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鮐翁醫驗隨筆

唐蔚芝先生之太翁若欽老先生年七十餘足上數發酒濕忽而飲食少進請城南某君診視用消運之品屢服如故先生診之曰此高年氣虛無力連化非用參朮不可若以消導是更傷其中氣矣用補中益氣湯加減一服而胃醒連服數劑而飲食如常蔚芝先生贈聯云少年學文中年學道不為良相即為良醫
당울지 선생의 부친 약흠 노선생은 나이가 일흔이 넘었고, 발에 주습이 여러 번 생기다가 갑자기 음식을 적게 먹게 되었다. 성 남쪽의 어떤 의원에게 진찰을 청하여 소화시키고 운화시키는 약물을 여러 번 복용하였으나 여전하였다. 선생이 진찰하고 말하였다. ‘나이가 많아 기가 허하여 운화할 힘이 없기 때문이니, 인삼과 백출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소도약을 쓰면 중기를 더욱 손상시킨다.’ 보중익기탕을 가감하여 쓰자 한 번 복용하고 위의 기능이 깨어났으며, 몇 제를 연이어 복용하자 음식 섭취가 평소와 같아졌다. 울지 선생이 대련을 지어 주기를, ‘젊어서는 문장을 배우고 중년에는 도를 배워, 훌륭한 재상이 되지 않으면 곧 훌륭한 의원이 되네’라고 하였다.
楊楚孫之夫人久病寒熱不愈甚至昏厥不省人事延王醫診治不效轉薦先生即以王醫之肩輿邀診入門見紙轎草履齊偏診其脈沈伏牙關緊閉氣不接續按腹板硬曰此實證也非攻下不可但藥已難進恐夜半生變不測如藥能服下或可挽回用大黃枳實玉樞丹等撬牙灌之初不受至天明喉中汨汨有聲下降神情轉清連去診視攻下之劑八九服下結糞不少楚孫曰久不飲食似不可再用攻下先生曰無妨也有病則病當之再下一二日用扶正之品調治而愈楚孫制聯云受藥我知羊叔子論功人比買長沙
양초손의 부인은 오랫동안 한열을 앓아 낫지 않다가 심지어 혼절하여 인사불성이 되었다. 왕 의원을 불러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자 왕 의원이 선생을 추천하였고, 곧 왕 의원이 타던 가마로 선생을 모셔 왔다. 문에 들어서니 종이 가마와 짚신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다. 맥을 짚으니 침복하였고, 이를 악물고 숨이 이어지지 않았으며 배를 눌러 보니 판자처럼 단단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이는 실증이므로 공하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미 약을 먹이기 어려우니, 한밤중에 예측하지 못할 변고가 생길까 염려된다. 약을 삼킬 수 있다면 혹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대황·지실·옥추단 등을 써서 이를 벌리고 부어 넣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나 날이 밝을 무렵 목구멍에서 꿀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내려갔고, 정신이 맑아졌다. 연이어 가서 진찰하고 공하하는 약을 여덟아홉 번 복용시키니 굳은 대변을 적지 않게 보았다. 초손이 ‘오랫동안 음식을 먹지 못하였으니 더 공하하면 안 될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괜찮습니다. 병이 있으면 병이 그 약력을 감당합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하루나 이틀 하법을 쓴 뒤 정기를 돕는 약으로 조리하여 나았다. 초손이 대련을 지어 ‘약을 받으니 나는 양숙자를 알겠고, 공을 논하니 사람들은 가장사에 견주네’라고 하였다.
凌敬叔一病半年請先生診視脈眩大苔黃膩兩目失神多眵徹夜不寐飲食不進者久矣語無倫次親友疑有癲病也先生曰此痰火擾亂神明且積滯未清非用大黃兀明粉不可家人畏不敢進以久病恐虛脫先生堅持此議囑服之一劑下結糞言稍有序明日再將原方加減又下燥糞略兼溏薄惟舌苔干黃厚掯擬芳香化濁不應先生曰此氣陰虛而不能化也用人參鬚西洋參羚羊角珠粉等數劑後舌苔漸化再服數劑而苔化盡得進飲食病大轉機適其愛妾病亡先生代為耽憂恐此病再生波折用種種勸解始得病無變遷常服益氣養營之方調理而愈
능경숙이 한 번 병든 뒤 반년이 되어 선생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맥은 현대하고 설태는 누렇고 끈끈하였으며, 두 눈은 생기를 잃고 눈곱이 많았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음식을 먹지 못한 지 오래였으며, 말에 두서가 없어 친척과 벗들은 전병이 생긴 것이 아닌가 의심하였다. 선생은 ‘담화가 정신을 어지럽히고 적체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으니, 대황과 원명분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가족들은 오래 앓아 허탈해질까 두려워 감히 먹이지 못하였다. 선생이 그 의견을 굳게 지켜 복용하라고 일렀다. 한 제를 먹고 굳은 대변을 보자 말에 조금 조리가 생겼다. 다음 날 원방을 다시 가감하니 마른 대변을 또 보았으며 묽은 변도 약간 섞여 있었다. 다만 설태가 건조하고 누렇고 두껍게 붙어 있어 방향화탁법을 써 보았으나 반응이 없었다. 선생이 ‘이는 기와 음이 허하여 삭이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하고 인삼수·서양삼·영양각·진주가루 등을 썼다. 몇 제 뒤 설태가 점차 없어지고 다시 몇 제를 복용하자 설태가 다 걷혀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어 병세가 크게 좋아졌다. 마침 그가 사랑하던 첩이 병들어 죽자, 선생은 이 병에 다시 변고가 생길까 걱정하여 여러모로 위로하고 타일렀다. 그제야 병이 달라지지 않았고, 늘 익기양영하는 처방을 복용하며 조리하여 나았다.
