寶華 , 勞倦之餘 , 又兼食滯 , 及內傷中之有餘者 。 脈象狂大 , 熱渴異常 , 子系舊戚 , 平日相信不疑 , 即用下奪清中之法 , 但前因葬事太勞 , 未即痊愈 , 親友中有疑為失表之證 , 囑其更請他醫調治 。 醫謂從未得汗 , 熱邪內陷之象 , 用蔥豉等發汗 , 汗竟不出 , 反發昏沉 。 仍懇予治 。 予惟以清降為事 , 漸漸神清食進 , 始終無汗而愈 , 愈後大便艱澀 , 惟服大黃 。 補藥一劑不服 , 於以知外邪宜汗 , 內傷禁汗 , 內傷之虛者 , 為勞倦傷 , 宜補中益氣 。 飲食傷虛中挾實者 , 宜枳朮丸 。 內傷之純實者 , 則宜攻下也 , 王安道辨之甚詳 。
남회 남문의 장보화는 노권 뒤에 식체까지 겸하였으니 내상 가운데 남는 것이 있는 경우였다. 맥상이 매우 크고 열과 갈증이 유달리 심하였다. 자(子)는 오래된 친척으로 평소 나를 의심 없이 믿었으므로 곧 아래로 빼앗고 중초를 맑게 하는 법을 썼다. 다만 앞서 장례 일로 너무 수고하여 곧 낫지는 않았다. 친척과 친구 가운데 표증을 치료하지 못한 증상이 아닌가 의심하여 다른 의원에게 조리를 청하라고 권한 사람이 있었다. 의원은 한 번도 땀을 얻지 못하였으니 열사가 안으로 빠진 모습이라 하며 총시 등으로 땀을 내었지만, 끝내 땀이 나오지 않고 도리어 정신이 흐려졌다. 다시 나에게 치료를 간청하였다. 나는 오직 맑게 내리는 일에 힘썼고, 점차 정신이 맑아지고 식사가 늘어 처음부터 끝까지 땀 없이 나았다. 나은 뒤 대변이 어렵고 껄끄러워 오직 대황만 복용하고 보약은 한 제도 복용하지 않았다. 이로써 외사는 땀을 내야 하지만 내상에는 발한이 금기임을 알 수 있다. 내상 가운데 허한 것은 노권상으로 보중익기탕이 알맞고, 음식상으로 허한 가운데 실을 낀 것은 지출환이 알맞으며, 순전히 실한 내상에는 공하가 알맞다. 왕안도가 이를 매우 자세히 분별하였다.
偏枯醫案
편고 의안
新場鎮閔欽齋年五十外 , 形體清瘦 , 多火少痰 , 冬月忽患偏枯在左 , 遂從吳門解館而歸 , 醫惟以補氣消痰為事 , 反增咽燥喉痹等證 。 病家謂本原既竭 , 故用補劑不效 。 延予聊問消息 , 余謂其脈其證 , 純是一團火氣 , 須用河間治火之法 , 方用二地二冬知柏等 , 甘寒苦寒相間 。 投二劑 , 頓覺神情清爽 , 病者方意未病前數日 , 左肩胛猶如火燒 , 始信治火之說為不謬也 , 繼服虎潛丸而全愈 。
신장진의 민흠재는 쉰이 넘고 몸이 여위었으며 화가 많고 담이 적었다. 겨울에 갑자기 왼쪽 편고를 앓아 오문의 서당 일을 그만두고 돌아왔다. 의원은 오직 기를 보하고 담을 없애는 일에 힘썼으나 도리어 목이 마르고 후비가 생기는 등의 증상이 더해졌다. 환자 집에서는 근본이 이미 다했으므로 보제를 써도 효과가 없다고 하였다. 나를 불러 한번 형편을 물었으므로, 나는 맥과 증상이 순전히 한 덩이 화기이니 하간의 화를 치료하는 법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처방에 두 지황, 천문동·맥문동, 지모·황백 등을 써서 달고 찬 약과 쓰고 찬 약을 섞었다. 두 제를 투여하자 갑자기 정신과 표정이 맑고 상쾌해졌다. 환자는 병들기 며칠 전 왼쪽 어깨뼈가 불에 타는 것 같았음을 비로소 떠올렸고, 화를 치료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믿었다. 이어 호잠환을 복용하여 완전히 나았다.
提憲稿房陳掌衡夫人患半身不遂 , 體實瘦弱 , 疑是血虛 , 投溫經養血 , 全無增減 。 因思 《 內經 》 云 : 痛者寒氣多也 , 病在脈絡 , 非辛烈猛重之味 , 不能勝任 。 服許學士川烏粥而愈 。
제헌의 고방에서 일하는 진장형의 부인이 반신불수를 앓았는데 몸이 여위고 약하여 혈허인가 의심하고 경을 덥히며 혈을 기르는 약을 투여하였으나 전혀 늘거나 줄지 않았다. 이에 《내경》에서 “아픈 것은 한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을 생각하였다. 병이 맥락에 있으므로 맵고 강렬하며 세고 무거운 맛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었다. 허학사의 천오죽을 복용하여 나았다.
