緒言
서언.
余讀鶴氏所編吉益子醫斷 。 廢書而嘆 。 可為太息者三 。 可為流涕者二 。 其佗背理而傷道者 。 難遍舉矣 。 夫醫雖小道 。 其精理妙用 。 非聖人不能肇修之也 。 是以古今醫流 。 雖有卓識俊才迥出於人者 。 然其論辨取捨 。 一皆折衷於經 。 而終不能更其轍也 。 人命所繫 。 至重綦大 。 豈可不慎哉 。 而彼書也 。 斷然擯醫經 。 棄陰陽 。 變古今不移之道 。 而異其端矣 。 嗚呼此言之行也 。 後將不勝其弊矣 。 可為嘆息者一也 。 雖以仲景明敏 。 猶質信於素問 。 陰陽大論 。 彼書雖稱取方於仲景 。 然取捨任意 。 加以妄說 。 謂人參無補而治心下痞硬 。 附子非溫而逐水氣 。 然則仲景何不捨人參用枳實 。 代附子以甘遂乎 。 可謂無稽之言矣 。 可為嘆息者二也 。 夫政有王霸之別 。 吏有循酷之異 。 醫道亦然 。 彼書論術甚率易 。 分證尤忽略 。 不求標本 、 不究病因 。 有攻而無補矣 。 譬猶李斯商鞅之術 。 郅都杜周之治 。 如此而不敗者幾希也 。 可大息者三也 。 雖死生有命 。 醫事所關亦大矣 。 原治術之得法以回生 。 與失宜以速死 。 則可以知之矣 。 吉益子謂死生者醫所不與也 。 此言之弊 。 終令庸愚者 。 視人死如風花 。 籲 。 民病將疇依 。 可為流涕者四也 。 其最勝悲者 。 初誕嬰兒 。 不辨稟賦渥薄 。 一切攻擊之施 。 古今經法 。 置而不論 。 臆斷所是 。 無少顧疑 。 至痘疹之治 。 慘刻益酷 。 可不謂忍乎 。 可為流涕者五也 。 此五者 。 誠足以為天下後世之患 。 夫俗樂悅耳 。 詭辯驚聽 。 彼人之論 。 亦取快一時 。 而其實有不測之禍 。 不可不辨也 。 作斥醫斷 。
나는 학씨가 편찬한 길익자의 《의단》을 읽고 책을 덮으며 탄식하였다. 길게 탄식할 만한 것이 셋이고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둘이며 그 밖에 이치를 어기고 도를 해치는 것은 다 들기 어렵다. 의학은 비록 작은 도이나 정밀한 이치와 오묘한 작용은 성인이 아니면 처음 닦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고금 의가에 남보다 월등한 탁식과 준재가 있더라도 논변과 취사는 한결같이 경에 절충하였으며 끝내 그 자취를 바꾸지 못하였다. 사람 목숨이 매여 있어 지극히 중대하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저 책은 단연코 의경을 물리치고 음양을 버려 고금에 변하지 않는 도를 바꾸고 그 단서를 달리하였다. 아, 이 말이 행해지면 뒤에 그 폐단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탄식할 만한 첫째이다. 중경의 밝고 민첩함으로도 오히려 《소문》과 《음양대론》에서 믿음을 질정하였다. 저 책은 중경에게서 처방을 취한다고 하지만 취사가 제멋대로이며 망설을 더하여 인삼은 보하지 않고 심하비경을 다스리며 부자는 덥히지 않고 수기를 쫓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경은 어찌 인삼을 버리고 지실을 쓰지 않았으며 부자를 감수로 대신하지 않았는가. 근거없는 말이라 할 만하니 탄식할 만한 둘째이다. 정치에는 왕도와 패도의 구별이 있고 관리에는 순리와 혹리의 차이가 있으며 의도도 그러하다. 저 책은 의술을 논함이 매우 경솔하고 증을 나눔이 더욱 소홀하여 표본을 구하지 않고 병인을 궁구하지 않으며 공은 있고 보는 없다. 비유하면 이사와 상앙의 술, 질도와 두주의 다스림 같으니 이러고도 패하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크게 탄식할 만한 셋째이다. 생사에 명이 있어도 의사가 관계하는 바 역시 크다. 치료가 법에 맞아 삶을 되돌리는 것과 적의를 잃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을 근원에서 살피면 알 수 있다. 길익자는 생사는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의 폐단은 끝내 어리석은 자가 사람의 죽음을 바람에 지는 꽃처럼 보게 한다. 아, 병든 백성이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눈물을 흘릴 만한 넷째이다. 가장 슬픈 것은 갓 태어난 영아에게 부여받은 바의 후박을 가리지 않고 일절 공격을 시행하는 것이다. 고금의 경법을 버려두고 논하지 않으며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바를 억단하여 조금도 돌아보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두진 치료에 이르면 참혹함이 더욱 심하니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눈물을 흘릴 만한 다섯째이다. 이 다섯 가지는 참으로 천하 후세의 근심이 되기에 충분하다. 속된 음악은 귀를 즐겁게 하고 궤변은 듣는 이를 놀라게 한다. 저 사람의 논의도 한때 통쾌함을 취하지만 실제로는 헤아릴 수 없는 화가 있으니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척의단》을 짓는다.
古人謂醫為司命官者 。 蓋本諸扁鵲之言 。 是不知道者耳 。 (至)誣扁鵲惑來學者 。 莫斯為甚矣 。
옛사람이 의사를 사명관이라 한 것은 대개 편작의 말에 근거한 것이지만 이는 도를 알지 못하는 자일 뿐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편작을 무고하고 후학을 미혹하는 데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
司命出周禮 。 星名也 。 扁鵲引而諭之 。 思邈藉以名醫 。 猶管子以穀米為民之司命 。 孫子曰 。 將者人之司命 。 可以徵也 。 聖人制醫藥 。 以濟民夭死 。 則借司命以名醫 。 亦何不可之有哉 。 誣扁鵲惑來學者為誰也 。 可謂離蹤而跂訾者也 。
사명은 《주례》에 나오며 별 이름이다. 편작은 이를 인용하여 비유하였고 사막은 빌려서 의사를 이름하였다. 관자가 곡미를 백성의 사명이라 하고 손자가 장수는 사람의 사명이라 한 것으로 증명할 수 있다. 성인이 의약을 만들어 백성의 요절을 구하였으니 사명을 빌려 의사를 이름한들 또 무엇이 불가하겠는가. 편작을 무고하고 후학을 미혹하는 자는 누구인가. 자취를 떠나 발돋움하여 헐뜯는 자라 할 만하다.
死生者命也 。 自天作之 。 (至)醫焉能死生之哉 。
죽음과 삶은 명이며 하늘에서 만든 것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의사가 어찌 죽이거나 살릴 수 있겠는가.
死生有命 。 出子夏之言 。 顏子而夭 。 盜蹠而壽 。 貴不能奪 。 賤不得讓 。 數盈運盡 。 無奈之何 。 此夫人所知 。 何煩說之為 。 然亦有不幸者 。 有自取者 。 王仲任所謂強弱壽夭之命 。 所當觸值之命 。 及正命 。 遭命 。 隨命等之說 。 議論多端 。 終難得其要領 。 此即聖人所罕言也 。 而況非聖者乎 。 蓋煩說之必惑人 。 輕言之則傷物 。 言之有弊 。 先賢慎焉 。 夫惟忠臣烈士 。 捨生而取仁 。 犯難而踏義者 。 臨時自斷曰死生命也則可已 。 其佗或為欲伐性 。 因忿忘身者 。 至其不可奈何 。 乃亦曰命也 。 此豈命哉 。 乃自求也 。 然亦自傷而止 。 無害乎人矣 。 惟刑官與醫者 。 決不可言命也 。 言必有害乎物焉 。 何則 。 醫與刑官 。 皆與生殺之事者也 。 平反則多活 。 失入則多冤 。 診應病而起 。 方失法而斃 。 片紙具案 。 一匙藥劑 。 殺無辜而折多壽 。 莫斯可畏 。 以生殺為重任 。 畏之慎之 。 猶恐得罪於造化 。 而況一托之於命 。 而謂己不與焉乎 。 此非所宜言也 。 又敢唱以導人乎 。 若其說之行也 。 庸醫凡工 。 不論己術之粗妄 。 人死則曰 。 病吾除之 。 死生命也 。 醫不與焉 。 黠者藉以為口實 。 愚者信以為實然 。 競為酸酷 。 無復忌憚 。 其禍豈可勝言也哉 。 出言不善 。 弊至於此 。 凡為醫者 。 所宜深察者也 。
생사에 명이 있다는 것은 자하의 말에서 나왔다. 안자는 일찍 죽고 도척은 오래 살았으며 귀하다고 빼앗을 수 없고 천하다고 사양할 수 없다. 수가 차고 운이 다하면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인데 어찌 번거롭게 설명하겠는가. 그러나 불행한 경우도 있고 스스로 취한 경우도 있다. 왕중임의 이른바 강약수요의 명, 마땅히 만나야 하는 명 및 정명·조명·수명 등의 설은 논의가 여러 갈래여서 끝내 요령을 얻기 어렵다. 이것이 곧 성인도 드물게 말한 것인데 하물며 성인이 아닌 자이겠는가. 번거롭게 말하면 반드시 사람을 미혹하고 가볍게 말하면 사람을 해친다. 말하는 데 폐단이 있으므로 선현이 삼갔다. 오직 충신과 열사가 삶을 버리고 인을 취하며 어려움을 무릅쓰고 의를 밟을 때 임시에 스스로 생사는 명이라고 결단하는 것은 괜찮다. 그 밖에 욕심으로 성품을 해치거나 분노로 몸을 잊은 자가 어찌할 수 없게 된 뒤 역시 명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어찌 명인가. 곧 스스로 구한 것이다. 그래도 스스로 상하는 데 그쳐 남에게 해롭지는 않다. 오직 형관과 의사는 결코 명을 말해서는 안 된다. 말하면 반드시 사람에게 해롭다. 무엇 때문인가. 의사와 형관은 모두 생살에 관여하는 자이다. 억울한 판결을 바로잡으면 많이 살리고 잘못 죄에 넣으면 억울한 사람이 많아진다. 진찰이 병에 응하면 일어나고 처방이 법을 잃으면 죽는다. 한 장의 문서로 만든 사건 기록과 한 숟갈의 약제가 무고한 자를 죽이고 긴 수명을 꺾으니 이보다 두려운 것이 없다. 생살을 중임으로 삼아 두려워하고 삼가도 조화에 죄를 얻을까 염려되는데 하물며 한결같이 명에 맡기고 자신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겠는가. 이는 마땅히 할 말이 아닌데 또 감히 외쳐 남을 이끌겠는가. 그 설이 행해지면 용렬한 의사는 자기 의술의 거칠고 망령됨을 논하지 않고 사람이 죽으면 병은 내가 제거하였으나 생사는 명이며 의사는 관여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교활한 자는 구실로 삼고 어리석은 자는 실제로 그렇다고 믿어 다투어 가혹하게 하면서 다시는 꺼리지 않을 것이니 그 화를 어찌 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을 선하게 하지 않은 폐단이 여기에 이르니 의사가 된 자는 깊이 살펴야 한다.
死生者醫之所不與也 。 (至)執古之方 。 體今之病 。 能合仲景之規矩而死者命也 。 質諸鬼神 。 吾無愧爾 。
죽음과 삶은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옛 처방을 잡고 지금의 병을 체득하여 중경의 규구에 맞게 하였는데도 죽은 것은 명이다. 귀신에게 질정하더라도 나에게 부끄러움이 없다.
天地大德曰生 。 聖人為醫藥 。 濟民夭死 。 書稱天工人其代之 。 周禮載凡民之有疾病者 。 分而治之 。 死終則各書其所以 。 而入於醫師 。 歲終則稽其醫事 。 以制其食祿 。 先王所以慎死生者 。 至矣 。 盡矣 。 死生而醫不與 。 則何為書死終以制食祿乎 。 嗚呼契然無心於死生者 。 非醫矣 。 是以良工知幾微而治腠理 。 故使良醫得蚤從事 。 則疾可已也 。 身可活也 。 及其入膏肓也 。 雖神醫無奈之何 。 吉益子言死生者醫之所不與者 。 蓋本諸扁鵲之言也 。 然亦不知本者已 。 扁鵲之言曰 。 越人非能生死人也 。 此自當生者 。 越人能使之起耳 。 此以未入骨髓者 。 與既在膏肓者言之矣 。 若使齊桓蚤從扁鵲之言 。 則病可已也 。 身可活也 。 有病不治而死 。 不可謂命也 。 虢太子待扁鵲而蘇 。 可以見也 。 故使良醫蚤從事 。 則病者或以愈 。 且死或以生 。 然世醫專以死生為己任者 。 疑乎仁 。 其失愚也 。 言死生醫不與者 。 疑乎知 。 其失賊也 。 愚與賊 。 君子不由焉 。 醫當以可治為可治 。 以不可治為不可治 。 何必言命耶 。 治人病不愈 。 而皆謂之命也 。 豈理哉 。 假令仲景當之 。 我不信焉 。 況不為仲景者乎 。 況不合仲景之規矩者乎 。 須徵諸聖人之言 。 而後言命也 。 不揣其本而齊其末 。 方寸之木 。 可使高於岑樓 。 此之謂也 。
천지의 큰 덕을 생이라 한다. 성인은 의약을 만들어 백성의 요절을 구하였다. 《서》는 하늘의 일을 사람이 대신한다고 하였고 《주례》는 백성 중 질병이 있는 자를 나누어 다스리고 죽으면 각각 그 까닭을 써서 의사에게 들이며 연말에는 의사를 고찰하여 녹봉을 정한다고 기록하였다. 선왕이 생사를 삼간 것이 지극하고 다하였다. 생사에 의사가 관여하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죽은 까닭을 써서 녹봉을 정하겠는가. 아, 무심히 생사를 마음에 두지 않는 자는 의사가 아니다. 그러므로 양공은 기미를 알아 주리에서 다스린다. 양의가 일찍 치료하게 하면 병이 그칠 수 있고 몸이 살 수 있다. 고황에 들어간 뒤에는 신의라도 어찌할 수 없다. 길익자가 생사는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한 것은 대개 편작의 말에 근거하였으나 역시 근본을 알지 못한 것일 뿐이다. 편작은 월인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본래 마땅히 살 자를 월인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이는 아직 골수에 들어가지 않은 자와 이미 고황에 있는 자를 놓고 말한 것이다. 제환이 일찍 편작의 말을 따랐다면 병이 그칠 수 있었고 몸이 살 수 있었다. 병이 있는데 다스리지 않아 죽은 것을 명이라 해서는 안 된다. 괵태자가 편작을 기다려 소생한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양의가 일찍 치료하게 하면 병든 자가 혹 낫고 죽으려던 자가 혹 산다. 그러나 세상 의사가 오로지 생사를 자기 임무로 삼는 것은 인과 비슷하지만 그 잘못은 어리석음이다. 생사에 의사가 관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지와 비슷하지만 그 잘못은 해침이다. 어리석음과 해침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 의사는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치료할 수 없는 것은 치료할 수 없다고 해야 하니 무엇 때문에 반드시 명을 말하겠는가. 남의 병을 다스려 낫지 않으면 모두 명이라 하니 어찌 이치인가. 설령 중경이 이를 맡았다 해도 나는 믿지 않을 것인데 하물며 중경이 아닌 자이며 하물며 중경의 규구에도 맞지 않는 자이겠는가. 성인의 말씀에서 증명한 뒤 명을 말해야 한다. 뿌리를 헤아리지 않고 끝을 가지런히 하면 한 치 네모의 나무를 높은 누각보다 높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世醫動輒預定其死生 。 彼其意謂斃於吾手 。 則害於名矣 。 (至)死生醫之所不與也 。
세상 의사는 걸핏하면 미리 생사를 정한다. 그 뜻은 내 손에서 죽으면 명성에 해롭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생사는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知人死生 。 決嫌疑 。 定可治 。 醫之能事也 。 古之道也 。 工拙之所以分也 。 何尤世醫之為哉 。 彼既謂眂其死 。 猶且盡我術以望其或生 。 然而不生 。 然後可謂命也已矣 。 嗚呼視不可治而欲治之 。 愚也 。 古人不為之 。 非為害於名 。 治之無益也 。 是扁鵲所以視桓侯之不可藥而逃去也 。 其言忘死生於執刀圭之間 。 闢諸操舟者 。 言忘覆沒於檝棹之間 。 豈可哉 。
사람의 생사를 알고 의심을 결단하며 치료할 수 있는지를 정하는 것은 의사의 능사이며 옛 도이고 능숙함과 서투름이 나뉘는 바이다. 무엇 때문에 세상 의사를 탓하는가. 저자는 이미 죽을 것으로 보더라도 내 의술을 다하여 혹 살기를 바라며 그래도 살지 못한 뒤에야 명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아, 치료할 수 없음을 보고도 치료하려는 것은 어리석으며 옛사람은 하지 않았다. 명성을 해치기 때문이 아니라 치료해도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편작이 환후에게 약을 쓸 수 없음을 보고 달아난 까닭이다. 약을 다루는 사이에 생사를 잊는다는 말은 비유하면 배를 모는 자가 노 젓는 사이에 뒤집히고 가라앉는 것을 잊는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되겠는가.
