醫以生人 , 亦以殺人 。 夫醫所以生人也 , 而何以亦殺人 ? 惟學則能生人 , 不學則適足殺人 。 蓋不學則無以廣其識 , 不學則無以明其理 , 不學不能得其精 , 不學則不能通其權 、 達其變 , 不學則不能正其訛 、 去其弊 。 如是則冒昧從事 , 其不至殺人也幾希矣 ! 甚矣 , 業醫者不可以不學也 。 或曰 : 醫安有不學者哉 ? 醫必有傳 , 或傳之於師 , 或傳之於祖若父 , 皆學也 。 抑知恃此以為學 , 其去學也遠矣 ! 非謂其傳者不足為學 , 亦以所傳之不足盡所學也 。 彼僅恃其傾耳聽受之逸 , 必不復有心思研究之勞 。 且既守其一成不易之規 , 則必昧乎神明變化之理 。 一若岐伯 、 越人 、 倉西曆代諸賢聖 , 皆不如其師 、 其祖若父之足信從也 ; 一若歷代賢聖垂訓之書 , 皆不如其師 、 其足若父之口語為足憑也 。 咦 ! 如是而謂之學 , 其學可知 , 其醫可知矣 。 故善學者 , 不論有傳無傳 , 總非求得乎古昔聖賢之理不可也 ; 欲深得乎古昔聖賢之理 , 則非多讀書不可也 。 自 《 靈 》、《 素 》 而下 , 以及於近代諸書 , 無不細心探討 。 而又參考互訂 , 就其旨歸 ; 別其醇疵 , 辯其得失 , 棄其糟粕 , 取其精微 , 悉其源流 , 悟其奧義 。 夫然後識高理透 , 眼快心靈 。 凡遇一病 , 必認得准 , 拿得定 , 不為邪說所惑 , 不為假像所欺 , 不為俗說所撓 ; 得心應手 , 實能起死回生 , 肉人白骨 。 以此言學 , 則真學也 。 學真而術自神矣 。 豈僅僅得之聽受之間 , 守其一成之規者 , 遂得謂之學哉 ? 若僅恃此以為學 , 則必得其偏而失其全 , 得其淺而失其深 , 得其皮毛而失其神髓 , 得其俗套而失其真詮 , 甚且以訛傳訛 , 終莫知其非者 。 又且有一味世法 , 只教人行醫 , 不教人知醫者 。 但授以保名獲利之方 , 而於人之死生置之勿問 ; 或示以不擔利害之法 , 而於病之緩急置而不言 。 而學醫者遂謂道在是矣 。 及其臨症施治 , 非隔靴搔癢 , 即傍皮切血 ,; 非畫餅充饑 , 即鳩酒解渴 。 此術之不精 , 由學之不足也 。 此不學無術之病 , 所宜急醫者也 。
의술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의술은 사람을 살리는 것인데 어찌 죽이기도 하는가? 배우면 살릴 수 있고 배우지 않으면 사람을 죽이기에 충분할 뿐이다. 배우지 않으면 식견을 넓히고 이치를 밝힐 수 없으며 정수를 얻고 권도와 변화에 통할 수 없고 잘못과 폐단을 바로잡을 수 없다. 이러면 경솔히 일을 하여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의업을 하는 사람은 배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심중하다. 혹자는 의사에게 어찌 배우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고 한다. 의술에는 반드시 전승이 있어 스승에게 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에게 전해 받으니 모두 배움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 믿고 배움이라 여기면 배움에서 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해 받은 것이 배움이 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전해 받은 것이 배워야 할 것을 다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귀를 기울여 듣고 받는 편안함에만 의지하면 마음을 써 연구하는 수고를 다시 하지 않는다. 이미 한번 정해져 바뀌지 않는 규칙을 지키면 신묘하게 변화하는 이치에 어두워진다. 마치 기백·월인·창서와 역대 성현이 모두 자기 스승이나 조부·아버지만큼 믿고 따를 만하지 못하고, 역대 성현이 가르침을 남긴 책이 모두 자기 스승이나 조부·아버지의 말만큼 근거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여긴다. 아! 이렇게 하면서 배움이라 한다면 그 배움도 의술도 알 만하다. 그러므로 잘 배우는 사람은 전승의 유무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옛 성현의 이치를 얻고자 해야 하며, 그 이치를 깊이 얻으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영추》·《소문》에서 근대의 여러 책까지 모두 세심하게 탐구하고 서로 참고하고 바로잡아 뜻의 귀결에 이르러야 한다. 순수함과 흠을 구별하고 득실을 가리며 찌꺼기를 버리고 정미함을 취하고 원류를 다 알며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뒤에야 식견이 높고 이치에 투철하며 눈이 빠르고 마음이 영민해진다. 병을 만날 때마다 반드시 정확히 알아보고 확실히 잡아 사설에 미혹되거나 거짓 모습에 속거나 속설에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에 얻은 것이 손에 응하여 참으로 죽음을 돌이켜 살리고 백골에 살을 붙일 수 있다. 이런 배움이라야 참된 배움이며 배움이 참되면 의술도 저절로 신묘해진다. 어찌 듣고 받은 것만 얻어 한번 정해진 규칙을 지키는 것을 배움이라 하겠는가? 이것만 배움으로 믿으면 치우친 것을 얻고 온전함을 잃으며 얕은 것을 얻고 깊은 것을 잃고 피모를 얻고 신수를 잃으며 상투적 격식을 얻고 참된 해석을 잃는다. 심지어 잘못을 잘못으로 전하면서 끝내 그릇됨을 알지 못한다. 또 세상 처세법만으로 의업을 하게 가르치고 의학을 알게 가르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름을 지키고 이익을 얻는 방법만 전하여 사람의 생사는 묻지 않거나, 이해를 떠맡지 않는 법만 보여 주며 병의 완급은 말하지 않는다. 배우는 사람은 도가 여기에 있다고 여긴다. 실제 증을 만나 치료하면 장화를 사이에 두고 가려운 곳을 긁거나 피부 곁에서 피를 벨 뿐이며, 그림의 떡으로 허기를 채우거나 독주로 갈증을 푸는 격이다. 의술이 정밀하지 못한 것은 배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배우지 않아 의술이 없는 병으로 급히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