予治清涼橋沈下績血舌黃脈弦大用當婦赤芍黃芩甘草木得川連川楝子炒小茴酒延胡柏子仁兩三劑血中又有蚘於前方去甘草茴加川椒炭鳥梅肉臺鳥藥兩劑乃血中見糞終以肝法得愈
청량교의 심씨가 아래로 핏덩이를 내보내고 설태가 누렇고 맥이 현대하였다. 당귀·적작약·황금·감초·목득·천련·천련자·볶은 소회향·술로 법제한 현호색·백자인을 썼다. 두세 제 뒤 피 속에 회충이 있어 앞 처방에서 감초·회향을 빼고 천초탄·오매육·대오약을 더하였다. 두 제 뒤 피 속에 대변이 보였고 끝내 간을 다스리는 법으로 나았다.
錦鱗橋毛婦患痢舌黃口渴痛在臍上下有脾痢法杏仁厚朴枳殼銀花炭香連丸陳皮至第七日脈沉實用制軍枳實攻之詎病家申刻即睡所議方每於次日始服第八日服下藥則小腹大痛予謂是轉人肝經藥在病後也再以當歸黃芩湯合金鈴子散加柏子仁炒小茴香又七日乃愈是先脾後肝也
금린교 모씨 부인이 이질을 앓아 설태가 누렇고 갈증이 있으며 배꼽 위아래가 아팠다. 비리법으로 행인·후박·지각·은화탄·향련환·진피를 썼다. 이레째 맥이 침실하여 제대황·지실로 공격하였는데 집에서는 신시에 곧 잠자리에 들어 처방한 약을 다음 날에야 복용하였다. 여드레째 하약을 먹자 아랫배가 크게 아팠다. 나는 간경으로 전한 뒤에 약이 병보다 늦은 것이라고 하였다. 다시 당귀황금탕과 금령자산을 합하고 백자인·볶은 소회향을 더하여 또 이레 뒤 나았으니 먼저 비, 뒤에 간이었다.
保佑橋秋患痢五日邀診脈弦細寒熱往來脅腹痛閱所服痢疾套方故無效用小柴胡湯合當歸黃芩湯香連丸七日即愈
보우교에서 가을에 이질을 닷새 앓은 사람을 보니 맥이 현세하고 한열이 오가며 옆구리와 배가 아팠다. 먹은 것은 이질의 관습적인 처방이어서 효과가 없었다. 소시호탕에 당귀황금탕과 향련환을 합하여 이레 만에 나았다.
東昌坊梁所患必是肝痢所服不分肝脾之套方已至呃逆舌苔雪花予診脈弦小如絲是肝陰大傷之候用大生地進歸芍阿膠淮藥補其肝縮砂牡蠣降其逆旋覆花除其呃出人調補十餘日而愈
동창방 양씨의 병은 분명 간리인데 간비를 가리지 않는 관습 처방을 복용하여 이미 딸꾹질하고 설태가 눈꽃 같았다. 맥은 실처럼 현소하였으니 간음이 크게 손상된 징후이다. 큰 생지황·당귀·작약·아교·회산약으로 간을 보하고 축사·모려로 역을 내리며 선복화로 딸꾹질을 없앴다. 넣고 빼며 조보하여 열흘 남짓 만에 나았다.
山陰吏書陳步云患痢多日所服皆消遵攻痢等藥舌雪花呃逆不食脈兩尺獨大餘弦小此久痢傷及肝賢也用熟地龜板歸芍阿膠補其肝腎姜五味炙甘陳皮調其胃以胃為賢之關仿胃關煎法也復以刀豆除其呃十餘劑愈保佑橋酒店忘其姓男人年二十餘痢一月診時氣息奄奄脈沉虛小側臥不敢動一動則肛門稀水即出舌鮮紅光潔是腎陰大傷必攻擊過分所致用熟地肉桂五味龜板復以炮姜粳米赤石脂等桃花湯多劑始愈
산음의 이서 진보운은 이질을 여러 날 앓으며 소도·공리약을 먹었다. 혀는 눈꽃 같고 딸꾹질하며 먹지 못했고 두 척만 크고 나머지는 현소하였다. 오래된 이질이 간신을 상한 것이므로 숙지황·귀판·당귀·작약·아교로 간신을 보하고 생강·오미자·자감초·진피로 위를 조절하였다. 위는 신의 관문이므로 위관전법을 본뜬 것이다. 다시 도두로 딸꾹질을 없애 열여 제에 나았다. 보우교 술집의 성을 잊은 스무 살 남짓 남자는 이질 한 달 뒤 숨이 가냘프고 맥이 침허소하였다. 옆으로 누워 감히 움직이지 못하며 움직이면 항문에서 묽은 물이 나왔고 혀는 선홍색으로 반들반들하였다. 신음이 크게 상한 것으로 반드시 지나친 공격 때문이었다. 숙지황·육계·오미자·귀판과 포강·갱미·적석지 등의 도화탕을 여러 제 써서야 나았다.