痹證醫案
비증 의안
風 、 寒 、 濕三氣合而為痹 , 祛風 、 祛寒 、 祛濕 , 人人知之 。 不知有當變通者 , 泗經戴星杓年近四十 , 因煙業赴上洋 , 一夕忽患腿痛 , 不便行走 , 寓中適有素明醫理者 , 謂腎氣素虛 , 乃欲中之漸 , 必服大造丸可 。 戴以客寓起居不便 , 遂乘肩輿而歸 。 本鎮及郡中之醫 , 皆用溫藥 , 並服大造丸 , 服下掣痛增至十分 , 兩手亦痛 , 陽事痿縮 , 遂延余診 。 余謂此屬熱痹 , 俗名流火是也 , 舌苔雖白 , 其實絳底 , 陽事痿縮 , 王節齋所云鬱火也 。 遂用三黃 、 石膏 、 犀角地黃等大劑 , 半月而起於床 , 更用虎潛大補陰丸等 , 一月後步履如常矣 。
풍·한·습 세 기가 합하여 비가 되므로 풍·한·습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변통해야 하는 경우가 있음은 알지 못한다. 사경의 대성표는 마흔에 가까운 나이로 담배 사업 때문에 상양에 갔다가 어느 저녁 갑자기 다리가 아파 걷기 불편해졌다. 숙소에 마침 평소 의학 이치를 아는 사람이 있어, 신기가 본래 허하여 중풍이 오려는 징조이므로 반드시 대조환을 복용해야 한다고 하였다. 대씨는 객지 숙소에서 생활하기 불편하여 가마를 타고 돌아왔다. 고을과 군의 의원들이 모두 온약을 쓰고 대조환도 복용하게 하였으나, 복용한 뒤 당기는 통증이 몹시 심해지고 양손도 아프며 양사가 위축되므로 마침내 나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나는 “이는 열비로서 세속에서 유화라 부르는 것이다. 설태는 비록 희지만 실제로 바탕은 짙게 붉다. 양사가 위축된 것은 왕절재가 말한 울화이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삼황·석고·서각지황탕 등을 많은 양으로 쓰니 보름 만에 침상에서 일어났고, 다시 호잠환·대보음환 등을 쓰니 한 달 뒤에는 평소처럼 걸었다.
南庠生謝恩榮令堂患熱痹 , 醫以為血衰氣弱 , 投以補劑轉劇 。 余用羚羊角 、 二冬 、 玉竹 、 竹瀝等通絡之劑 , 投數劑而全愈 。
남(南)의 상생 사은영의 어머니가 열비를 앓았는데, 의원은 혈이 쇠하고 기가 약한 것이라 여겨 보제를 투여하자 더욱 심해졌다. 나는 영양각·천문동·맥문동·옥죽·죽력 등 낙을 통하게 하는 약제를 썼고, 몇 제를 투여하여 완전히 나았다.
痿證醫案
위증 의안
前營千總龔振邦 , 多欲陰虧 , 夏月病足膝痿弱 。 余謂當作暑痿治 , 清暑益氣加活血之品 。 授方不服 , 轉服傷科之藥 。 一旦昏厥 , 心痛欲死 。 仍延余診 。 脈來虛散 , 生脈散加和中之品 , 服一劑果覺少安 , 渠家信之不篤 , 遍請他醫通同酌治 , 改用參地桂附 , 服之轉增脹滿 。 又請一醫以和中降氣為治 , 脹滿雖稍除而元氣愈弱 , 病者益難支撐 , 改用參朮一劑 , 而從前心痛欲死之證復作 。 不得已 , 遂聽命於予焉 。 余謂此屬少陰腎水虧乏 , 轉服傷科之藥 , 則氣亦虛矣 。 參朮桂附 , 適以耗陰 , 橘半枳砂 , 適以耗氣 , 俱未中病 , 故愈治愈劇 。 壯水之主以制陽光 , 乃正治也 , 用六味合生脈等 , 堅服五十餘劑而愈 。
전영의 천총 공진방은 욕정이 많아 음이 줄었으며 여름에 발과 무릎이 무력해지는 병을 앓았다. 나는 서위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여 청서익기탕에 활혈약을 더하였다. 처방을 주었으나 복용하지 않고 도리어 상과의 약을 복용하였다. 어느 날 정신을 잃고 심통이 있어 죽을 듯하자 다시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맥이 허하고 흩어지므로 생맥산에 중초를 조화시키는 약을 더하니 한 제를 복용하고 과연 조금 편안해졌다. 그러나 그 집안은 굳게 믿지 않고 다른 의원들을 두루 청하여 함께 헤아려 치료하도록 하였다. 인삼·지황·육계·부자로 바꾸어 쓰자 복용할수록 창만이 더해졌다. 또 다른 의원을 청하여 중초를 조화시키고 기를 내리는 것으로 치료하니 창만은 조금 없어졌지만 원기가 더욱 약해져 환자가 더욱 버티기 어려웠다. 인삼·백출 한 제로 바꾸자 앞서 심통으로 죽을 듯하던 증상이 다시 나타났다. 부득이 마침내 나에게 맡겼다. 나는 “이는 소음의 신수가 줄고 부족한 것인데 도리어 상과의 약을 복용하여 기도 허해졌다. 인삼·백출·육계·부자는 마침 음을 소모시키고, 귤피·반하·지실·사인은 마침 기를 소모시킨다. 모두 병에 맞지 않으므로 치료할수록 더욱 심해졌다. 수의 주인을 튼튼하게 하여 양의 빛을 제어하는 것이 바른 치료이다.”라고 하였다. 육미탕과 생맥산 등을 합하여 쉰여 제를 굳게 복용하게 하니 나았다.
