道光庚戊六月水澄巷王元通一婦患溫邪六七日適逢經至予為道賀即用前法其本家有知醫者謂通經當用溫藥改為炮姜紅花等劑經即停叫鄭煩躁一夜即死
도광 경술년 6월 수징항 왕원통의 집안 여인이 온사를 엿새나 이레 앓다가 마침 월경이 왔다. 나는 축하하며 곧 앞의 방법을 썼다. 그 집안의 의술을 안다는 사람이 월경을 통하게 하려면 온약을 써야 한다며 포강·홍화 등의 약으로 바꾸자 월경이 곧 멎고 떠들며 번조하다가 하룻밤에 죽었다.
範姓一室女父母皆亡患暑熱予治一日予診脈兩手綿洪而兩尺尤大疑天癸至詢工婦出人三次答以無事予以暑熱太盛用白虎湯至晚痙厥始知其經果至因室女怕羞囑其勿說遂致不救
범씨 집의 처녀는 부모가 모두 죽었고 서열을 앓아 내가 치료하였다. 어느 날 진찰하니 양손 맥이 면홍하고 두 척이 더욱 커 천계가 온 듯하여 시중드는 부인에게 물었다. 세 번 드나들며 물었으나 일이 없다고 답하였다. 서열이 너무 성한 것으로 보고 백호탕을 썼는데 저녁에 경련과 궐이 생기고서야 월경이 실제로 왔음을 알았다. 처녀가 부끄러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마침내 구하지 못하였다.
同治壬戊避難鄉間有一婦患疫八日經至又四日邀治速用前法詎鄉間赴市較遠藥未入口而經已停遂至神昏不語痙厥不治毛姓一婦孕八個月霜降後患伏暑黃昏寒熱似瘧非瘧無物不嘔是上是焦
동치 임술년에 시골로 피난하였을 때 한 여인이 역병을 여드레 앓다가 월경이 오고 다시 나흘 뒤 나를 불렀다. 급히 앞의 법을 썼으나 시골에서 시장까지 멀어 약이 입에 들어가기 전에 월경이 멎어 정신이 혼미하고 말하지 못하며 경련·궐증이 되어 치료하지 못하였다. 모씨 집의 여인은 임신 여덟 달에 상강 뒤 복서를 앓았다. 황혼의 한열이 학질 같으나 학질은 아니며 무엇이든 토하니 상초의
症其陽之不通以禁用滑石故也然日用厚朴藿梗更多醫嘔總不除後予以喻氏進退法一劑嘔止即告辭以極於上者必反於下一產即為棘手病家再三囑治用安胎清暑法不彌月而產產後母子均吉惟惡露點滴則無予思病經一月今欲求其血是迫饑民而征斂也理當加本求利於是以丹參八錢當婦三錢川芎二錢再加沙苑子一兩以代地黃經血大至服十劑惡露已淨黃昏熱又作予謂是極於下必反於上也用薄荷滑石辛涼解肺而愈
증이다. 양이 통하지 않은 것은 활석을 금했기 때문이다. 날마다 후박·곽향 줄기 등을 더욱 많이 써도 구토가 끝내 없어지지 않았다. 뒤에 내가 유씨의 진퇴법을 써 한 제에 구토가 멎자 곧 사양하였다. 위에서 극에 이른 것은 반드시 아래로 돌아가므로 출산하면 곧 치료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거듭 부탁하여 안태청서법을 썼는데 한 달이 못 되어 출산하였고 모자는 모두 무사하였다. 다만 오로가 한 방울도 없었다. 나는 병이 한 달 지났는데 이제 피를 구하는 것은 굶주린 백성에게 징세를 강요하는 것이므로 자본을 더하여 이익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단삼 8돈·당귀 3돈·천궁 2돈에 사원자 1냥으로 지황을 대신하니 경혈이 크게 나왔다. 열 제에 오로가 다 깨끗해졌으나 황혼에 열이 다시 생겼다. 나는 아래에서 극에 이르면 반드시 위로 돌아간 것이라고 하여 박하·활석으로 신량하게 폐를 풀어 낫게 하였다.