予祖基本江南遷紹二百餘年即居此與劉姓為鄰懷川世叔五六世交好也患休息痢四載日四五行解出甚難多轉失氣痢即隨出如漐色紫其休時糞如筆管商治於予謂須春分前後治之至期診脈弦滯大予謂濕熱未淨傷及氣分用漢防已焦茅朮川連茯芩澤瀉祛其濕熱廣木香縮砂陳皮利其氣文黨參一兩以升麻一錢煎濃汁浸烘黨參升補其氣七帖其病如失由是凡城鄉患休者每約至春分治愈頗多又松林張年四十餘歲患休息痢兩年是傷及肝分者用當歸黃芩湯合香連丸加制香附縮砂舒肝而愈
내 조상은 본래 강남에서 소흥으로 옮겨 온 지 이백여 년이며 여기 살며 유씨와 이웃하였다. 회천 숙부와는 대여섯 세대의 세교였다. 휴식리를 네 해 앓아 하루 네다섯 번 보되 몹시 어렵고 대개 방귀가 나오면 이질변이 따라 나오며 즙처럼 자줏빛이었다. 쉴 때 대변은 붓대 같았다. 치료를 의논하기에 춘분 전후에 치료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때 맥을 보니 현체대하여 습열이 깨끗이 없어지지 않고 기분을 상한 것이라고 하였다. 한방기·초모출·천련·복령·택사로 습열을 제거하고 광목향·축사·진피로 기를 이롭게 하였다. 문당삼 1냥은 승마 1돈의 진한 달임물에 담갔다 말려 기를 올리고 보하게 하니 일곱 첩에 병이 없어진 듯하였다. 이후 도농의 휴식리 환자에게 늘 춘분을 기약하여 치료해 나은 이가 많다. 또 송림의 장씨 마흔 남짓은 휴식리 두 해로 간분을 상한 경우여서 당귀황금탕과 향련환에 제향부·축사를 더하여 간을 펴 주자 나았다.
又松林薛四兄作官江西患休息痢已兩載秋時歸里求治於予予以治須春分現恐湯藥不能效當用丸緩治之法用川連一兩臺鳥藥一兩五錢焦茅朮三兩廣木香一兩五錢澤瀉一兩五錢淡黃芩一兩五錢研末米飯為丸每服五錢服七兩餘痢亦愈緣渠痢中夾紅為濕熱之在肝者
또 송림의 설씨 넷째 형은 강서에서 벼슬하며 휴식리를 두 해 앓다가 가을에 귀향하여 내게 치료를 구하였다. 나는 치료에는 춘분이 필요하고 지금은 탕약이 효과 없을 듯하므로 환약으로 천천히 치료해야 한다고 하였다. 천련 1냥, 대오약 1냥 5돈, 초모출 3냥, 광목향·택사·담황금 각 1냥 5돈을 가루 내어 쌀밥으로 환을 만들고 매번 5돈씩 복용하였다. 7냥 남짓 먹고 이질도 나았으니 변에 피가 섞여 간에 습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孕身患痢治之極難古人有五禁三審者審身之熱否胎之動否腰之痛否一禁檳榔厚朴破其氣氣破胎下也二禁制軍破其血血破胎下也三禁滑石通草通其核核通胎下也四禁茯苓澤瀉利其水利水必傷陰胎不保也五禁人參升麻兜塞其氣痢愈滯通順撞心也法當涼血利氣難頭山周七月
