甚哉 :「 似 」 之一字 , 為害非淺也 。 夫似則大遠則不似者矣 ! 豈非其似者之猶勝於不似耶 ? 抑知不似之害 , 人易知 ; 似之為害 , 人不易知 。 孔子曰 :「 惡似而非 」 者 , 不惡其非 , 而惡其似而非 , 良有已也 。 蓋一於非 , 則人猶見其非 , 而非者可以改圖 ; 似 , 則人將信其是而莫辯其非 , 而非者終不知返 , 此似而非之為害甚於不似而非之為害也 。 若醫之用藥 , 坐此病者不少矣 。 夫醫之權衡 , 在於用藥 。 藥之妙用 , 期於對症 。 在醫人用藥 , 安有不以為對症者哉 ? 無如今之所謂對症者 , 正其不對症也 。 如人身有一病 , 即有一味藥對之 ; 人身有十病 , 即有十味藥對之 。 逐味按之若無一味不對症也 。 識者從旁觀之 , 卻笑其無一味對症 , 何也 ? 徒得其似故也 。 如發熱 , 則用柴胡 、 黃芩 、 羌活 、 干葛之類 。 似也 , 至其熱之為外感乎 ? 為內傷乎 ? 為陰虛 、 為中寒乎 ? 不問也 , 但曰 : 此退熱對症之藥也 。 如頭痛 , 則用川芎 、 藁本 、 菊花 、 秦艽之類 , 似也 。 至其頭痛之為風寒乎 ? 為血虛乎 ? 為虛陽貫頂乎 ? 陰症頭痛如破乎 ? 不問也 , 但曰 : 此止痛對症之藥也 。 如腹脹 , 則用枳殼 、 大腹皮 、 厚朴 、 羅蔔子之類 , 似也 。 至其脹之為食滯乎 ? 為脾虛乎 ? 為寒凝氣結乎 ? 陰水成鼓乎 ? 不問也 , 但曰 : 此寬脹對症之藥也 。 又如口渴 , 則用麥冬 、 花粉 、 知母 、 石膏之類 , 似也 。 至其渴之為實熱乎 ? 為虛炎乎 ? 為陽邪入胃乎 ? 為陰邪入腎乎 ? 抑氣虛無津 , 腎水不上升乎 ? 不問也 , 但曰 : 此治渴對症之藥也 。 如此之類 , 不勝枚舉 。 彼所謂對症者 , 大都類此耳 。 豈知古人用藥 , 中多變化 , 有似乎不對症而實對症者 , 不僅在形似之間也 。 其用藥之法 , 有如上病下取 , 下病上取者 , 若用上藥治上 , 下藥治下 , 則似而非矣 ; 又有從陽治陰 , 從陰治陽者 , 若以陽藥治陽 , 陰藥之陰 , 則似而非矣 ; 又有通因通用 , 塞因塞用者 , 若以通藥治塞 , 塞藥治通 , 則又似而非矣 。 此皆貌似而實非者也 。 如陽虎貌似孔子 , 若徒取其貌之似 , 則陽虎亦大聖人矣 ! 孰知其為大奸大惡也乎 ? 藥之似對症而實與症相反者 , 亦猶是也 。 無如業醫者 , 不求其真 , 但求其似 。 以真者人不知 , 似者人易曉 。 故一得其似 , 而醫人遂自負其明 , 病人遂深信其似 , 旁人無由見其誤 , 他醫亦莫得指其失 。 此 「 似 」 之一字 , 易於欺人 , 易於惑世 , 易於入俗 , 易於趨時 , 易於見售 , 易於盜名 , 易為人信而不為人疑 , 易為人喜而不為人畏 。 詎知其藥與病全無涉者 , 此一 「 似 」; 藥與病正相反者 , 此一 「 似 」 也 ; 藥不能去病反增病者 , 此一 「 似 」 也 』 藥期以救命而適以送命者 , 此一 「 似 」 也 。「 似 」 之為害 , 可勝言哉 ! 此藥似對症之病 , 所宜急醫者也 。
심하도다! ‘비슷하다’는 한 글자의 해는 얕지 않다. 비슷하면 비슷하지 않은 것과 크게 다르니 비슷한 것이 비슷하지 않은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그러나 비슷하지 않은 해는 사람들이 쉽게 알고 비슷한 해는 쉽게 알지 못한다. 공자가 “비슷하면서 아닌 것을 미워한다”고 한 것은 아닌 것 자체가 아니라 비슷하면서 아닌 것을 미워한 것이니 참으로 까닭이 있다. 온통 그르면 사람들이 그릇됨을 보고 잘못된 이도 계획을 바꿀 수 있다. 비슷하면 사람들이 옳다고 믿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여 잘못된 이는 끝내 돌아올 줄 모른다. 그러므로 사이비의 해가 비슷하지도 않으면서 그른 것의 해보다 심하다. 의사가 약을 쓰면서 이 병에 걸린 경우가 적지 않다. 의사의 저울질은 약을 쓰는 데 있고 약의 묘용은 증에 맞는 데 있다. 