元氣之說 。 聖人之所不言 。 六經莫有焉 。 (至)是豈可虛衰者哉 。 亦可補乎哉 。
원기설은 성인이 말하지 않았고 육경에도 없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이것이 어찌 허하거나 쇠할 수 있으며 또 보할 수 있겠는가.
元氣之說 。 雖不具於六經 。 其義則備焉 。 吉子以名求之而不得 。 輒謂六經莫有 。 聖人之所不言 。 可不謂昧乎物乎 。 夫元者萬物之初 。 是以易之教 。 以元為大 。 曰 。 大哉乾元萬物資始 。 至哉坤元 。 萬物資生 。 乃天地之大德 。 所以生生不已者 。 非氣而何也 。 擊辭曰 。 精氣為物 。 祭義曰 。 氣也者神之盛也 。 在天為元 。 在人為仁 。 在人身為體之長矣 。 孔子曰 。 元者善之長也 。 天非元無以運化乎萬物 。 君非元無以運化乎天下 。 人身非元無以運化乎四肢百骸也 。 夫元原於天 。 行於人 。 通於萬物 。 呼為統名 。 此亦不外於天地自然者也 。 彼曰 。 是豈可虛衰者哉 。 亦豈可補乎哉 。 非也 。 此氣衰 。 則化育失時 。 災害並至 。 君不君 。 臣不臣 。 干戈爭起 。 天地四塞 。 禮記曰 。 氣衰則生物不遂 。 衰氣不可不益 。 易曰 。 損而不已 。 必益 。 故受之以益 。 書曰燮理陰陽 。 寅亮天地 。 可見此元氣或時虛衰 。 亦可以益之 。 後以裁成天地之道 。 輔相天地之宜 。 天地之氣 。 且可益 。 況於人身哉 。 孟柯曰 。 氣 。 體之充也 。 苟得其養 。 無物不長 。 夫名定而實辨 。 言正而義行 。 彼妒繆於道 。 而誘其所好也 。 荀卿以為亂正名使民疑惑 。 則謂之大奸 。 豈可不慎哉 。
원기설이 육경에 갖추어 있지는 않아도 그 뜻은 갖추어져 있다. 길자는 이름으로 구하다 얻지 못하자 곧 육경에 없으며 성인이 말하지 않았다고 하니 사물에 어둡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원은 만물의 처음이다. 그러므로 《역》의 가르침은 원을 크게 여겨 크도다 건원이여 만물이 의지하여 시작하며 지극하도다 곤원이여 만물이 의지하여 생긴다고 하였다. 이는 천지의 큰 덕으로 생겨나게 함이 그치지 않는 것인데 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격사〉는 정기가 사물이 된다고 하였고 〈제의〉는 기란 신의 성함이라고 하였다. 하늘에서는 원이 되고 사람에게서는 인이 되며 사람 몸에서는 몸의 으뜸이 된다. 공자는 원은 선의 으뜸이라고 하였다. 하늘은 원이 아니면 만물을 운화할 수 없고 임금은 원이 아니면 천하를 운화할 수 없으며 사람 몸은 원이 아니면 사지백해를 운화할 수 없다. 원은 하늘에 근원하여 사람에게 행해지고 만물에 통하므로 통괄하는 이름으로 부르며 이 역시 천지의 자연을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는 이것이 어찌 허쇠할 수 있으며 또 어찌 보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으나 그르다. 이 기가 쇠하면 화육이 때를 잃고 재해가 함께 이르며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아 전쟁이 다투어 일어나고 천지가 사방으로 막힌다. 《예기》에서 기가 쇠하면 생물이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쇠한 기를 더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역》은 덜어내기를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더하므로 익으로 잇는다고 하였고 《서》는 음양을 조화롭게 다스리며 공경히 천지를 돕는다고 하였다. 이 원기가 때로 허쇠하고 또한 더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임금이 천지의 도를 재성하고 천지의 마땅함을 보좌한다. 천지의 기도 더할 수 있는데 하물며 사람 몸이겠는가. 맹가는 기는 몸을 채우는 것이며 진실로 기름을 얻으면 자라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이름이 정해지면 실제가 분별되고 말이 바르면 뜻이 행해진다. 저자는 도에 어그러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바로 이끈다. 순경은 바른 이름을 어지럽혀 백성을 의혹하게 하는 것을 대간이라 하였으니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若夫隨年齒而旺衰者 。 天地之道 。 萬物之常也 。 (至)說者不論及此 。 誤矣 。 隨年齒而形與神旺衰者 。 素問論之詳矣 。 夫元氣之在全軀也 。 徹上徹下 。 無所不至 。 此氣也 。 分之則為陽 。 為陰 。 為精神 。 生氣通天論曰 。 其氣三 。 是也 。 有所抑遏而不流 。 則為病 。 所謂壯者氣行則已 。 怯者則著而為病 。 此非真氣之衰也 。 氣不流 。 有似乎衰耳 。 所以不用補氣之藥 。 反施耗氣之劑也 。 內經所論 。 陳言戴人所說 。 亦不可不知焉 。 豈說者不論及此乎 。 彼適不思諸已 。
나이에 따라 왕성해지고 쇠하는 것은 천지의 도이며 만물의 상도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논하는 자가 이에 미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나이에 따라 형과 신이 왕성해지고 쇠하는 것은 《소문》에서 자세히 논하였다. 원기가 온몸에 있는 것은 위아래로 꿰뚫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이 기를 나누면 양이 되고 음이 되며 정신이 된다. 〈생기통천론〉에서 그 기가 셋이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억눌러 막히는 바가 있어 흐르지 않으면 병이 되니 이른바 장한 자는 기가 돌면 그치고 겁약한 자는 붙어서 병이 된다는 것이다. 이는 진기가 쇠한 것이 아니라 기가 흐르지 않아 쇠한 듯할 뿐이다. 그래서 보기약을 쓰지 않고 도리어 기를 소모하는 약제를 쓰는 것이다. 《내경》에서 논한 것과 진언·대인이 말한 것 역시 알지 않을 수 없다. 어찌 논하는 자가 이에 미치지 않았겠는가. 저자가 마침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人心之不同 。 如其面也 。 脈亦然 。 (至)先證而不先脈 。 先腹而不先證也 。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은 얼굴이 다른 것과 같으며 맥도 그러하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증을 앞세우고 맥을 앞세우지 않으며 배를 앞세우고 증을 앞세우지 않는다.
古人以四診病 。 自望始焉 。 蓋診外及內也 。 彼盭經旨 。 反古法 。 誰入不由戶 。 其以人心之不同 。 比脈之有異 。 可謂非類矣 。 若夫堯桀之心 。 霄壤不啻也 。 然其臂不為桀短 。 不為堯長 。 則脈亦豈天淵乎 。 故曰 。 以心比脈 。 可謂非類矣 。
옛사람은 사진으로 병을 진찰하되 망진부터 시작하였으니 밖을 진찰하여 안에 미치는 것이다. 저자는 경의 뜻을 어기고 고법을 뒤집었으니 누가 문을 통하지 않고 들어가는가. 사람 마음이 다름으로 맥이 다름을 비유한 것은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할 만하다. 요와 걸의 마음은 하늘과 땅만큼 다를 뿐 아니라 그 이상이다. 그러나 팔이 걸이라서 짧거나 요라서 길지는 않으니 맥 또한 어찌 하늘과 깊은 못만큼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마음으로 맥을 비유한 것은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할 만하다.
扁鵲曰 。 越人之為方也 。 不待切脈望色聽聲寫形 。 言病之所在 。 可以見已 。
편작은 월인이 처방하는 것은 맥을 짚고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형체를 살피기를 기다리지 않고 병이 있는 곳을 말한다고 하였으니 알 수 있다.
扁鵲欲奇己術 。 故張言以誇中庶子 。 其不待切脈望色聽聲寫形者 。 此誇張之言耳 。 及其入診太子 。 則曰陽脈下遂 。 陰脈上爭 。 此切脈也 。 上有絕陽之絡 。 下有破陰之紐 。 破陰絕陽之色已廢 。 此望色也 。 及其聞耳鳴而鼻張 。 循其兩股以至於陰 。 則聽聲與寫形之診 。 可謂詳且明矣 。 鶴氏之子 。 不能讀書 。 漫引誇張之言 。 以為之證 。 可謂認影響失其實者已 。
편작은 자기 의술을 기이하게 보이려 하였으므로 말을 크게 하여 중서자에게 자랑하였다. 맥을 짚고 색을 보고 소리를 듣고 형체를 살피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은 과장한 말일 뿐이다. 들어가 태자를 진찰할 때 양맥은 아래로 내려가고 음맥은 위로 다툰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절맥이다. 위에는 끊어진 양의 락이 있고 아래에는 깨진 음의 매듭이 있으며 파음절양의 색이 이미 사라졌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망색이다. 귀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코가 벌어진 것을 보며 두 넓적다리를 따라 음부에 이르렀으니 청성과 사형의 진찰은 상세하고 밝다고 할 만하다. 학씨는 책을 읽을 줄 모르고 함부로 과장한 말을 끌어다 증거로 삼았으니 그림자와 메아리를 알아보고 실제를 잃은 자라 할 만하다.
如留飲家脈 。 千狀萬形 。 或無或有 。 不得而詳矣 。 夫脈之不足以證也如此 。 (至)自欺之甚矣 。 醫其思諸 。
유음가의 맥 같은 것은 천태만상으로 혹 없고 혹 있어 자세히 알 수 없다. 맥이 증거가 되기에 부족한 것이 이와 같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속임이 심하다. 의사는 생각해야 한다.
留飲之脈 。 或伏或見 。 如結如散 。 不可以名狀者 。 此所以為留飲之脈也 。 病怪則脈亦怪 。 如沙脹邪祟 。 有此病則有此脈 。 怪病亦有屬飲者 。 皆脈道窒礙所致已 。 醫眩此而言脈不足以證者 。 可謂執一廢百矣 。 五十動代脈之說 。 靈樞八十一難論之 。 仲景亦謂動數不滿五十 。 短期未知 。 夫代者止歇不還之脈 。 陽氣竭盡 。 而氣脈不接續也 。 至或如雀啄 。 或如屋漏 。 或如弦絕者 。 與死為鄰也 。 仲景曰 。 得此脈者必難治 。 所謂予之短期也 。 進退動數 。 以見緩急輕重之候 。 豈可謂無此理乎 。 其佗如傷寒心悸脈代者 。 腹痛結澀止代者 。 妊婦惡阻脈代 。 及結促者 。 阻滯去則脈復平 。 不可一途而論之也 。 至匿其病情 。 令醫診之 。 以驗其工拙 。 則蘇東坡有論闢之 。 慎疾者不可以不知焉 。
유음의 맥은 혹 숨어 있고 혹 나타나며 맺힌 듯 흩어진 듯하여 이름하고 형상화할 수 없으니 이것이 유음의 맥이 되는 까닭이다. 병이 괴이하면 맥도 괴이하다. 사창·사수 같은 것은 그 병이 있으면 그 맥이 있으며 괴병에도 음에 속한 것이 있으니 모두 맥도가 막혀 생긴 것일 뿐이다. 의사가 여기에 현혹되어 맥이 증거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를 잡고 백을 버린다고 할 만하다. 쉰 번 뛰는 것과 대맥의 설은 《영추》와 《팔십일난》에서 논하였으며 중경도 뛰는 수가 쉰에 차지 않으면 짧은 기한을 아직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대는 멎어 쉬고 돌아오지 않는 맥으로 양기가 다하여 기맥이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혹 참새가 쪼는 듯하고 지붕에서 물이 새는 듯하며 활시위가 끊어진 듯한 데 이르면 죽음과 이웃한다. 중경은 이 맥을 얻으면 반드시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짧은 기한을 주는 것이다. 뛰는 수의 진퇴로 완급과 경중의 징후를 보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이치가 없다고 하겠는가. 그 밖에 상한으로 심계하고 맥이 대하거나 복통하면서 맥이 결삽하고 멎거나 대하거나 임부의 오조에 맥이 대하거나 결·촉하는 경우에는 막힌 것이 제거되면 맥이 평상으로 돌아오니 한 가지 길로 논해서는 안 된다. 병정을 숨기고 의사에게 진찰하게 하여 능숙함과 서투름을 시험하는 것은 소동파가 논하여 물리친 바 있으니 병을 삼가는 자는 알지 않을 수 없다.