南匯營兵朱七官 , 濕熱成痿 , 求治於他縣時醫 , 以峻補剛劑囑其頻服 , 半月後厥陽上逆 , 頭眩耳鳴 , 胸中擾攘不安 , 格寒於下 , 兩腳如冰 , 自分已無生理 。 友人武生顧鳴鶴與朱鄰近 , 延予判決死生 , 余按脈象狂大 , 謂此證因溫補誤投 , 非絕證也 。 遂用芩連知柏豬膽汁等大寒之品 , 一劑即減 , 投二十餘劑而全愈 。
남회 영병 주칠관은 습열로 위가 되어 다른 현의 당시 의원에게 치료를 구하였다. 의원은 강하게 보하는 굳센 약제를 자주 복용하라고 당부하였다. 보름 뒤 궐양이 위로 치밀어 머리가 어지럽고 귀가 울리며 가슴속이 어수선하고 불안하고, 한이 아래에서 막혀 양다리가 얼음 같아 스스로 살 이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친구인 무생 고명학이 주씨와 가까이 살았는데 나를 불러 생사를 판단해 달라고 하였다. 내가 맥상이 몹시 큰 것을 보고, 이 증상은 온보약을 잘못 투여한 데서 비롯되었지 절증은 아니라고 하였다. 마침내 황금·황련·지모·황백·돼지 쓸개즙 등 매우 찬 약을 쓰니 한 제에 곧 줄었고, 스무여 제를 투여하여 완전히 나았다.
郡城徐華封女病痿 , 兩足不能相去以寸 , 脊間皮寬肉軟 , 有如斗大 , 醫用雜補氣血之劑不效 。 予謂飲食如故 , 病屬下焦 , 耆朮守中 , 不能達下 , 四物誠為女科要藥 , 若欲填實精髓 , 則又不勝任矣 。 考 《 內經 》 筋痿骨痿 , 皆屬奇經絡病 , 乃用生鹿角 、 龜板 、 海參 、 魚膠 、 羊肉等血肉之味 , 配入熟地 、 枸杞 、 牛膝 、 歸芍 , 堅服三十餘劑而全痊 。
군성 서화봉의 딸이 위병을 앓아 두 발을 한 치도 서로 떼어 놓지 못하였다. 등뼈 사이의 피부가 느슨하고 살이 무른 부분이 한 말(斗)만큼 컸는데, 의원이 기혈을 뒤섞어 보하는 약제를 써도 효과가 없었다. 나는 먹고 마시는 것이 평소와 같으므로 병이 하초에 있으며, 황기·백출은 중초를 지켜 아래에 이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물탕은 참으로 부인과의 중요한 약이지만 정수를 채워 충실하게 하려면 또 감당하지 못한다. 《내경》을 살펴보니 근위·골위는 모두 기경락의 병에 속하므로, 생녹각·귀판·해삼·어교·양고기 등 혈육의 맛에 숙지황·구기자·우슬·당귀·작약을 배합하였다. 서른여 제를 굳게 복용하여 완전히 나았다.
虛勞醫案
허로 의안
亭林鎮北陸某 , 素患勞嗽 , 時作時止 , 至是益加氣喘 , 偏臥不能轉側 , 脈象細弱 , 有似氣虛痰飲 , 醫用補脾理氣 , 久而不效 , 遂以本證為辭 。 予適在鎮中顧宅 , 延予一判安危 。 余謂此屬肺腎陰虧 , 非氣虛也 , 初用錢氏阿膠散 , 繼用六味地黃湯而愈 。
정림진 북쪽의 육모는 평소 노수를 앓아 때때로 발작하였다가 멎곤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숨이 더욱 차고 한쪽으로 누워 몸을 돌리지 못하였다. 맥상이 세약하여 기허담음과 비슷하므로 의원은 비를 보하고 기를 다스렸으나 오래도록 효과가 없자 본래의 병이라는 말로 사양하였다. 내가 마침 진 안의 고씨 집에 있어 나를 불러 안위를 판단해 달라고 하였다. 나는 이것이 폐신의 음이 부족한 것이지 기허가 아니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전씨의 아교산을 쓰고 이어 육미지황탕을 써서 나았다.
腫脹醫案
종창 의안
府庠生王迪賢令堂 , 患喘腫 , 脈浮無汗 , 渴飲異常 , 宗仲景風水治例 , 兼參王節齋先喘後腫之旨 , 用麻杏甘膏湯而愈 。
부의 상생 왕적현의 어머니가 숨이 차고 붓는 병을 앓았는데, 맥이 부하고 땀이 없으며 갈증으로 물을 마시는 것이 유달리 심하였다. 중경의 풍수 치료 예를 본받고 왕절재가 먼저 숨이 찬 뒤 붓는다고 한 뜻을 함께 참고하여 마행감고탕을 써서 나았다.
南匯本城李孝思 , 單脹數月 , 諸藥不效 , 余按脈象沉微 , 此屬陽微 , 用塞因塞用法 , 專服理中加附子而愈 。
남회 본성의 이효사는 배만 불러 오른 지 몇 달 동안 여러 약이 효과가 없었다. 내가 짚어 보니 맥상이 침미하여 양이 미약한 데 속하므로, 막힌 데에 막는 법을 쓰는 방법으로 이중탕에 부자를 더한 것만 복용하게 하여 나았다.
郡城卜姓女十有三歲 , 先患痧疹 , 繼患瘧疾 , 醫用開泄太過 , 遂至脹滿 , 肚腹以下堅硬如石 , 本家疑為虛證 , 請一老醫中專用補藥者診治 , 豈知竟云痧毒內攻 , 法在不治 。 余時初到郡中 , 遂延余診 。 余按其脈沉細而微 , 脾虛景象 , 顯然如繪 , 初用錢氏白朮散而堅硬消 , 繼用陳氏六神湯而脹滿愈 。
군성의 복씨 성을 가진 열세 살 소녀는 먼저 사진을 앓고 이어 학질을 앓았다. 의원이 열어 내보내는 법을 지나치게 써서 창만에 이르렀고, 배 아래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본가에서는 허증이라 의심하여 노의원 가운데 보약을 전문으로 쓰는 사람에게 진료를 청하였는데, 뜻밖에도 사독이 안을 공격하므로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다. 내가 그때 처음 군에 도착하였으므로 마침내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내가 맥을 짚으니 침세하고 미하여 비허의 모습이 그림처럼 분명하였다. 처음 전씨의 백출산을 쓰자 단단한 것이 사라지고, 이어 진씨의 육신탕을 쓰자 창만이 나았다.