惜谷同王曉峰先生年六十餘矣自少茹素葷昧未嘗下箸時時頭痛不止服桑葉鉤藤等藥無效先生曰此因不茹葷而五藏滋液枯槁肝腎之陰不足非用阿膠龜膠等血肉有情之品不可王君曰茹素已六十年餘不願以葷味汙我腹內清淨之府也嗣後頭痛愈甚先生勸之曰入藥不為葷何迂執乃爾後仍照前方服之數日而痛止
석곡동의 왕효봉 선생은 나이가 예순이 넘었고, 어릴 때부터 채식하여 육식에는 한 번도 젓가락을 대지 않았다. 때때로 두통이 멎지 않아 상엽·조구등 등의 약을 복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이 말하였다. ‘육식을 하지 않아 오장의 진액이 마르고 간신의 음이 부족해진 것이므로, 아교·귀교 같은 혈육유정의 약물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왕군은 ‘채식한 지 이미 예순 해가 넘었으니 육식으로 내 뱃속의 깨끗한 장부를 더럽히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후 두통이 더욱 심해지자 선생은 ‘약으로 넣는 것은 육식이 아닌데 어찌 그렇게 고집하십니까’라고 권하였다. 그 뒤 앞서 처방한 대로 며칠 복용하자 통증이 멎었다.
醫生張亮生先生之譜弟也曾病伏暑寒熱交作一月有餘形瘦骨立神情疲倦兩目失神飲食不進脈細無神舌上已起白腐時住岳家養疴其岳母見其病勢垂危欲送之返家先生止之曰不可恐中途有變議遂輟因偕嚴康甫同診用柴白煎一劑熱退再服熱情續用扶正養陰之品而愈至今精神且遠勝於前焉鄒律師之子病氣逆痰鳴喘急不能平臥先生診視曰此喉風也用猴棗一分同貝母制膽星研末調服服後喘熱大定得以安睡呼之不應家人以為昏迷也孰知竟愈矣又縣下塘某婦病亦與此症相同服藥後亦昏睡如醉臥當時稍覺驚駭病亦由此而愈考猴棗古書所無馬培之徵君首用此藥先生承師法繼用之有效今則人人皆知用此物矣然惟風痰熱痰可用若寒痰濕痰用之無怪凌永言君訾議之也吾以為非藥之咎是醫之不良於用藥之過也打鐵橋下鄧元利洋貨店錫君之妻病癲終日喋喋自言語命立則立坐則終日呆坐與食則食不與亦不索如是者年餘矣中西醫均不效一日先生遇鄧君於新市橋詳述病狀邀至中隱診所為立一方用羚羊角五分貝母三錢珠紛五分並贈與馬寶五分研和分三次服稍愈再合前方服未過半病已爽然若失逾月遂有娠生一子學家欣喜過望因制銀盾鐫飲上池水四字以贈云又高車渡農家子病癇風每發四肢陡然柚搐不省人事四處就治多年不效一日來診先生亦用前法與服馬寶等後雖復發不過兩手蠢動耳又服前方加熊膽一分同研後問諸其人云已久不發矣按時珍綱目馬腎條下云馬有墨在賢與牛黃狗寶相類而未詳其功用諒即馬寶也今先生尚藏四兩許色灰白有寶光紋理層層包裹與牛黃狗寶同其大小無定大者如瓜小者如拳先生云馬為火畜其性必燥病之有痰者宜之又閱醫學問答初集俞君鑑泉答裘君雲天癡狂為神經病心屬神屬火馬為火畜行速不寐能識途確具神足心專之能力以動物之體生此靜物故有安神定心之功歟
의사 장량생은 선생과 의형제를 맺은 아우였다. 일찍이 복서를 앓아 한기와 열이 번갈아 일어난 지 한 달이 넘었고, 몸이 여위어 뼈만 남고 정신이 지쳤으며 두 눈에 생기가 없었다. 음식을 먹지 못하고 맥은 가늘며 힘이 없었고, 혀에는 이미 흰 부패태가 생겼다. 당시 처가에서 요양하였는데, 장모가 병세가 위태로운 것을 보고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였다. 선생은 ‘안 됩니다. 도중에 변고가 생길까 두렵습니다’라고 말려 그 의논이 중단되었다. 이에 엄강보와 함께 진찰하여 시백전 한 제를 쓰니 열이 내렸고, 다시 복용하니 열이 가라앉았다. 이어 정기를 돕고 음을 기르는 약물을 써서 나았으며, 지금까지 정신이 전보다 훨씬 낫다. 추 율사의 아들은 기가 치밀고 담이 끓으며 숨이 가빠 반듯이 누울 수 없었다. 선생이 진찰하고 후풍이라고 하였다. 후조 1푼을 패모·제담성과 함께 가루 내어 타서 먹였다. 