임신 중 이질은 치료하기 매우 어렵다. 옛사람의 오금·삼심은 몸에 열이 있는지, 태가 움직이는지, 허리가 아픈지를 살피는 것이다. 첫째 빈랑·후박은 기를 깨뜨려 태가 내려오므로 금한다. 둘째 제대황은 혈을 깨뜨려 태가 내려오므로 금한다. 셋째 활석·통초는 핵을 통하게 하여 태가 내려오므로 금한다. 넷째 복령·택사는 수를 내리면 반드시 음을 상하여 태를 보전하지 못하므로 금한다. 다섯째 인삼·승마는 기를 막아 이질을 더욱 정체시키고 치밀어 심을 치므로 금한다. 법은 혈을 식히고 기를 이롭게 해야 한다. 난두산의 주씨가 7월에
孕身患痢皋諸醫無效予予以前法二劑即愈病家以方示講醫皆云非痢疾方何以得愈噫正惟非痢疾方乃所以治孕身之痢也幼科周七香兄其兩媳孕身同時患痢予以前法皆兩劑愈予友朱殼堂寒士也用如君孕八個月患痢雖不犯大黃檳榔然皆厚朴枳殼蔞仁麻仁通套藥並非遵古治孕痢法黃錯邀余治正在腰腹大痛勢欲作產谷堂手足無措予診脈浮大而舌淨今胎動一產即母子皆傷因憶景岳全書內有治孕痢欲產用當歸補血法用蜜炙綿著一兩炒當歸三錢炒糯米一合幸藥鋪不遠予為之搧火速煎下咽逾時痛止再診關尺尚大恐五更乃產令再一劑五更服之次日午刻谷堂至稱醫為仙五更果大痛下咽痛止能此方為妙又服一劑矣予謂中病即過劑即屬兜塞此痢胎前不能愈矣果產復大作水瀉又邀予予以痢為水瀉將愈母須診授以五苓散即愈
임신 중 이질을 앓아 여러 의사가 효과를 내지 못하였다. 내가 앞의 법으로 두 제를 주자 곧 나았다. 집안에서 처방을 의사들에게 보이자 모두 이질 처방이 아닌데 어떻게 나았느냐고 하였다. 아, 바로 이질의 관습 처방이 아니기에 임신부의 이질을 치료한 것이다. 소아과 주칠향 형의 두 며느리도 임신 중 동시에 이질을 앓아 앞의 법으로 모두 두 제에 나았다. 벗 주곡당은 가난한 선비였는데 첩이 임신 여덟 달에 이질을 앓았다. 대황·빈랑은 쓰지 않았으나 후박·지각·과루인·마자인의 상투적인 약으로 옛 임신부 이질법을 따르지 않았다. 황혼에 나를 불렀는데 허리와 배가 몹시 아파 출산하려 하여 곡당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맥은 부대하고 혀는 깨끗하였으며 태가 움직여 낳으면 모자가 모두 상할 형세였다. 『경악전서』의 임신 중 이질로 출산하려 할 때 당귀보혈법을 쓰는 것이 생각나 꿀로 구운 면황기 1냥, 볶은 당귀 3돈, 볶은 찹쌀 1홉을 썼다. 다행히 약방이 가까워 내가 부채질하여 빨리 달였고 삼킨 뒤 얼마 지나 통증이 멎었다. 다시 보니 관척이 아직 커 오경에 낳을까 염려되어 한 제를 더 오경에 복용하게 하였다. 다음 날 정오 곡당이 와 의술을 신선이라 하며 “오경에 과연 몹시 아팠으나 삼키자 멎어 처방이 묘하다고 여겨 한 제를 더 먹였습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병에 맞으면 그쳐야 하며 지나치면 막는 것이 되니 이 이질은 출산 전에 낫지 못한다고 하였다. 과연 출산 뒤 물설사가 크게 나 다시 불렀다. 나는 이질이 물설사로 바뀌었으면 나으려는 것이니 진찰할 필요 없다며 오령산을 주어 낫게 하였다.