得勝渡張永椿室 , 系氣虛之體 , 秋月患腹脹 , 服消耗藥太過 , 數日間腹大如臌 。 余即用 《 濟生 》 腎氣 , 立見奇效 , 後稍有脹意 , 即投前方而愈 。
득승도 장영춘의 아내는 기허한 체질로, 가을에 복창을 앓다가 소모시키는 약을 지나치게 복용하여 며칠 사이에 배가 북처럼 커졌다. 나는 곧 《제생》의 신기환을 써서 즉시 기이한 효과를 보았다. 뒤에 조금만 불러 오르는 기미가 있어도 곧 앞의 처방을 투여하면 나았다.
腳氣醫案
각기 의안
郡廩生方鐵華(剛)令尊患腳氣上攻 ; 醫投燥濕理氣通陽之劑 , 喘腫益加 , 余謂諸熱之而寒者取諸陽 , 因立加味腎氣湯 , 初服不覺其功 , 而亦不見其燥熱 , 堅服三十餘劑而愈 。
군의 늠생 방철화, 이름 강의 아버지가 각기가 위로 공격하는 병을 앓았다. 의원이 습을 말리고 기를 다스리며 양을 통하게 하는 약제를 투여하자 숨참과 부종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덥혀도 찬 것은 양에서 취한다’고 하며 가미신기탕을 세웠다. 처음 복용할 때에는 효과를 느끼지 못하였지만 조열도 나타나지 않았고, 서른여 제를 굳게 복용하여 나았다.
發黃醫案
발황 의안
吳靜山(敬權)孝廉令正錢夫人 , 時邪後遂發黃腫 , 日嗜干茶無度 , 蘇太諸醫 , 皆用氣血並補 , 久而不愈 。 延余診之 。 脈兩手俱洪數之甚 , 詢得腹中攻痛無常 , 夜則身熱如烙 , 此由陰液不充 , 瘀滯干黏所致 。 宿血不去 , 則肢體浮腫 。 新血不生 , 則肌肉消瘦 。 一切補脾剛藥 , 未可施於此證 。 考仲景治黃 , 有豬膏發煎潤燥之法 , 爰仿其義 , 專用滋潤之品 , 調養腎肝而愈 。
효렴 오정산, 이름 경권의 부인 전씨는 시사를 앓은 뒤 누렇게 붓기 시작하여 날마다 마른 찻잎을 한없이 즐겨 먹었다. 소주와 태창의 여러 의원이 모두 기혈을 함께 보하였으나 오래도록 낫지 않아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양손의 맥이 모두 매우 홍삭하였고, 물어 보니 배 안의 공격하는 듯한 통증이 일정하지 않으며 밤에는 몸의 열이 지지는 듯하였다. 이는 음액이 충실하지 않고 어체가 마르고 달라붙어 생긴 것이다. 묵은 혈이 제거되지 않으면 팔다리와 몸이 붓고, 새 혈이 생기지 않으면 기육이 여윈다. 비를 보하는 모든 굳센 약을 이 증상에 써서는 안 된다. 중경의 황달 치료를 살펴보면 저고발전으로 마른 것을 적시는 법이 있으므로 그 뜻을 본받아 오로지 자윤하는 약으로 신과 간을 조양하여 낫게 하였다.
前營遊擊溫公(大勇)夏月自浦口來松 , 途中冒暑 , 到署後請醫調治 , 初用清暑利濕不效 , 改用參朮歸地 , 轉增脘痛 。 自後朝暮更醫 , 僉言誤補留邪 , 治難有效 。 遂延余診 。 余見其身面發黃 , 總是胃腑結聚不行所致 , 用連理湯辛開苦降法 , 授方不服 , 遂就診於青浦醫家 , 方用茵陳五苓散等 , 服之亦不效 。 遂以絕證為辭 , 歸至署中 , 計無復出 , 始委命以聽余焉 。 予仍用前法 , 服參些少 , 是夜即得安寢 , 改用理中湯調理半月而愈 。 後以禮貌之衰 , 堅辭不往 , 升金山參將後 , 重發舊恙 , 遂成不治之證矣 。
전영의 유격 온공, 이름 대용이 여름에 포구에서 송으로 오다가 길에서 더위를 받았다. 관서에 도착한 뒤 의원을 청하여 조리하였는데 처음 청서이습법이 효과가 없자 인삼·백출·당귀·지황으로 바꾸어 써서 도리어 위완통이 더해졌다. 그 뒤 아침저녁으로 의원을 바꾸었지만 모두 잘못 보하여 사기가 머물렀으므로 치료하여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하였다. 마침내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내가 몸과 얼굴이 누렇게 된 것을 보고 모두 위부에 맺혀 모인 것이 운행하지 못해서 생긴 것이라 여겨, 연리탕으로 매운맛은 열고 쓴맛은 내리는 법을 썼다. 처방을 주었으나 복용하지 않고 청포의 의원에게 가서 진찰받았다. 처방에 인진오령산 등을 썼지만 복용해도 효과가 없었고, 마침내 절증이라는 말로 사양하였다. 관서로 돌아온 뒤 더는 계책이 없어 그제야 목숨을 맡기고 내 말을 따랐다. 나는 여전히 앞의 법을 써서 인삼을 조금 복용하게 하니 그날 밤 곧 편안히 잠들었다. 이중탕으로 바꾸어 보름 동안 조리하여 나았다. 뒤에 예의가 줄어들어 내가 굳게 사양하고 가지 않았는데, 금산 참장으로 승진한 뒤 옛 병이 다시 생겨 마침내 불치증이 되었다.