복용 뒤 천증과 열이 크게 안정되어 편안히 잠들었고 불러도 대답하지 않으므로 가족들은 혼미한 것으로 여겼으나, 뜻밖에도 그대로 나았다. 또 현하당의 어떤 부인도 이와 같은 증상이 있었는데, 약을 먹은 뒤 취해 누운 것처럼 깊이 잠들었다. 당시 조금 놀랐으나 병 역시 이로써 나았다. 살펴보면 후조는 옛 책에 없고, 마배지 징군이 처음 이 약을 사용하였다. 선생이 스승의 법을 이어 써서 효과를 보았고, 이제는 누구나 이 약을 쓸 줄 안다. 그러나 풍담과 열담에만 쓸 수 있다. 한담과 습담에 사용한다면 능영언 군이 비난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나는 약의 잘못이 아니라 의원이 약을 잘 쓰지 못한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타철교 아래 등원리 양화점의 석군의 아내는 전병을 앓아 종일 혼자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서라고 하면 서고, 앉으면 종일 멍하니 앉아 있으며, 음식을 주면 먹고 주지 않으면 달라고 하지도 않았다. 이러기를 한 해 넘게 하였고 중의와 서의 모두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선생이 신시교에서 등군을 만났는데, 등군이 병세를 자세히 설명하고 중은진료소로 모셔 가 처방을 청하였다. 영양각 5푼, 패모 3돈, 진주가루 5푼을 쓰고 마보 5푼도 주어 함께 갈아 세 차례로 나누어 복용하게 하니 조금 나아졌다. 다시 앞의 처방을 지어 반도 먹기 전에 병이 씻은 듯 사라졌다. 한 달이 지나 임신하여 아들 하나를 낳으니 온 집안이 뜻밖의 기쁨을 누렸다. 이에 은패에 ‘음상지수’ 네 글자를 새겨 주었다. 또 고거도의 농가 아들은 간풍을 앓아 발작할 때마다 사지가 갑자기 경련하고 인사불성이 되었다. 여러 곳에서 여러 해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진찰하러 왔기에 선생이 앞의 방법으로 마보 등을 복용시켰다. 이후 다시 발작하더라도 두 손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또 앞의 처방에 웅담 1푼을 더하여 함께 갈아 먹였다. 뒤에 그에게 물으니 이미 오랫동안 발작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이시진의 『본초강목』 마신 조목을 살피면, 말의 신장에 먹 같은 것이 있어 우황·구보와 비슷하다고 하였으나 그 효능은 상세히 밝히지 않았다. 아마 이것이 마보일 것이다. 지금 선생도 4냥가량을 소장하고 있는데, 빛은 회백색이고 보석 같은 광택이 있으며 결이 층층이 감싸고 있어 우황·구보와 같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아 큰 것은 참외만 하고 작은 것은 주먹만 하다. 선생은 말하였다. ‘말은 화에 속하는 가축이니 그 성질이 반드시 조하다. 담이 있는 병에 알맞다.’ 또 『의학문답초집』을 보니 유감천 군이 구운천 군에게 답하기를, 치광은 신경병이고 심은 신에 속하고 화에 속하며 말은 화에 속하는 가축으로 빨리 달리고 잠을 자지 않으며 길을 알아볼 수 있으므로, 분명 정신이 충족하고 마음을 오롯이 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였다. 움직이는 동물의 몸에서 이러한 정물이 생겨났으므로 안신정심하는 효능이 있는 것이겠는가.
