何以身不熱彼所病者暑濕也非食也養人者食也病也子何以不治殺人之暑濕而治養人之食彼不能說以呃逆為肝氣關旋覆湯而散嗚呼醫若是亦生人之大不幸也然而臣六竟如市也則為不可解之事嗣病家又邀一醫以犀角地黃湯下咽即死亦一盲也此二人若照醫門法律當人無閒地獄又八月間治松林老幕師薛樸堂先生之孫盲醫先生已有方予不知也診脈數舌黑燥口渴作瀉身熱有汗予案云此屬伏暑濕邪已化之候而肺液胃津先涸當增液通溲若誤作挾熱下利便非治暑濕法和則根生地生白芍麥冬生米仁生穀芽地骨皮效力元散通草等藥樸堂並不知醫以與彼之青麟丸蔞仁麻子仁枳殼大異因曰天下醫只一理何冰炭若是請問攻瀉何意以彼之不會立案也彼云急下存溲緣不早攻故致舌黑今攻之或可救也又問夫子何為予曰予意在案請觀案可也彼云能開方何以不能說予曰子所言是傷寒論此所患是暑濕症丹溪先生云暑濕後無大便攻瀉之理譬如弄名案情罪輕重不等豈皆耶傳曰山有木工則度之賓有禮防則擇之主人擇之可耳樸堂先生以予言為長服予方四五劑即愈 又治西郭嘉余典內一婦伏邪誤碼率服大黃致危予以葉法多日治愈身涼能食或食後傾囊吐出吐後仍食間數日又吐予用仲景炮姜甘草湯一劑即止蓋炮蓋三錢炙甘四錢以大黃之傷其胃也 過燥則唇齒燥裂藥以蒼朮為最厚朴半夏次之川連苦以燥亦甚米仁滑石茯苓雖燥不裂上焦症易於化燥患久須重用根生地兩許多劑救其津液方可得汗通溲予治三財殿前朱石翁患伏暑五六十日不汗不涼不食不便用根生地兩許佐以麥冬元參多劑始得汗得㾦且大解而身涼能食若遇陰津素虧之人舌淨光潔者尤忌燥藥蓋伏暑患在秋時正當燥令豈可過劑耶又蒼朮本草謂其濬血凡婦女經後即遇水瀉萬勿加用用必液涸雖大劑增液不可救(元參一兩生地八錢麥冬五錢名曰增液湯凡遇風溫溫熱溫疫之陰虛不得便者服三四劑大便暢解身亦涼若用承氣反致液涸難救)暑濕發㾦者多夾風者亦發疹托疹大力子蟬退晚蠶沙森防己等類予會於六月間遇發斑者大便心瀉往往不治當時不過一二人並非沿門合境則非瘟疫可知致今尚示解其何故 暑症最忌指尖怕冷其人陽氣必虛最易洞瀉用藥不可有慎 暑濕有化脹都當遵內經脹起於上焦而甚於下焦者當先治其下焦而後治其上焦治上焦麻黃湯治下焦五苓散然予試驗當改雲鬚始治其上焦而終治其下焦若用麻黃必重用生石膏為大青天龍越婢等法以麻黃性溫于都未符也此予之心得治愈頗多又漢覆船山俞六十外年紀伏暑化脹已用余不能行走不能食用張子和桂苓甘露二十餘劑愈又富陽醫者為姓自述在軍營當差受暑化脹年餘自服金匱腎氣不效慕名求治予曰金匱腎氣治腎脹於病不符暑在焦當用張子和桂苓甘露飯所謂桂苓者古法肉桂一錢五分泡濃汁滲入茯苓片六錢曬乾入煎為君每劑如是始效耳乃揖謝曰不差不差而合好而去未知其究竟愈否第無論何脹切須忌口葷沒曲食尤忌鹹味可母忌然不可過咸耳 又暑濕有夾瘡瘍者治朱詠泉世侄八月間患暑而濕邪尤重溏瀉肛間患瘡考金鑑云名鶴口疽但治其濕瘡當先愈用生茅朮生冬朮豬苓茯苓等果瘡先結閘而後身涼 伏暑有兩腿脹脹浮大疫重不便行走者須用木防己石膏澤瀉炙桑皮桑須自於桑根上掘取藥鋪皆身上剝皮非下焦藥故無效又滿身患暑濕爛瘡用根生地兩許羚角連翹川連地骨皮六一散茯苓皮晚蠶沙木防己澤瀉通草竹葉不過十劑愈 予友某文理絕通醫名亦有其家中有患暑久而未愈邀治診脈合症是上焦予曰治之某日必愈是逢每五日為一假之期也用葉法果至期解嘆以為奇殊不知渠確遵準繩治暑用六經法葉案未經目也故予集醫緘一書各病以一專長者為主以眾說匯之如傷寒以仲景六經法遵柯 伯說諸溫邪以河間法遵張喻吳葉論及吳氏條辨肝胃陽虛遵丹溪暑濕風溫遵葉氏諸疝遵張子和儒門事視書吐血遵絞氏廣筆記古人各有專長吾輩幸生古人之後當統觀而效法之若坐井觀天曰天在是天豈盡於是哉惜於風溫溫熱瘟疫諸說被人攫去惟余吐血一篇嗣以病止假我數年若得成功再當奉正
어찌 몸이 뜨겁지 않은가. 저 사람의 병은 서습이지 음식이 아니다. 사람을 기르는 것은 음식이고 해치는 것은 병이다. 어찌 사람을 죽이는 서습을 치료하지 않고 사람을 기르는 음식을 치료하는가”라고 하자 답하지 못하였다. 딸꾹질을 간기라 하여 선복탕을 처방하고 흩어졌다. 아, 이런 의사는 사람의 큰 불행인데도 문전은 저자 같으니 이해할 수 없다. 뒤에 집에서 또 다른 의사를 불러 서각지황탕을 먹이고 삼키자 죽었으니 그도 눈먼 자이다. 이 둘은 『의문법률』에 따르면 무간지옥에 들어가야 한다. 