大云橋周二十三歲其家前門緊對任氏後門患痢惡任氏專以攻奪延姚姓治之姚則不分肝脾概以當歸白芍黃芩治之治十日不愈不得已邀任氏以脾治法又十日更甚始邀予時正九月初也予診脈弦大舌白浮面灰色喉痛口渴其瀉出頗多予以病在上焦肺與大腸表裹用肺分濕熱法喉痛舌黑雖去而痢總不愈日邀治治總不得其核一日病甚危臥床少腹中有塊頂起喜人以厚棉褥用力按住而糞乃下且多旁人告予其囊縮人少腹此時房內聚集婦女不避生人予見床側有裝飾如新婦狀者詢系保人其母雲系病者之續室三月間娶八月初六在店中病初七日歸初八日重予日夜陪予云初七夜汝未必陪也乃不答於是知病不謹故囊縮為肝擄用大熟地八錢吳茱萸一錢肉桂五味龜板歸身淮藥二劑塊隱瀉大差再以脾腎法而愈
대운교 주씨 스물세 살의 집 앞문은 임씨 뒷문과 마주하였다. 이질을 앓으며 임씨가 공격만 하는 것을 싫어하여 요씨를 불렀다. 요씨는 간비를 가리지 않고 당귀·백작약·황금으로 치료하여 열흘에도 낫지 않았다. 부득이 임씨를 불러 비를 다스리는 법으로 또 열흘 치료했으나 더욱 심해져 9월 초에야 나를 불렀다. 맥은 현대하고 설태는 희게 뜨며 얼굴은 회색이고 목이 아프고 갈증이 있으며 설사량이 많았다. 나는 병이 상초에 있고 폐와 대장이 표리이므로 폐분의 습열법을 썼다. 목 통증과 검은 혀는 없어져도 이질은 끝내 낫지 않았고 날마다 불려 가도 핵심을 얻지 못하였다. 어느 날 매우 위급하여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아랫배의 덩이가 솟아 두꺼운 솜요로 세게 눌러 주기를 좋아했고 그러면 대변이 많이 나왔다. 옆사람이 음낭이 아랫배로 들어갔다고 하였다. 방에는 여자들이 모여 낯선 사람을 피하지 않았고 침상 곁에 새신부처럼 꾸민 사람이 있어 누구인지 물으니 어머니가 환자의 후처라 하였다. 3월에 장가들고 8월 초엿새 가게에서 병들어 초이레 돌아왔으며 초여드레 심해졌다고 하면서 어머니가 “내가 밤낮 곁에 있었다”고 하였다. 내가 “초이레 밤에는 그대가 곁에 있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라고 하니 대답하지 않았다. 이에 병중 삼가지 않아 음낭이 수축한 것이 간의 병임을 알았다. 대숙지황 8돈, 오수유 1돈, 육계·오미자·귀판·당귀신·회산약을 써 두 제에 덩이가 들어가고 설사가 크게 나아졌다. 다시 비신법으로 나았다.
侄屠患痢服大黃藥病甚其父邀予予曰令郎左脅下素有塊若誤服大黃必便紫血為不治是犯仲師之禁也對曰血卻不見此診正大痢血矣予即辭其父再三求予雲鬚另請高明予參末議可耳後服人參多劑終於不臺仲師所謂臍上下左右有動氣者不可汗不可下也
조카 도씨가 이질에 대황약을 먹고 병이 심해져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나는 “아드님은 본래 왼쪽 옆구리 아래 덩이가 있으므로 대황을 잘못 먹으면 반드시 자줏빛 피를 누어 치료되지 않습니다. 중경의 금기를 범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피는 아직 보지 못했다고 했으나 바로 진찰할 때 피를 크게 설사하였다. 나는 곧 사양하였다. 아버지가 거듭 부탁하기에 다른 고명한 이를 청하면 끝자리에서 의견을 보태겠다고 하였다. 뒤에 인삼을 여러 제 먹었으나 끝내 살지 못하였다. 중경이 말한 배꼽 위아래·좌우에 동기가 있으면 발한도 사하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西郭陳患痢就有名無實服茯苓澤瀉米仁等藥痢尤甚蓋痢則禁小溲也予診脈弦舌黃薄痛在右腰肋此肝痢也用當歸白芍黃芩甘草川楝子炒小茴酒延胡香連丸兩劑即愈凡瀉之似痢非痢者盲醫每認為痢用通痢套藥即病家亦認為痢至死不司大可嘆也
서곽 진씨가 이질에 이름만 있는 의사를 찾아 복령·택사·의이인 등을 먹고 이질이 더욱 심해졌다. 이질에는 소변을 내리는 것을 금하기 때문이다. 맥은 현하고 설태는 누렇고 얇으며 오른쪽 허리와 갈비가 아팠으므로 간리였다. 당귀·백작약·황금·감초·천련자·볶은 소회향·술로 법제한 현호색·향련환으로 두 제에 나았다. 설사가 이질 같으나 이질이 아닌 것을 눈먼 의사는 늘 이질로 여겨 상투적인 통리약을 쓰고 집안도 죽을 때까지 이질로 여기니 크게 탄식할 일이다.