약을 쓰는 의사가 어찌 증에 맞는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이른바 증에 맞는다는 것이 바로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 몸에 병 하나가 있으면 약 한 가지를 대응시키고 열 병이 있으면 열 약을 대응시킨다. 약마다 살피면 증에 맞지 않는 약이 하나도 없는 듯하나 아는 사람이 곁에서 보면 하나도 맞는 약이 없다고 웃는다. 왜인가? 비슷함만 얻었기 때문이다. 발열에 시호·황금·강활·건갈을 쓰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그 열이 외감인지 내상인지, 음허인지 중한인지 묻지 않고 다만 열을 내리는 대증약이라 한다. 두통에 천궁·고본·국화·진교를 쓰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풍한인지 혈허인지 허양이 정수리를 꿰뚫는지 음증으로 머리가 깨질 듯한지 묻지 않고 다만 지통의 대증약이라 한다. 복창에 지각·대복피·후박·무씨를 쓰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식체인지 비허인지 한이 엉겨 기가 맺힌 것인지 음수로 고창이 된 것인지 묻지 않고 다만 창만을 푸는 대증약이라 한다. 또 갈증에 맥동·화분·지모·석고를 쓰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실열인지 허염인지 양사가 위에 들어갔는지 음사가 신에 들어갔는지, 또는 기허로 진이 없고 신수가 오르지 않는 것인지 묻지 않고 다만 갈증을 치료하는 대증약이라 한다. 이런 예는 이루 다 들 수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대증이 대체로 이렇다. 옛사람의 용약에는 변화가 많아 대증이 아닌 듯하면서 실제로 대증인 경우가 있고 외형의 비슷함에만 있지 않음을 어찌 알겠는가? 위의 병을 아래에서 취하고 아래의 병을 위에서 취하는 법이 있는데, 상약으로 위를 치료하고 하약으로 아래를 치료하면 비슷하지만 그르다. 양을 따라 음을 치료하고 음을 따라 양을 치료하는 법이 있는데 양약으로 양을, 음약으로 음을 치료하면 비슷하지만 그르다. 통인통용·색인색용도 있는데 통약으로 막힘을 치료하고 색약으로 통함을 치료하면 역시 비슷하지만 그르다. 모두 겉은 비슷하나 실제는 아닌 것이다. 양호의 모습이 공자와 비슷하다고 모습만 취하면 양호도 대성인이 되니 그가 큰 간악한 자임을 누가 알겠는가? 약이 대증인 듯하나 실제 증과 반대인 것도 이와 같다. 그러나 의업을 하는 이는 참됨을 구하지 않고 비슷함만 구한다. 참된 것은 사람들이 모르고 비슷한 것은 쉽게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번 비슷함을 얻으면 의사는 자기 총명함을 자부하고 환자는 깊이 믿으며 곁사람은 잘못을 볼 길이 없고 다른 의사도 지적하지 못한다. 이 ‘비슷함’은 사람을 속이고 세상을 미혹하고 세속에 들어가고 시세를 좇고 팔리고 이름을 훔치기 쉬우며, 사람들이 믿고 의심하지 않고 좋아하고 두려워하지 않게 하기 쉽다. 약이 병과 전혀 관계없는 것도 이 비슷함이고, 약이 병과 정반대인 것도, 병을 없애지 못하고 도리어 더하는 것도, 목숨을 구하려다 도리어 목숨을 보내는 것도 이 비슷함인 줄 어찌 알겠는가? 비슷함의 해를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약이 증에 맞는 듯한 병으로 급히 치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