또 8월에 송림의 늙은 막료 설박당 선생 손자를 치료하였다. 앞의 의사가 이미 처방했으나 나는 몰랐다. 맥은 삭하고 혀는 검고 말랐으며 갈증·설사·신열·땀이 있었다. 내 의안에는 “복서의 습사가 이미 변화한 징후이나 폐액과 위진이 먼저 말랐으므로 진액을 늘리고 소변을 통하게 해야 한다. 열을 낀 하리로 잘못 보면 서습의 치료법이 아니다”라고 썼다. 근생지황·생백작약·맥문동·생의이인·생곡아·지골피·익원산·통초 등의 약을 썼다. 박당은 의학을 몰랐으나 저 사람의 청린환·과루인·마자인·지각과 크게 달라 “의술은 한 이치인데 어찌 얼음과 숯불처럼 다른가. 공격하고 설사시키는 뜻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가 의안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급히 내려 진액을 보전하려는 것입니다. 일찍 공격하지 않아 혀가 검게 되었으니 이제 공격하면 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내게 물어 내 뜻은 의안에 있으니 보라고 하자 그가 “처방할 수 있으면서 어찌 말하지 못합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그대 말은 『상한론』이고 이 병은 서습이다. 단계는 서습 뒤에는 대변을 공격해 내릴 이치가 없다고 하였다. 사건의 사정과 죄의 경중이 다른데 어찌 모두 같겠는가. 전에는 산에 나무가 있으면 목수가 헤아리고 손님에게 예법이 있으면 가린다고 하였으니 주인이 가리면 된다”고 하였다. 박당은 내 말을 낫게 여겨 네다섯 제를 먹여 곧 나았다. 또 서곽 가여전의 여인이 복사에 대황을 잘못 먹어 위태로워진 것을 섭씨 법으로 여러 날 치료하여 몸이 서늘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먹은 뒤 전부 토하고 토한 뒤 다시 먹다가 며칠 뒤 또 토하였다. 중경의 포강감초탕 한 제로 멎었으니 포강 3돈, 자감초 4돈으로 대황이 위를 손상한 것을 다스린 것이다. 지나치게 조하게 하면 입술과 이가 마르고 갈라진다. 약으로는 창출이 가장 심하고 후박·반하가 그다음이며 천련도 쓴맛으로 말리는 것이 심하다. 의이인·활석·복령은 조하게 해도 갈라지지는 않는다. 상초증은 조로 변하기 쉬워 오래되면 근생지황 한 냥가량을 무겁게 여러 제 써 진액을 구해야 땀과 소변이 통한다. 삼재전 앞 주석옹이 복서를 쉰~예순 날 앓아 땀도 안 나고 몸도 서늘하지 않고 먹지도 배변하지도 못하였는데 근생지황 한 냥가량에 맥문동·현삼을 보좌로 여러 제 쓴 뒤에야 땀이 나고 백배가 돋으며 대변이 크게 풀려 몸이 서늘하고 먹을 수 있었다. 본래 음진이 부족하여 혀가 깨끗하고 반들반들한 사람은 조약을 더욱 금한다. 복서는 가을의 조령에 앓으므로 어찌 지나치게 쓰겠는가. 『본초』는 창출이 혈을 준하게 한다고 하였다. 부인이 월경 뒤에는 물설사하더라도 절대로 더하지 말아야 한다. 쓰면 진액이 말라 많은 증액약으로도 구하지 못한다.〔현삼 1냥·생지황 8돈·맥문동 5돈을 증액탕이라 한다. 풍온·온열·온역으로 음허하여 대변을 보지 못하면 서너 제에 대변이 시원하고 몸도 서늘해진다. 승기탕을 쓰면 도리어 진액이 말라 구하기 어렵다.〕 서습에는 백배가 많고 풍을 겸하면 발진도 한다. 발진을 밀어내는 데 대력자·선퇴·만잠사·방기 등을 쓴다. 6월에 반진이 나고 물설사하는 이를 만나 흔히 치료하지 못하였는데 당시 한두 사람뿐이며 온 마을의 유행이 아니므로 온역이 아님은 알 수 있으나 지금도 까닭을 풀지 못하였다. 