予友玉刪寶君 , 姿性傑出 , 好讀書而尤致力於醫 , 醫書無所不窺 , 凡岐軒方術 , 與夫古今名家諸集 , 皆能潛心考究 , 默尋指歸 , 如此者亦有年 , 其間或有因疑得悟 , 因悟得解者 , 爰撮其大要 , 著為論說 , 名之曰 《 醫醫小草 》。 予周覽一過 , 竊嘆寶君此書 , 能發前人之所未發 , 補古人之所不逮 , 使非洞明乎五運六氣之機緘 , 七情九候之異同 , 以及臟腑虛實 , 經絡源流 , 陰陽變化 , 氣血周轉 , 而又方藥爛熟 , 臨症甚多 , 安能如是之精審詳備 , 不滋遺議也乎 ? 籲 , 博學詳說 , 盡宣醫學之奧 , 使天下後世 , 凡業醫者皆有所依據 , 寶君方功 , 誠匪淺矣 。 予少與君同學 , 備悉君之天姿英敏 , 立志甚大而銳 , 自離群而後 , 予雖稍稍涉獵方書 , 亦欲以術活人 , 而著述之事 , 自漸固陋 , 謝未能也 。 今讀 《 醫醫小草 》, 深幸寶君既能醫世 , 又能醫醫 , 行見此書之不脛而走 , 遂不計辭之工拙 , 樂而為之序云 。
나의 벗 옥산 보군은 자질과 성품이 뛰어나고 독서를 좋아하며 특히 의학에 힘을 쏟았다. 의서를 두루 살피지 않은 것이 없어서 기백과 헌원의 방술 및 고금 명가의 여러 저술을 모두 마음을 가라앉혀 고구하고 그 뜻이 귀결되는 바를 조용히 찾은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동안 의문으로부터 깨달음을 얻고 깨달음으로부터 풀이를 얻은 것이 있으면 그 대요를 추려 논설을 지어 《의의소초》라 이름 붙였다. 내가 두루 한 번 읽고는 보군의 이 책이 앞사람이 밝히지 못한 것을 밝히고 옛사람이 미치지 못한 것을 보완함에 감탄하였다. 오운육기의 기틀, 칠정구후의 같고 다름, 장부의 허실, 경락의 원류, 음양의 변화, 기혈의 순환을 환히 알고 또 처방과 약물에 통달하며 임상 경험이 매우 많지 않았다면 어찌 이처럼 정밀하고 자세히 갖추어 이론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었겠는가. 아, 널리 배우고 자세히 설명하여 의학의 오묘함을 다 드러내고 천하 후세의 모든 의업 종사자에게 의거할 것을 주었으니 보군의 공은 참으로 작지 않다. 나는 어려서 군과 함께 배웠으므로 그의 타고난 자질이 영민하고 뜻을 세움이 매우 크고 예리함을 잘 안다. 무리와 떨어진 뒤 나도 조금씩 방서를 섭렵하여 의술로 사람을 살리려 하였으나 저술하는 일은 스스로 고루함이 부끄러워 능하지 못하다고 사양하였다. 이제 《의의소초》를 읽으니 보군이 세상을 치료할 뿐 아니라 의사도 치료할 수 있음을 매우 기쁘게 여긴다. 이 책이 머지않아 다리 없이도 널리 퍼질 것을 보게 될 것이므로 문장의 잘되고 못됨을 따지지 않고 기꺼이 서문을 쓴다.
光緒二十有七年歲次辛丑季夏初吉硯愚弟春云倬清甫拜敘
광서 27년 신축년 늦여름 초길에 연우제 춘운 탁청보가 삼가 서문을 쓰다.
