瘧邪之中 ,《 內經 》 謂 「 邪中異所 」 者 , 邪中俞穴也 。 又云 : 大邪 、 小邪 。 大邪之來 , 即三陽之冒風傷寒也 。 小邪之來 , 即瘧邪中俞穴也 。 三陽之病 , 得汗即解 。 瘧邪之發 , 與衛氣相遇乃作 , 離則休止也 。《 金匱 》 論 「 癉瘧 」 之 「 陰氣孤絕 , 陽氣獨發 」 者 , 其人陽氣素盛於身 , 得瘧邪休作 , 陰液日耗 , 雖邪外舍於分肉之間 , 陰液耗而心火日盛矣 。 故令人消爍肌肉 , 少氣 , 煩冤而嘔 , 但熱不寒 。 陽氣內盛 , 邪氣行於陽而不及於陰也 。 閱 「 溫瘧 」 之條 ,「 其脈如平 , 身無寒但熱 , 骨節煩疼 , 時嘔 」, 與癉瘧相似 。 程云來引 《 內經 》 溫瘧論一節 , 其云 :「 得之冬中風寒氣 , 藏於骨髓之中 , 至春則陽氣大發 , 邪不能自出 , 因遇大暑 , 有所用力 , 邪氣與汗皆出 , 此病藏於腎 」 等 , 此一節雖屬 《 經 》 文 , 難於盡信 。 孟子所謂 「 盡信書 , 不如無書也 」。 瘧病皆得之夏秋浴水悽風 , 俞穴留邪 , 與衛氣相遇乃作 。 若冬中風寒 , 即病冬溫 、 傷寒矣 。 如中俞穴 , 與衛氣相遇 , 即病瘧矣 。 何能人少陰之臟 , 再藏於骨髓 , 起居如故 , 相安於無事 , 至春遇暑而發耶 。 王叔和論伏氣 , 即引溫瘧一節 , 邪藏骨髓 , 變為溫毒 、 溫疫之說 , 後人宗之 , 實不知伏氣之發 , 由冬春乍交 , 肝膽之陽萌動 , 暴寒折之 , 則屈曲化火 , 至春陽氣大發而病隨之 , 非邪留於身中也 。 然伏氣而發春溫者有之 , 至夏秋變為溫疫 、 溫毒 , 則無是理也 。
학질의 사기가 침입하는 것에 관하여 《내경》에서 “사기가 서로 다른 곳에 들어간다.”라고 한 것은 사기가 수혈(俞穴)에 들어간다는 말이다. 또 대사와 소사를 말하였는데, 대사가 온다는 것은 곧 삼양이 풍을 받거나 한에 손상되는 것이며, 소사가 온다는 것은 곧 학질의 사기가 수혈에 들어가는 것이다. 삼양의 병은 땀이 나면 곧 풀리지만, 학질의 사기는 위기와 만나야 발작하고 떨어지면 멎는다.
《금궤》가 단학을 논하면서 “음기가 홀로 끊어지고 양기만 발한다.”라고 한 것은, 그 사람이 평소 몸에 양기가 성한데 학질의 사기를 얻어 병이 그쳤다 발작했다 하므로 음액이 날마다 소모되는 경우이다. 사기가 바깥의 분육 사이에 머물러 있더라도 음액이 소모되어 심화가 날마다 성해진다. 그러므로 살이 타듯 여위고 기운이 부족하며 괴롭고 답답하여 토하고, 열만 나고 오한은 없다. 양기가 안에서 성하여 사기가 양에서 움직이고 음에는 미치지 않는 것이다.
온학 조문을 보면 “맥은 평소와 같고 몸에 오한은 없고 열만 나며 뼈마디가 괴롭게 아프고 때때로 토한다.”라고 하였으니 단학과 비슷하다. 정운래가 《내경》의 온학론 한 구절을 인용하였는데, “겨울에 풍한의 기를 받아 골수 속에 간직되었다가 봄이 되어 양기가 크게 일어나도 사기가 스스로 나올 수 없다. 그러다 큰 더위를 만나 힘쓰는 일이 있으면 사기가 땀과 함께 나온다. 이 병은 신에 간직되어 있다.”라는 등의 말이다. 이 구절이 비록 《경》의 글이기는 하지만 전부 믿기는 어렵다. 맹자가 이른바 “책을 다 믿는 것은 책이 없는 것만 못하다.”라고 한 것과 같다. 학질은 모두 여름과 가을에 물로 목욕하고 찬 바람을 쐬어 수혈에 사기가 머물다가 위기와 만나 발작하는 것이다. 겨울에 풍한을 받았다면 곧 동온이나 상한을 앓았을 것이다. 수혈에 들어갔다면 위기와 만나 곧 학질을 앓았을 것이다. 어찌 소음의 장으로 들어가 다시 골수에 간직된 채 일상생활은 예전과 같고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봄에 더위를 만나 발병하겠는가?
왕숙화가 복기를 논하면서 바로 온학의 이 구절을 인용하여 사기가 골수에 간직되었다가 온독과 온역으로 변한다고 하였고 후세 사람들이 이를 따랐다. 그러나 복기의 발병이 겨울과 봄이 막 바뀔 때 간담의 양이 싹트는데 갑작스러운 추위가 이를 꺾어 눌리면서 화로 변하고, 봄이 되어 양기가 크게 일어날 때 병도 따라서 생기는 것이지 사기가 몸속에 머물렀던 것은 아님을 참으로 모른 것이다. 복기가 발하여 춘온이 되는 경우는 있지만, 여름과 가을에 이르러 온역과 온독으로 변한다는 것은 그럴 이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