必先歲氣 , 無伐天和

二分二至 , 病之輕者 , 可望其愈 , 病之重者 , 須防其篤 , 此陰陽互換 , 人氣隨之也 。 天地能鼓鑄群品 , 人亦能範圍天地 , 同在氣交中 , 誰能逃兩儀之侵薄 ? 觀聖人在位 , 天無疾風淫雨 , 非然耶 ? 知此則養生 , 即病之理錘可在手矣 。
두 분과 두 지에는 병이 가벼운 사람은 낫기를 바랄 수 있고 병이 무거운 사람은 위독해짐을 막아야 한다. 이는 음양이 서로 바뀌어 사람의 기가 따르기 때문이다. 천지는 온갖 사물을 빚을 수 있고 사람도 천지를 범위할 수 있다. 함께 기가 교류하는 가운데 있는데 누가 양의의 침범을 피할 수 있겠는가. 성인이 자리에 있으면 하늘에 거센 바람과 지나친 비가 없음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이를 알면 양생하고 병을 다스리는 이치의 저울을 손에 쥘 수 있다.
寒肅之氣 , 為 生髮之本 。 不然 , 造物者 , 豈好 為 此戕賊哉 ! 知此則知天地不可無秋冬之令 , 吾人身中不可不保金水二臟 。
차고 엄숙한 기는 생발의 근본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물자가 어찌 해치는 일을 좋아하겠는가. 이를 알면 천지에는 가을·겨울의 시령이 없어서는 안 되며 우리 몸속에서는 금·수 두 장을 보전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안다.
升已而降 , 降已而生 , 兩已字殊不妥貼 。 一邊升便一邊降 , 是升中有降 , 降中有升 , 升者自升 , 降者自降 , 奚俟其已耶 ! 不觀之二分二至乎 ? 四時之春夏秋冬而配以木火土金水 , 治病須求其寒熱溫涼之 宜, 毋違時 , 毋違化 , 用熱遠熱 , 用寒遠寒 , 宜 矣 。 至於運氣則有常有變 , 有主氣有客氣 , 有陽年有陰年 , 有南政有北政 , 有勝氣 , 有復氣 , 雖皆一本於乾支 , 然剛柔強弱 , 雜亂紛糾 , 何能按圖而索 ? 如土平運曰 : 備化不及曰卑監 , 太過曰敦阜 。 此可考也 。 少宮之歲而實與太角之歲同 , 則難可考也 。 況乎太陽之人 , 或遇流衍之紀 , 太陰之人 , 而遇赫曦之紀 , 強者有制 , 弱者得扶 , 又未可以流衍赫曦之 , 故而病寒熱也 。 且古今異氣 , 方隅異 宜, 安能比而同之 ? 故施之於治 , 往往不可不知 。
오르기를 마친 뒤 내리고 내리기를 마친 뒤 생긴다는 데에서 두 ‘이’ 자는 매우 적절하지 않다. 한쪽에서 오르면 곧 한쪽에서 내리니 오름 가운데 내림이 있고 내림 가운데 오름이 있다. 오르는 것은 스스로 오르고 내리는 것은 스스로 내리는데 어찌 마치기를 기다리겠는가. 두 분과 두 지를 보지 못하였는가. 사시의 봄·여름·가을·겨울에 목·화·토·금·수를 배합하니, 병을 치료할 때에는 한·열·온·량의 마땅함을 구하여 때를 어기지 않고 변화를 어기지 않으며 열약을 쓸 때 열을 멀리하고 한약을 쓸 때 한을 멀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운기에 이르면 상도와 변화가 있고 주기·객기, 양년·음년, 남정·북정, 승기·복기가 있다. 모두 간지에 근본하지만 강유·강약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데 어찌 도표대로 찾을 수 있겠는가. 토의 평운을 비화, 불급을 비감, 태과를 돈부라 하는 것은 상고할 수 있다. 그러나 소궁의 해가 실제로 태각의 해와 같다는 것은 상고하기 어렵다. 더구나 태양의 사람이 유연의 기를 만나거나 태음의 사람이 혁희의 기를 만나면 강한 것은 제어받고 약한 것은 도움을 얻으므로, 또 유연·혁희라는 이유로 한열의 병이 생긴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고금의 기가 다르고 지방마다 마땅함이 다른데 어찌 견주어 같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치료에 시행할 때 왕왕 이를 알지 않을 수 없다.
( 劉澹庵曰 : 古今異氣 , 方隅異 宜, 主氣或同 , 客氣則定 , 有不同者 , 此在察其氣 , 以知所感者何 ? 屬 為 多比而同施而治之 , 自不可也 。 )
(유담암이 말하였다. 고금의 기가 다르고 지방마다 마땅함이 다르므로 주기는 혹 같더라도 객기는 반드시 다른 경우가 있다. 이는 그 기를 살펴 감수한 것이 무엇이며 어느 부류가 많은지 알아야 하는 데 달려 있으니, 견주어 같다고 하여 시행하고 치료하는 것은 본래 안 된다.)