서증에서 가장 꺼리는 것은 손끝이 차가움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양기가 반드시 허하여 심한 물설사가 되기 쉬우므로 약을 신중히 써야 한다. 서습이 창만으로 변하는 경우는 『내경』의 “상초에서 시작하여 하초에서 심해지는 창만은 먼저 하초, 뒤에 상초를 치료한다”는 말을 따라야 한다. 상초에는 마황탕, 하초에는 오령산을 쓴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처음에 상초를 다스리고 마지막에 하초를 다스려야 한다고 고쳐 말해야 한다. 마황을 쓰려면 반드시 생석고를 중용하여 대청룡·월비 등의 법을 써야 한다. 마황은 온성이라 서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내 경험이며 나은 이가 많다. 복선산의 유씨 예순 넘은 이가 복서로 창만하여 걷지도 먹지도 못하였는데 장자화의 계령감로음을 스무 제 넘게 써 나았다. 부양의 한 의사는 성을 잊었는데 군영에서 일하다 서사를 받아 창만이 된 지 일 년 넘었고 스스로 금궤신기환을 먹어도 효과 없어 이름을 듣고 치료를 구했다고 하였다. 나는 금궤신기환은 신창을 다스려 병에 맞지 않으며 서는 초에 있으므로 장자화의 계령감로음을 써야 한다고 하였다. 계령은 옛 법에 육계 1돈 5푼을 진하게 우린 즙을 복령 조각 6돈에 스며들게 해 말린 뒤 달임에 넣어 군약으로 하는 것이다. 매 제마다 이처럼 해야 효과가 있다. 그는 절하고 옳다며 기뻐하여 갔으나 끝내 나았는지는 모른다. 어떤 창만이든 반드시 음식을 삼가고 고기와 기름지고 누룩으로 만든 음식은 특히 피한다. 짠맛은 금하지 않아도 되나 지나치게 짜서는 안 된다. 서습에 창양이 겸하기도 한다. 세교의 조카 주영천이 8월 서병에 습사가 특히 심하여 당설하고 항문에 창이 났다. 『금감』에 학구저라 하여 습만 치료하면 창이 먼저 낫는다고 하였으므로 생모출·생동출·저령·복령 등을 썼다. 과연 창이 먼저 딱지 지고 뒤에 몸이 서늘해졌다. 복서로 두 다리가 붓고 커지며 무겁고 아파 걷기 어려우면 목방기·석고·택사·자상백피를 써야 한다. 상백피는 반드시 뽕나무 뿌리에서 직접 캐야 한다. 약방은 모두 줄기 껍질이라 하초약이 아니므로 효과가 없다. 또 온몸에 서습으로 짓무른 창에는 근생지황 한 냥가량·영양각·연교·천련·지골피·육일산·복령피·만잠사·목방기·택사·통초·죽엽을 써 열 제가 못 되어 나았다. 글에 통달하고 의명도 있는 벗의 집안 사람이 서병을 오래 앓아 나를 불렀다. 맥과 증을 합쳐 상초임을 알고 어느 날 반드시 낫는다고 하였다. 닷새마다 한 후[候]가 되는 시기에 맞춘 것이다. 섭씨 법을 쓰니 과연 그때 풀려 기이하게 여겼으나, 그는 서병에 육경법만 엄격히 따르고 섭씨 의안은 보지 못했음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모은 『의함』은 각 병마다 한 전문자를 주로 삼고 여러 설을 모았다. 상한은 중경의 육경법과 가운백의 설, 여러 온사는 하간법과 장·유·오·섭의 논의 및 오씨 『조변』, 간위의 양허는 단계, 서습·풍온은 섭씨, 여러 산증은 장자화의 『유문사친』, 토혈은 무씨 『광필기』를 따른다. 옛사람에게 각기 전문이 있으니 뒤에 태어난 우리는 두루 보고 본받아야 한다. 우물에 앉아 하늘을 보며 하늘이 여기에 있다고 한다면 하늘이 어찌 여기서 다하겠는가. 안타깝게도 풍온·온열·온역의 여러 설은 남이 빼앗아 가고 토혈 한 편만 남았다. 뒤에 병으로 중지했으나 몇 년을 더 얻어 완성하면 다시 바로잡음을 청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