陳贊廷室人患三陰大瘧三年有餘諸藥無效延先生診治起伏時兩目深紅脈弦舌絳先生曰此非寒也瘧久則肝陰傷而化火溫藥萬不可用用羚羊角一錢石決明等一藥而愈店橋頭某婦從上海蹄患三陰大瘧已歷四年屢服各種截瘧藥及金雞納丸而間二曰寒熱如故先生用醫話夜光丸意加減鱉甲夜明砂花檳醋製常山半夏草果等再用雄精二分辰砂二分研末服一劑而愈又先生見許榮庭之子亦病三瘧有人傳單方以三十丈至藥肆購雄黃店夥誤聞為硫黃也竟以硫黃付之服後三瘧竟愈而頭面周身黧黑毫毛皆焦無異黑種終身如是邑人見之皆絕倒
진찬정의 아내가 삼음대학을 앓은 지 3년이 넘었고 여러 약에 효과가 없어 선생을 불러 치료를 받았다. 발작이 오갈 때 두 눈이 짙게 붉어지고 맥은 현하며 혀는 짙은 붉은색이었다. 선생은 ‘이는 한이 아닙니다. 학질이 오래되어 간음이 손상되고 화로 변한 것이니, 따뜻한 약은 절대로 쓰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영양각 1돈, 석결명 등을 쓰니 한 번의 약으로 나았다. 점교두의 어떤 부인이 상해에서 돌아왔는데, 삼음대학을 앓은 지 이미 4년이었다. 여러 종류의 절학약과 금계납환을 거듭 복용하였으나 이틀을 걸러 한기와 열이 나는 것은 여전하였다. 선생은 『의화』의 야광환 뜻에 따라 가감하여 별갑·야명사·화빈·초제상산·반하·초과 등을 쓰고, 다시 웅정 2푼과 진사 2푼을 가루 내어 복용하게 하니 한 제로 나았다. 또 선생이 보니 허영정의 아들도 삼일학을 앓았다. 누군가 단방을 전해 주어 돈 30문으로 약방에 가서 웅황을 샀는데, 점원이 유황으로 잘못 알아듣고 유황을 내주었다. 복용한 뒤 삼일학은 나았으나 머리와 얼굴과 온몸이 검게 되고 잔털이 모두 타서 흑인과 다름없이 되었으며, 평생 그러하였다. 고을 사람들이 보고 모두 포복절도하였다.
洛社張巷張鈞培室人經事前後無序白帶頻下飲食無味陰戶墜下一塊宛如紫茄咳則下臥則縮服藥年餘不效先生診之閱前方皆云膀胱下墜乃細詢其形色何若病者曰其色紫黯觸之微痛先生曰此非膀胱也夫膀胱之色白小溲不能通利此乃氣虛不固子宮下墜也恐難一時見效用黃耆升麻白朮人參鬚葛根芡實牡蠣陳皮甜杏仁白芍神麴服三劑而縮上矣
낙사 장항의 장균배의 아내는 월경이 앞당겨지기도 늦어지기도 하여 일정하지 않았고 백대하가 자주 나왔으며 음식 맛을 느끼지 못하였다. 음부에서 한 덩이가 내려왔는데 자색 가지와 같았고, 기침하면 내려오며 누우면 오그라들어 들어갔다. 약을 1년 넘게 복용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이 진찰하고 앞서 쓴 처방들을 보니 모두 방광하수라고 하였기에, 그 모양과 빛깔이 어떠한지 자세히 물었다. 환자가 ‘빛은 어두운 자색이고 만지면 조금 아픕니다’라고 하였다. 선생은 ‘방광이 아닙니다. 방광은 빛이 희고 소변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이는 기가 허하여 붙잡지 못하고 자궁이 아래로 처진 것이니, 당장 효과를 보기 어려울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황기·승마·백출·인삼수·갈근·검실·모려·진피·첨행인·백작약·신곡을 써서 세 제를 복용하자 오그라들어 올라갔다.
大市橋王姓童子洗熱浴後赤足遇寒回家半日覺牙齦腫脹腐碎右足脛青紫異常惡寒身熱先生診曰此青腿牙疳也上病必治其下用銀針刺其足脛紫處出惡血內服活血去瘀牙疳遂愈
대시교의 왕씨 소년이 뜨거운 목욕을 한 뒤 맨발로 한기를 맞았다. 집에 돌아온 지 반나절 만에 잇몸이 붓고 헐어 부서지는 것을 느꼈으며, 오른쪽 정강이는 유난히 청자색이 되고 오한과 발열이 있었다. 선생이 진찰하고 말하였다. ‘이는 청퇴아감이다. 위쪽에 생긴 병은 반드시 아래쪽을 치료해야 한다.’ 은침으로 정강이의 자색 부위를 찔러 나쁜 피를 빼내고, 안으로는 혈을 잘 돌게 하고 어혈을 없애는 약을 복용시키자 아감이 나았다.
西門橋下溫姓壯熱面油脈洪舌絳右臂紅腫作痛外科章某曰此流往也用溫藥桂枝當歸等道生堂高君介紹先生診視已有一醫用藤黃塗之先生曰此係熱毒名曰火炎疽用解毒劑是時神識尚清既而胸前又多一紅腫處復延章醫仍謂流注先生以為不然決其熱毒內走勢必毒陷神昏而死至下午果暴殂
서문교 아래의 온씨는 열이 심하고 얼굴에 기름기가 돌며 맥이 홍하고 혀가 짙은 붉은색이었고, 오른팔이 붉게 붓고 아팠다. 외과의 장 아무개가 ‘유주입니다’라고 하며 계지·당귀 등 따뜻한 약을 썼다. 도생당의 고군이 선생을 소개하여 진찰하게 하였는데, 이미 어떤 의원이 등황을 발라 놓았다. 선생은 ‘이는 열독으로서 화염저라고 합니다’라고 하고 해독제를 썼다. 당시에는 정신이 아직 맑았으나, 이윽고 가슴 앞에 붉게 부은 곳이 또 생겼다. 다시 장 의원을 불렀는데 여전히 유주라고 하였다. 선생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고, 열독이 안으로 들어가 반드시 독이 함몰되고 정신이 혼미해져 죽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오후가 되자 과연 갑자기 죽었다.
