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 、 醫醫輕忽人命之病 :

諺云 : 醫家有割股之心 。 若是 , 則醫之愛惜人命也至矣 。 安得有輕忽人命者哉 ! 然觀於今而歎其言之不驗 , 或是古昔之言而於今不符也 ? 如夏諺所云 : 遊豫休助 。 而孟子歎之曰 : 今也不然 。 則所謂醫有割股之心 , 亦尤夫夏時之諺也 , 今豈其然哉 ! 若觀今時之醫 , 不惟無割股之心 , 若並無援手之意 。 病家殷勤延醫 , 竭心力 , 費資財 , 希冀醫能療疾以安生 。 而醫人若漠不相關 , 守定故智 , 以緩不切膚之藥 , 每味與以三 、 五 、 七分 , 否則與清涼反藥一劑 , 便懷利而去 。 絕不躊躇審顧 , 以期藥之得效 , 病之得生 。 迨緩藥漸死 , 或反藥立死 , 又絕無引咎之心 , 愧悔之意 。 異日他家延治 , 又復如是是真以人命為戲也 。 其殘忍慘刻 , 不較之屠人而尤加烈哉 ! 推其故 , 皆原於傳授之訛 , 習俗之誤 , 利慾薰心之害 。 聞名醫之傳人曰 : 藥性勿厚 , 藥數勿重 , 氣薄劑輕 , 庶易於解手 。 是名教人以用藥不必中病矣 。 為之徒者 , 是忍視起死也 , 非輕乎人命而何 ? 習俗之弊 , 尤為可笑 。 謹遵名醫妙決 , 謂病重切不可為人擔利害 , 只與輕輕數味 , 仍留原病還他 。 嗟嗟 ! 延醫用藥 , 原為去病 。 若仍留病 , 何貴乎醫 ? 既留病 , 則必不能留命 。 若留一輕病 , 必漸加重 ; 若留一重病 , 必漸至死 。 還他者 , 聽其從容自死之謂也 。 可以生而必不救之生 , 本不死而欲坐待其死 , 其輕乎人命為何如 ? 至於利欲之熏心 , 不待較而知之也 。 學醫之初 , 原欲籍此為謀生計耳 , 豈真是菩薩心 , 而欲以此救世哉 ? 故見夫享虛名而得厚實者 , 必尤而效之 。 彼名醫一概用輕微 , 即學其一概用輕微 ; 名醫一概用清降 , 即學其一概用清降 。 以為名醫之所以致富者在此 , 吾能學之致富足矣 。 若必舍此而別求真能活人之法 , 非愚則迂 。 所以愈遵輕藥易解之師傳 , 共安於留病還人之習尚 。 一任急來 , 我惟緩受 。 所以往往有可生之機 , 必不用切當之藥以相救 ; 明明見相反之藥 , 一惟隨聲附和以妄投 。 只恐失一己之名利 , 遂不顧人之死生 。 此輕忽人命之病 , 所宜急醫者也 。
속담에 의가에게는 넓적다리 살을 베어 내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의사가 사람의 목숨을 아끼는 마음이 지극한데 어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오늘을 보면 그 말이 맞지 않아 탄식하니 옛말이 지금에는 맞지 않는 것인가? 하나라 속담의 유·예·휴·조를 두고 맹자가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탄식했듯이 의사에게 살을 베는 마음이 있다는 말도 하나라 때 속담과 같으니 지금 어찌 그렇겠는가? 오늘날 의사는 살을 베는 마음이 없을 뿐 아니라 손을 내밀 뜻조차 없는 듯하다. 환자 집은 정성껏 의사를 부르고 심력을 다하며 재물을 써 병을 고쳐 생명을 안정시켜 주기를 바라는데 의사는 무관한 듯 예전 꾀만 고집한다. 완만하고 절실하지 않은 약을 매 약재 3·5·7푼씩 주거나 아니면 청량하여 병과 반대되는 약 한 첩을 주고 이익만 품고 떠난다. 약이 효과를 내고 환자가 살아나기를 바라며 머뭇거리며 살피는 일이 전혀 없다. 완만한 약 때문에 점차 죽거나 반대되는 약 때문에 곧 죽어도 허물을 끌어안거나 부끄러워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중에 다른 집에서 불러도 다시 그러니 참으로 목숨을 장난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 잔인하고 참혹함이 도살자보다 더 심하지 않은가? 까닭을 따져 보면 전수의 잘못, 습속의 오류, 이욕이 마음을 그을린 해에서 비롯된다. 명의가 남에게 전하기를 “약성이 두텁지 않게 하고 수량을 무겁게 하지 말라. 기가 엷고 약제가 가벼워야 손을 떼기 쉽다”고 하는 것을 들었다. 이는 약이 반드시 병에 맞을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이다. 제자는 사람이 죽는 것을 차마 보고 있으니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습속의 폐단은 더욱 가소롭다. 명의의 묘결을 삼가 지킨다며 중병에는 남을 위해 이해를 떠맡지 말고 가볍게 몇 약재만 주어 원래 병을 그대로 돌려주라고 한다. 아! 의사를 불러 약을 쓰는 것은 본래 병을 없애려는 것인데 병을 남겨 두면 의사가 무엇이 귀한가? 병을 남기면 반드시 목숨을 남기지 못한다. 가벼운 병을 남기면 점차 무거워지고 무거운 병을 남기면 점차 죽는다. 돌려준다는 것은 천천히 스스로 죽게 둔다는 뜻이다. 살 수 있는데도 살려 주지 않고 본래 죽을 병이 아닌데도 앉아 죽기를 기다리려 하니 목숨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가? 이욕이 마음을 그을린 것은 따질 필요도 없이 안다. 처음 의학을 배울 때 본래 이것으로 생계를 도모하려 했을 뿐, 참으로 보살의 마음으로 세상을 구하려 했겠는가? 그러므로 헛된 명성을 누리며 두터운 실익을 얻는 사람을 보면 반드시 본받는다. 그 명의가 일체 가벼운 약을 쓰면 그대로 배우고, 일체 청강약을 쓰면 그대로 배운다. 명의가 부자가 된 까닭이 여기에 있으니 배워 부자가 되면 족하며, 이를 버리고 참으로 사람을 살리는 법을 따로 구하면 어리석거나 우활하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가벼운 약은 손을 떼기 쉽다는 사승을 더욱 따르고 병을 남겨 환자에게 돌려주는 습속에 함께 안주한다. 아무리 급히 와도 나는 느긋하게 받을 뿐이다. 그래서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어도 반드시 절실하고 알맞은 약으로 구하지 않고, 분명 상반되는 약을 보고도 남의 말에 부화하여 함부로 투여한다. 자기 명리 하나를 잃을까만 두려워 남의 생사를 돌아보지 않는다. 이것이 사람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병으로 급히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