孕身患痢皋諸醫無效予予以前法二劑即愈病家以方示講醫皆云非痢疾方何以得愈噫正惟非痢疾方乃所以治孕身之痢也幼科周七香兄其兩媳孕身同時患痢予以前法皆兩劑愈予友朱殼堂寒士也用如君孕八個月患痢雖不犯大黃檳榔然皆厚朴枳殼蔞仁麻仁通套藥並非遵古治孕痢法黃錯邀余治正在腰腹大痛勢欲作產谷堂手足無措予診脈浮大而舌淨今胎動一產即母子皆傷因憶景岳全書內有治孕痢欲產用當歸補血法用蜜炙綿著一兩炒當歸三錢炒糯米一合幸藥鋪不遠予為之搧火速煎下咽逾時痛止再診關尺尚大恐五更乃產令再一劑五更服之次日午刻谷堂至稱醫為仙五更果大痛下咽痛止能此方為妙又服一劑矣予謂中病即過劑即屬兜塞此痢胎前不能愈矣果產復大作水瀉又邀予予以痢為水瀉將愈母須診授以五苓散即愈
임신 중 이질을 앓아 여러 의사가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내가 앞의 법으로 두 제를 주자 곧 나았다. 집안에서 처방을 의사들에게 보이자 모두 이질 처방이 아닌데 어떻게 나았느냐고 하였다. 아, 바로 이질의 관습 처방이 아니기에 임신부의 이질을 치료한 것이다. 소아과 주칠향 형의 두 며느리도 임신 중 동시에 이질을 앓아 앞의 법으로 모두 두 제에 나았다. 벗 주곡당은 가난한 선비였는데 첩이 임신 여덟 달에 이질을 앓았다. 대황·빈랑은 쓰지 않았으나 후박·지각·과루인·마자인의 상투적인 약으로 옛 임신부 이질법을 따르지 않았다. 황혼에 나를 불렀는데 허리와 배가 몹시 아파 출산하려 하여 곡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맥은 부대하고 혀는 깨끗하였으며 태가 움직여 낳으면 모자가 모두 상할 형세였다. 『경악전서』의 임신 중 이질로 출산하려 할 때 당귀보혈법을 쓰는 것이 생각나 꿀로 구운 면황기 1냥, 볶은 당귀 3돈, 볶은 찹쌀 1홉을 썼다. 다행히 약방이 가까워 내가 부채질하여 빨리 달였고 삼킨 뒤 얼마 지나 통증이 멎었다. 다시 보니 관척이 아직 커 오경에 낳을까 염려되어 한 제를 더 오경에 복용하게 하였다. 다음 날 정오 곡당이 와 의술을 신선이라 하며 “오경에 과연 몹시 아팠으나 삼키자 멎어 처방이 묘하다고 여겨 한 제를 더 먹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병에 맞으면 그쳐야 하며 지나치면 막는 것이 되니 이 이질은 출산 전에 낫지 못한다고 하였다. 과연 출산 뒤 물설사가 크게 나 다시 불렀다. 나는 이질이 물설사로 바뀌었으면 나으려는 것이니 진찰할 필요 없다며 오령산을 주어 낫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