濁證醫案
탁증 의안
濁證濕滯為多 , 而亦有宜於溫固者 。 上海徐德音濁下如涕 , 醫不辨其為精濁 , 概以利濕之法治之 , 久不見效 。 漸至食則易飢 , 心火上亢 , 腎水下趨 , 形消腰折 , 寒熱頻頻 , 督脈陽維交病 。 余謂此係精濁 。 非便濁也 。 用鹿角菟絲骨脂等溫補下焦 , 兼服威喜丸而愈 。
탁증은 습이 정체한 경우가 많지만 따뜻하게 굳혀야 하는 경우도 있다. 상해의 서덕음은 콧물 같은 탁한 것이 아래로 나왔는데, 의원은 정탁임을 구별하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이습법으로 치료하여 오래도록 효과가 없었다. 점차 먹으면 쉽게 배가 고프고 심화가 위로 항성하며 신수가 아래로 내달려, 몸이 여위고 허리가 꺾이며 추위와 열이 빈번해졌으니 독맥과 양유맥이 함께 병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정탁이지 변탁이 아니라고 하였다. 녹각·토사자·보골지 등으로 하초를 따뜻하게 보하면서 위희환을 함께 복용하게 하여 나았다.
提憲稿房陳壽昌病濁 , 醫者疑其腎陰虧損而致此疾 , 早投補腎藥 , 少腹脹痛欲死 。 余用左金清火 , 合雄鼠糞湯攻濁而愈 。
제헌의 고방에서 일하는 진수창이 탁병을 앓았는데, 의원은 신음이 줄고 손상되어 이 병이 생긴 것이라 의심하여 일찍 보신약을 투여하였다. 아랫배가 불러 아파 죽을 듯하므로, 나는 좌금환으로 화를 맑게 하고 웅서분탕을 합하여 탁을 공격함으로써 낫게 하였다.
頭痛醫案
두통 의안
嘉定陳嫗年五十有七 , 病頭痛數年 , 額上為甚 , 額屬陽明部分 , 久痛必虛 , 須填補陽明 , 兼鼓舞胃中清陽之氣 , 用玉屏風散加炙草葛根 , 二劑全愈 。 推此而太陽頭頂痛 , 少陽頭角痛 , 厥陰頭巔痛 , 皆可按法而治矣 。
가정의 진 노파는 쉰일곱 살로 두통을 여러 해 앓았는데 이마가 가장 심하였다. 이마는 양명의 부위에 속하고 오래된 통증은 반드시 허하므로, 양명을 채워 보하면서 위 속의 청양의 기를 북돋아야 했다. 옥병풍산에 자감초·갈근을 더하여 두 제 만에 완전히 나았다. 이를 미루어 보면 태양의 두정통, 소양의 두각통, 궐음의 두전통도 모두 법에 따라 치료할 수 있다.
高橋鎮曹連珍室 , 操持家事頗勞 , 兼多暴怒 , 孟夏得疾 , 自天柱至頭巔 , 忽然強痛 , 堅重難移 , 兩耳赤腫 , 胃中嘈雜 , 脈象洪數 。 宗喻氏治吳添官母例而愈 。
고교진 조연진의 아내는 집안일을 맡아 꽤 수고하였고 갑자기 크게 성내는 일도 많았다. 초여름에 병을 얻어 천주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갑자기 뻣뻣하고 아프며, 단단하고 무거워 움직이기 어려웠다. 양 귀가 붉게 붓고 위 속이 조잡하며 맥상이 홍삭하였다. 유씨가 오첨관의 어머니를 치료한 예를 본받아 나았다.
腹痛醫案
복통 의안
楓涇鎮宋元英境享安閒 , 恣情房幃 , 患腹痛二年 , 醫藥不效 , 遂就診於吳郡極時之醫 , 以絕證為辭 。 宋即歸家 , 料理後事 , 深信醫言為不謬 。 余適過楓 , 晤宋氏西席程永孚 , 談及醫理 , 遂為知己 。 遂同元英來寓就診 , 細按其脈 , 細詢其證 , 總是陰陽悖逆 , 升降不利使然 。 問曰 : 曾服瀉心湯 , 進退黃連湯否 ? 曰未也 。 因酌一方以授 , 投一劑而稍平 , 數劑而全愈 。
풍경진의 송원영은 편안하고 한가로운 처지에서 방사를 마음껏 하다가 복통을 2년 동안 앓았다. 의약이 효과가 없어 오군에서 당시 매우 명성 있던 의원에게 진찰받았으나 절증이라는 말로 사양하였다. 송씨는 곧 집에 돌아가 장례를 준비하면서 의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깊이 믿었다. 내가 마침 풍경을 지나다 송씨 집의 서당 선생 정영부를 만나 의학 이치를 이야기하다가 지기가 되었다. 이에 원영과 함께 숙소로 와서 진찰받았다. 맥을 자세히 짚고 증상을 자세히 물으니 모두 음양이 서로 어긋나 거슬러 승강이 순조롭지 않아 생긴 것이었다. 사심탕이나 진퇴황련탕을 복용한 적이 있는지 물으니 아직 없다고 하였다. 이에 한 처방을 헤아려 주었고, 한 제를 투여하자 조금 평정되며 몇 제에 완전히 나았다.