腹者有生之本 。 故百病根於此焉 。 (至)宜取古法而求其要矣 。
배는 생명이 있는 것의 근본이므로 백병이 여기에서 뿌리내린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옛 법을 취하여 요점을 구해야 한다.
視疾之法 。 背腹手足上下 。 無所不診焉 。 如仲景所謂結胸病正在心下 。 按之則痛 。 但滿而不痛者 。 此為痞 。 及按之濡 。 按之石便 。 按腹之法 。 蓋為審也 。 其寒熱虛實 。 腎間丹田 。 若夫里結硬糞 。 可探而知焉 。 則可以知病之狀也 。 豈啻腹已哉 。 如扁鵲循其兩股以至於陰 。 可觀大表之間 。 無所不診也 。
병을 살피는 법은 등·배·손발·위아래에서 진찰하지 않는 곳이 없다. 중경이 말한 결흉병은 바로 심하에 있어 누르면 아프며 그득하기만 하고 아프지 않은 것은 비가 된다는 것과 눌러 부드러운 것, 눌러 돌처럼 단단한 것 같은 것이 있다. 배를 누르는 법은 자세히 살피기 위한 것으로 그 한열허실과 신간·단전을 살피며 속에 단단한 대변이 맺힌 것 같은 것은 더듬어 알 수 있으니 병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어찌 배뿐이겠는가. 편작이 두 넓적다리를 따라 음부에 이른 것에서 큰 겉면 사이에 진찰하지 않는 곳이 없음을 알 수 있다.
周禮曰 。 參之以九藏之動 。 而不分腑也 。 仲景未嘗論矣 。 無益於治也 。 (至)其說弗啻堅白 。 要皆非治疾之用也 。
《주례》에서 구장의 움직임으로 참험한다고 하였으나 부를 나누지는 않았다. 중경도 일찍이 논하지 않았으니 치료에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 설은 견백론 못지않으며 요컨대 모두 병을 다스리는 데 쓸 것이 아니다.
甚矣哉 。 吉益氏之解醫也 。 以周禮不分藏府 。 非醫書之言 。 周禮之書 。 非為治疾而設 。 其言何一一盡醫理乎 。 彼既不能以周禮治疾 。 而以醫書治病 。 則醫之言不可以不取則焉 。 如吉氏謂藏府 。 陰陽 。 腎命門 。 心包三焦之說 。 無益於治而不取 。 闢猶以眉發為無益於身而去之 。 眉發在身 。 身未必肥 。 眉發去身身未必瘦 。 而不去之者 。 以具體不可缺也 。 古人垂法正名 。 豈但眉發之於身乎 。 且仲景曰 。 清邪中於上焦 。 濁邪中於下焦 。 又曰 。 屬藏者攻之 。 不令發汗 。 屬府者 。 不令溲數 。 溲數則大便硬 。 是等語皆緊要 。 其佗內經所論 。 難經所辨 。 暨千金 。 外臺 。 類於法 。 品於治 。 豈無益於治乎 。 而言仲景未嘗論 。 鹵莽殊甚 。
심하구나, 길익씨가 의학을 풀이함이여. 《주례》가 장부를 나누지 않은 것으로 의서의 말을 그르다 한다. 《주례》는 병을 다스리려고 마련한 책이 아니니 어찌 그 말이 하나하나 의리를 다하겠는가. 저자는 이미 《주례》로 질병을 다스리지 못하고 의서로 병을 다스리니 의학의 말을 법칙으로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길씨가 장부·음양·신·명문·심포·삼초의 설은 치료에 이익이 없다며 취하지 않는 것은 비유하면 눈썹과 머리카락이 몸에 이익이 없다며 제거하는 것과 같다. 눈썹과 머리카락이 몸에 있다고 몸이 반드시 살찌는 것은 아니고 몸에서 없앤다고 반드시 여위는 것은 아니지만 없애지 않는 것은 몸을 갖추는 데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법을 남기고 이름을 바로잡은 것이 어찌 몸의 눈썹과 머리카락 정도일 뿐이겠는가. 또 중경은 청사는 상초에 맞고 탁사는 하초에 맞는다고 하였으며 장에 속하면 공격하되 발한시키지 말고 부에 속하면 소변을 자주 보게 하지 말아야 하니 소변을 자주 보면 대변이 단단해진다고 하였다. 이런 말은 모두 긴요하다. 그 밖에 《내경》의 논의와 《난경》의 변별 및 《천금》·《외대》에서 법에 분류하고 치료에 품별한 것이 어찌 치료에 이익이 없겠는가. 그런데 중경이 일찍이 논하지 않았다고 하니 거칠고 소홀함이 유달리 심하다.
十二經十五絡者 。 (至)亦妄說耳 。 不可從也 。
십이경과 십오락은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역시 망설일 뿐이므로 따라서는 안 된다.
扁鵲曰 。 中經維絡 。 別下於三焦膀胱 。 又曰 。 絕陽之絡 。 破陰之紐 。 此以經絡視病也 。 夫經絡於人身也 。 闢諸枰之有旄 。 今以經絡為妄不取 。 猶對無旄枰 。 假令弈秋為之 。 終不能善之也 。 史曰 。 必有經紀 。 拙工有一不習 。 文理陰陽失矣 。 此方謂也 。
편작은 경과 락에 맞아 따로 아래로 삼초와 방광에 간다고 하였고 또 끊어진 양의 락과 깨진 음의 매듭이라 하였으니 이는 경락으로 병을 살핀 것이다. 사람 몸의 경락은 비유하면 바둑판에 모가 있는 것과 같다. 이제 경락을 망령되다 하여 취하지 않는 것은 모가 없는 바둑판을 마주하는 것과 같으니 설령 혁추가 하더라도 끝내 잘할 수 없다. 《사》에서 반드시 경기가 있어야 하며 졸공이 한 가지라도 익히지 않으면 문리와 음양을 잃는다고 하였으니 바로 이를 말한다.
本草曰 。 某藥入某經 。 某藏 。 (至)其為牽強 。 可以知已 。 古法唯因上下表里所主 。 而處方不同焉耳 。
본초에서 어느 약은 어느 경과 어느 장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억지임을 알 수 있다. 옛 법은 오직 상하와 표리에서 주관하는 바에 따라 처방이 다를 뿐이다.
醫之用藥也 。 猶將之用兵歟 。 強弱安危之效 。 死生起活之機 。 不可輕也 。 夫兵有正有奇 。 馬步擇地 。 弓刀異便 。 多算勝 。 少算不勝 。 豈唯兵為然哉 。 仲景之論醫也 。 方法有經 。 逆順異治 。 機變不可窮也 。 豈惟上下表里 。 足以盡古法乎 。 如張元素引經報使之說 。 雖古無此說 。 然仲景之方 。 亦皆以桂枝麻黃髮太陽 。 葛根解陽明 。 柴胡和少陽 。 及理中之理中焦 。 白虎 。 十棗 。 承氣 。 抵當 。 均入胃 。 而藥氣之所趨 。 如鼓進金退 。 左麾右指 。 運諸掌上 。 則有此甚於彼者 。 至哉斯術出 。 莫不以合法為本 。 趣變為用 。 苟反於法 。 則安者危 。 不知變 。 則存者亡 。 稽其聚散離合之際 。 不可謂無入經入藏之理矣 。
의사가 약을 쓰는 것은 장수가 군사를 쓰는 것과 같지 않은가. 강약과 안위의 효과, 생사와 회생의 기틀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군사에는 정과 기가 있고 기병과 보병은 땅을 가리며 활과 칼은 편리함이 다르다. 계책이 많으면 이기고 적으면 이기지 못하니 어찌 군사만 그러하겠는가. 중경이 의학을 논한 것은 방법에 상경이 있고 역순에 따라 치료가 달라 기변을 다할 수 없다. 어찌 상하표리만으로 고법을 다하기에 충분하겠는가. 장원소의 인경보사설 같은 것은 옛날에 그 설이 없었더라도 중경의 처방도 모두 계지·마황으로 태양을 발하고 갈근으로 양명을 풀며 시호로 소양을 조화한다. 또 이중이 중초를 다스리고 백호·십조·승기·저당이 모두 위에 들어가되 약기가 향하는 곳은 북을 치면 나아가고 징을 치면 물러나며 왼쪽을 휘두르고 오른쪽을 가리켜 손바닥 위에서 운용하는 듯하니 이쪽이 저쪽보다 더한 경우가 있다. 지극하도다, 이 술이 나와 법에 맞음을 근본으로 삼고 변화에 맞춰 나아감을 쓰임으로 삼지 않는 것이 없다. 법에 어긋나면 편안한 자가 위태로워지고 변화를 모르면 살아 있던 자가 죽는다. 모이고 흩어지며 떨어지고 합하는 때를 상고하면 경에 들어가고 장에 들어가는 이치가 없다고 할 수 없다.
針灸之用 。 一旦馳逐其病 。 非無驗也 。 (至)不必專用 。 亦不拘經絡分數 。 毒之所在 。 灸之刺之是也 。
침구의 쓰임은 일시적으로 병을 몰아내는 데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전적으로 쓰는 것은 아니며 경락의 분수에도 구애되지 않고 독이 있는 곳에 뜸을 뜨고 찌르면 될 뿐이다.
針灸之有經紀 。 內經之法古也 。 扁鵲刺三陽五會 。 仲景刺期門於太陽之縱及橫 。 其它屍厥刺巨厥 。 期門 。 太陽少陽並病刺大椎及肝俞 。 太陽病刺風池風府 。 且灸少陰 。 灸厥陰 。 不一而止 。 後世不敢易紀律 。 而精術妙手 。 出於其間者不鮮矣 。 今滅法立違 。 而實經絡分數於度外 。 嗚呼弓矢不調 。 則羿不能以中微 。 六馬不和 。 則造父不能以致遠 。 此之謂也 。
침구에 경기가 있는 것은 《내경》의 옛 법이다. 편작은 삼양오회에 자침하였고 중경은 태양의 종과 횡에 기문을 자침하였다. 그 밖에 시궐에 거궐·기문을 자침하고 태양소양병병에 대추와 간유를 자침하며 태양병에 풍지·풍부를 자침하고 또 소음에 뜸뜨고 궐음에 뜸뜨는 것이 한 가지에 그치지 않는다. 후세가 감히 기율을 바꾸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서 정묘한 의술과 묘수가 나온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 법을 없애고 어긋남을 세워 경락의 분수를 도외시한다. 아, 활과 화살이 맞지 않으면 예도 작은 과녁을 맞힐 수 없고 여섯 말이 조화롭지 않으면 조보도 멀리 갈 수 없다는 것이 이를 말한다.
營衛者 。 氣血之別稱也 。 (至)非疾醫之用也 。 不可從也 。
영위는 기혈의 별칭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질의가 쓸 것이 아니므로 따라서는 안 된다.
營衛者 。 水穀精悍之氣也 。 不可直指為氣血之別稱也 。 蓋運行一身經脈之中外 。 如經營衛護然也 。 爪之生 。 發之長 。 營衛之行 。 無少間斷 。 均是氣血也 。 運行者曰榮衛 。 盈滿者曰氣血 。 猶水之與流也 。 如謂流是水之別稱 。 豈理也哉 。 故仲景之書 。 有並稱榮衛氣血者可以徵焉也 。 或榮衛和則愈 。 或榮衛強弱 。 榮衛不能相將 。 三焦無所仰等語 。 皆切於治者也 。 彼言非醫之用也 。 不思諸甚矣夫 。
영위는 수곡의 정하고 사나운 기이며 곧바로 기혈의 별칭이라고 지목할 수 없다. 온몸 경맥의 안팎을 운행하는 것이 경영하고 위호하는 것과 같다. 손발톱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자라며 영위가 도는 데 조금도 끊임이 없다. 모두 기혈이지만 운행하는 것을 영위라 하고 가득 차는 것을 기혈이라 하니 물과 흐름의 관계와 같다. 흐름이 물의 별칭이라고 한다면 어찌 이치인가. 그러므로 중경의 책에 영위와 기혈을 나란히 부른 것이 있어 증명할 수 있다. 영위가 조화되면 낫는다고 하거나 영위의 강약, 영위가 서로 거느리지 못함, 삼초가 의지할 곳이 없음 등의 말은 모두 치료에 절실하다. 저자는 의사가 쓸 것이 아니라고 하니 생각하지 않음이 심하다.
陰陽者 。 天地之氣也 。 無取於醫矣 。 (至)非唯無益於治 。 反以惑人 。 學者思諸 。
음양은 천지의 기이며 의학에서 취할 것이 없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치료에 이익이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사람을 미혹하니 배우는 자는 생각해야 한다.
夫天者氣而不質 。 地者質而不氣 。 人則氣質合焉 。 氣陽也 。 質陰也 。 此人身陰陽顯然者也 。 彼吉益子者 。 體不具陰陽則已 。 然彼既謂 。 今天地即古天地 。 人物亦然 。 如果不具陰陽 。 則人物亦非古之人物也 。 何言之相矛盾乎 。 陰陽之於醫事古人規則 。 莫外於此 。 豈可悖焉哉 。 扁鵲謂以陽入陰 。 所以治虢太子也 。 仲景曰 。 陽不足 。 陰不足 。 陽結 。 陰結 。 陰陽會通 。 陽去入陰 。 所以治本陰陽也 。 若或置陰陽而不論 。 偶一得功 。 亦是詭遇已 。 何足尚也 。 夫朱丹溪 。 張介賓之論 。 所見各偏矣 。 所以名不正 。 而言不順也已 。
하늘은 기이고 질이 아니며 땅은 질이고 기가 아니다. 사람은 기와 질이 합한다. 기는 양이고 질은 음이니 이것이 사람 몸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음양이다. 저 길익자라는 자의 몸에 음양이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미 지금의 천지는 옛 천지이며 사람과 사물도 그러하다고 하였다. 과연 음양을 갖추지 않았다면 사람과 사물도 옛 사람과 사물이 아니니 어찌 말이 서로 모순되는가. 음양이 의사에 관계함에서 옛사람의 규칙은 이를 벗어나지 않는데 어찌 어길 수 있겠는가. 편작이 양으로 음에 들어간다고 한 것은 괵태자를 다스린 방법이다. 중경이 양부족·음부족·양결·음결·음양회통·양이 떠나 음에 들어감을 말한 것은 치료가 음양에 근본하기 때문이다. 음양을 버려두고 논하지 않은 채 우연히 한 번 효과를 얻더라도 이는 궤우일 뿐이니 무엇이 숭상할 만한가. 주단계와 장개빈의 논의는 본 바가 각각 치우쳤으므로 이름이 바르지 않고 말이 순하지 않을 뿐이다.
