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 、 醫醫脈症罔辯之病 :

凡醫人用藥 , 須先認症 , 認症須先審脈 。 審脈明 , 斯認症真 ; 認症真 , 斯用藥當 。 於以療病也 , 何難之有 ? 然而難矣 ? 凡有一症 , 即有一症之寒熱虛實 。 寒與熱相反 , 虛與實相懸 。 在兩人 , 則彼與此各不相同 ; 即在一人 , 其前與後亦非一轍 。 苟不有以辯之 , 其能不倒行而逆施乎 ? 然其為寒為熱 、 為虛為實 , 又不令人一望而知也 。 症之重者 , 大寒偏似熱 , 大熱偏似寒 , 大虛偏似實 , 大實偏似虛 。 若僅就其似者而藥之 , 殺人在反掌間 。 此症之不可不辯也 。 於何辯之 ? 即於脈辯之 。 如傷寒脈浮 、 洪 、 數 、 緊 , 按之有力者 , 知其症為陽邪在表也 ; 若沉而急數 , 重按有力者 , 知其症為陽邪入裏 ; 若浮大滿指 , 按之如絲者 , 知其症為陰極似陽也 。 又如咳嗽一症 , 右寸脈浮數有力者 , 知其症為肺有實邪也 ; 若浮軟或沉小者 , 知其症為肺氣空虛也 。 諸如此類 , 宜細心辯之 。 辯之至精 , 斯臨症無騎牆之見 , 用藥無相左之虞 , 而醫之能事畢矣 。 其奈近日醫家 , 決不言此 , 但曰某藥可治其病 , 某病當用某方 。 至問起所用某藥某方之症為寒為熱 、 為虛為實乎 ? 則茫然罔辯也 。 其不能辨症者 , 由於不能辯脈也 。 甚矣 , 辯脈為尤要矣 ! 奈何著名一世 , 遠近推重之醫 , 常屢告人曰 : 脈作不得准 。 嗚呼 , 噫嘻 ! 脈作不得准 , 更有何者可作得准乎 ? 從來症之疑似難決者 , 於脈決之 。 今反云脈作不得准 , 是全不知脈者也 。 即不知脈 , 又何能認症 ? 故無怪其每以竹葉 、 石膏 、 治陰症 , 芩 、 連 、 梔子治胃寒 。 甚至脈以沉遲 , 尤云是火 ; 脈已將絕 , 尤云不可補 。 總緣不知辯脈 , 遂令流毒至此 。 雖昔賢亦有從脈不從症 , 從症不從脈之論 。 抑知所謂不從者 , 正深於從也 。 如沉 、 細 、 遲 、 澀 , 乃陰寒脈也 , 而其症卻煩躁作渴 , 面赤身熱 , 若以此為熱症而清之則斃矣 , 惟補之溫之 。 不從其假熱之症 , 正從其真寒之症 , 而非真謂症有不必從者也 。 又如狂燥力雄 , 逾垣上牆 , 此火熱症也 , 而其脈卻沉伏入骨 , 若以此為陰脈而穩之則危矣 , 惟清之下之 。 不從其陰寒沉伏之脈 , 正從其熱極反伏之脈 , 而非之謂脈有不可從者也 。 總之 , 從其真 , 不從其假 。 不從者 , 其外貌 ; 從者 , 其神髓 。 醫家苟不辯此 , 未有不顛倒錯亂 , 觸手乖張者 , 一劑之誤 , 命即隨之 。 此脈症罔辯之病 , 所宜急醫者也 。
사람을 치료하며 약을 쓸 때는 먼저 증을 알아야 하고 증을 알려면 먼저 맥을 살펴야 한다. 맥을 분명히 살피면 증을 참되게 알고 증을 참되게 알면 약을 알맞게 쓰니 병을 치료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그러나 어렵다. 한 증에는 그 증의 한열허실이 있다. 한과 열은 서로 반대이고 허와 실은 서로 멀다. 두 사람에게서는 서로 다르고 한 사람에게서도 앞뒤가 같지 않다. 구별하지 않으면 거꾸로 행하고 거슬러 시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인지 열인지, 허인지 실인지도 한눈에 알 수는 없다. 증이 중하면 큰 한은 도리어 열 같고 큰 열은 도리어 한 같으며 큰 허는 실 같고 큰 실은 허 같다. 비슷해 보이는 것만 따라 약을 쓰면 손바닥 뒤집는 사이에 사람을 죽인다. 그러므로 증을 분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으로 분별하는가? 맥으로 분별한다. 상한에서 맥이 부·홍·삭·긴하고 눌러 힘이 있으면 양사가 표에 있음을 알고, 침하면서 급삭하고 깊이 눌러 힘이 있으면 양사가 리에 들어갔음을 알며, 부대하여 손가락에 가득하나 누르면 실 같으면 음이 극하여 양처럼 보임을 안다. 또 기침에서 오른쪽 촌맥이 부삭하고 힘이 있으면 폐에 실사가 있음을 알고, 부연하거나 침소하면 폐기가 공허함을 안다. 이런 종류를 세심히 분별해야 한다. 지극히 정밀하게 분별하면 임증할 때 양쪽에 걸친 견해가 없고 약을 쓸 때 어긋날 염려가 없어 의사의 능한 일이 다 이루어진다. 그런데 요즘 의가들은 절대 이것을 말하지 않고 어떤 약이 어떤 병을 치료하며 어떤 병에는 어떤 처방을 써야 한다고만 한다. 그 약과 처방을 쓰는 증이 한인지 열인지 허인지 실인지 물으면 막연하여 분별하지 못한다. 증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은 맥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맥을 분별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그런데 한 시대에 이름나고 원근에서 추앙받는 의사가 늘 사람들에게 “맥은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말하니 어찌 된 일인가! 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면 또 무엇을 기준으로 삼겠는가? 예부터 증이 의심스러워 결정하기 어려우면 맥에서 결정하였다. 이제 도리어 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하니 전혀 맥을 모르는 것이다. 맥을 모르는데 어떻게 증을 알겠는가? 그러므로 죽엽·석고로 음증을 치료하고 황금·황련·치자로 위한을 치료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맥이 침지한데도 여전히 화라 하고, 맥이 끊어지려 해도 여전히 보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모두 맥을 분별할 줄 몰라 해독이 여기까지 흐른 것이다. 옛 현인도 맥을 따르고 증을 따르지 않거나 증을 따르고 맥을 따르지 않는다고 논하였지만, 이른바 따르지 않음이야말로 따름에 깊은 것임을 알아야 한다. 침·세·지·삽은 음한의 맥인데 증은 번조하고 갈증이 나며 얼굴이 붉고 몸이 뜨겁다면 이를 열증이라 하여 청해하면 죽고 오직 보하고 따뜻하게 해야 한다. 거짓 열증을 따르지 않는 것은 참된 한증을 따르는 것이지 정말 증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또 미친 듯 날뛰고 힘이 세어 담을 넘는 것은 화열증인데 맥이 뼛속에 침복하였다면 이를 음맥이라 하여 안정시키면 위태롭고 오직 청하고 내려야 한다. 음한처럼 침복한 맥을 따르지 않는 것은 열이 극하여 도리어 잠복한 맥을 따르는 것이지 맥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요컨대 참된 것을 따르고 거짓을 따르지 않는다. 따르지 않는 것은 겉모양이고 따르는 것은 신수이다. 의가가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뒤집히고 어지러워 손댈 때마다 어긋나지 않는 경우가 없으며 한 첩의 잘못에 목숨이 따른다. 이것이 맥과 증을 분별하지 못하는 병으로 급히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