前余在嘉定 , 有鄉人王四九官病膈 , 向服和中藥 , 據述投三四劑輒效 , 逾時復然 。 就診於予 。 投進退黃連湯不應 , 改用丹溪韭汁牛乳飲而愈 。 因知古人因證立方 , 不相假也 。
전에 내가 가정에 있을 때, 고향 사람 왕사구관이 격병을 앓아 줄곧 중초를 조화시키는 약을 복용하였다. 말에 따르면 서너 제를 투여하면 곧 효과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러하였다. 나에게 진찰받아 진퇴황련탕을 투여하였지만 반응이 없어 단계의 구즙우유음으로 바꾸어 쓰니 나았다. 이로써 옛사람이 증상에 따라 처방을 세운 것은 서로 대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胎前醫案
임신 중 의안
胎前宜涼 , 人人知之 。 而亦有宜於溫者 , 胎前宜補血 , 不宜破血 , 而亦有轉用破血而得安者 , 總在臨證時之細心體會也 。 郡城孫錦章室 , 懷胎五月 , 病轉胞不溺 , 醫用清利水道 , 並不究及轉胞由於下焦虛寒 , 由於中焦氣弱 , 由於肝家血滯 , 豬苓 、 澤瀉 、 車前等藥 , 徒傷胃氣 , 故飲食減少 , 夜不得寐 , 諸恙漸臻 , 而胞系之繚戾者如故也 。 日請穩婆抬起 , 始得溺出 。 究之元氣不支 , 日甚一日 , 因而延余診治 。 余診其脈 , 緩大有力 , 許以可救 。 遵 《 金匱 》 成例 , 投腎氣湯一劑 , 是夜稍得安寢 , 蓋利水之藥 , 足以瀉腎 。 投桂附而命門溫暖 , 故稍得安寢耳 。 再遵丹溪補氣成例 , 投參朮湯一劑 , 飲食漸能知味 , 惟病者大便不行已數日 , 腹中至此更覺不安 , 改用茱連湯一劑 , 大便得解 , 小便雖仍穩婆伺候 。 病者因諸恙悉減 , 深信不疑 , 再求良治 , 余為沉思者久之 , 脈象比前益見有力 , 元氣已復而胎氣未舉 , 必有瘀血阻塞其間 , 遂用大劑破血之藥 , 一劑而脹遂消 , 三劑而胎氣未舉 , 凡破血之藥 , 最足礙胎 , 今破血而胎反固 , 妙在先用補藥以助其元氣也 。
임신 중에는 서늘하게 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따뜻하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임신 중에는 혈을 보해야 하고 혈을 깨뜨려서는 안 되지만, 도리어 혈을 깨뜨리는 약을 써서 편안해지는 경우도 있으니 모두 임상에서 세심히 이해하는 데 달려 있다. 군성 손금장의 아내는 임신 5개월에 전포로 소변이 나오지 않는 병을 앓았다. 의원은 수도를 맑게 통하게 하는 약을 쓰면서 전포가 하초의 허한, 중초의 기약, 간의 혈체에서 비롯될 수 있음은 궁구하지 않았다. 저령·택사·차전자 등의 약은 공연히 위기를 상하게 하므로 음식이 줄고 밤에 잠들지 못하며 여러 병이 점차 이르렀지만, 포계가 뒤틀린 것은 여전하였다. 날마다 산파를 불러 들어 올려야 비로소 소변이 나왔다. 결국 원기가 버티지 못하여 날로 심해지므로 나를 불러 진료하게 하였다. 내가 맥을 진찰하니 완대하고 힘이 있어 구할 수 있다고 하였다. 《금궤》의 선례를 따라 신기탕 한 제를 투여하니 그날 밤 조금 편안히 잤다. 이수약은 신을 사하기에 충분하므로, 육계·부자를 투여하여 명문이 따뜻해져 조금 편안히 잔 것일 뿐이다. 다시 단계가 기를 보한 선례를 따라 삼출탕 한 제를 투여하니 점차 음식 맛을 알게 되었다. 다만 환자가 이미 며칠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여 이때 배 안이 더욱 불편해지므로, 수련탕 한 제로 바꾸어 쓰자 대변이 통하였다. 소변은 여전히 산파가 돌봐야 했지만 환자는 여러 병이 모두 줄었으므로 깊이 믿고 의심하지 않으며 다시 좋은 치료를 구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깊이 생각하였다. 맥상이 전보다 더욱 힘이 있어 원기는 이미 회복되었지만 태기가 아직 들리지 않았으니, 반드시 그 사이에 어혈이 막고 있을 것이었다. 마침내 많은 양의 파혈약을 써서 한 제에 창이 사라졌으나 세 제에도 태기는 아직 들리지 않았다. 파혈약은 태를 방해하기에 가장 충분한데 지금 혈을 깨뜨려도 태가 도리어 굳건한 것은, 묘함이 먼저 보약을 써서 원기를 도운 데 있다.
