曩常見病家危急之際 , 竭忱盡力 , 延請名醫 。 名醫用藥不效 , 又更一名醫 。 其方藥大都相似 , 皆係極輕浮無力者 , 每味三五分 , 合成一劑 , 共計不過三錢有零 。 以病不能除 , 命不能挽 , 心竊疑之 , 得非名醫不能用此種藥 , 非此種藥不能成其為名醫乎 ? 乃親友多為之解曰 : 此名醫保名之妙用也 。 蓋其醫至今日 , 其名已成 , 其利以盈 , 更何所求 ? 若復認真用性重之藥 , 設一有誤 , 豈不失名 ? 所以只用輕輕數味 , 留其原病 , 不至醫壞 , 則無過可指 , 而其名乃得不損 。 余聞之 , 不禁歎曰 : 有是哉 , 名醫之無良一至此哉 ! 病家延請之時 , 舉家仰望 , 竭力支持 。 藥貲之費幾多 , 酒席之費幾多 , 輿從工食之費幾多 , 其為費亦不輕矣 。 在素封之家 , 不難措辦 ; 若寒儉之家非借貸即質典 , 總為救命計耳 。 而醫人於此 , 不一念及 , 只期保名以為己 , 不想竭力以救人 , 不亦忍乎 ? 抑思病家費如許心力 , 費如許貲財 , 豈請爾來保名乎 ? 或是人子憂其親 , 或是父母愛其子 , 哀痛迫切 , 跪拜求救 。 而名醫絕無矜憐之心 , 只照尋常故套 , 予以不痛不癢之藥少許 , 甚至有虛寒將絕之際 , 猶與以清潤數味而去 。 病家茫然不知 , 只以此藥出自名醫 , 便捧為拱壁 , 珍若靈丹 , 急急煎服 。 其病尚緩者 , 服之不見功 , 則越日又復迎請 ; 其病勢甚急者 , 服之隨逝 , 則曰名醫自然不差 , 此藥何得殺人 , 當是數盡 , 命自難保耳 。 嗟嗟 ! 不保病人之命 , 而獨保醫人之名 , 此心安可問哉 ? 切名醫之計亦左矣 。 如果為名 , 則何不出其真實學問 , 審定病情 , 不可救則已 , 如可救則以重劑救之 。 況名醫久為人推服 , 用藥人必不疑 。 人所不敢用 、 不能用者 , 毅然用之 , 使病者起 , 危者安 。 人更嘖嘖稱之曰 , 真醫聖也 , 真藥王也 , 此真名不虛傳 , 高明迥出時流者也 。 豈不名益彰著 , 遠近播聞 。 又何待兢兢乎恐藥重有誤 , 以為保名計乎 ? 若用藥有誤豈猶得為名醫乎 ? 又豈不用藥以救命乃得保名 , 能用藥以救命反令失名乎 ? 吾不能為之解也 。 或謂名醫亦非專為保名 , 故意不肯用藥 。 蓋其所習慣者 , 此種不痛不癢之法 , 原非有真問 、 真膽識 , 故不能用藥 , 不敢用藥耳 。 世俗素重其名 , 欲為回護 , 故以保名之說 , 曲為之解也 。 此論良然 , 然欲為其全無保名之念 , 則又不可 。 彼始之浪得其名者 , 此伎倆 ; 後之終保其名者 , 仍此伎倆 。 曾見名醫嗔其子弟 , 偶用一二味厚之藥 , 輒痛叱之曰 : 用此味厚之藥 , 設一有誤 , 豈不喪名 ! 若是則名醫實欲以此保名 , 而非他人代為之解也 。 嗚呼 ! 但欲自保其名 , 而不念病勢之危急 , 人命之死生 。 良心喪盡 , 陰襲大傷 。 雖令陽受虛聲 , 竊恐陰遭譴罰 ; 名縱得保 , 而其不能保者多矣 。 此輕藥保名之病 , 尤宜急醫者也 。
전에 환자 집이 위급할 때 정성과 힘을 다하여 명의를 부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명의의 약이 효과가 없으면 다른 명의로 바꾸었다. 처방은 대체로 비슷하여 매우 가볍고 뜨며 힘없는 약을 매 약재 3~5푼씩 합해 한 첩으로 만들었고 모두 합쳐도 3돈 남짓을 넘지 않았다. 병도 없애지 못하고 목숨도 돌이키지 못하므로 마음속으로 의심하였다. 명의가 아니면 이런 약을 쓸 수 없고 이런 약이 아니면 명의가 될 수 없는 것인가? 친척과 벗들은 흔히 “이것은 명의가 이름을 보전하는 묘용이다. 오늘에 이르러 이름이 이미 이루어지고 이익도 가득하니 또 무엇을 구하겠는가? 다시 진지하게 성질이 무거운 약을 쓰다가 한번 잘못되면 이름을 잃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가벼운 몇 약만 써 원병을 남겨 두고 치료해서 망치지만 않으면 지적할 허물이 없어 이름이 손상되지 않는다”고 해명하였다. 듣고 나도 모르게 탄식하였다. 이런 일이 있는가! 명의의 양심 없음이 여기에 이르렀는가! 환자 집은 의사를 부를 때 온 집안이 바라보며 힘써 지탱한다. 약값, 술과 음식 대접 비용, 가마와 수행인의 품삯과 식비가 얼마나 되겠는가? 비용이 가볍지 않다. 