惠山趙某之妻氣體豐腴每日嘔吐百餘次飲食難進諸藥罔效先生用秋石五分泡湯每日服二次三日愈此胃火上逆秋石味鹹取咸能下降之意西門謝繼昌婦結縭未滿一年病伏邪淹纏半載遍請各地名醫時輕時重危在旦夕病骨支離忽而遍體浮腫氣逆喘急神情模糊風動痙厥日噴血沫兩手脈伏目不能視先生用潛陽扶土法一劑而神識清浮腫退復診兩目仍不見物先生曰經雲氣脫者目不明又曰目得血而能視此氣陰並虧之故也小溲現雖通利然水不涵木肝陽妄動火極則風生風陽飛舞痰涎血沫隨喘而起若秋金之氣下降可以制震東之木而三焦決瀆之水皆歸州都化溺而出但病久大虛還防虛脫再擬益氣養陰和中潛陽之法方用人參鬚一錢白芍三錢廣鬱金二錢淮小麥三錢煆石決明一兩炒秫米三錢土炒於朮二錢辰茯神四錢炒西洋參錢半珍珠母一兩另上濂珠三分玳瑁三分研末調下病勢頓輕後生骨槽風雨足痿躄先生接症調理數月而愈
혜산의 조 아무개의 아내는 몸이 풍만하였는데, 매일 백여 차례 토하여 음식을 먹기 어려웠고 여러 약이 모두 효과가 없었다. 선생은 추석 5푼을 더운물에 우려 매일 두 차례 복용하게 하니 사흘 만에 나았다. 이는 위화가 위로 치밀기 때문으로, 추석은 맛이 짜므로 짠맛이 내려가게 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서문의 사계창의 아내는 혼인한 지 1년이 되지 않았는데 복사로 반년 동안 앓았다. 각지의 명의를 두루 청하였으나 병세가 가벼웠다 무거웠다 하여 생명이 위태롭고 몸이 뼈만 남도록 여위었다. 갑자기 온몸이 붓고 기가 치밀며 숨이 가빠지고 정신이 흐릿해졌으며, 풍이 동하여 경련하고 궐증이 생겼다. 날마다 피 섞인 거품을 내뿜고 양손의 맥이 숨어 잡히지 않으며 눈으로 볼 수 없었다. 선생이 잠양부토법을 쓰니 한 제로 정신이 맑아지고 부종이 내렸다. 다시 진찰할 때도 두 눈은 여전히 사물을 보지 못하였다. 선생이 말하였다. ‘경전에 기가 탈하면 눈이 밝지 못하다고 하였고, 또 눈은 혈을 얻어야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기와 음이 함께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소변이 지금은 비록 잘 통하지만 수가 목을 기르지 못하여 간양이 함부로 움직이고, 화가 극도에 이르면 풍이 생겨 풍양이 날뛰므로 담연과 피 섞인 거품이 천증을 따라 솟아오릅니다. 가을 금의 기운이 내려가면 동쪽 진목을 제어할 수 있고, 삼초에서 수로를 터서 내보내는 물이 모두 방광으로 돌아가 소변으로 변하여 나올 수 있습니다. 다만 병이 오래되어 크게 허하니 허탈도 예방해야 합니다.’ 다시 익기양음·화중잠양하는 법을 세웠다. 처방은 인삼수 1돈, 백작약 3돈, 광울금 2돈, 회소맥 3돈, 불에 달군 석결명 1냥, 볶은 출미 3돈, 흙과 함께 볶은 우출 2돈, 진사를 입힌 복신 4돈, 볶은 서양삼 1돈 반, 진주모 1냥을 쓰고, 따로 상등 염주 3푼과 대모 3푼을 가루 내어 타서 복용하였다. 병세가 곧 가벼워졌다. 뒤에 골조풍이 생기고 두 발이 위벽하여 걷지 못하였으나, 선생이 증상에 따라 여러 달 조리하여 나았다.
先生病霍亂飲蔗汁而痊會載入醫鍾第四期謹錄其原文於左
선생이 곽란을 앓다가 사탕수수즙을 마시고 나은 일은 일찍이 『의종』 제4기에 실렸다. 삼가 그 원문을 아래에 기록한다.