產後醫案
산후 의안
產後感冒時邪 , 宜溫散 , 不宜涼散 , 人人知之 。 而亦有不宜於溫而宜於涼者 , 誤用溫則不得不用大寒矣 。 歸鞠氏侄女 , 冬月初產無恙 , 至六日頭痛身熱 , 凜凜畏寒 , 予用梔豉湯 , 夜半熱退 , 逾日復熱 , 更醫用產後逐瘀成法 , 遂加煩躁 。 余謂冬溫為病 , 清之可安 。 通評虛實論曰 : 乳子而病熱 , 脈懸小者 , 手足溫則生 , 仍依時邪治例 , 用白虎湯而愈 。 凡產後無產證而染他證者 , 即當以他證治之 , 而丹溪大補氣血之言 , 卻不可拘 。 仲景云 : 病解能食 , 七八日更發熱者 , 此為胃實 , 大承氣湯主之 。 夫陽明經中 , 仲景尚再三戒人不可輕下 , 而產後亡血既多 , 仍云承氣主之 , 蓋既為胃實自有不得不用之理 , 舉一證而產後之挾實者可類推也 。 仲景云 : 產後下利虛極 , 白頭翁加甘草阿膠湯主之 。 夫既曰虛極 , 仍用白頭翁湯者 , 下痢中既有渴欲飲水熱而下重之證 , 則白頭翁湯自有不得不用之理 。 惟其虛極 , 故加甘草 、 阿膠以養其正 , 舉一證而產後之挾虛者可類推也 。
산후에 시사에 감촉되면 따뜻하게 흩어야 하고 서늘하게 흩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따뜻한 것이 맞지 않고 서늘한 것이 맞는 경우도 있으며, 따뜻한 약을 잘못 쓰면 매우 찬 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귀국씨의 조카딸은 겨울에 출산한 뒤 처음에는 아무 탈이 없었으나 엿새째 머리가 아프고 몸에 열이 나며 오싹오싹 추위를 두려워하였다. 내가 치시탕을 쓰자 밤중에 열이 물러났지만 하루가 지나 다시 열이 났다. 의원을 바꾸어 산후에 어혈을 몰아내는 기존 방법을 쓰자 번조가 더해졌다. 나는 동온이 병이 된 것이므로 맑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다고 하였다. 〈통평허실론〉에서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사람이 열병을 앓고 맥이 현소하더라도 손발이 따뜻하면 산다.”라고 하였으므로, 여전히 시사를 치료하는 예에 따라 백호탕을 써서 나았다. 산후에 산후증은 없고 다른 증상에 걸렸다면 곧 그 다른 증상으로 치료해야 하며, 단계가 기혈을 크게 보하라고 한 말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중경은 “병이 풀려 먹을 수 있는데 7~8일 뒤 다시 열이 나면 이는 위실이니 대승기탕이 주치한다.”라고 하였다. 양명경에서도 중경은 오히려 거듭 함부로 하법을 쓰지 말라고 경계하였는데, 산후에 혈을 이미 많이 잃었어도 여전히 승기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이미 위실이 되었으면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니, 이 한 증상을 들어 산후에 실을 겸한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중경은 “산후에 설사하여 극도로 허하면 백두옹가감초아교탕이 주치한다.”라고 하였다. 이미 극도로 허하다고 하면서 여전히 백두옹탕을 쓰는 것은, 설사하는 가운데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하고 열이 나며 뒤가 무거운 증상이 있으므로 백두옹탕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극도로 허하기 때문에 감초·아교를 더하여 정기를 기른 것이니, 이 한 증상을 들어 산후에 허를 겸한 경우를 유추할 수 있다.
產後惡露不行 , 胸腹飽脹 , 溫之通之 , 人人知之 。 而亦有不宜於溫而宜於涼 , 不宜於通而宜於和者 。 東門鞠上玉室初產患此 , 其脈數大而疾 , 上兼鼻衄 , 余用當歸二兩煎湯 , 沖熱童便與服 , 稍稍安穩 , 但惡露止有點滴耳 。 更醫用炮姜等溫通套劑 , 遂至胸腹增脹 , 惡露點滴不行 , 有欲依產後春溫治例 , 大進苦寒之品 , 余曰 : 又非穩治 。 堅用歸地丹芍等涼血和血之劑 , 十餘日 , 惡露大行而全愈 。 凡產後病解能食 , 七八日更發熱者 , 當作別病治 。 初產後即發熱者 , 則仍作產後治 。 但各有寒熱 , 兩途不可不條分縷析 。
산후에 오로가 나오지 않고 가슴과 배가 불러 그득하면 따뜻하게 하고 통하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따뜻한 것이 맞지 않고 서늘한 것이 맞으며, 통하게 하는 것이 맞지 않고 조화시키는 것이 맞는 경우도 있다. 동문 국상옥의 아내가 처음 출산한 뒤 이를 앓았는데, 맥이 삭대하고 빠르며 위로 코피를 겸하였다. 나는 당귀 2냥을 달여 뜨거운 동변을 섞어 복용하게 하니 조금 안정되었지만 오로는 방울방울만 나왔다. 의원을 바꾸어 포강 등 따뜻하게 통하는 상투적인 약제를 쓰자 가슴과 배가 더욱 불러 오르고 오로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산후 춘온의 치료 예에 따라 쓰고 찬 약을 많이 투여하려는 사람이 있었으나, 나는 그것도 안정된 치료가 아니라고 하였다. 당귀·지황·목단피·작약 등 혈을 식히고 조화시키는 약제를 굳게 쓰니 열흘 남짓 지나 오로가 크게 나오고 완전히 나았다. 산후에 병이 풀려 먹을 수 있는데 7~8일 뒤 다시 열이 나면 별개의 병으로 치료해야 한다. 출산 직후부터 열이 나면 여전히 산후병으로 치료한다. 다만 각각 한열이 있으므로 이 두 길을 조목조목 분석하지 않을 수 없다.
