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逆湯用姜附之辛熱恢復其陽 , 即用甘草以緩其性 , 使之徐行以達四末 , 專為始病便見厥逆 、 脈沉 、 不發熱者而設 。 即太陰自利 、 腹痛 , 厥陰下利 、 拘急 , 總不出此 , 以厥陰之邪無不由少陰而入也 。 非但三陰俱可取用 , 非太陽之頭痛 、 發熱 、 脈沉 , 亦須用此先救其里 , 然後解表 , 方為合轍 。 而少陰病晝日煩躁用乾薑附子湯 , 即四逆湯中除去甘草 , 專用二味以迅掃陰霾 , 與白通立法無異 。 以意逆之 , 四逆一方 , 太陽尚所攸賴 , 白通二例與厥陰獨無干預耶 ? 雖厥陰經中但有通脈而無白通 , 詳二方止五更一味 , 通脈有甘草而無蔥白 , 白通有蔥白而無甘草 。 一取甘緩以徐復欲絕之脈 , 一去甘草以急追將脫之陽 , 皆用豬膽以除假熱 。 白通專用蔥白以通真陽 , 又恐蔥白性升 , 引領薑 、 附上僭 , 故以人尿折而下之 。 其通脈本方雖無蔥白 , 方後便有赤白加蔥之列 。 蔥白既可加用 , 人尿獨不可加用乎 ? 況厥陰內藏風木 , 得無面赤戴陽可用蔥白之治乎 ? 上法皆末流之挽 , 無問直中 、 沉寒 、 傳經 、 壞病 。 氣比轉逆 , 元氣至此逮盡 , 非始病便見脈沉 、 發熱之比 。 縱兩感勢劇 , 尚有麻黃附子細辛湯盡力可救於前 , 太陽例中先後救里解表之法互相揮發 , 辨治之微 , 惟在頭之痛與不痛為確據也 。 精義至此 , 盡情剖露 , 後世略不加察 , 妄立兩感之方 , 總未達長沙萬一耳 。
사역탕은 건강·부자의 맵고 뜨거운 성질로 양을 회복시키면서 곧 감초로 그 성질을 완화하여 천천히 움직여 사지 끝까지 이르게 한다. 오로지 병이 시작되자마자 궐역하고 맥이 침하며 열이 나지 않는 사람을 위해 만든 것이다. 태음병의 자발적인 설사와 복통, 궐음병의 설사와 구급도 모두 여기서 벗어나지 않으니, 궐음의 사가 소음을 통해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삼음에 모두 취하여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태양의 두통·발열·침맥이 아닌 경우에도 이를 써서 먼저 속을 구한 뒤 표를 풀어야 법도에 맞는다. 소음병으로 낮에 번조할 때 쓰는 건강부자탕은 곧 사역탕에서 감초를 빼고 두 약만 써서 음산한 기운을 신속히 쓸어내는 것으로, 백통탕의 입법과 다르지 않다. 뜻을 헤아려 보면 사역탕은 태양에서도 의지하는 바인데, 백통탕의 두 예가 궐음과만 관계가 없겠는가? 궐음경에 다만 통맥탕만 있고 백통탕은 없지만, 두 처방을 자세히 보면 다섯 가운데 한 가지만 바꾸었으니 통맥탕에는 감초가 있고 총백은 없으며, 백통탕에는 총백이 있고 감초는 없다. 하나는 달고 완만한 것을 취하여 끊어지려는 맥을 천천히 회복시키고, 하나는 감초를 빼서 빠져나가려는 양을 급히 뒤쫓으며, 모두 저담을 써서 가열을 제거한다. 백통탕은 오로지 총백을 써서 진양을 통하게 하되, 총백의 성질이 상승하여 건강·부자를 이끌고 위로 지나치게 나아갈까 염려하므로 사람의 소변으로 꺾어 아래로 내린다. 통맥탕 본방에는 비록 총백이 없으나 처방 뒤에는 곧 적백에 총백을 더한다는 항목이 있다. 총백을 더해 쓸 수 있다면 사람의 소변만 더해 쓰지 못하겠는가? 더구나 궐음은 안에 풍목을 간직하였으니, 얼굴이 붉고 대양하는 데 총백을 쓰는 치료가 없겠는가? 위의 법은 모두 끝에 이른 흐름을 만회하는 것으로, 직중·침한·전경·괴병을 묻지 않는다. 기비가 도리어 거슬러 원기가 이 지경에 이르면 거의 다한 것이므로, 병이 시작되자마자 맥이 침하고 열이 나는 것과는 같지 않다. 비록 양감으로 형세가 심하더라도 앞서 마황부자세신탕으로 힘을 다해 구할 수 있으며, 태양의 예에서 선후로 속을 구하고 표를 푸는 법이 서로 뜻을 밝혀 준다. 변별하여 치료하는 미묘함은 오직 머리가 아픈가 아프지 않은가를 확실한 근거로 삼는 데 있다. 정밀한 뜻을 여기에 이르러 남김없이 드러냈는데도 후세는 조금도 살피지 않고 함부로 양감의 처방을 세웠으니, 모두 장사의 만분의 일도 깨닫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