僕於光緒壬實正月病春溫綿延三月始進糜粥至四月間吾錫時疫盛行沿門閣境死亡者踵相接僕亦傳染疫症吐瀉暴作指螺皆癟目眶黑陷聲嘶呃越煩躁筋轉險象疊生群醫束手危在俄頃衣衾棺木齊備咸謂生機絕望矣當一息奄奄時向家慈索飲甘蔗汁少許服後心煩撩亂稍定吐瀉呃逆肢冷如故一書夜再連飲數十碗嘔任其嘔服還自服而呃逆吐瀉心煩撩亂頓止病勢爽然若失僕嗣後追思療病之由從陽明溫病後胃液煎涸重犯吐瀉胃之津液能有幾何本草載甘蔗甘寒助冒除熱潤燥止渴並治噦惡大凡霍亂疲屬熱者一經吐瀉胃液不存肝木風翔則激浪上湧所以嘔吐不止抽筋不休而蔗汁既能清熱潤燥味甘更可安胃並能緩肝而是病之得愈者其理在是矣若患濕霍亂症中焦痞滿者飲之反致不可救附志於此以資同人研究先生花甲後患少腹終日飽脹不可忍耐溲痛不爽當時以為腎氣不足肝木失疏一日忽溲血鮮紫不一日夜數便壺一月已來不止甚至有血塊溺出砰然有聲大如銀元而腹脹漸消飲食倍增先生悟為氣虛濕火久蘊使然非真溺血也不然溺血如此之多元神必困疲矣何以虛健如恆自制六味地黃丸加人參牛膝黃柏服之而愈
나는 광서 임실년 정월에 춘온을 앓아 석 달이나 끌다가 비로소 죽을 먹기 시작하였다. 4월 무렵 우리 무석에 시역이 크게 돌아 집집마다 온 고을에서 죽는 이가 잇따랐다. 나도 역증에 감염되어 구토와 설사가 갑자기 일어나고 손가락 지문의 살이 모두 쭈그러졌으며, 눈 주위가 검게 꺼지고 목이 쉬고 딸꾹질을 하였다. 번조하고 근육이 뒤틀리는 등 위험한 증상이 거듭 생겼다. 여러 의원이 손을 놓았고 위급함이 눈앞에 닥쳐 수의와 이불과 관까지 모두 갖추었으며, 모두 살 가망이 없다고 하였다. 숨이 겨우 붙어 있을 때 어머니에게 사탕수수즙을 조금 달라고 하여 마셨다. 마신 뒤 가슴이 답답하고 어지러운 것이 조금 안정되었으나 구토·설사·딸꾹질·사지의 냉기는 여전하였다. 하루 밤낮 동안 다시 수십 사발을 계속 마셨는데, 토하면 토하는 대로 내버려 두고 마실 것은 여전히 마셨다. 그러자 딸꾹질·구토·설사와 가슴의 답답하고 어지러운 증상이 갑자기 멎고 병세가 씻은 듯 사라졌다. 나중에 병이 나은 까닭을 돌이켜 생각하였다. 양명온병 뒤에 위액이 졸아 말랐는데 거듭 토하고 설사하였으니 위의 진액이 얼마나 남아 있었겠는가. 본초에는 사탕수수는 달고 차서 위를 돕고 열을 없애며 마른 것을 적시고 갈증을 멎게 하고, 딸꾹질과 메스꺼움도 치료한다고 하였다. 대체로 곽란이 열에 속하는 경우에는 한 번 토하고 설사하면 위액이 남지 않고 간목의 풍이 날뛰어 물결이 거세게 위로 치밀므로 구토가 그치지 않고 근육의 경련이 쉬지 않는다. 사탕수수즙은 열을 맑히고 마른 것을 적실 뿐 아니라 단맛으로 위를 편안하게 하고 간을 완화할 수 있으니, 이 병이 나은 이치가 여기에 있다. 습곽란으로 중초가 막히고 그득한 경우라면 마시면 도리어 구제할 수 없게 된다. 이를 여기에 덧붙여 동료들의 연구에 참고가 되게 한다. 선생은 환갑이 지난 뒤 아랫배가 종일 그득하게 불러 견딜 수 없고 소변이 아프며 시원하지 않은 병을 앓았다. 당시에는 신기가 부족하고 간목이 소설하지 못하기 때문으로 여겼다. 어느 날 갑자기 피오줌을 누었는데 선홍색과 자색이 일정하지 않았고, 밤낮으로 요강 몇 개 분량씩 한 달 넘게 그치지 않았다. 심지어 은전만 한 핏덩어리가 소변으로 나와 퍽 하는 소리가 나기도 하였다. 그런데 배가 부른 것은 점차 없어지고 음식 섭취는 갑절로 늘었다. 선생은 기가 허하고 습화가 오랫동안 쌓여 생긴 것이지 진짜 요혈은 아니라고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많은 피를 소변으로 내보냈으니 원신이 반드시 지치고 쇠약해졌을 터인데, 어찌하여 건강함이 평소와 같겠는가. 스스로 육미지황환에 인삼·우슬·황백을 더하여 만들어 복용하고 나았다.