世交張魯對六兄醫學高明凡戚友中病至棘手瞎至立法即愈一嬡尚在室患溫邪多日不愈邀治舌黑燥神呆脈滯大予認為邪人心包當用犀角地黃魯翁對以業已服過或劑輕之故再議以大劑不應予又診問工婦病口曾經走經否對以十餘日上至服主人藥予知其必不用醫通法也於是以舌黑為津液之涸腎水之乾耳聾者水不上升也神昏者精不上交於心也兩腿不能自移衣服著肌肉即大叫痛者為血分之虧也用吳氏溫病條辨下焦篇中復脈湯加減內大熟地用至八錢炙甘草用至六錢魯翁嫌手筆太重予謂其書謂甘草不應加至一兩曾經得效多人竟用之一劑即知魯翁竟以此湯日進不過十餘日全愈予即以溫病條辨轉贈緣此書京城所刻吳鞠通與世伯胡水云先生交好今下灶胡心享明府水云先生之令嗣也蒙其屢次贈今甯波有翻刻者後晤魯翁云曾經以書內大定風珠治血崩得效此媛適陽嘉龍孫寶號七月間患暑濕致小產經血不下魯翁自診後又邀予魯翁此次手 筆亦不輕當婦用至七錢予謂究屬性溫不如易以丹參一兩且產由暑熱逼下須用涼劑若不以涼即熱人血室矣加以丹皮梔子六一散木通等竟霍然風溫發疹紹興謂之瘄蘇人謂痧葉氏謂之肺邪發在冬春用溫邪法夏秋用暑濕法皆涼肺祛風惟怕脹悶大便不解若大便水瀉不必服藥即用藥如
세교 장노대 여섯째 형은 의학이 높고 밝아 친척과 벗의 병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면 가서 법을 세워 곧 낫게 하였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딸 하나가 온사를 여러 날 앓아 낫지 않아 나를 불렀다. 혀는 검고 말랐고 정신은 멍하며 맥은 막히고 컸다. 사기가 심포에 들어갔다고 보아 서각지황탕을 써야 한다고 하니 노옹은 이미 복용했다고 하였다. 양이 가벼워서인가 하여 다시 큰 제를 의논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다시 진찰하며 시중드는 부인에게 병중 월경이 있었는지 물으니 열흘 남짓 되었을 때 와서 주인의 약을 먹었다고 하였다. 나는 반드시 『의통』의 법을 쓰지 않았음을 알았다. 검고 마른 혀는 진액과 신수가 마른 것이고 귀먹음은 수가 올라가지 못한 것이며 혼미는 정이 위로 심에 교통하지 못한 것이다. 두 다리를 스스로 옮기지 못하고 옷이 살에 닿으면 크게 아프다고 외치는 것은 혈분 부족이다. 오씨 『온병조변』 하초편의 복맥탕을 가감하여 대숙지황을 8돈, 자감초를 6돈까지 썼다. 노옹이 너무 무겁다 하여 그 책에는 감초가 응하지 않으면 1냥까지 늘리라고 하며 여러 사람에게 효과를 보았다고 하였다. 마침내 한 제를 쓰자 곧 반응하였고 노옹이 날마다 계속하여 열흘 남짓 만에 완전히 나았다. 나는 『온병조변』을 주었다. 이 책은 경성[중국의 수도]에서 판각하였고 오국통은 세백 호수운 선생과 친교가 있었으며 현재 하조의 호심형 현령이 수운 선생의 아들이라 여러 번 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영파에도 번각본이 있다. 뒤에 노옹을 만났을 때 책 속 대정풍주로 혈붕을 치료하여 효과를 보았다고 하였다. 그 딸은 양가룡 손보호에게 출가하였는데 7월 서습을 앓아 유산하고 경혈이 나오지 않았다. 노옹이 직접 진찰한 뒤 다시 나를 불렀다. 이번에는 노옹의 처방도 가볍지 않아 당귀를 7돈까지 썼다. 나는 결국 성질이 따뜻하므로 단삼 1냥으로 바꾸는 편이 낫고, 서열이 몰아내어 유산했으니 서늘한 약을 쓰지 않으면 열이 혈실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단피·치자·육일산·목통 등을 더하니 깨끗이 나았다. 풍온으로 발진하는 것을 소흥에서는 작, 소주에서는 사라 하고 섭씨는 폐사라 하였다. 겨울·봄에는 온사법을, 여름·가을에는 서습법을 쓰되 모두 폐를 식히고 풍을 제거한다. 오직 창민하고 대변이 풀리지 않는 것을 두려워한다. 물설사하면 약을 먹을 필요가 없고 약을 쓰더라도