부유한 집은 마련하기 어렵지 않으나 가난한 집은 빌리거나 저당 잡혀서라도 오직 목숨을 구하려 한다. 의사는 이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이름만 지키려 하며 힘을 다해 사람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잔인하지 않은가? 환자 집이 그만한 심력과 재물을 써서 당신에게 이름을 보전하라고 청했겠는가? 자식이 부모를 걱정하거나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슬픔이 절박해 무릎 꿇고 구해 달라고 하는데 명의는 가엾이 여기는 마음 없이 늘 쓰던 격식대로 무관한 약을 조금 줄 뿐이다. 심지어 허한으로 숨이 끊어지려 할 때도 청윤약 몇 가지를 주고 떠난다. 환자 집은 모르고 명의에게서 나온 약이라 하여 큰 옥처럼 받들고 영단처럼 아껴 급히 달여 먹인다. 병이 아직 완만하면 효과가 없어도 다음 날 다시 부르고, 병세가 급하여 먹고 곧 죽으면 명의는 당연히 틀리지 않았고 이 약이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느냐며 수명이 다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웠을 뿐이라 한다. 아! 환자의 목숨은 보전하지 않고 의사의 이름만 보전하니 이 마음을 어찌 물을 수 있겠는가? 명의의 계책도 잘못되었다. 참으로 이름을 위한다면 왜 실제 학문을 내어 병정을 살피고 구할 수 없으면 그만두되 구할 수 있으면 중제로 구하지 않는가? 더구나 명의는 오래 추앙받아 약을 써도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다. 남이 감히 못 쓰거나 쓸 수 없는 것을 과감히 써 병자를 일으키고 위태로운 이를 안정시키면 사람들은 더욱 참된 의성·약왕이며 명불허전으로 세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칭찬할 것이다. 이름이 더 드러나 원근에 퍼지지 않겠는가? 어찌 약이 무거워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며 이름 보전할 계책을 삼겠는가? 약을 잘못 쓰면서 명의가 될 수 있겠는가? 약으로 목숨을 구하지 않아야 이름을 지키고 약으로 구하면 도리어 이름을 잃는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혹자는 명의도 오로지 이름을 지키려 고의로 약을 안 쓰는 것은 아니고 익숙한 것이 무관한 이 법뿐이며 본래 참된 학문과 담식이 없어 약을 못 쓰고 감히 못 쓸 뿐이라 한다. 세속이 평소 이름을 중히 여겨 감싸려 하므로 이름 보전이라는 말로 억지 해명한다는 것이다. 이 논의는 참으로 그러하나 이름을 지킬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처음 헛되이 이름을 얻은 것도 이 수단이고 끝까지 이름을 지키는 것도 이 수단이다. 명의가 자제들이 우연히 맛이 두터운 약 한두 가지를 쓰자 “이런 두터운 약을 쓰다 잘못되면 이름을 잃지 않겠느냐!”고 심하게 꾸짖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이름을 지키려는 것이지 남이 대신 해명하는 것만은 아니다. 아! 자기 이름만 지키고 병의 위급함과 사람의 생사는 생각하지 않아 양심을 다 잃고 음습을 크게 상한다. 겉으로 헛된 명성을 누려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견벌을 받을까 두렵다. 이름은 지켜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많을 것이다. 이것이 가벼운 약으로 이름을 지키는 병으로 특히 급히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