醫之難能也 , 孫氏思邈其知之乎 ? 孫氏之著 《 千金要方 》 也 。 曰 :「 凡欲為大醫者 , 必諳 《 靈 》、《 素 》、《 甲乙 》、《 明堂 》、《 流注 》、《 本草 》、《 藥對 》, 以及仲景 、 叔和 、 阮 、 範 、 張 、 靳諸部經方 , 又須妙解陰陽祿命 , 諸家相法 , 灼龜五兆 , 周易六壬 。 若不爾者 , 如無目夜遊 , 動致顛隕 。」 豈不以醫之道 , 通乎造化 , 與陰陽五行相消息 , 不如是不足盡醫之能事哉 ! 今之世距唐遠矣 , 孫氏所言諸術不盡傳 , 諸經方亦多不可見 。 然自唐以來 , 千餘年間 , 以醫名者數十人 。 此數十人者 , 又各有所論著 , 以成一家之言 , 雖其中是非雜出 , 要莫不即其生平辛苦所僅獲者 , 掬而告諸萬世 。 自今觀之 , 南北燥濕不同 , 古今稟賦亦異 , 執其一說 , 或且足以殺人 。 然則欲應無窮之變 , 而不窘於所施 , 不可不廣覽博採 , 以待一日之用明矣 。 顧今之懸壺者流 , 略識藥性 , 請者造門 , 如 《 內 》、《 難 》、《 傷寒 》、《 金匱 》 諸書 , 不一寓目 , 遑問其他 ? 晚近人情 , 樂簡易而惡繁重 , 大抵然也 。 有本其師說 , 與其平日揣摩而有得者 , 約舉以相示 , 不可謂非仁人之用心 , 而希捷獲者之所甚便 , 然則玉珊是書之刻 , 其亦有不容已者乎 ? 余與玉珊遇於維揚書肆中 , 非素相識也 。 聞余購夏氏奇疾方未獲 , 慨然出其家藏本假鈔 , 因以是書屬序 。 觀玉珊之先施於朋友如此 , 其於療疾處方又何如耶 ? 書二種 , 號 《 醫醫小草 》 一卷 ,《 遊藝志略 》 一卷 。 玉珊富於年 , 異日讀書愈多 , 研理愈深 , 吾知其所撰述 , 較今必更有進也 。
의술을 잘하기 어려움을 손사막은 알고 있었던가. 손씨는 《천금요방》을 지으며 말하였다. ‘큰 의사가 되려는 사람은 반드시 《영추》·《소문》·《갑을》·《명당》·《유주》·《본초》·《약대》와 중경·숙화·완·범·장·근의 여러 경방을 잘 알아야 한다. 또 음양녹명과 여러 집안의 상법, 거북 껍질을 태워 얻는 다섯 조짐, 주역과 육임을 오묘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눈 없이 밤에 다니는 것과 같아 움직일 때마다 넘어지고 떨어진다.’ 어찌 의도가 조화에 통하고 음양오행과 더불어 소장하므로 이와 같지 않고서는 의술의 능사를 다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지금 세상은 당나라와 멀어 손씨가 말한 여러 술법이 모두 전해지지는 않고 여러 경방도 보지 못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당나라 이래 천여 년 동안 의술로 이름난 사람이 수십 명이며 이들은 또 각각 논저를 남겨 일가의 설을 이루었다. 그 속에 옳고 그름이 뒤섞여 있더라도 요컨대 평생 고생하여 겨우 얻은 것을 두 손으로 떠서 만세에 알려 준 것이 아닌 것이 없다. 지금 살펴보면 남북의 조습이 다르고 고금의 품부도 다르므로 한 설만 고집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궁한 변화에 대응하며 시행할 때 곤란하지 않으려면 널리 보고 두루 취하여 훗날 쓰임에 대비하지 않을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오늘날 현호하여 진료하는 무리는 약성을 대략 알면 청하는 사람이 문에 찾아오고 《내경》·《난경》·《상한》·《금궤》 같은 책은 한 번도 눈여겨보지 않으니 어찌 다른 것을 물을 겨를이 있겠는가. 근래 인심은 간편함을 좋아하고 번거롭고 무거운 것을 싫어하는데 대체로 그러하다. 스승의 설과 평소 헤아려 얻은 것을 바탕으로 요점을 들어 서로 보여 주는 일은 어진 사람의 마음씀이 아니라고 할 수 없고 빨리 성과를 얻기를 바라는 이에게 매우 편리하다. 그렇다면 옥산이 이 책을 간행한 것에도 그만둘 수 없는 까닭이 있지 않겠는가. 나는 옥산과 유양의 서점에서 만났으며 본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내가 하씨의 기질방을 사려다 구하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는 흔쾌히 집에 간직한 책을 내어 베끼도록 빌려 주었으며 이 인연으로 이 책의 서문을 부탁하였다. 옥산이 벗에게 먼저 베푼 것이 이와 같음을 보면 질병을 치료하고 처방할 때는 또 어떠하겠는가. 책은 두 종류로 《의의소초》 한 권과 《유예지략》 한 권이다. 옥산은 나이가 젊으니 훗날 독서가 더욱 많아지고 이치 연구가 더욱 깊어지면 저술도 지금보다 반드시 더욱 진전할 것임을 나는 안다.