五行之說 。 已見虞書及洪範 。 (至)吾黨所以不取也 。 後人增演其說 。 以誇窮理 。 可謂無用之徒也已 。
오행설은 이미 《우서》와 〈홍범〉에 보인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우리 무리가 취하지 않는 까닭이다. 후인이 그 설을 늘려 펴며 궁리를 자랑하니 쓸모없는 무리라 할 만하다.
醫書 。 以五行配五藏 。 以辨其用與其位 。 其來也 。 尚矣 。 猶周禮官府之六屬 。 以天地四時配之 。 五行氣也 。 故曰行 。 人亦稟天地之氣以生 。 故以氣配之 。 仲景曰 。 夫天布五行以運萬類 。 人稟五常以有五藏 。 五者並行而不相悖者 。 亦唯醫之教為爾 。 如周禮食醫 。 春多酸 。 夏多苦 。 秋多辛 。 冬多咸 。 調以滑甘 。 是以五味配之也 。 又大卜所謂各以其方之色與其體辨之 。 亦可以徵也 。 五行出尚書 。 配當之義見易 。 高明配天 。 搏厚配地 。 此亦可並思也 。 若夫拘束地上五物 。 及生克勝復之理者 。 不足與言治矣 。
의서는 오행을 오장에 배속하여 쓰임과 자리를 변별하였으니 유래가 오래되었다. 《주례》 관부의 여섯 소속에 천지와 사시를 배속한 것과 같다. 오행은 기이므로 행이라 한다. 사람도 천지의 기를 받아 태어나므로 기로 배속한다. 중경은 하늘이 오행을 펴서 만류를 운행하고 사람이 오상을 받아 오장이 있다고 하였다. 다섯이 나란히 행하면서 서로 어긋나지 않는 것은 의학의 가르침도 그러할 뿐이다. 《주례》의 식의가 봄에는 신맛을 많게 하고 여름에는 쓴맛을 많게 하며 가을에는 매운맛을 많게 하고 겨울에는 짠맛을 많게 하여 미끄럽고 단맛으로 조화한다고 한 것은 오미로 배속한 것이다. 또 대복이 말한 각각 그 방위의 색과 체로 변별한다는 것도 증거로 삼을 수 있다. 오행은 《상서》에서 나오고 배속의 뜻은 《역》에 보인다. 높고 밝음은 하늘에 짝하고 넓고 두터움은 땅에 짝한다는 것도 함께 생각할 수 있다. 땅 위 다섯 물건 및 생극승복의 이치에 얽매이는 자와는 치료를 말하기에 부족하다.
五運六氣者 。 無驗於病也 。 考司天在泉 。 (至)要是陰陽家之言 。 奚取疾病醫乎 。
오운육기는 병에서 증험이 없다. 사천과 재천을 상고한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요컨대 음양가의 말인데 어찌 질병을 다스리는 의사에게 취하겠는가.
運氣司天在泉之說 。 無益於治療 。 而有誤乎來學 。 疾病之嬰人身 。 豈可推司運而預期哉 。 況又非內經之原文乎 。 齊褚彥通 。 明王安道 。 繆希雍既辨之 。 可謂英斷也 。 然如周禮疾醫 。 春時有痟首疾 。 夏時有癢疥疾 。 秋時有瘧寒疾 。 冬時有嗽上氣疾 。 及內經陰陽應象論等說 。 醫所當知也 。
운기·사천·재천의 설은 치료에 이익이 없고 후학을 그르치게 한다. 질병이 사람 몸을 얽매는 것을 어찌 맡은 운을 미루어 미리 기약할 수 있겠는가. 하물며 《내경》의 원문도 아님에랴. 제나라의 저언통, 명나라의 왕안도·무희옹이 이미 변별하였으니 영명한 결단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주례》의 질의에서 봄에는 소수질이 있고 여름에는 양개질이 있으며 가을에는 학한질이 있고 겨울에는 수상기질이 있다고 한 것 및 《내경》 〈음양응상론〉 등의 설은 의사가 마땅히 알아야 한다.
世之好言理者 。 必物推事窮 。 至其所不通 。 鑿以誣 。 蓋理本非可惡者也 。 惡其鑿焉耳 。 (至)蓋事理相依不離者也 。 故事為而得之 。 理默而識之 。
세상에서 이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사물에서 미루고 일을 궁구하다가 통하지 않는 곳에 이르면 억지로 파고들어 속인다. 이치 자체가 미워할 만한 것은 아니며 천착을 미워할 뿐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일과 이치는 서로 의지하여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일은 행하여 얻고 이치는 묵묵히 알아차린다.
孟子曰 。 所惡於智者 。 為其鑿也 。 如智者若禹之行水也 。 則無惡於智矣 。 禹之行水也 。 行其所無事也 。 如智者亦行其所無事 。 則智亦大矣 。 醫之為術亦如此也 。 惟理無形 。 以順為形 。 禹之行水 。 亦唯順是行 。 今棄理而臨疾 。 又言不論其所以然者 。 所謂盲人騎瞎馬 。 半夜臨深池 。 籲危焉哉 。
맹자는 지혜에서 미워하는 것은 천착하기 때문이며 지혜로운 자가 우임금이 물을 흐르게 한 것처럼 하면 지혜에 미워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우임금이 물을 흐르게 한 것은 억지로 일삼을 것이 없는 곳을 행한 것이며 지혜로운 자도 억지로 일삼을 것이 없는 곳을 행하면 지혜 또한 클 것이다. 의술도 이와 같다. 이치는 형체가 없고 순함을 형체로 삼으며 우임금이 물을 흐르게 한 것도 오직 순함을 행하였다. 이제 이치를 버리고 질병에 임하며 또 그렇게 되는 까닭을 논하지 않는다고 하니 이른바 눈먼 사람이 눈먼 말을 타고 한밤중에 깊은 못에 임하는 것이다. 아, 위태롭구나.
醫意之說一出 。 而世之狡兒 。 以為口實 。 (至)豈得不差乎 。 學者思諸 。
의의설이 한 번 나오자 세상의 교활한 자들이 구실로 삼았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어찌 어긋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배우는 자는 생각해야 한다.
夫醫之術也 。 出於法而入於意 。 得於手而應於心 。 故其精微之極 。 有不可以言者也 。 苟意之不周 。 惡能至精微乎 。 易曰 。 精義入神 。 以致用也 。 利用安身 。 以崇德也 。 惟舊典可博涉 。 機變則不可預論 。 思之不置 。 神將通也 。 居今之世 。 為古之工唯意與法已 。 醫而不用意 。 奚知其可 。 仲景曰 。 伏氣之病 。 以意候之 。 此於四診之外 。 更示人以意候之法也 。 醫意之說 。 其來也有據矣夫 。
의술은 법에서 나와 뜻으로 들어가며 손에서 얻고 마음에 응하므로 정미함의 극치에는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뜻이 두루 미치지 않으면 어찌 정미함에 이르겠는가. 《역》에서 뜻을 정밀히 하여 신에 들어감은 쓰임을 이루기 위함이며 쓰임을 이롭게 하여 몸을 편안하게 함은 덕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옛 전적은 널리 섭렵할 수 있으나 기변은 미리 논할 수 없다. 생각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신이 통할 것이다. 지금 세상에 살며 옛 양공이 되는 것은 오직 뜻과 법일 뿐이다. 의사가 뜻을 쓰지 않는다면 어찌 괜찮다고 알겠는가. 중경은 복기의 병은 뜻으로 살핀다고 하였으니 사진 외에 다시 뜻으로 살피는 법을 보인 것이다. 의의설의 유래에는 근거가 있다.
世醫以痼疾名持病 。 而難乎治矣 。 至如中風嗝噎脹滿痿躄等 。 難之益甚 。 方不得法也 。 (止)此非入門同道 。 不易論焉 。
세상 의사는 고질을 지병이라 부르며 치료하기 어렵게 여긴다. 중풍·격열·창만·위벽 등에 이르면 더욱 어렵게 여기니 처방이 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구절에서 그침) 이는 입문하여 도를 같이하는 사람이 아니면 쉽게 논할 수 없다.
醫之治痼病也 。 瞑眩攻擊 。 或可除之 。 然猶眎其元氣如何 。 況其痼之久也 。 雖良醫不能拔而去之 。 而彼庸醫者欲必除之 。 盡力以攻之 。 病未去而人斃 。 中風嗝噎脹滿痿躄之病 。 未入膏肓者 。 何治而不愈之有 。 其已入骨髓者 。 雖盧扁亦不能治焉 。 其方法與治術 。 可學而知 。 可思而得 。 余亦有病論治驗 。 見所著醫叢 。 不贅於茲 。
의사가 고병을 다스릴 때 명현하게 공격하여 혹 제거할 수 있으나 그래도 원기가 어떠한지 살펴야 한다. 하물며 굳어진 지 오래되면 양의라도 뽑아 제거하지 못한다. 그런데 저 용의는 반드시 제거하려 하여 힘을 다해 공격하니 병이 제거되기 전에 사람이 죽는다. 중풍·격열·창만·위벽이 아직 고황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무엇을 다스려 낫지 않겠는가. 이미 골수에 들어간 것은 노와 편이라도 다스릴 수 없다. 그 방법과 치료술은 배워서 알 수 있고 생각하여 얻을 수 있다. 나에게도 병론과 치험이 있어 지은 《의총》에 보이므로 여기서 덧붙이지 않는다.
素靈二書 。 古人以為先秦之偽作 。 (至)難經傳以為越人書也 。 而其言理最勝 。 故害道亦多 。 考之扁鵲傳 。 亦唯偽作而已 。
《소문》과 《영추》 두 책을 옛사람은 선진의 위작이라 여겼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난경》은 전하여 월인의 책이라 하지만 이치를 말하는 것이 가장 많으므로 도를 해침도 많다. 〈편작전〉으로 상고하면 역시 위작일 뿐이다.
內經之為書 。 不知出於何人之手 。 亦無古文可以徵焉 。 祗古人質樸 。 編述多不書姓字 。 如尚書 。 論語 。 國策等 。 不命其所編 。 後來無復識別 。 內經之書 。 劉向 。 程頤 。 宋濂 。 以為戰國之文 。 不過以其地名官稱言之耳 。 蓋上世作醫藥 。 以救夭死 。 其術與法 。 人以傳人 。 後恐失其傳 。 書以傳焉 。 家異法 。 人殊書 。 故漢書有黃帝 。 白氏 。 扁鵲 。 內外經 。 今之存者 。 黃帝內經已 。 其白氏 。 扁鵲 。 及外經者 。 不可見 。 不亦遺憾乎 。 而於今可見古義者 。 獨賴此書之存 。 雖秦和 。 越人 。 倉公 。 張機 。 亦無能逾其矩度 。 學者豈可不思哉 。 彼既非內經 。 又言有可法 。 不免首鼠兩端 。 八十一難 。 以扁鵲傳不載之為偽作 。 何考之疏乎 。 秦漢以降 。 天下言脈者 。 無不皆賴此書 。 故扁鵲傳曰 。 至今天下言脈者 。 由扁鵲也 。 彼亦兩手診脈 。 按腹斷病 。 則居此書之術中 。 而不自知 。 可謂徙宅忘妻矣 。 難經訣診於寸口 。 候氣於腎間也 。 其度越前古 。 獨步後來者 。 炤炤乎 。 誰出其範圍乎 。 而彼言害道且非扁鵲書 。 夫誣扁鵲惑來學者 。 莫斯為甚矣 。
《내경》이라는 책은 누구의 손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고 증명할 옛글도 없다. 다만 옛사람이 질박하여 편술하면서 성과 이름을 쓰지 않는 일이 많았다. 《상서》·《논어》·《국책》 등도 편찬한 이를 이름하지 않아 뒤에는 다시 식별할 수 없었다. 《내경》을 유향·정이·송렴이 전국시대 글로 여긴 것은 지명과 관명으로 말했을 뿐이다. 상고에 의약을 만들어 요절을 구하고 의술과 법을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전하다가 뒤에 전승을 잃을까 두려워 글로 써서 전하였다. 집안마다 법이 다르고 사람마다 책이 달랐으므로 《한서》에는 황제·백씨·편작의 내외경이 있다. 지금 남은 것은 《황제내경》뿐이며 백씨·편작과 외경은 볼 수 없으니 유감스럽지 않은가. 지금 옛 뜻을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책이 남은 덕분이다. 진화·월인·창공·장기라도 그 규도를 넘지 못하였으니 배우는 자가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미 《내경》을 그르다 하고 또 본받을 만한 것이 있다고 하니 양끝을 오가는 것을 면하지 못한다. 《팔십일난》은 〈편작전〉에 실리지 않았다 하여 위작이라 하니 어찌 상고가 소홀한가. 진한 이후 천하에서 맥을 말하는 자는 모두 이 책에 의지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편작전〉에 지금까지 천하에서 맥을 말하는 것은 편작에서 말미암는다고 하였다. 저자도 양손의 맥을 짚고 배를 눌러 병을 판단하니 이 책의 의술 안에 있으면서 스스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사하면서 아내를 잊는다고 할 만하다. 《난경》은 촌구에서 진찰을 결정하고 신간에서 기를 살피니 앞선 고대를 뛰어넘고 후대에 독보적임이 밝고도 밝다. 누가 그 범위를 벗어나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도를 해치고 편작의 책도 아니라고 하니 편작을 무고하고 후학을 미혹하는 데 이보다 심한 것은 없다.
本草妄說甚多 。 不足以徵也 。 (至)後世服食家說 。 攙入本經 。 不可不擇焉 。 諸家本草 。 博採眾說 。 旁及道家方士之言 。 而龐雜無統也 。 醫當擇之明白的實 。 不眩邪說 。 自試有效 。 瞭然自得 。 而後用以治疾也 。 古云 。 工欲善其事 。 必先利其器 。 苟器不利而事善者 。 未之有也 。 屑屑神仙延年虛妄之說者 。 豈可與論醫焉哉 。 修德氏已辨之 。 余亦稽古徵今 。 撰本草筌 。 欲以告同志 。
본초에는 망설이 매우 많아 증거로 삼기에 부족하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후세 복식가의 설이 본경에 섞여 들어갔으니 가리지 않을 수 없다. 여러 본초는 여러 설을 널리 모으고 도가와 방사의 말에까지 미쳐 방대하고 잡다하여 통일이 없다. 의사는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가려 사설에 현혹되지 말고 스스로 시험하여 효과가 있으며 분명히 스스로 터득한 뒤 병을 다스리는 데 써야 한다. 옛말에 장인이 일을 잘하려면 반드시 먼저 도구를 날카롭게 해야 한다고 하였다. 도구가 날카롭지 않은데 일을 잘한 경우는 아직 없었다. 자질구레하게 신선과 연년의 허망한 설을 말하는 자와 어찌 의학을 논하겠는가. 수덕씨가 이미 변별하였으며 나도 옛것을 상고하고 지금 것을 증명하여 《본초전》을 지어 동지에게 알리고자 한다.
