嘗讀 《 詩 》 至 「 巷伯 」 之章 , 有曰 : 取彼譖人 , 投畀豺豹 。 豺豹不食 , 投畀有北 。 有北不受 , 投畀有昊 。 因思 《 詩 》 三百篇 , 類皆溫厚和平之語 , 雖怨而不怒 , 獨此詩惡之深 , 怒之至 , 痛切言之 , 而絕無溫厚和平之氣 , 何也 ? 良以彼譖人者 , 即妒忌讒謗之人也 。 以妒忌之心 , 肆讒謗之口 , 其為禍至烈 , 其為害至無窮也 。 斯人也 , 在朝則排斥忠良 , 在家則離間骨肉 , 處鄉里則黨邪攻正 , 處朋友則復雨翻云 。 或損人財物 , 或破人身家 , 或壞人行止 。 種種惡戾 , 其害無窮 , 然尤未即令人死 。 若在醫道中 , 其害直令人死 , 何也 ? 從來學識高明者 , 心愈謙虛 ; 學識卑陋者 , 心多妒忌 。 妒忌者 , 恐高明之醫功高而利厚 , 於己遂成冷淡生涯 。 故簧鼓其舌 , 顛倒是非 , 以惑亂人之聽聞 , 使病人不趨彼而趨此 , 則其利可奪 。 若是則不過為利見耳 , 何嘗欲令人死 , 而不知人之死實由之 。 余親見夫妒忌而讒謗者矣 , 窺病家有欲延某醫之意 , 彼即預為謗之 , 謂某醫切不可近 , 某醫之藥切不可嘗 。 言之醇切似是一片盛心 , 遂令病家畏而終止 , 而病由之漸深矣 。 迨病家既延某醫 , 則又謗之曰 : 雖取效於目前 , 必遺禍於後日 。 後日一復 , 不可復救 。 有明達者 , 不為所惑 , 得收全功 ; 若愚昧者 , 聞而驚懼 , 改途易轍 , 使已成之功復敗 , 得救之命復傾 。 則是讒謗於未延醫之先者 , 阻病人求生之路也 ; 讒謗於既延醫之際者 , 絕病人救死之藥也 ; 讒謗於取效之後者 , 復令生者歸於必死之途而後已也 。 嗟嗟 ! 彼即無活人之術 , 而又使病人無求生之路 , 無救命之藥 , 而歸於必死之途 。 其惡可勝誅哉 ? 故曰 : 在醫道中直令人死 , 其害為猶大也 。 夫所以為此者 , 無非欲損人益己耳 。 究之在人未必損 , 而在己亦未必益 。 彼活人之功昭昭耳目 , 雖一二人謗毀之 , 其如千百人稱道之 。 即庸眾之流 , 一時為所惑 , 久之窺破伎倆 , 方將訕笑之 , 吐罵之 。 雖復巧言如簧 , 詎復聽之 ? 徒然自喪其心 , 自作其孽 , 使人見而鄙之 。 其品益卑 , 其行益汙 , 穢惡腥聞 , 真為豺豹所不食 , 有北所不受也 。 獨不知有昊將何以處之耶 ? 更有人焉 , 言甘如蜜 , 心毒如蠍 。 其妒忌之意隱而不彰 ; 讒謗之言 , 曲而不覺 。 此不令人知其妒忌讒謗 , 而實深於妒忌讒謗者 , 均為詩人所深怒而欲取而投畀焉者也 。 此妒忌讒謗之病 , 更不可不醫者也 。
일찍이 《시》의 「항백」을 읽다가 “저 참소하는 사람을 잡아 승냥이와 표범에게 던져라. 승냥이와 표범이 먹지 않으면 북녘에 던져라. 북녘이 받지 않으면 하늘에 던져라”는 구절을 보았다. 생각건대 시 삼백 편은 대체로 온후하고 화평하여 원망해도 노하지 않는 말인데, 유독 이 시는 미움이 깊고 노여움이 지극하여 통절히 말하며 온후화평한 기운이 전혀 없으니 왜인가? 참소하는 이는 곧 질투하여 비방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질투의 마음으로 참방의 입을 함부로 놀리니 그 화가 지극히 맹렬하고 해가 끝없다. 이런 사람은 조정에서는 충량을 배척하고 집에서는 골육을 이간하며 향리에서는 사악한 편을 들어 바름을 공격하고 벗 사이에서는 비와 구름처럼 뒤집는다. 남의 재물을 손상하거나 몸과 집안을 무너뜨리거나 행실을 훼손한다. 