望江何聲煥頓首拜序 。
망강의 하성환이 머리 숙여 삼가 서문을 쓰다.
寶子玉珊 , 余世好也 。 卓犖有大志 , 而酷嗜醫 , 少時讀 《 靈 、《 素 》、《 玉函 》 諸經 , 有神悟 。 若熟識者 , 其談醫則按病施治 , 毫無難色 。 余尚不之信 , 適余患溫病 , 十餘日數易醫矣 。 玉珊為出一方 , 投之立效 , 始信玉珊之有得於醫為不誣云 。 然余究惜玉珊之自小其志 , 而未觀於讀書致用之大也 。 而玉珊則視棄舉之業 , 如棄敝屣 , 以為從事占䯏 , 規規於記誦詞章之末 , 即幸獲一第 , 亦復於世何裨 ? 是則玉珊之牢騷鬱抑 , 因托於醫以自見者 。 歲丙申余治裝北上 , 赴部供職 , 而玉珊亦於是歲出遊 , 由是天各一方 , 幾及四年 。 旋余以讀禮家居 , 就館於鄂之撫署 。 季夏假歸 , 玉珊亦先於前月旋里 , 握手道故 , 歡逾平生 , 出所著 《 易知錄 》、《 醫藉選 》、《 遊藝志略 》、《 夜談隨記 》 各種而請序於余 。 余固不能辭 , 惜余少究心岐黃 , 未識玉珊醫術 , 果能闡 《 內經 》 之奧旨 , 窺仲聖之秘蘊否 ? 但自玉珊之立意言之 , 亦若懲世之庸醫殺人 , 而有所不得已者 , 則以是延頸翹首而望之曰 : 玉珊之書 , 其傳矣乎 ! 是為序 。
보자 옥산은 나와 대대로 친교가 있는 사람이다. 걸출하고 큰 뜻이 있으며 의학을 몹시 좋아하여 젊을 때 《영추》·《소문》·《옥함》 등의 경전을 읽고 신묘한 깨달음이 있었다. 마치 오래 익숙하게 알던 사람처럼 의학을 논할 때는 병에 따라 치료를 시행하며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나는 아직 믿지 않았는데 마침 내가 온병을 앓아 열흘 남짓 동안 여러 번 의사를 바꾸었다. 옥산이 처방 하나를 내어 투여하니 즉시 효과가 있었고 비로소 옥산이 의학에서 얻은 바가 있다는 말이 거짓이 아님을 믿었다. 그러나 나는 끝내 옥산이 스스로 뜻을 작게 하여 독서로 세상에 쓰임을 이루는 큰일을 보지 못함을 아쉬워하였다. 옥산은 거업을 버리는 일을 헌 신을 버리듯 여겼다. 점䯏에 종사하여 기억하고 외우는 문장 말단에만 얽매이면 요행히 한 번 급제하더라도 세상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고 여긴 것이다. 이는 옥산이 울분과 억울함을 의학에 의탁하여 자신을 드러낸 것이었다. 병신년에 나는 행장을 꾸려 북상하여 부에 가서 직무를 맡았고 옥산도 그해 유람을 떠났다. 그리하여 하늘 아래 각기 한쪽에서 지낸 지 거의 네 해가 되었다. 뒤에 나는 상중이라 집에 머물다가 악의 순무 관아에서 일을 맡았다. 늦여름에 휴가로 돌아오니 옥산도 전달에 먼저 고향으로 돌아와 있었다. 손을 잡고 옛일을 이야기하니 기쁨이 평생 어느 때보다 컸다. 그는 지은 《이지록》·《의적선》·《유예지략》·《야담수기》 등을 내보이며 내게 서문을 청하였다. 나는 본디 사양할 수 없으나 평소 기황에 마음 써 연구한 일이 적어 옥산의 의술이 과연 《내경》의 오묘한 뜻을 밝히고 중성의 비밀스러운 깊이를 엿볼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함이 아쉽다. 다만 옥산이 뜻을 세운 점에서 보면 세상 용의가 사람을 죽이는 일을 경계하여 부득이하게 한 바가 있는 듯하다. 이에 목을 늘이고 고개를 들어 바라며 말한다. 옥산의 책이 전해지지 않겠는가. 이것으로 서문을 삼는다.
光緒庚子立秋之後一日前工部主事愚小兄迎喜雨亭甫識
광서 경자년 입추 다음 날, 전 공부주사 우소형 영희 우정보가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