後世修治之說甚煩 。 (至)蓋毒即能 。 能即毒 。 制以益毒則可 。 殺毒則不可矣 。
후세 수치설은 매우 번거롭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독이 곧 효능이며 효능이 곧 독이다. 제하여 독을 더하는 것은 되지만 독을 죽이는 것은 안 된다.
仲景之法 。 有㕮咀者 。 各別搗者 。 臼中杵之者 。 且鉛丹香豉 。 出於製造 。 麻沸甘爛 。 異於煮法 。 均皆修治也 。 豈可厭煩乎 。 雖本草家之法 。 多難遵用 。 然砒石制以益毒 。 膠皮製不減能 。 況炮炙洗燒 。 各適其可 。 則亦似乎未可全擯斥之也 。 學者思諸 。
중경의 법에는 부저하는 것, 각각 따로 찧는 것, 절구 안에서 찧는 것이 있다. 또 연단·향시는 제조에서 나오고 마비·감란은 끓이는 법과 다르니 모두 수치이다. 어찌 번거로움을 싫어하겠는가. 본초가의 법은 따라 쓰기 어려운 것이 많지만 비석은 제하여 독을 더하고 교피는 제하여도 효능이 줄지 않는다. 하물며 굽고 볶고 씻고 태우는 것을 각각 알맞게 하면 역시 전부 물리칠 수는 없을 듯하다. 배우는 자는 생각해야 한다.
相畏相反之說 。 甚無謂也 。 (至)其它亦可以知已 。
상외상반설은 매우 무의미하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나머지도 알 수 있다.
古人制方也 。 妙義精術 。 試諸千載之下 。 見奇奏效 。 應驗合轍 。 蓋品味和調 。 則桴鼓影響不啻也 。 若夫處劑失法 。 則非徒藥不靈 。 過端已萌於此 。 凡物之決然畏滅者 。 蟹膏消漆 。 枳椇化酒 。 羚羊能碎金剛 。 胡桃亦割鐵錢 。 豈只是已哉 。 磁石引鐵 。 琥珀拾芥 。 及彩也 。 染也 。 飪也 。 得法而出色 。 失和則損味 。 其餘相畏 。 相反 。 相宜 。 不可勝數也 。 譬如賢佞不相容 。 寬猛難並行 。 何曰甚無謂也 。
옛사람이 처방을 만든 오묘한 뜻과 정밀한 의술은 천 년 뒤에 시험하여도 기이함을 보이고 효과를 내며 응험이 자취에 맞는다. 약품의 맛을 조화하면 북채와 북, 그림자와 메아리가 따르는 것 이상이다. 약제를 마련함이 법을 잃으면 약이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잘못의 단서가 이미 여기서 싹튼다. 물건이 분명하게 서로 억제하여 없애는 것으로는 게의 고가 옻을 없애고 지구가 술을 변화시키며 영양이 금강을 부수고 호도가 철전을 가르는 것이 있다. 어찌 이것뿐인가. 자석이 쇠를 끌고 호박이 지푸라기를 집으며 채색·염색·조리에서도 법을 얻으면 빛깔이 나고 조화를 잃으면 맛을 손상한다. 그 밖에 서로 두려워하고 반하고 알맞은 것을 다 셀 수 없다. 비유하면 어진 이와 간사한 이가 서로 용납하지 못하고 관대함과 맹렬함을 함께 행하기 어려운 것 같은데 어찌 매우 무의미하다고 하는가.
藥者草木偏性者也 。 偏性之氣皆有毒 。 以此毒除彼毒耳 。 (至)煉煆服食 。 以誤其身者多矣 。 悲夫 。
약은 초목으로 성질이 치우친 것이다. 치우친 성질의 기에는 모두 독이 있으니 이 독으로 저 독을 제거할 뿐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달구어 제련하여 먹다가 몸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으니 슬프다.
以毒除毒 。 猶以兵攻兵耶 。 然兵有攻有守 。 或奇或正 。 及虛及實 。 避銳氣 。 擊惰歸 。 知節勢 。 審動靜 。 途有所不由 。 軍有所不擊 。 全國為上 。 破國次之 。 百戰百勝 。 非善之善者也 。 唯醫亦然 。 虛虛實實 。 緩急成敗 。 唯法是依 。 唯機是察 。 治法必以除毒一法 。 非善之善者也 。
독으로 독을 제거하는 것은 군사로 군사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가. 그러나 군사에는 공과 수가 있고 기와 정이 있으며 허와 실이 있다. 예기를 피하고 나태하게 돌아가는 것을 치며 절세를 알고 동정을 살핀다. 길에도 따르지 않을 곳이 있고 군대에도 공격하지 않을 것이 있다. 나라를 온전히 하는 것이 상책이고 나라를 깨뜨리는 것이 그다음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기는 것은 잘하는 것 중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니다. 의학도 그러하다. 허를 허하게 하고 실을 실하게 함, 완급과 성패에서 오직 법에 의거하고 기미를 살핀다. 치료법을 반드시 제독 한 법으로 하는 것은 잘하는 것 중 가장 잘하는 것이 아니다.
諸家本草所說 。 藥能率多謬妄 。 (至)今舉本草所載 。 不合仲景者一二 。 如人參治心下痞硬 。 而彼以為補氣 。 石膏已渴 。 而彼以為解熱 。 附子逐水氣 。 而彼以為溫寒 。 其相齟齬者 。 大抵為爾 。
여러 본초가 설명한 약능은 대체로 그릇되고 망령된 것이 많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이제 본초에 실렸으나 중경과 맞지 않는 것 한둘을 들겠다. 인삼은 심하비경을 다스리는데 저들은 보기한다고 하며 석고는 갈증을 멎게 하는데 저들은 해열한다고 하고 부자는 수기를 쫓는데 저들은 한을 덥힌다고 한다. 서로 어긋나는 것이 대체로 이러하다.
甚矣哉 。 吉益子之好奇也 。 君子一言以為知 。 一言以為不知 。 何其言之疏且妄也 。 仲景未嘗言人參非補 。 治痞硬 。 附子非溫 。 逐水氣 。 可謂誣也 。 今舉其一二以證之 。 傷寒論太陰篇曰 。 自利不渴者屬太陰 。 以其藏有寒故也 。 當溫之 。 宜服四逆輩 。 又少陰病 。 脈沉者 。 急溫之 。 宜四逆湯 。 又發汗病不解 。 反惡寒者 。 虛故也 。 芍藥甘草附子湯主之 。 又曰 。 附子溫經 。 及下利清穀裡寒者 。 四逆湯主之 。 如是則附子非溫而何也 。 其甘草附子湯 。 桂枝加附子湯 。 真武湯等方中 。 有附子而利水氣者 。 乃溫中運走之餘力耳 。 非本分之能也 。 如代赭石湯 。 瀉心湯之屬 。 治心下痞硬 。 亦猶是已 。 非人參之能 。 而黃連代赭重墜苦寒之力也 。 如桂枝人參湯治痞硬 。 則為表裡不解數下之而裡氣 。 大虛而設也 。 痞不待治而治者乃人參補正之餘功已 。 且通脈四逆湯下云 。 利止脈不出者加人參一兩 。 發汗後身疼痛脈沉遲者 。 人參新如湯主之 。 霍亂篇曰 。 惡寒脈微而複利 。 四逆加人參湯主之 。 霍亂寒多不用水者 。 理中湯主之 。 臍下悸者用人參 。 長沙氏以人參為補 。 炤炤乎不傒辯也 。 石膏治渴 。 以解熱也 。 熱之不解 。 惡能已渴 。 如厥陰篇云 。 傷寒脈滑而厥者里有熱也 。 與白虎湯 。 三陽合病 。 自汗出者 。 白虎湯主之 。 此條不曰渴也 。 其它治渴者 。 有五苓柴胡豬苓承氣等法 。 豈石膏而已哉 。 鹵莽滅裂 。 不顧紕漏 。 遂爾排擊世醫 。 建立門戶 。 自是而非人 。 如此者 。 豈能合仲景之規矩耶 。 可謂扁蝠掛軒 。 笑人之倒行已 。
심하구나, 길익자가 기이함을 좋아함이여. 군자는 한마디로 지혜롭다 여겨지기도 하고 한마디로 지혜롭지 않다 여겨지기도 하거늘 어찌 그 말이 소홀하고 망령되는가. 중경은 일찍이 인삼은 보하지 않고 비경을 다스리며 부자는 덥히지 않고 수기를 쫓는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무고라 할 만하다. 이제 한두 가지를 들어 증명하겠다. 《상한론》 태음편은 저절로 설사하고 목마르지 않으면 태음에 속하니 장에 한이 있기 때문이며 따뜻하게 해야 하므로 사역 같은 것을 먹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또 소음병에 맥이 침하면 급히 따뜻하게 해야 하니 사역탕이 좋다고 하였다. 또 발한하여도 병이 풀리지 않고 도리어 오한하는 것은 허하기 때문이며 작약감초부자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또 부자는 경을 따뜻하게 한다고 하였고 소화되지 않은 곡식을 설사하며 속이 찬 것은 사역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이렇다면 부자가 덥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감초부자탕·계지가부자탕·진무탕 등의 처방에 부자가 있어 수기를 통리하는 것은 곧 중을 덥혀 운행시키는 여력일 뿐 본분의 효능이 아니다. 대자석탕·사심탕 같은 것이 심하비경을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으니 인삼의 효능이 아니라 황련과 대자의 무겁게 내려가고 쓰며 찬 힘이다. 계지인삼탕으로 비경을 다스리는 것은 표리가 풀리지 않았는데 자주 하법을 써서 이기가 크게 허해진 데 마련한 것이다. 비가 다스리기를 기다리지 않고 다스려지는 것은 곧 인삼이 정을 보한 여공일 뿐이다. 또 통맥사역탕 아래에는 설사가 멎었으나 맥이 나오지 않으면 인삼 한 냥을 더한다고 하였다. 발한 뒤 몸이 아프고 맥이 침지한 것은 인삼신여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곽란편은 오한하고 맥이 미하며 다시 설사하면 사역가인삼탕이 주치하며 곽란에 한이 많아 물을 쓰지 않는 것은 이중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배꼽 아래가 두근거리면 인삼을 쓴다고 하였다. 장사씨가 인삼을 보하는 것으로 삼았음이 밝고도 밝아 변론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 석고가 갈증을 다스리는 것은 열을 풀기 때문이다. 열이 풀리지 않는데 어찌 갈증이 멎겠는가. 궐음편에서 상한에 맥이 활하면서 궐하는 것은 속에 열이 있는 것이니 백호탕을 준다고 하였고 삼양합병으로 자한하는 것은 백호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이 조문은 갈증을 말하지 않았다. 그 밖에 갈증을 다스리는 데는 오령·시호·저령·승기 등의 법이 있으니 어찌 석고뿐인가. 거칠고 소홀하며 허술하여 허점을 돌아보지 않고 마침내 세상 의사를 배격하고 문호를 세워 자신은 옳다 하고 남은 그르다 하니 이와 같은 자가 어찌 중경의 규구에 맞겠는가. 박쥐가 처마에 매달려 남이 거꾸로 걷는다고 비웃는 것이라 할 만하다.
藥產有某土宜處 。 某土不宜處 。 某土之所生 。 性之所稟 。 不可不詳也 。
약의 생산에는 어느 땅이 알맞은 곳과 어느 땅이 알맞지 않은 곳이 있다. 그 땅에서 생기는 것과 성질을 부여받는 바를 자세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橘逾淮為枳 。 雞舌不產倭華 。 及韓參之甲天下也 。 實土宜之異產 。 地方之界物哉 。 醫不可不辨識也 。 彼已言詳其土宜 。 而舍韓參為非 。 用倭參為能 。 前言而後反 。 嗟蜂也 。 口甚甘 。 尾乃毒 。 學者勿愛其甘而受其螫 。
귤이 회수를 넘으면 지가 되고 계설은 왜와 중국에서 나지 않으며 한삼이 천하에서 으뜸인 것은 참으로 토질의 적의에 따른 특산이자 지역의 경계에 따른 물건이다. 의사는 분별하여 알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이미 토질의 적의를 자세히 살핀다고 하고서 한삼은 그르다 하여 버리고 왜삼은 효능이 있다 하여 쓰니 앞서 말하고 뒤에 뒤집는다. 아, 벌이여. 입은 매우 달지만 꼬리는 독하다. 배우는 자는 단맛을 좋아하다 쏘임을 당하지 말아야 한다.
人參有數種 。 今見清韓賈舶所載來者 。 皆非古也 。 (至)今用之 。 心下痞硬不治 。 和參能治之 。 是其由製造 。 可以知也 。
인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지금 청과 한의 상선이 실어 오는 것을 보면 모두 옛것이 아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지금 이것을 쓰면 심하비경이 낫지 않으나 화삼은 능히 다스리니 제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人參之品類雖多而以朝鮮產為上 。 方今此邦 。 治化隆盛 。 四方交易 。 無物不到焉 。 往年朝鮮貢人參實 。 官園種之 。 於是此邦有韓參實濟民之仁澤也哉 。 余嘗得其實而種之 。 花實根形 。 與本草說相符 。 取此證彼 。 則韓舶所載來者 。 真贗可辨 。 製造可分 。 何容賈豎欺乎 。 蓋人參功力豈徒止治心下痞硬哉 。 此物大力破堅積 。 治痞硬 。 亦唯補正運化之餘力已 。 不然則漢以降醫方之言 。 豈無驗而言之乎 。 彼獨造不經之說於千載之下 。 譏誣古人 。 簸弄來學 。 此坐於不知土宜 。 與淺人參是也 。
인삼의 품류가 많아도 조선산을 으뜸으로 삼는다. 지금 이 나라의 다스림과 교화가 융성하여 사방과 교역하므로 이르지 않는 물건이 없다. 지난날 조선에서 인삼 종자를 바쳐 관원에 심었으니 이에 이 나라에 한삼이 있게 된 것은 참으로 백성을 구하는 어진 은택이다. 나는 일찍이 종자를 얻어 심었는데 꽃과 열매, 뿌리 모양이 본초의 설명과 맞았다. 이것을 취하여 저것을 증명하면 한의 배가 실어 온 것의 진위와 제조를 분별할 수 있으니 어찌 장사치의 속임을 용납하겠는가. 인삼의 공력은 어찌 심하비경을 다스리는 데 그칠 뿐이겠는가. 이 물건의 큰 힘이 굳은 적을 깨고 비경을 다스리는 것도 정을 보하여 운화하는 여력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나라 이후 의방의 말은 어찌 증험 없이 말한 것이겠는가. 저자는 홀로 천 년 뒤에 불경한 설을 만들어 옛사람을 헐뜯고 무고하며 후학을 희롱하니 이는 토질의 적의를 모르고 인삼을 얕본 데서 생긴 것이다.