여러 악행의 해는 무궁하지만 그래도 즉시 사람을 죽이지는 않는다. 의도 안에서는 해가 곧 사람을 죽이는데 왜인가? 예부터 학식이 고명할수록 마음이 겸허하고 학식이 낮고 천박할수록 질투가 많다. 질투하는 자는 고명한 의사가 공이 높고 이익이 두터워지면 자기 생계가 한산해질까 두려워한다. 그래서 혀를 피리처럼 놀려 시비를 뒤집고 사람들의 귀를 미혹시켜 환자가 저쪽 대신 이쪽으로 오게 하면 이익을 빼앗을 수 있다. 이러면 이익만 보았을 뿐 언제 사람을 죽이고자 했겠느냐 하나 사람의 죽음이 실제로 여기서 비롯됨을 모른다. 나는 질투하며 비방하는 사람을 직접 보았다. 환자 집이 어느 의사를 부르려는 기미를 보면 미리 헐뜯어 그 의사를 가까이하지 말고 그 약을 맛보지 말라 한다. 간절히 말하여 순전한 성심인 듯하므로 환자 집은 두려워 그만두고 병이 점차 깊어진다. 이미 그 의사를 불렀으면 또 “당장 효과가 있어도 나중에 반드시 화를 남기며 다시 발하면 구할 수 없다”고 헐뜯는다. 밝게 아는 사람은 미혹되지 않아 온전한 공을 얻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듣고 놀라 두려워 길을 바꾸어 이미 이룬 공을 무너뜨리고 구한 목숨을 다시 기울게 한다. 의사를 부르기 전에 비방하는 것은 환자가 살길을 구하는 것을 막는 것이고, 부른 때 비방하는 것은 죽음에서 구할 약을 끊는 것이며, 효과를 얻은 뒤 비방하는 것은 산 사람을 반드시 죽을 길로 돌려놓아야 그치는 것이다. 아! 자신에게 살리는 의술이 없으면서 환자에게 살길도 구명약도 없게 하여 반드시 죽을 길로 보내니 그 악을 다 벌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의도에서는 곧 사람을 죽여 해가 더욱 크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남을 해쳐 자기를 이롭게 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따져 보면 남에게 반드시 손해가 되고 자기에게 반드시 이익이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살리는 공은 눈과 귀에 밝게 드러나 한두 사람이 헐뜯어도 천백 사람의 칭송을 어찌하겠는가? 평범한 대중이 잠시 미혹되어도 오래되면 수작을 꿰뚫고 비웃고 욕할 것이다. 다시 혀를 교묘하게 놀려도 누가 듣겠는가? 헛되이 자기 마음을 잃고 죄를 지어 사람들이 천하게 보게 할 뿐이다. 품격은 더 낮고 행실은 더 더러워 악취가 퍼지니 참으로 승냥이와 표범도 먹지 않고 북녘도 받지 않을 것이다. 하늘은 어떻게 처리할지 모를 뿐이다. 또 말은 꿀처럼 달고 마음은 전갈처럼 독하여 질투의 뜻은 숨겨 드러내지 않고 참방의 말은 굽어 알아채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 남에게 질투와 참방을 알리지 않지만 실제로 더욱 깊은 자 역시 시인이 몹시 노하여 잡아 던지고자 한 사람이다. 이것이 질투하고 참방하는 병으로 더욱 치료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