近年以來 , 疊遭兵火 , 老成多半凋殘 , 學醫者紛紛日起 , 吾恐其無有師承而果於自用也 。 故於拙刻 《 醫醇剩義 》 中先標一 「 醇 」 字 , 此非不求有功 , 但求無過之謂 。 若僅如是 , 淺陋而已矣 , 庸劣而已矣 , 何足以言 「 醇 」 乎 ! 吾之所謂"醇"者 , 在義理之的當 , 而不在藥味之新奇 。 如仲景三承氣湯頗為峻猛 , 而能救人於存亡危急之時 , 其峻也正其醇也 , 此吾之所謂 「 醇 」 也 。 夫學難躐等而法有正宗 , 初學者此法 , 成就者亦此法 , 先後共此一途 。 行遠自邇 , 不惑於他歧 , 如是而已矣 。 第書籍散失 , 學者難於博觀而約取之 。 鄉曲之士 , 每以 《 醫方集解 》 一書奉為枕秘 , 甫經臨症輒檢用之 。 殊不知 , 集中可用之方固多 , 而不可用者亦不少 , 漫無別擇 , 草菅人命矣 ! 茲於所集各方之後 , 逐加評論 , 蓋欲為初學定範圍 , 非敢為高明下針砭也 , 且欲學者澹其謀利之欲 , 發其救人之心 , 猶前志云 。
근년 이래 거듭 전란을 만나 노성한 이들이 태반 사라지고 의술을 배우는 이들이 날마다 분분히 일어나니, 나는 그들이 스승에게 전수받음 없이 자기 생각만을 과감히 쓸까 두렵다. 그래서 졸저 『의순잉의』에 먼저 ‘순(醇)’ 한 글자를 내세웠으니, 이는 공효는 구하지 않고 다만 잘못이 없기만 구한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그뿐이라면 천박하고 용렬할 뿐이니, 어찌 ‘순’이라 할 만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순’은 의리가 정확하고 타당함에 있지 약미가 새롭고 기이함에 있지 않다. 가령 중경의 세 승기탕은 매우 준맹하지만 생사가 위급한 때에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그 준맹함이 바로 순정함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순’이다. 배움은 등급을 뛰어넘기 어렵고 법에는 정종이 있으니, 초학자도 이 법을 따르고 성취한 이도 이 법을 따라 선후가 모두 이 한 길을 간다. 먼 길을 감에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다른 갈림길에 미혹되지 않는 것, 이와 같을 뿐이다. 다만 서적이 흩어져 없어져 배우는 이가 널리 보고 요점을 취하기 어렵다. 시골의 선비들은 매양 『의방집해』 한 책을 머리맡의 비전으로 받들어, 병증을 대하자마자 찾아 쓴다. 이 책에 쓸 만한 처방이 본디 많지만 쓸 수 없는 것도 적지 않음을 전혀 모르니, 분별하여 고르지 않으면 인명을 풀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제 수록된 각 처방 뒤에 하나하나 평론을 더하였으니, 초학자를 위하여 범위를 정하려는 것이지 감히 고명한 이에게 침폄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배우는 이들이 이익을 꾀하는 욕심을 옅게 하고 사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으로, 앞서 말한 뜻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