駁岸上某姓女患霍亂吐瀉無度脈沈苔膩遍體如冰氣息奄奄其母最信女巫巫云用向東楊柳枝煎湯薰洗因用沸湯遍體揩洗終日不休湯熱揩者手皮破爛而病人不覺其熱先生用半硫丸及附桂乾薑大熱之藥三劑汗出而愈
호안 위에 사는 어떤 집안의 딸이 곽란으로 한없이 토하고 설사하였다. 맥은 침하고 설태는 끈끈하였으며 온몸이 얼음 같고 숨이 겨우 붙어 있었다. 어머니는 여자 무당을 가장 믿었는데, 무당이 동쪽으로 뻗은 버드나무 가지를 달여 그 물로 훈증하고 씻으라고 하였다. 이에 끓는 물로 온몸을 닦기를 종일 멈추지 않았다. 물이 뜨거워 닦아 주는 이의 손가죽은 헐었으나 환자는 그 뜨거움을 느끼지 못하였다. 선생이 반류환과 부자·육계·건강 같은 매우 뜨거운 약을 썼다. 세 제를 먹고 땀이 나면서 나았다.
陳季度年甫弱冠在學校暑假回里忽下頦動搖不止適先生診楊氏子因邀診曰此陽明經之風火使然用石膏知母殭蠶鉤鉤菊花絲瓜絡等清胃之品外用烏梅擦牙兩日而愈
진계도는 막 약관이 된 나이로 학교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왔다가, 갑자기 아래턱이 끊임없이 떨렸다. 마침 선생이 양씨의 아들을 진찰하고 있어 모셔 와 진찰을 청하였다. 선생은 ‘양명경의 풍화로 인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석고·지모·강잠·조구등·국화·사과락 등 위열을 맑히는 약물을 쓰고, 겉으로는 오매로 이를 문지르게 하니 이틀 만에 나았다.
楊君之義子三歲寄育於外因病來城寓崔官牌下程姓家請先生診視壯熱不揚面色青滯涕淚俱無此係暑熱內伏多飲乳汁蒸變為痰痰阻清竅肺氣不宣用杏仁大貝桔梗膽星月石炒麥芽等一劑面色青滯退兩劑哭而有淚轉為間瘧汗出而愈
양군의 양자는 세 살로 밖에 맡겨 길렀는데, 병이 나서 성안으로 와 최관패 아래 정씨 집에 머물며 선생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속으로 열이 심하나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얼굴빛이 푸르고 막힌 듯하였으며 콧물과 눈물이 모두 없었다. 이는 서열이 안에 잠복한 데다 젖을 많이 마셔 찌고 변하여 담이 되었고, 담이 청규를 막아 폐기가 펴지지 않는 것이었다. 행인·대패모·길경·담성·월석·볶은 맥아 등을 썼다. 한 제로 얼굴의 푸르고 막힌 빛이 사라지고, 두 제로 울 때 눈물이 나왔으며, 간헐적인 학질로 바뀐 뒤 땀이 나면서 나았다.
北門外陳合茂行主年五十餘有煙霞癖素有痰喘之證忽起寒熱不揚不進飲食者累月咳嗽痰多形神消瘦脈沈細苔濁膩龔醫用達邪化濕之品不效反至汗出如雨呃逆不止神迷淊□先生以為氣陰皆傷中陽不足同張君硯芬用老山人參一錢生薑一錢西洋參天生術牡蠣五味子半夏茯苓伽楠香再生稻葉等一劑汗止再劑苔化能食煮爛焦鍋巴調理旬日而愈又羊毛行陳某亦有煙癖神情迷糊謎語氣逆喘急循衣摸床先生診其脈沈細舌苔濁膩用人參附子乾薑半夏溫補之法適干醫至見方用人參揚言不可服診脈後在樓下相遇不置可否而去病家信服一劑而神情清爽諸象均退西門凌君企周有煙癖四旬未便而飲食如故彼自服燕醫生瀉丸始三粒繼服六粒後一日服至二十丸竟不得便延先生診視曰此腸胃乾枯燥結極矣用□仁湯大黃六七錢元明粉二錢仍不效再用瀉葉三錢煎湯以磨生大黃錢半一日服三次服後腹中攻撐先下燥慄蠶又下乾結鞭糞無數先生曰此非一日所能盡也須三五日方能下清前方加減連服三日約有桶許然後用參朮等調治其便如常
북문 밖 진합무 상점의 주인은 나이가 쉰이 넘었고 아편을 즐기는 버릇이 있었으며, 평소 담천을 앓았다. 갑자기 한열이 생겨 열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여러 달 음식을 먹지 못하였으며, 기침하고 담이 많으며 몸과 정신이 쇠약해졌다. 맥은 침세하고 설태는 탁하고 끈끈하였다. 공 의원이 사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습을 삭이는 약물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고, 도리어 비 오듯 땀이 나고 딸꾹질이 그치지 않으며 정신이 혼미해졌다. 선생은 기와 음이 모두 손상되고 중양이 부족한 것으로 보았다. 장연분 군과 함께 오래된 산삼 1돈, 생강 1돈, 서양삼·천생출·모려·오미자·반하·복령·가남향·재생도엽 등을 썼다. 