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交張魯對六兄醫學高明凡戚友中病至棘手瞎至立法即愈一嬡尚在室患溫邪多日不愈邀治舌黑燥神呆脈滯大予認為邪人心包當用犀角地黃魯翁對以業已服過或劑輕之故再議以大劑不應予又診問工婦病口曾經走經否對以十餘日上至服主人藥予知其必不用醫通法也於是以舌黑為津液之涸腎水之乾耳聾者水不上升也神昏者精不上交於心也兩腿不能自移衣服著肌肉即大叫痛者為血分之虧也用吳氏溫病條辨下焦篇中復脈湯加減內大熟地用至八錢炙甘草用至六錢魯翁嫌手筆太重予謂其書謂甘草不應加至一兩曾經得效多人竟用之一劑即知魯翁竟以此湯日進不過十餘日全愈予即以溫病條辨轉贈緣此書京城所刻吳鞠通與世伯胡水云先生交好今下灶胡心享明府水云先生之令嗣也蒙其屢次贈今甯波有翻刻者後晤魯翁云曾經以書內大定風珠治血崩得效此媛適陽嘉龍孫寶號七月間患暑濕致小產經血不下魯翁自診後又邀予魯翁此次手 筆亦不輕當婦用至七錢予謂究屬性溫不如易以丹參一兩且產由暑熱逼下須用涼劑若不以涼即熱人血室矣加以丹皮梔子六一散木通等竟霍然風溫發疹紹興謂之瘄蘇人謂痧葉氏謂之肺邪發在冬春用溫邪法夏秋用暑濕法皆涼肺祛風惟怕脹悶大便不解若大便水瀉不必服藥即用藥如
세교 장노대 여섯째 형은 의학이 높고 밝아 친척과 벗의 병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가서 법을 세워 곧 낫게 하였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 하나가 온사를 여러 날 앓아 낫지 않아 나를 불렀다. 혀는 검고 말랐고 정신은 멍하며 맥은 막히고 컸다. 사기가 심포에 들어갔다고 보아 서각지황탕을 써야 한다고 하니 노옹은 이미 복용했다고 하였다. 양이 가벼워서인가 하여 다시 큰 제를 의논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다시 진찰하며 시중드는 부인에게 병중 월경이 있었는지 물으니 열흘 남짓 되었을 때 와서 주인의 약을 먹었다고 하였다. 나는 반드시 『의통』의 법을 쓰지 않았음을 알았다. 검고 마른 혀는 진액과 신수가 마른 것이고 귀먹음은 수가 올라가지 못한 것이며 혼미는 정이 위로 심에 교통하지 못한 것이다. 두 다리를 스스로 옮기지 못하고 옷이 살에 닿으면 크게 아프다고 외치는 것은 혈분 부족이다. 오씨 『온병조변』 하초편의 복맥탕을 가감하여 대숙지황을 8돈, 자감초를 6돈까지 썼다. 노옹이 너무 무겁다 하여 그 책에는 감초가 응하지 않으면 1냥까지 늘리라고 하며 여러 사람에게 효과를 보았다고 하였다. 마침내 한 제를 쓰자 곧 반응하였고 노옹이 날마다 계속하여 열흘 남짓 만에 완전히 나았다. 나는 『온병조변』을 주었다. 이 책은 경성[중국의 수도]에서 판각하였고 오국통은 세백 호수운 선생과 친교가 있었으며 현재 하조의 호심형 현령이 수운 선생의 아들이라 여러 번 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영파에도 번각본이 있다. 뒤에 노옹을 만났을 때 책 속 대정풍주로 혈붕을 치료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하였다. 그 딸은 양가룡 손보호에게 출가하였는데 7월 서습을 앓아 유산하고 경혈이 나오지 않았다. 노옹이 직접 진찰한 뒤 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노옹의 처방도 가볍지 않아 당귀를 7돈까지 썼다. 나는 결국 성질이 따뜻하므로 단삼 1냥으로 바꾸는 편이 낫고, 서열이 몰아내어 유산했으니 서늘한 약을 쓰지 않으면 열이 혈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단피·치자·육일산·목통 등을 더하니 깨끗이 나았다. 풍온으로 발진하는 것을 소흥에서는 작, 소주에서는 사라 하고 섭씨는 폐사라 하였다. 겨울·봄에는 온사법을, 여름·가을에는 서습법을 쓰되 모두 폐를 식히고 풍을 제거한다. 오직 창민하고 대변이 풀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물설사하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고 약을 쓰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