向橋朱述患痢多日服藥多劑不效予診時聽腹中有響聲詢晌幾時起述初起即有予云痢無晌聲若一晌痢即愈此非痢也其家以糞有五色詰予為非予云晌者風也凡腸風下血風木乘脾皆作晌此痛在臍上下痛晌即瀉症名風木乘脾也以仲景建中湯白芍五錢為君當歸桂枝甘草為藥木瓜為梅轉之二劑痛瀉大差三劑乃愈
향교 주술이 이질을 여러 날 앓고 여러 제를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내가 보면서 배의 소리를 듣고 언제부터냐고 물으니 처음부터라 하였다. 나는 이질에는 울리는 소리가 없고 소리가 나면 이질이 나으므로 이질이 아니라고 하였다. 집안에서는 대변에 다섯 색이 있어 아니라고 따졌다. 나는 “소리는 풍입니다. 장풍하혈이나 풍목승비는 모두 소리가 납니다. 이 경우는 배꼽 위아래가 아프고 아프며 소리가 난 뒤 설사하니 풍목승비입니다”라고 하였다. 중경의 건중탕에서 백작약 5돈을 군약으로 하고 당귀·계지·감초를 약으로, 모과·오매로 조절하여 두 제에 통증과 설사가 크게 나아지고 세 제에 나았다.
傳林傳婦患痢三日予診脈滯大舌苔黃厚口不甚渴予詢解出如漿然有時有塊否對曰此溏瀉也之一用胃苓湯而愈
전림의 전씨 부인이 이질을 사흘 앓았다. 맥은 체대하고 설태는 누렇고 두터우며 입은 심하게 마르지 않았다. 나는 나오는 것이 풀 같으면서 때때로 덩이가 있는지 물었다. 그렇다고 하여 이는 당설이라 하고 위령탕을 써 나았다.
周七香之母年望八十九月間患痢已服過時手藥矣予診六脈洪大逾分凡高年之脈皆洪大也舌白浮而灰色口不渴述病未起時食蟹予以謂蟹傷脾胃也用枳朮丸法復入紫蘇以消蟹責兩劑其病如失
주칠향의 어머니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9월 이질을 앓아 이미 유행하는 의사의 약을 먹었다. 육맥이 지나치게 홍대하였으나 고령자의 맥은 모두 홍대하다. 설태는 희게 뜨며 회색이고 입은 마르지 않았으며 발병 전에 게를 먹었다고 하였다. 게가 비위를 상한 것으로 보고 지출환법에 자소를 넣어 게 독을 풀어 두 제에 병이 없어진 듯하였다.
俗言吃不殺痢疾張氏云痢能食者脾病胃不病治之易愈耳總須忌口本草
속담에 먹어서 이질 환자를 죽이지는 않는다고 한다. 장씨는 이질 환자가 먹을 수 있는 것은 비는 병들었으나 위는 병들지 않아 치료하면 쉽게 낫는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음식 금기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 『본초휘언』에는
匯言云瀉病食鴨則成痢痢食鴨難治予治姚家埭方嫗八月初患痢愈囑勿食鴨愈月誤食復痢其家人囑再邀予病者畏予笑其饕而止遂不治予見方書云夏時少吃瓜果秋時可免痢後遇酷暑飯前後過食西瓜致成似痢非痢解出急滯不爽糞如鴿蛋色紅日六七行諸藥不效患至兩年嗣以茅朮川連歸芍烏藥澤瀉廣木香砂仁米飯為丸服七兩而愈忌口若懸河半載後食鴨致周身化脹服麻黃生石膏人五苓散而愈
설사병에 오리를 먹으면 이질이 되고 이질에 오리를 먹으면 치료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내가 요가대의 방씨 노파를 8월 초 이질에서 낫게 하고 오리를 먹지 말라고 당부하였으나 한 달쯤 지나 잘못 먹어 다시 이질이 생겼다. 가족이 다시 나를 부르자고 하였으나 환자는 내가 탐식을 비웃을까 두려워 그만두었고 끝내 낫지 못하였다. 방서에 여름에 과일을 적게 먹으면 가을에 이질을 면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보았다. 뒤에 내가 심한 더위에 식전·식후 수박을 지나치게 먹어 이질 같으나 이질이 아닌 병이 생겼다. 대변이 급하고 막혀 시원하지 않으며 비둘기 알 같고 붉어 하루 여섯일곱 번 보았고 여러 약이 효과 없어 두 해를 앓았다. 뒤에 모출·천련·당귀·작약·오약·택사·광목향·사인을 쌀밥으로 환을 만들어 7냥 먹고 나았다. 음식 금기는 “기구약현하[忌口若懸河]”라 하였는데[구절 뜻 불명], 반년 뒤 오리를 먹어 온몸이 부풀었으나 마황·생석고를 오령산에 넣어 복용하고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