郡城侯姓婦年三下有八 , 因元霄夜遊 , 行走太勞 , 歸即小產 。 醫者皆以其胸腹有塊 , 用逐瘀成法 , 每劑必加炮姜 , 俱未有效 。 後雖停藥 , 而骨節如焚 , 積塊愈大 , 小便艱澀 , 熱痛異常 。 至三月初始延余診 , 已奄奄一息 。 診其脈沉伏之極 , 隱隱難尋 , 予固知其陰虛陽盛 , 但日期多延 , 宜用緩治 。 初投復脈減去薑桂 , 神氣稍安 , 繼投丹溪大補陰丸 , 諸恙悉減 , 終投本事虎杖湯 , 積塊平復 , 淋痛皆除 , 不及一月 , 飲食大增而全愈 。
군성의 후씨 부인은 나이가 ‘삼하유팔(三下有八)’로, 원소절 밤에 놀러 다니며 너무 많이 걸은 탓에 돌아오자 곧 유산하였다. 의원들은 모두 가슴과 배에 덩이가 있다 하여 어혈을 몰아내는 기존 방법을 쓰며 매 제마다 반드시 포강을 더하였으나 모두 효과가 없었다. 뒤에 약을 끊었어도 뼈마디가 불타는 듯하고 적괴가 더욱 커지며 소변이 어렵고 껄끄럽고 열과 통증이 유달리 심하였다. 3월 초에 이르러서야 나를 불러 진찰하게 하였는데, 이미 가물가물 한 가닥 숨만 남았다. 맥을 진찰하니 몹시 침복하여 희미하게 찾기 어려웠다. 나는 분명히 음허양성임을 알았으나 시일이 오래 지났으므로 천천히 치료해야 했다. 처음 복맥탕에서 생강·계지를 빼고 투여하자 신기가 조금 편안해졌고, 이어 단계의 대보음환을 투여하자 여러 병이 모두 줄었다. 끝으로 《본사》의 호장탕을 투여하자 적괴가 평복되고 임통이 모두 없어져, 한 달이 못 되어 음식이 크게 늘고 완전히 나았다.
得勝渡衛姓婦初產惡露不行 , 發熱疼痛 , 中挾冬溫伏氣 , 醫用逐瘀溫經套劑 , 遂至熱邪流注左腿 , 日夜難安 , 飲多食少 , 至冬至朝延予診治 。 予變產後宜溫之說 , 用涼血大劑 , 加通瘀解毒 , 四服全愈 。
득승도의 위씨 부인이 처음 출산한 뒤 오로가 나오지 않고 열이 나며 아팠는데, 가운데 겨울 온병의 복기를 끼고 있었다. 의원이 어혈을 몰아내고 경을 덥히는 상투적인 약제를 써서 마침내 열사가 왼쪽 다리로 흘러들어 밤낮으로 편안하지 못하고 많이 마시며 적게 먹었다. 동짓날 아침 나를 불러 진료하게 하였다. 나는 산후에는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설을 바꾸어 많은 양의 양혈약에 어혈을 통하게 하고 해독하는 약을 더하니 네 번 복용하고 완전히 나았다.
郡城張六老室 , 產後月餘 , 崩中不止 , 時當暑月 , 醫用和中養血 , 俱不能止 , 病已三日夜 , 視為必死 。 余診其脈 , 浮大欲脫 , 連聲索救 , 神氣尚清 , 急令煎黃耆一兩 , 當歸一兩 , 服之頃刻立止 。 古方當歸補血湯 , 黃耆多於當歸五倍 , 今加當歸與黃耆等分者 , 時當暑月 。 恐黃耆之過亢也 。
군성 장육로의 아내는 산후 한 달 남짓 되었는데 붕중이 그치지 않았다. 때는 더운 달이어서 의원이 중초를 조화시키고 혈을 기르는 약을 썼으나 모두 멎게 하지 못하였다. 병이 이미 사흘 밤낮에 이르러 반드시 죽을 것으로 보았다. 내가 맥을 진찰하니 부대하여 빠져나가려 하였으며, 연거푸 구해 달라고 말하고 신기는 아직 맑았다. 급히 황기 1냥·당귀 1냥을 달이게 하여 복용시키자 잠깐 사이에 즉시 멎었다. 고방 당귀보혈탕에서는 황기가 당귀보다 다섯 배 많은데, 지금 당귀를 더하여 황기와 같은 분량으로 한 것은 때가 더운 달이라 황기가 지나치게 항성할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血厥醫案
혈궐 의안
郡城七星橋翁氏女經前發厥 , 厥必數日不醒人事 , 醫用朱 、 黃 、 膽星之屬 , 經年不效 。 己卯六月 , 延予診治 。 脈象搏指 , 余謂此係經血內瘀 , 久而發厥 , 非痰迷心竅也 。 朱 、 黃 、 膽星 , 焉能破瘀生新耶 。 乃合 《 內經 》 烏鰂骨丸 , 仲景旋覆花湯 , 河間金鈴子散為一方 , 數劑全痊 , 竟不再發 。
군성 칠성교의 옹씨 딸은 월경 전에 궐이 생겼으며, 궐이 생기면 반드시 며칠 동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의원이 주사·우황·담남성 등의 부류를 썼지만 여러 해 효과가 없었다. 기묘년 6월 나를 불러 진료하게 하였다. 맥상이 손가락을 두드리므로 나는 “이는 경혈이 안에 어체하여 오래되어 궐이 생긴 것이지 담이 심규를 가린 것이 아니다. 주사·우황·담남성이 어찌 어혈을 깨뜨리고 새 혈을 생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내경》의 오적골환, 중경의 선복화탕, 하간의 금령자산을 한 처방으로 합하여 몇 제 만에 완전히 낫게 하였고, 끝내 다시 발작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