世有日用尋常之事 , 童而習之 , 白首不知其所以然者 , 如五行相剋 , 水剋火 , 火剋金 , 固易明矣 。 至於金剋木 , 豈斧斤 , 以時入仙之謂乎 ? 木剋土 , 豈草木蕃茂土因之而瘠之謂乎 ? 土剋水 , 豈水來土掩之謂乎 ? 是不易明也 。 在箕子主質而周子主氣 , 後人茫無所宗 , 予謂水剋火 , 火剋金 , 是言其質之與性 ; 金剋木 , 木剋土 , 土剋水 , 是但言其性 。 木之敷榮條達 , 固其性也 , 金氣肅殺 , 則克之矣 。 土居中央 , 其性緩 , 木之性勁急 , 則克之矣 。 水之性寒 , 濕土之性溫燠則克之矣 。 速其所欲 , 謂之瀉 , 瀉即克也 。 推此而言 , 相生之理 , 亦莫能外之格物致知之學 , 由淺入深 , 由粗入精 , 此等粗淺之處不明 , 吻口而談運氣得乎 !
세상에는 일상에서 늘 하는 일을 어려서 익혀 백발이 되어도 그 까닭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오행의 상극에서 수가 화를 극하고 화가 금을 극하는 것은 본래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금이 목을 극한다는 것이 어찌 도끼가 때에 맞추어 산에 들어간다는 말이겠는가. 목이 토를 극한다는 것이 어찌 초목이 무성하여 토가 그 때문에 메마른다는 말이겠는가. 토가 수를 극한다는 것이 어찌 물이 오면 흙으로 덮는다는 말이겠는가. 이는 쉽게 밝히기 어렵다. 기자는 질을 주로 하고 주자는 기를 주로 하였으므로 후인은 망연히 따를 바가 없다. 나는 수극화·화극금은 질과 성질을 말한 것이고 금극목·목극토·토극수는 성질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이 펼쳐 무성하고 조달하는 것은 본래 그 성질인데 금기의 숙살이 이를 극한다. 토는 중앙에 있어 성질이 느슨한데 목의 성질은 굳세고 급하므로 이를 극한다. 수의 성질은 찬데 습토의 성질은 따뜻하므로 이를 극한다. 원하는 것을 빠르게 하는 것을 사라고 하며 사는 곧 극이다. 이를 미루어 말하면 상생의 이치도 이 밖에 있을 수 없다. 격물치지의 학문은 얕은 데서 깊은 데로, 거친 데서 정밀한 데로 들어간다. 이런 거칠고 얕은 곳을 밝히지 못하면서 입을 열어 운기를 논할 수 있겠는가.
化氣必以五 , 故五行不可增之 為 六 , 減之 為 四 , 亦自然之理 。
기를 화하는 것은 반드시 다섯으로 하므로 오행을 늘려 여섯으로 하거나 줄여 넷으로 할 수 없으니 이 또한 자연의 이치이다.
五運六氣各具一體用 , 各具一太極 , 亢害承製 , 歸於和平 。 和平者 , 陰陽相抱 , 無偏無倚 , 之謂千萬法門 , 不過欲全此氣耳 。 醫有喜寒涼而惡溫熱 , 喜溫熟而惡寒涼 , 均未諳此 。
오운·육기는 각각 하나의 체용을 갖추고 하나의 태극을 갖추어 항해·승제로 화평에 돌아간다. 화평은 음양이 서로 안아 치우치거나 기울어짐이 없는 것이니 천만 법문도 이 기를 온전히 하려는 것일 뿐이다. 의사가 한량을 좋아하고 온열을 싫어하거나 온숙을 좋아하고 한량을 싫어하는 것은 모두 이를 잘 알지 못한 것이다.
運氣之說 , 若按圖索驥 , 似墮馬宗素術中 。 然不深求其理 , 安知人在氣交中 , 五運六氣太過不及 , 陰陽勝復內外合邪 , 皆能 為 病 ? 中庸之理 , 無往不 宜。 試以運言之太過不及 , 皆能致病 。 如土太過則水受克而火無制矣 。 土不及則不能生金 , 而木橫肆矣 。 故曰 : 母能令子虛 , 子能令母實 , 是虛則補其母 , 實則瀉其子之義也 。 又子逢竊氣 , 母乃力爭 , 母被鬼傷 , 子來力救之義也 。 不然造物既以生物 為 心 , 又殺之何也 ? 蓋理之不得不然者耳 。
운기설에서 그림대로 준마를 찾으려 하면 마종소의 술법에 빠지는 듯하다. 그러나 이치를 깊이 구하지 않으면 사람이 기가 교류하는 가운데 있어 오운·육기의 태과·불급, 음양의 승복과 내외의 합사가 모두 병을 일으킬 수 있음을 어찌 알겠는가. 중용의 이치는 어디에나 마땅하다. 운으로 그 태과·불급을 말하면 모두 병을 일으킨다. 토가 태과하면 수가 극을 받아 화가 제어되지 못하고, 토가 불급하면 금을 낳지 못하여 목이 제멋대로 날뛴다. 그러므로 어미가 자식을 허하게 할 수 있고 자식이 어미를 실하게 할 수 있다고 하니, 허하면 그 어미를 보하고 실하면 그 자식을 사한다는 뜻이다. 또 자식이 기를 도둑맞으면 어미가 힘써 다투고 어미가 귀에게 상하면 자식이 와서 힘써 구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물자가 이미 생물을 낳는 것을 마음으로 삼았는데 또 죽이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치상 부득이 그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