櫻桃核綿絲綿西湖柳皆無用焉同治丙寅三月餘全家病瘄皆輕不服藥有二女病亦輕病中經皆至絕不為意一女尚無恙一女後此經斷越兩月氣喘面脹書夜坐始詢其故服黑錫丹錢氣平能臥面腫亦消然大便水瀉考張氏醫通謂之腎喘水瀉者不治藶用藥竟無效此二女絕頂聰明職書義尤孝友愛敬一字明之一字全之全之次年出嫁以予病危割臂痊余又明年患病易簀時見瘡痕始悉女本同胞三尚有長姊字圓之十五歲時割臂療予出以理詰稽會城隍纖示一啄一飯莫非前定然則窮通修短俱屬前定予觀唐代叢書謂佛氏上應鬼宿鬼明亮佛道昌明於是晤天地間三教鼎立缺一不可以儒教治人以佛教漢道教治非人非鬼之妖怪且以晤命數所定即倉公扁鵲亦無益也
앵도핵·면사·솜·서호 버들 같은 것은 모두 소용없다. 동치 병인년 3월 온 집안이 작진을 앓았으나 모두 가벼워 약을 먹지 않았다. 두 딸도 가볍게 앓았고 병중 월경이 왔으나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 딸은 무사했으나 다른 딸은 그 뒤 월경이 끊어지고 두 달 뒤 숨이 차고 얼굴이 부어 밤낮 앉아 있게 되어서야 까닭을 물었다. 흑석단을 돈[錢, 앞의 수량 불명] 단위로 복용하자 기가 고르게 되어 누울 수 있었고 얼굴 부기도 가라앉았다. 그러나 물설사를 하여 『장씨의통』을 살피니 이를 신천이라 하며 물설사하면 치료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여러 약을 써도 끝내 효과가 없었다. 두 딸은 매우 총명하여 글 뜻을 알았고 특히 효도와 우애와 공경이 있었으며 하나의 자는 명지, 하나의 자는 전지였다. 전지는 다음 해 출가하였고 내가 위독하자 팔을 베어 나를 낫게 하였다. 또 이듬해 병들어 죽을 때 상처 자국을 보고서야 알았다. 딸은 동복 셋으로 맏언니 원지도 열다섯 살에 팔을 베어 나를 치료하였다. 이치로 따져 묻고 회계 성황의 점괘를 보니 한 번 쪼고 한 번 먹는 것도 미리 정해지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궁통과 수명의 장단도 모두 정해진 것이다. 『당대총서』에서 불교가 하늘의 귀수에 응하며 귀수가 밝으면 불도가 창명해진다는 말을 보고, 천지 사이 삼교가 솥발처럼 서서 하나도 없어서는 안 됨을 깨달았다. 유교로 사람을 다스리고 불교로 귀신을 다스리며 도교로 사람도 귀신도 아닌 요괴를 다스린다. 또 명수가 정해져 있으면 창공과 편작도 도움이 없음을 깨달았다.
西郭陳永茂頗職醫之善否予每治其家婦女病中經至即愈今予孝病不為治去秋有患暑而經至頗記金言遵醫者以熱後血泄法乃茫然仍用厚朴枳蔞復以炒芍即不治
서곽의 진영무는 의사의 좋고 나쁨을 꽤 알았다. 내가 그 집 여인들을 치료할 때 병중 월경이 오면 곧 나았으나 지금 내가 병들어 치료하러 가지 못하였다. 지난가을 서병에 월경이 온 사람이 있어 내 말을 잘 기억하고 의사에게 열 뒤 혈이 나오는 법을 따르게 하였으나 그는 어리둥절하여 여전히 후박·지실·과루를 쓰고 다시 초작약을 써서 끝내 치료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