欲救人而學醫則可 , 欲謀利而學醫則不可 。 我若有疾 , 望醫之救我者何如 ? 我之父母妻子有疾 , 望醫之相救者何如 ? 易地以觀 , 則利心自澹矣 ! 利心澹則良心現 , 良心現斯畏心生 。 平時讀書必且研以小心也 , 臨症施治不敢掉以輕心也 。 夫而後以局外之身引而進之局內 , 而痛癢相關矣 ! 故醫雖小道而所繫甚重 , 略一舉手人之生死因之 , 可不儆懼乎哉 !
사람을 구하고자 의술을 배우는 것은 가하나, 이익을 꾀하고자 의술을 배우는 것은 불가하다. 내가 병이 있다면 의사가 나를 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나의 부모와 처자가 병이 있다면 의사가 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처지를 바꾸어 보면 이익을 탐하는 마음은 저절로 옅어진다! 이익을 탐하는 마음이 옅어지면 양심이 드러나고, 양심이 드러나면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긴다. 평소 책을 읽을 때 반드시 조심스럽게 연구하게 되고, 병증에 임하여 치료할 때 감히 경솔히 여기지 않게 된다. 그런 뒤에야 일의 바깥에 있던 자신을 이끌어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아픔과 가려움이 서로 관계하게 된다! 그러므로 의술은 비록 작은 도이지만 관계되는 바는 매우 중대하다.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사람의 생사가 거기에 달리니, 경계하고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近年以來 , 疊遭兵火 , 老成多半凋殘 , 學醫者紛紛日起 , 吾恐其無有師承而果於自用也 。 故於拙刻 《 醫醇剩義 》 中先標一 「 醇 」 字 , 此非不求有功 , 但求無過之謂 。 若僅如是 , 淺陋而已矣 , 庸劣而已矣 , 何足以言 「 醇 」 乎 ! 吾之所謂"醇"者 , 在義理之的當 , 而不在藥味之新奇 。 如仲景三承氣湯頗為峻猛 , 而能救人於存亡危急之時 , 其峻也正其醇也 , 此吾之所謂 「 醇 」 也 。 夫學難躐等而法有正宗 , 初學者此法 , 成就者亦此法 , 先後共此一途 。 行遠自邇 , 不惑於他歧 , 如是而已矣 。 第書籍散失 , 學者難於博觀而約取之 。 鄉曲之士 , 每以 《 醫方集解 》 一書奉為枕秘 , 甫經臨症輒檢用之 。 殊不知 , 集中可用之方固多 , 而不可用者亦不少 , 漫無別擇 , 草菅人命矣 ! 茲於所集各方之後 , 逐加評論 , 蓋欲為初學定範圍 , 非敢為高明下針砭也 , 且欲學者澹其謀利之欲 , 發其救人之心 , 猶前志云 。
근년 이래 거듭 전란을 만나 노성한 이들이 태반 사라지고 의술을 배우는 이들이 날마다 분분히 일어나니, 나는 그들이 스승에게 전수받음 없이 자기 생각만을 과감히 쓸까 두렵다. 그래서 졸저 『의순잉의』에 먼저 ‘순(醇)’ 한 글자를 내세웠으니, 이는 공효는 구하지 않고 다만 잘못이 없기만 구한다는 말이 아니다. 만일 그뿐이라면 천박하고 용렬할 뿐이니, 어찌 ‘순’이라 할 만하겠는가! 내가 말하는 ‘순’은 의리가 정확하고 타당함에 있지 약미가 새롭고 기이함에 있지 않다. 가령 중경의 세 승기탕은 매우 준맹하지만 생사가 위급한 때에 사람을 구할 수 있으니, 그 준맹함이 바로 순정함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순’이다. 배움은 등급을 뛰어넘기 어렵고 법에는 정종이 있으니, 초학자도 이 법을 따르고 성취한 이도 이 법을 따라 선후가 모두 이 한 길을 간다. 먼 길을 감에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다른 갈림길에 미혹되지 않는 것, 이와 같을 뿐이다. 다만 서적이 흩어져 없어져 배우는 이가 널리 보고 요점을 취하기 어렵다. 시골의 선비들은 매양 『의방집해』 한 책을 머리맡의 비전으로 받들어, 병증을 대하자마자 찾아 쓴다. 이 책에 쓸 만한 처방이 본디 많지만 쓸 수 없는 것도 적지 않음을 전혀 모르니, 분별하여 고르지 않으면 인명을 풀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제 수록된 각 처방 뒤에 하나하나 평론을 더하였으니, 초학자를 위하여 범위를 정하려는 것이지 감히 고명한 이에게 침폄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또 배우는 이들이 이익을 꾀하는 욕심을 옅게 하고 사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하려는 것으로, 앞서 말한 뜻과 같다.
同治四年十月武進費伯雄晉卿甫題於古延陵之寓齋
동치 4년 10월 무진의 비백웅 진경보가 옛 연릉의 우거하는 서재에서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