方者莫古於仲景 。 而仲景為傳方之人 。 非作方之人也 。 (至)亦唯暗投暝行也已 。 學者思諸 。
처방은 중경보다 오래된 것이 없지만 중경은 처방을 전한 사람이지 처방을 만든 사람이 아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저 어둠 속에서 던지고 눈을 감고 가는 것일 뿐이다. 배우는 자는 생각해야 한다.
仲景之論法設方 。 明白精正 。 千載一人 。 於斯為盛 。 以至後世肘後 。 千金 。 外臺等 。 傳方之書 。 所祖述 。 所取則也 。 而仲景以前 。 無方之可見 。 無論之可證也 。 故褚澄曰 。 漢以前 。 有說無方 。 漢已後 。 有方無說 。 而彼以為傳方之人 。 非作方之人也 。 且言雖仲景亦或有不解者 。 此有何所見 。 何所徵 。 而言之邪 。 肆口之甚 。 一至於此也 。 可謂妄矣夫 。
중경이 법을 논하고 처방을 마련한 것은 명백하고 정밀하며 바르니 천 년에 한 사람으로 여기에서 융성하였다. 후세의 《주후》·《천금》·《외대》 등 처방을 전하는 책들이 이어 서술하고 법칙을 취한 바이다. 그런데 중경 이전에는 볼 수 있는 처방이 없고 증명할 논의가 없다. 그러므로 저징은 한 이전에는 설은 있어도 처방이 없고 한 이후에는 처방은 있어도 설이 없다고 하였다. 저자는 처방을 전한 사람이지 만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또 중경이라도 혹 풀지 못한 것이 있다고 한다. 이는 무엇을 보고 무엇으로 증명하여 말하는가. 입을 함부로 함이 한결같이 여기에 이르니 망령되다고 할 만하다.
世俗所謂名方者 。 間有奇效 。 故醫傳之 。 非醫者亦傳之 。 (至)宜博求普問 。 以輔其術矣 。
세속의 이른바 명방에는 간혹 기이한 효험이 있다. 그러므로 의사도 전하고 의사가 아닌 자도 전한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널리 구하고 두루 물어 의술을 도와야 한다.
本邦醫俗 。 傳稱名方者 。 蓋本邦上世之遺方歟 。 抑俗間驗而傳之也 。 未可知焉 。 間有奇效者 。 醫當求以輔其術 。 非無裨補也 。 宋御局所輯者 。 亦如是已 。 彼若知之 。 則何取方仲景之一書 。 悉舍後世方而不取 。 反俗方是問之為哉 。 可謂貂不足狗尾續已 。
본방의 의속에서 명방이라 전하여 부르는 것은 본방 상고의 유방인지 민간에서 증험하여 전한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간혹 기이한 효험이 있으면 의사가 구하여 의술을 도와야 하니 보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송나라 어국에서 모은 것도 이와 같을 뿐이다. 저자가 이를 안다면 어찌 중경의 한 책에서만 처방을 취하고 후세 처방은 모두 버려 취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민간 처방을 묻는가. 담비가 부족하여 개꼬리로 잇는다고 할 만하다.
仲景書 。 有傷寒雜病論 。 金匱要略 。 玉函經 。 共論傷寒及雜病甚詳悉焉 。 然要略 。 玉函 。 偽撰已 。 (至)其理鑿者 。 其說迂者 。 一切不取之 。 所以求其本色也 。
중경의 책에는 《상한잡병론》·《금궤요략》·《옥함경》이 있으며 함께 상한과 잡병을 매우 자세히 논한다. 그러나 《요략》과 《옥함》은 위찬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이치가 천착된 것과 설이 우활한 것은 일절 취하지 않으니 본색을 구하기 위해서이다.
傷寒雜病論 。 仲景手錄 。 書已亡矣 。 今之存者晉王叔和所詮次 。 非復長沙之舊也 。 稱金匱玉函者 。 按文獻通考 。 至於宋王洙得於蠹簡中 。 蓋蠹余書 。 豈莫錯簡闕誤 。 然微言方略 。 多存於其書 。 則可不徵諸 。 江南諸師 。 秘仲景要方者 。 見千金 。 夫曰玉函 。 曰金匱 。 皆後世美稱已 。 非舊名也 。 故仲景自序曰 。 作作寒雜病論十六卷 。 未嘗曰作玉函金匱 。 千全亦稱要方 。 都是一書 。 宋時始分為二書 。 去玉函二字 。 單名金匱要略 。 蓋其雜病論也 。 今坊間所刻 。 玉函經 。 清陳世杰偽撰 。 以欺夫小子亡識人已 。 彼言理鑿者 。 說迂者 。 一切不取之 。 何不別著一書而論之 。 而作此兩端之說 。 以惑來學哉 。
《상한잡병론》은 중경이 손수 기록하였으나 책은 이미 없어졌다. 지금 남은 것은 진나라 왕숙화가 편찬한 것이니 다시는 장사의 옛 모습이 아니다. 금궤옥함이라 부르는 것은 《문헌통고》를 살펴보면 송나라 왕수가 좀먹은 책 가운데서 얻은 것이다. 좀먹고 남은 책이니 어찌 착간과 결오가 없겠는가. 그러나 미언과 방략이 그 책에 많이 남았으니 증명에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강남 여러 스승이 중경의 요방을 비밀로 한 것은 《천금》에 보인다. 옥함과 금궤라는 것은 모두 후세의 아름다운 이름일 뿐 옛 이름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경은 자서에서 《작한잡병론》 열여섯 권을 지었다고 하였지 일찍이 옥함·금궤를 지었다고 하지 않았다. 《천전》도 요방이라 불렀으니 모두 한 책이다. 송나라 때 비로소 두 책으로 나누고 옥함 두 글자를 빼서 단지 《금궤요략》이라 이름하였으니 잡병론이다. 지금 서점에서 판각한 《옥함경》은 청나라 진세걸의 위찬으로 어린 자와 지식 없는 사람을 속인 것일 뿐이다. 저자는 이치가 천착되고 설이 우활한 것은 일절 취하지 않는다고 하니 어찌 따로 한 책을 지어 논하지 않고 이처럼 양단의 설을 만들어 후학을 미혹하는가.
傷寒論六經 。 非病在六經也 。 假以為紀也已 。 及其施治也 。 皆從證而不拘焉 。 (至)皆非矣 。 不可從也 。
《상한론》의 육경은 병이 육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빌려서 기로 삼았을 뿐이다. 치료할 때는 모두 증을 따르고 구애되지 않는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르므로 따라서는 안 된다.
扁鵲曰 。 疾之居腠理也 。 湯熨之所及也 。 在血脈 。 針石之所及也 。 其在腸胃 。 酒醪之所及也 。 在骨髓 。 雖司命無奈之何 。 仲景論傷寒亦猶是已 。 其序六經之病則 。 不可易也 。 趙繼宗作邪說 。 戴思恭有異論 。 而後及本邦後藤氏 。 大造畔正之說 。 設淺深閉脫 。 以變亂之 。 然其說至合病並病而窮矣 。 趙嗣真曰 。 仲景之書 。 一字不同 。 則治法霄壤 。 讀者其可不於片言隻字 。 以求其意歟 。 不達其意者 。 悖師而惑於所見也已 。 彼書所論 。 大氐不出於後藤氏之糟粕 。 實慕商鞅變法 。 襲李斯故智哉 。
편작은 질병이 주리에 있으면 탕위가 미치는 바이고 혈맥에 있으면 침석이 미치는 바이며 장위에 있으면 주료가 미치는 바이지만 골수에 있으면 사명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중경이 상한을 논한 것도 이와 같을 뿐이다. 육경의 병칙을 차례 지은 것은 바꿀 수 없다. 조계종이 사설을 만들고 대사공이 이론을 냈으며 뒤에 본방의 후등씨에 이르러 바름을 배반하는 설을 크게 만들어 천심·폐탈을 세워 변란시켰다. 그러나 그 설은 합병과 병병에 이르러 막힌다. 조사정은 중경의 책은 한 글자가 다르면 치료법이 하늘과 땅처럼 다르니 읽는 자가 어찌 한마디 한 글자에서 뜻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 뜻에 통달하지 못하는 자는 스승을 어기고 자기 소견에 미혹될 뿐이다. 저 책의 논의는 대체로 후등씨의 찌꺼기를 벗어나지 못하니 참으로 상앙의 변법을 사모하고 이사의 옛 꾀를 답습한 것이다.
後世以病因為治本也 。 曰不知之焉得治 。 予嘗學其道 。 恍惚不可分 。 雖聖人難知之已 。 (至)雖曰無因亦可 。 是以吾黨不言因 。 恐眩因失治矣 。 後世論因多端 。 徒以惑人 。 不可從焉 。
후세는 병인을 치료의 근본으로 삼아 이를 모르고 어찌 다스릴 수 있겠느냐고 한다. 내가 일찍이 그 도를 배웠으나 아득하여 나눌 수 없었으니 성인이라도 알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원인이 없다고 하여도 된다. 이 때문에 우리 무리는 원인을 말하지 않으니 원인에 현혹되어 치료를 잃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후세가 원인을 논하는 말은 여러 갈래로 헛되이 사람을 미혹하므로 따라서는 안 된다.
醫病求因 。 治術要領 。 古之法也 。 素問曰 。 治之極於一 。 一者因得之 。 又曰 。 治病必求其本 。 今以傷寒之一事證之 。 仲景曰 。 本太陽病 。 醫反下之 。 因而腹滿時痛者 。 屬太陰也 。 桂枝加芍藥湯主之 。 此太陰之見症 。 而用太陽本病藥 。 非治因而何也 。 其它病發於陽而反下之 。 熱入 。 因作結胸 。 本是霍亂 。 今是傷寒 。 本虛 。 本不虛 。 是本病 。 及某經傷風某經傷寒等語 。 無往而非求因也 。 彼今舉桂枝湯 。 柴胡湯 。 白虎湯 。 通治之例 。 而言無求因 。 何術之粗邪 。 此所謂醫不執方 。 合宜而用者 。 如珠走槃 。 如槃走珠 。 無不可者也 。 在金匱曰 。 短氣有微飲者 。 當從小便去之 。 桂苓朮甘湯主之 。 腎氣丸亦主之 。 病溢飲者當發其汗 。 大青龍湯主之 。 小青龍湯亦主之 。 此所謂貴活法也 。 不言因者 。 傷寒論中 。 雖一二有之 。 亦精求其意 。 則不可謂無因也 。 若夫不求因而治病 。 必敗之道也 。 豈可僥倖十一於千萬 。 以取必敗之禍哉 。 傳云 。 皮之不存 。 毛將安附焉 。 籲危矣哉 。
병을 다스리며 원인을 구하는 것은 치료술의 요령이자 옛 법이다. 《소문》은 치료가 하나에 이르는데 하나는 원인을 얻는 것이라 하였고 또 병을 다스릴 때는 반드시 근본을 구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상한 한 가지 일로 증명하겠다. 중경은 본래 태양병인데 의사가 도리어 하법을 써서 그로 말미암아 배가 그득하고 때때로 아프면 태음에 속하며 계지가작약탕이 주치한다고 하였다. 이는 태음의 현증인데 태양의 본병약을 썼으니 원인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 밖에 병이 양에서 발생하였는데 도리어 하법을 써서 열이 들어가 그로 인해 결흉이 된다는 것, 본래 곽란이었는데 지금은 상한이라는 것, 본래 허하거나 본래 허하지 않다는 것, 이것이 본병이라는 것 및 어느 경의 상풍·어느 경의 상한 등의 말은 어디에서나 원인을 구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저자는 이제 계지탕·시호탕·백호탕을 통용하여 다스리는 예를 들고 원인을 구함이 없다고 하니 의술이 어찌 거친가. 이는 이른바 의사가 처방을 고집하지 않고 적의에 맞게 쓰는 것으로 구슬이 쟁반을 구르고 쟁반이 구슬을 굴리는 듯하여 안 될 것이 없다. 《금궤》는 단기하며 미음이 있으면 소변을 따라 제거해야 하며 계령출감탕이 주치하고 신기환도 주치한다고 하였다. 일음을 앓으면 땀을 내야 하며 대청룡탕이 주치하고 소청룡탕도 주치한다고 하였다. 이것이 이른바 활법을 귀히 여김이다. 원인을 말하지 않은 것이 《상한론》에 한두 가지 있더라도 뜻을 정밀히 구하면 원인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원인을 구하지 않고 병을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패하는 길이다. 어찌 천만 가운데 열이나 하나를 요행으로 얻으려다가 반드시 패하는 화를 취하겠는가. 《전》에서 가죽이 없으면 털이 어디에 붙겠느냐고 하였으니 아, 위태롭다.
治有四 。 汗吐下和是也 。 其為法也 。 隨毒所在 。 各異處方 。 用之瞑眩 。 其毒從去 。 是仲景之為也 。 (至)甚矣哉 。 其惑之也 。
치료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한·토·하·화이다. 그 법은 독이 있는 곳에 따라 각각 처방을 달리하고 써서 명현하면 독이 따라 제거되게 하니 이것이 중경이 한 것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 미혹이 심하다.
治法以汗吐下和為限者 。 張戴人之糟粕 。 而後藤氏之唾餘已 。 仲景之設法也 。 豈徒四而已哉 。 有溫經者 。 有溫里者 。 或利小便 。 或救里 。 治中州則曰建 。 曰理 。 治厥則為四逆 。 為通脈 。 攻心胸 。 有陷胸瀉心之分 。 或止利 。 去黃刺者 。 灸者 。 與水者 。 不與者 。 及內藥於鼻中者 。 諸禁汗吐下者 。 觸類而長之 。 則何所不有之有乎 。 其它後世治術 。 可取法者猶多焉 。 以四者限之 。 術亦拙哉 。
치료법을 한·토·하·화에 한정한 것은 장대인의 찌꺼기이며 후등씨가 뱉고 남긴 것일 뿐이다. 중경이 법을 마련한 것이 어찌 네 가지뿐인가. 온경하는 것과 온리하는 것이 있으며 소변을 통리하거나 속을 구하기도 한다. 중주를 다스리는 것은 건이라 하고 이라 하며 궐을 다스리는 것은 사역과 통맥으로 삼는다. 심흉을 공격하는 데는 함흉과 사심의 구분이 있다. 설사를 멎게 하거나 황을 제거하고 자침하거나 뜸뜨며 물을 주거나 주지 않고 코 안에 약을 넣는 것 및 한·토·하를 금하는 것들이 있으니 부류에 따라 넓히면 무엇이 없겠는가. 그 밖에 후세 치료술 중 본받을 만한 것도 여전히 많다. 네 가지로 한정하니 의술 또한 졸렬하다.
人性之所好惡不同 。 稱口腹者為宜 。 不稱者為不宜 。 古者養精以穀肉果菜 。 未嘗言禁宜也 。 (至)不亦左乎 。
사람 성품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바가 다르므로 입과 배에 맞는 것을 적의하다고 하고 맞지 않는 것을 적의하지 않다고 한다. 옛날에는 곡식·고기·과일·채소로 정을 길렀으며 일찍이 금기와 적의를 말하지 않았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또한 어긋나지 않는가.
古人設禁忌甚嚴矣 。 傷寒論桂枝湯方後云 。 禁生冷黏滑肉面五辛酒酪臭惡等物 。 又烏梅丸下云 。 禁生冷滑物臭食等 。 其餘各方下云 。 將息及禁忌 。 內經所論 。 千全外臺所序 。 慎房室 。 戒口腹 。 且聖人鄉黨之教 。 何言古者未嘗言禁宜也 。 作此諛言 。 取容於世 。 可謂陋矣 。
옛사람은 금기를 매우 엄하게 세웠다. 《상한론》 계지탕방 뒤에는 날것·찬 것·끈끈하고 미끄러운 것·고기·밀가루 음식·오신·술·유락·냄새나고 나쁜 것 등을 금한다고 하였다. 또 오매환 아래에는 날것·찬 것·미끄러운 물건·냄새나는 음식 등을 금한다고 하였다. 나머지 각 처방 아래에 말한 조섭과 금기, 《내경》의 논의, 《천전》과 《외대》의 서술, 방실을 삼가고 입과 배를 경계하는 것 및 성인의 〈향당〉의 가르침이 있는데 어찌 옛날에 일찍이 금기와 적의를 말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이처럼 아첨하는 말을 만들어 세상의 용납을 구하니 비루하다고 할 만하다.
銖兩升斗 。 古昔所用甚密矣 。 雖然年世悠久 。 不可得而悉也 。 (及)夫以殺性之藥 。 作如此小劑 。 (至)故不為也 。
수·냥·승·두는 옛날에 쓰던 것으로 매우 정밀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어 다 알 수 없다. (또) 성질을 죽인 약으로 이처럼 작은 제를 만든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그러므로 하지 않는다.
度量衡三者 。 聖人所制 。 經濟所先 。 古今沿革 。 史書可以徵也 。 豈為不審耶 。 此書舉二而失一 。 亡乃不可歟 。 醫若不詳之 。 則今古方藥分數 。 何由准之 。 夫度量衡之原 。 以秬黍起數 。 見漢書 。 本邦之制 。 大抵從唐朝制 。 據杜氏通典 。 度量衡三倍於漢 。 以本邦今通行者考之 。 大抵衡三倍於漢 。 量十倍於漢 。 度以貨泉大為一寸 。 醫當由此准之 。 出入和劑 。 以彼准此 。 依物作證 。 何不詳之有 。 李時珍曰 。 今古異制 。 古之一兩 。 今用一錢可也 。 古之一升 。 即今二合半也 。 此亦以明秤量准漢制者歟 。 凡古之方藥 。 劑大而服小 。 以傷寒 。 外臺 。 千金等 。 疾差停後服 。 不必盡劑 。 或服不盡劑 。 服一劑盡 。 病證猶在者 。 更作服等語而可知也 。 故內經曰 。 能毒者 。 以厚藥 。 不能毒者 。 以薄藥 。 此劑之輕重 。 因病為之也 。 余有考證 。 附醫叢中 。 彼曰殺性之藥作如此小劑 。 不經殊甚 。 不勝捧腹 。
도량형 세 가지는 성인이 만든 것으로 경세제민에서 앞세우는 것이며 고금의 연혁은 사서로 증명할 수 있다. 어찌 자세히 알 수 없다고 하겠는가. 이 책은 둘을 들고 하나를 잃었으니 불가하지 않은가. 의사가 자세히 알지 못하면 고금 방약의 분수를 무엇으로 준할 것인가. 도량형의 근원은 검은 기장으로 수를 일으킨 것으로 《한서》에 보인다. 본방의 제도는 대체로 당나라 제도를 따른다. 두씨의 《통전》에 근거하면 도량형은 한나라의 세 배이다. 본방에서 지금 통행하는 것으로 상고하면 대체로 형은 한나라의 세 배이고 양은 한나라의 열 배이며 도는 화천의 크기를 한 치로 삼는다. 의사는 이에 따라 준하여 드나들며 약제를 조화하고 저것으로 이것을 준하며 물건에 의거해 증거를 삼으면 어찌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 있겠는가. 이시진은 고금의 제도가 다르니 옛 한 냥은 지금 한 돈을 쓰면 되고 옛 한 되는 지금 두 홉 반이라고 하였다. 이것도 명나라의 저울과 양기로 한나라 제도를 준한 것인가. 옛 방약은 제는 크고 복용은 작다. 《상한》·《외대》·《천금》 등의 병이 나으면 뒤의 복용을 멈추고 반드시 약제를 다 먹을 필요가 없다는 말, 약제를 다 먹지 않았거나 한 제를 다 먹어도 병증이 남으면 다시 만들어 먹는다는 등의 말로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내경》은 독을 감당할 수 있는 자에게는 두터운 약을 쓰고 감당하지 못하는 자에게는 엷은 약을 쓴다고 하였다. 이는 약제의 경중을 병에 따라 정하는 것이다. 내게 고증이 있어 《의총》에 붙였다. 저자가 성질을 죽인 약으로 이처럼 작은 제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불경함이 유달리 심하여 배를 잡고 웃지 않을 수 없다.
產蓐之法 。 方土所習各殊 。 (至)若血暈欲以參耆之劑防之妄矣 。 宜審證治也 。 又妊娠腹帶之法 。 中華古無之 。 (云云)非常法也 。
산욕의 법은 지방에서 익힌 것이 각각 다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혈훈을 삼기 같은 약제로 막으려는 것은 망령되며 증을 살펴 다스려야 한다. 또 임신 중 복대법은 중국에 예부터 없었다. (운운) 상법이 아니다.
臨蓐之法 。 醫所當審密看察也 。 豈可必效習谷乎 。 產後血暈 。 必要參蓍 。 庸醫所為 。 守株刻舟之屬已 。 產帶之法 。 雖華人有之 。 為初胎設 。 不聞如此邦產帶習為常而其法亦差異 。 奚囊便方曰 。 初胎四五個月前後 。 用軟絹或帛闊七八寸 。 自背纏至腹 。 以針線縫住 。 如兜肚樣 。 晝夜不解 。 倘胎長大覺胸中有氣急狀 。 方可線三分或五分 。 不可滿寸 。 漸以調之 。 則肌肉有所束縛 。 不使胎長極 。 大便於產也 。 此方不特宜於初胎者 。 雖慣胎亦可 。 知非通行者也 。 吾門亦有產帶法 。 產後枕法 。 不贅於此 。
해산에 임하는 법은 의사가 자세하고 면밀하게 살펴야 하니 어찌 반드시 익숙한 풍속을 본받겠는가. 산후혈훈에 반드시 삼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은 용의의 행위로 수주대토와 각주구검의 부류일 뿐이다. 산대법은 중국인에게도 있으나 첫 임신을 위해 마련한 것으로 이 나라처럼 산대를 상례로 익힌다고는 듣지 못하였으며 그 법도 조금 다르다. 《해낭편방》은 첫 임신의 넉다섯 달 전후에 부드러운 비단이나 폭 일곱여덟 치의 천을 써서 등에서 배까지 감고 바늘과 실로 꿰매 두어 두두 모양으로 하며 밤낮 풀지 않는다고 하였다. 태가 자라 가슴에 기급한 상태가 느껴지면 그때 실을 서 푼 또는 다섯 푼으로 하되 한 치를 채워서는 안 되며 점차 조절한다. 그러면 근육이 묶이는 바가 있어 태가 지나치게 자라지 않으므로 출산에 크게 편리하다. 이 법은 첫 임신에만 좋은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임신한 경우에도 되지만 두루 행해지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 문하에도 산대법과 산후침법이 있으나 여기서는 덧붙이지 않는다.
初誕之法 。 務去胎毒為主 。 如朱蜜茯苓五香等 。 何毒之遂 。 不用而可 。 (至)夫人者與天地參焉 。 天不裂 。 地不壞 。 何唯人之異哉 。 雖草木亦然 。 以今之藥 。 攻今之病 。 何畏怖之有 。
처음 태어났을 때의 법은 힘써 태독을 제거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주밀·복령·오향 같은 것이 무슨 독을 쫓겠는가. 쓰지 않아도 된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사람은 천지와 나란하다. 하늘이 갈라지지 않고 땅이 무너지지 않았는데 어찌 사람만 달라졌겠는가. 초목도 그러하다. 지금의 약으로 지금의 병을 공격하는 데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初生醫法 。 千金方有拭法 。 以拭取舌上惡血 。 甘草湯 。 吐去心胸中惡汁 。 朱蜜法 。 定神止驚 。 其它準繩有黃連湯 。 活幼方有黃連甘草拭法 。 直指方茯苓丸 。 以枳殼黃連治氣短腹滿 。 非茯苓為下胎毒也 。 豈待辨之 。 千金朱蜜法 。 彼謂為逐毒 。 非也 。 五香湯 。 出千金 。 聖濟總錄 。 御局等癰疽諸瘡之方也 。 本邦醫俗 。 以為胎毒之藥 。 滷妄之甚 。 當辯正而禁之 。 夫人者與天地參 。 確乎聖人之言也哉 。 而彼已以陰陽五行為外物 。 此何其言之大相逕庭哉 。 天地之氣有盛衰 。 草木有苗而不秀 。 人生亦有稟賦強弱 。 是乃所以與天地參耳 。 彼已作天不裂地不壞之言 。 不論嬰兒強弱 。 一切攻擊 。 又何畏怖之有 。 豈是仁人之用心哉 。
갓 태어났을 때의 의법으로 《천금방》에는 닦는 법이 있어 혀 위의 나쁜 피를 닦아내며 감초탕으로 심흉의 나쁜 즙을 토해 내고 주밀법으로 신을 안정시키고 경을 멎게 한다. 그 밖에 《준승》에는 황련탕이 있고 《활유방》에는 황련감초로 닦는 법이 있으며 《직지방》의 복령환은 지각·황련으로 기단과 복만을 다스리는 것이지 복령으로 태독을 내리는 것이 아니니 어찌 분별을 기다리겠는가. 《천금》의 주밀법을 저자가 독을 쫓는 것이라 한 것은 그르다. 오향탕은 《천금》·《성제총록》·《어국》 등의 옹저와 여러 창에 쓰는 처방에서 나온 것이다. 본방의 의속에서 태독약으로 삼은 것은 거칠고 망령됨이 심하니 변별하여 바로잡고 금해야 한다. 사람이 천지와 나란하다는 것은 확실히 성인의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미 음양오행을 외물로 삼았으니 어찌 이 말과 크게 동떨어지는가. 천지의 기에는 성쇠가 있고 초목에도 싹은 나도 꽃피지 못하는 것이 있으며 사람이 태어날 때도 부여받은 강약이 있으니 이것이 천지와 나란한 까닭일 뿐이다. 저자는 이미 하늘은 갈라지지 않고 땅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어 영아의 강약을 논하지 않고 일절 공격하며 또 무슨 두려움이 있겠느냐고 하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 씀인가.
痘疹之證 。 古籍不概見 。 東漢初始有之 。 (至)始與癰瘍無異矣 。 治法亦以除毒排膿為主 。 如補瀉二法 。 則不知者之所立耳 。 蓋見毒酷而死者也 。 未見毒盡而斃者也 。 其斃者 。 是酷毒壅塞之所致也 。
두진의 증은 고적에 널리 보이지 않으며 동한 초기에 비로소 있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처음 옹양과 다름이 없으며 치료법도 독을 제거하고 고름을 빼는 것을 위주로 한다. 보사 두 법 같은 것은 알지 못하는 자가 세운 것일 뿐이다. 독이 혹심하여 죽은 자는 보았으나 독이 다하여 죽은 자는 보지 못하였다. 죽는 것은 혹독한 독이 막힌 데서 비롯된다.
痘疹治法 。 大要與癰疽無異者 。 薛立齋之言也 。 又曰 。 宜辨表裡虛實寒熱 。 蓋表虛而用發表之劑輕 。 則斑爛重則不能起發而死 。 裡實而用托裡之劑 。 輕則患痘毒 。 重則喘息腹脹而死 。 裡虛而用疏導之劑 。 輕則難以貫膿結痂 。 重則不能結靨落靨而死 。 治法豈可不慎哉 。 若果除毒一法 。 為能治痘 。 治亦易易哉 。 可謂古今小方脈 。 牛刀割雞 。 長殳刈薺 。 豈其然也哉 。 況起發 。 灌膿 。 結痂 。 三者皆賴脾胃榮養 。 何可妄投克伐之除毒 。 以招夭柱乎 。 夫痘疹為嬰孩保生第一關隘也 。 術豈可若斯粗哉 。 魏桂岩 。 順逆險三法 。 及錢仲陽 。 陳文中之論 。 雖各有得失 。 亦後昆所取則 。 其它博問審尋 。 不可敢恣 。 是古者醫學之所以分科習業 。 貴乎精專也 。
두진 치료의 대요가 옹저와 다르지 않다는 것은 설입재의 말이다. 또 표리허실한열을 변별해야 한다고 하였다. 표가 허한데 발표제를 쓰면 가볍게는 반란하고 무겁게는 돋아나지 못하여 죽는다. 속이 실한데 탁리제를 쓰면 가볍게는 두독을 앓고 무겁게는 숨차하며 배가 부풀어 죽는다. 속이 허한데 소도제를 쓰면 가볍게는 고름이 차고 딱지가 앉기 어려우며 무겁게는 염이 맺히고 떨어지지 못하여 죽는다. 치료법을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과연 제독 한 법으로 두창을 다스릴 수 있다면 치료도 아주 쉬울 것이다. 고금의 소방맥은 소 잡는 칼로 닭을 잡고 긴 창으로 냉이를 베는 것이라 할 만하니 어찌 그러하겠는가. 하물며 기발·관농·결가 세 가지는 모두 비위의 영양에 의지하는데 어찌 함부로 극벌하는 제독법을 던져 요주를 부르겠는가. 두진은 영아와 어린아이의 생명 보존에 첫째 관문이니 의술이 어찌 이처럼 거칠 수 있겠는가. 위계암의 순·역·험 세 법 및 전중양·진문중의 논의는 각각 득실이 있어도 후학이 법칙으로 취하는 바이다. 그 밖에도 널리 묻고 자세히 살펴야 하며 감히 방자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옛 의학이 과를 나누어 학업을 익혀 정밀하고 전일함을 귀히 여긴 까닭이다.
醫之於術也 。 攻而已 。 無有補矣 。 藥者一乎攻焉者也 。 攻擊疾病已 。 (至)元氣果可補 。 則人焉死 。 妄誕特甚矣 。
의사의 의술은 공격할 뿐이며 보하는 것은 없다. 약은 한결같이 공격하는 것이니 질병을 공격할 뿐이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원기를 과연 보할 수 있다면 사람이 어찌 죽겠는가. 망탄함이 유달리 심하다.
語曰 。 一言而可以興邦有諸 。 一言而喪邦有諸 。 孔子曰 。 言不可以若是其幾也 。 彼吉子者 。 欲以攻之一言 。 盡醫之術 。 妄亦甚矣 。 夫事物之理 。 勢二 。 曰利 。 曰害 。 而利或生害 。 害亦生利 。 凡人身所患 。 唯邪盛正虛耳 。 攻之去邪 。 將大利於人身者也 。 然圖之不審 。 害旋隨之 。 惟攻可攻於可攻之時則利 。 攻不可攻於不可攻之時則害 。 用舍有宜 。 張弛異勢 。 而彼不辨虛盛曰 。 攻而已 。 籲玉石俱焚 。 良奸同陷 。 此存亡之樞機 。 不可不察也 。 故善醫者 。 先料內以攻外 。 不逐末以損本 。 然後安平可保 。 大邪可除 。 今不辨虛盛 。 惟一於攻 。 攻罷即敗 。 不保其勝 。 恐非疾醫之良算也 。 如能知邪正利害之際 。 可攻而攻之 。 可撫而撫之 。 庶幾不誤乎興喪安危之數矣 。
《어》에서 한마디로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이 있는가, 한마디로 나라를 망칠 수 있는 일이 있는가라고 하였다. 공자는 말이 이와 같을 수는 없으나 그에 가까운 것은 있다고 하였다. 저 길자는 공이라는 한마디로 의술을 다하려 하니 망령됨이 심하다. 사물의 이치는 형세가 둘이니 이와 해이다. 이가 혹 해를 낳고 해도 이를 낳는다. 사람 몸이 앓는 것은 오직 사가 성하고 정이 허한 것뿐이다. 공격하여 사를 제거하면 사람 몸에 크게 이롭겠지만 도모함이 자세하지 않으면 해가 곧 따른다. 공격할 수 있는 것을 공격할 수 있는 때에 공격하면 이롭고 공격해서는 안 되는 것을 공격해서는 안 되는 때에 공격하면 해롭다. 쓰고 버림에는 마땅함이 있고 당기고 늦춤에는 형세가 다르다. 그런데 저자는 허함과 성함을 가리지 않고 공격할 뿐이라 하니 아, 옥과 돌이 함께 타고 선량한 자와 간사한 자가 함께 빠지는 것이다. 이는 존망의 추기이므로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의술을 잘하는 자는 먼저 안을 헤아려 밖을 공격하고 말단을 쫓아 근본을 손상하지 않는다. 그런 뒤에 안평을 보전하고 큰 사를 제거할 수 있다. 이제 허함과 성함을 가리지 않고 오직 공격에만 전념하여 공격을 마치자마자 패하고 승리를 보전하지 못하니 질의의 좋은 계책이 아닐까 두렵다. 사정과 이해의 경계를 알아 공격할 만하면 공격하고 어루만질 만하면 어루만지면 거의 흥망과 안위의 수를 그르치지 않을 것이다.
夫正權衡而後輕重可較也 。 審平常而後虛實可論也 。 (至)又如調氣虛腎虛脾胃虛之類 。 亦率准之 。 皆不因疾命名 。 愆之所創焉 。
저울을 바로잡은 뒤에야 경중을 비교할 수 있고 평상을 살핀 뒤에야 허실을 논할 수 있다. (다음 구절에 이르기까지) 또 기허·신허·비위허 같은 말도 대체로 이에 준하니 모두 질병에 근거하여 이름 붙이지 않았으며 잘못 만들어진 것이다.
以尩羸言虛實者 。 猶以皮相分賢愚 。 凡庸之見已 。 今以羸弱立虛實論 。 設羸弱實以證虛實 。 醫主天稟謂之虛 。 彼主失常謂之實 。 不知指物 。 不能正名 。 皆非也 。 又欲實其說 。 而引內經邪之所湊其氣必虛 。 若內經言其氣必實 。 則可也 。 欲證實而反引虛 。 實不知而諤然 。 醫不知而默然 。 彼亦不知而妄言 。 豈可不笑哉 。 以氣虛 。 腎虛 。 脾胃虛 。 為愆之所創焉 。 以余觀之 。 猶作環舞者 。 宮室皆轉 。 瞰迴流者 。 頭目自拖 。 非宮室之幻惑也 。 人自惑之 。 非迴流之改變 。 而人自變之 。 彼以攻一言 。 斷醫之道 。 主見證而希速效 。 終乃畔理傷道 。 猶硜硜然欲果於行 。 危矣哉 。 聖人言曰 。 無欲速 。 無見小利 。 欲速則不達 。 見小利則大事不成 。 信也哉此言 。 學者可不慎焉矣夫 。
마르고 약한 것으로 허실을 말하는 것은 겉모습으로 현우를 나누는 것과 같으니 범용한 견해일 뿐이다. 이제 여위고 약함으로 허실론을 세우고 여위고 약하나 실한 경우를 설정하여 허실을 증명한다. 의사는 타고난 품부를 위주로 허라 하고 저자는 상도를 잃음을 위주로 실이라 하니 물건을 가리킬 줄 모르고 이름을 바로잡지 못하므로 모두 그르다. 또 자기 설을 확실히 하려 《내경》의 사가 모이는 곳은 기가 반드시 허하다는 말을 인용한다. 《내경》이 기가 반드시 실하다고 말했다면 되겠지만 실을 증명하려 도리어 허를 인용하였다. 실한 자는 알지 못하여 놀라고 의사는 알지 못하여 침묵하며 저자도 알지 못하여 망언하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기허·신허·비위허를 잘못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보기에는 빙빙 도는 춤을 추는 자에게 집이 모두 돌아가고 소용돌이 흐름을 내려다보는 자의 머리와 눈이 저절로 끌리는 것과 같다. 집이 환혹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미혹하며 소용돌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변하는 것이다. 저자는 공 한마디로 의도를 단정하고 현증을 위주로 빠른 효과를 바라다가 끝내 이치를 배반하고 도를 손상하면서도 여전히 굳게 고집하여 행실을 밀어붙이려 하니 위태롭다. 성인은 빨리 하려 하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지 말라, 빨리 하려 하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였다. 참되구나 이 말이여. 배우는 자가 어찌 삼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題斥醫斷後
《척의단》 뒤에 쓰다.
近世香川子 。 首倡儒中之醫 。 傲然曰 。 自我作古 。 則廢古來醫說 。 以解其拘攣 。 排擊世醫 。 以破其盲瞶也 。 直截痛快 。 莫甚於此云 。 世醫小有才之輩 。 遽喜其新奇 。 妄謂千古不傳之秘者 。 殊不知議論之激 。 矯而過正 。 好奇之甚 。 稍涉偏僻 。 其究弗使庸醫恣而自用其意 。 妄而輕試其毒者幾希 。 嗟呼流弊之至 。 賊夫人之子者 。 不亦悲哉 。 頃吉益氏門人鶴生作醫斷 。 則全然香子之說 。 剿以為己有 。 稍換其字 。 或微變其意 。 左支右吾 。 敷衍成篇 。 其他一二異見 。 飾以師說 。 而務立其門戶 。 以稱卓然自信者 。 亦唯殺機之存心 。 不覺口自出 。 乃至曰死生者醫之所不與而極也 。 其少恩而慘礉 。 雖香子之勇哉 。 殆足以寒其膽者也 。 則儒中之醫 。 於是乎終臻其極矣 。 此雖其人奇癖乃爾 。 細究其病根 。 則香子之藥無乃瞑眩乎 。 不則長沙之靈為之祟者非耶 。 何其慘毒 。 嗚呼儒中之醫而有斯弊 。 不亦怪乎 。 吉子之才而墜其唾餘 。 何其不悟 。 而況鶴氏之子 。 白麵醫生 。 學而未試 。 其藥不售 。 終日兀坐 。 與書為仇 。 剿襲剽竊 。 弄筆遣悶 。 亦其中不能自信 。 特大言欺人耳 。 此輩鹵莽 。 何足論哉 。 予嘗作斯論 。 以評一子者久之 。 雖然 。 辨之不得已 。 掎齕逼人 。 頗闕遜讓之義云 。 則未嘗舉而語之人也 。 吾友新甫子好學之醫也 。 其術大行於世 。 而行余之文 。 亦不堪技癢 。 著書以見示 。 則斥醫斷也 。 力排吉子 。 攻擊之殷 。 不遺餘力 。 因又命予跋 。 以請掎角之援云 。 不亦甚哉 。 順也怯懦 。 豈奮於掎角者乎 。 無已則曩者之論歟 。 雖一矢加遺哉 。 強弩之末 。 何援之有 。 新甫子則扼腕曰 。 吾子偏師攻香子 。 吾全軍擊吉子乎 。 掎角之勢莫熾於此云爾 。 則亦何其狂 。 且近於戲謔也 。 不覺相視大笑 。 尚且左手捧腹 。 右手揮毫 。 因書之卷末 。 亦豈跋云乎哉 。 聊與新甫子相戲而已 。 籲甚矣吾黨之狂也 。 赧顏投筆而走云 。
근세에 향천자는 처음으로 유자 가운데의 의사를 제창하며 오연하게 나로부터 옛것을 만든다고 하였다. 이에 예부터의 의설을 버려 그 구속을 풀고 세상 의사를 배격하여 그 눈멂을 깨니 곧바르고 통쾌함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세상 의사 중 조금 재주가 있는 무리는 문득 그 새롭고 기이함을 기뻐하며 천고에 전하지 않은 비밀이라 망령되게 말하였다. 그러나 논의가 격하여 바로잡다가 바름을 지나치고 기이함을 좋아함이 심하여 점차 편벽함에 빠진다는 것은 전혀 알지 못하였다. 그 끝에 용의가 제멋대로 자기 뜻을 쓰고 망령되게 그 독을 가볍게 시험하지 않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아, 폐단이 흘러 남의 자식을 해치는 데 이르니 슬프지 않은가. 근자에 길익씨의 문인 학생이 《의단》을 지었는데 전적으로 향자의 설을 베껴 제 것으로 삼고 조금 글자를 바꾸거나 뜻을 약간 바꾸어 이리저리 둘러대며 부연하여 편을 이루었다. 그 밖의 한두 다른 견해는 스승의 설로 꾸미고 문호 세우기에 힘써 탁연히 자신한다고 일컬었다. 역시 죽이려는 기미가 마음에 있어 깨닫지 못하는 사이 입으로 나온 것일 뿐이며 마침내 생사는 의사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하는 데 이르러 극에 달하였다. 은혜가 적고 참혹하니 향자의 용맹으로도 거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유자 가운데의 의사는 이에 끝내 극에 이르렀다. 이는 그 사람의 기이한 버릇이 그러해서지만 병근을 자세히 궁구하면 향자의 약이 명현시킨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다면 장사의 영혼이 빌미가 된 것이 아닌가. 어찌 그리 참혹하고 독한가. 아, 유자 가운데의 의사에게 이런 폐단이 있으니 괴이하지 않은가. 길자의 재주로 남이 뱉고 남긴 데 빠져 어찌 깨닫지 못하는가. 하물며 학씨는 백면서생 의사로 배웠으나 아직 시험하지 않았고 약이 팔리지 않아 종일 우뚝 앉아 책을 원수로 삼고 베끼고 훔치며 붓을 놀려 답답함을 푼다. 그 또한 속으로 자신하지 못하여 다만 큰말로 사람을 속일 뿐이다. 이 무리의 거칠고 소홀함을 어찌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내가 일찍이 이 논의를 지어 한 사람을 평한 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변별이 부득이한 것이더라도 물고 뜯어 사람을 몰아붙여 겸손하고 사양하는 뜻이 꽤 부족하다 하여 일찍이 꺼내 남에게 말하지 않았다. 내 벗 신보자는 학문을 좋아하는 의사이다. 그 의술이 세상에 크게 행해지며 내 글을 행하게 하였고, 또한 솜씨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견디지 못하여 책을 지어 내게 보였으니 곧 《척의단》이다. 힘써 길자를 물리치고 성하게 공격하여 여력을 남기지 않았다. 이어 또 내게 발문을 명하며 협공의 원조를 청한다고 하니 또한 심하지 않은가. 순은 겁이 많고 나약하니 어찌 협공에 분발할 자인가. 그만둘 수 없다면 앞서의 논의가 있을 뿐이다. 화살 하나를 더 보낸다 해도 강노의 끝이니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신보자는 팔을 걷어붙이며 그대는 편군으로 향자를 공격하고 나는 전군으로 길자를 공격하니 협공의 형세가 이보다 성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어찌 그리 광적이며 희학에 가까운가. 자기도 모르게 서로 바라보며 크게 웃고 여전히 왼손으로 배를 잡으며 오른손으로 붓을 휘둘러 권말에 쓴다. 또한 어찌 발문이라 하겠는가. 잠시 신보자와 서로 희롱할 뿐이다. 아, 심하구나 우리 무리의 광적임이여. 얼굴을 붉히며 붓을 던지고 달아난다.
寶曆壬午春三月 平安醫士法眼武川幸順撰
보력 임오년 봄 삼월에 평안의 의사 법안 무천행순이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