한 제로 땀이 멎고, 다시 한 제로 설태가 걷혀 푹 끓인 탄 누룽지를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열흘가량 조리하여 나았다. 또 양모 상점의 진 아무개도 아편을 즐겼는데, 정신이 흐릿하고 헛소리를 하며 기가 치밀고 숨이 가빴고, 옷을 더듬고 침상을 만졌다. 선생이 맥을 짚으니 침세하고 설태는 탁하고 끈끈하였다. 인삼·부자·건강·반하로 온보하는 법을 썼다. 마침 간 의원이 와서 처방에 인삼이 들어간 것을 보고 복용해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로 말하였다. 그러나 맥을 짚은 뒤 아래층에서 마주쳤을 때는 옳다 그르다 말하지 않고 떠났다. 환자 집에서는 선생을 믿고 복용시켰고, 한 제로 정신이 맑아지며 여러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서문의 능기주 군은 아편을 즐겼으며, 40일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였으나 음식 섭취는 평소와 같았다. 스스로 연 의사의 사환을 처음에는 3알, 이어 6알 복용하였고 나중에는 하루 20알까지 복용하였으나 끝내 대변을 보지 못하였다. 선생을 불러 진찰하니 ‘장위가 메말라 조결이 극심합니다’라고 하였다. □인탕에 대황 6~7돈, 원명분 2돈을 썼으나 여전히 효과가 없었다. 다시 사엽 3돈을 달인 물에 생대황 1돈 반을 갈아 넣어 하루 세 차례 복용하게 하였다. 복용 뒤 배 안이 치받치고 팽팽해지며 먼저 마른 밤이나 누에 같은 대변이 나오고, 이어 메마르고 굳은 대변이 셀 수 없이 나왔다. 선생은 ‘하루 만에 다 나올 수는 없으니, 사흘에서 닷새는 지나야 깨끗이 내려갈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앞의 처방을 가감하여 사흘 동안 연이어 복용하니 한 통가량 나왔다. 그 뒤 인삼·백출 등으로 조리하자 대변이 평소와 같아졌다.
師母張夫人素來陰虛每交冬令喜用腳爐春時易生溫病一日遍體奇癢漸發無數之塊大者如盤小者如碗不等腫而微紅攻於頭面則目紅攻於胸肺則氣逆神糊搔癢不止幾欲挖去其肉日夜不寐呼號三日困苦莫可言狀他醫驚而卻走先生以為非風疹乃疙瘩瘟也熱毒蘊於營分外發肌膚防其毒陷心包則大險重用犀角鮮大青鮮生地銀花連翹黑山梔丹皮牛蒡子人中黃綠豆茅根等服三四劑而塊漸小漸減癢亦漸止調理六七劑而愈東大街某君年十八歲其母寡孀只此一子病暑邪寒熱起伏已歷三候而熱仍不解骨瘦支離延先生診視脈細數苔薄膩曰此邪濕未清也用薄荷牛蒡佩蘭鬱金藿梗猾石豬苓佛手荷葉等至廿七日始透白㾦細粒密布色如枯骨古人謂氣液已竭先生以為久病仞透而未足也再宗前法加茅根蘆根蟬衣服之遍體透足粒粒晶珠熱勢淅退二三日而能食稀粥矣
사모 장부인은 평소 음이 허하여 겨울이 되면 발난로를 쓰기 좋아하였고, 봄에는 온병이 쉽게 생겼다. 어느 날 온몸이 몹시 가렵더니 차츰 무수한 덩어리가 돋아났다. 큰 것은 쟁반만 하고 작은 것은 사발만 하는 등 크기가 일정하지 않았으며, 붓고 조금 붉었다. 머리와 얼굴을 공격하면 눈이 붉어지고, 가슴과 폐를 공격하면 기가 치밀며 정신이 흐릿해졌다. 가려워 긁기를 멈추지 못하여 그 살을 파내고 싶을 지경이었고, 밤낮으로 잠들지 못하고 사흘 동안 울부짖으니 그 괴로움을 형언할 수 없었다. 다른 의원은 놀라 물러갔다. 선생은 풍진이 아니라 응어리가 돋는 온역이라고 하였다. 열독이 영분에 쌓였다가 피부로 나타난 것이므로, 독이 심포에 함몰되어 크게 위태로워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하였다. 서각·신선한 대청·신선한 생지황·금은화·연교·검게 볶은 산치자·목단피·우방자·인중황·녹두·모근 등을 중하게 썼다. 서너 제를 먹자 덩어리가 점차 작아지고 줄었으며 가려움도 차츰 멎었고, 예닐곱 제로 조리하여 나았다. 동대가의 어떤 젊은이는 열여덟 살로, 홀어머니에게는 이 외아들뿐이었다. 서사에 병들어 한열이 오르내린 지 이미 세 후가 되었으나 열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몸이 뼈만 남도록 여위었다. 선생을 불러 진찰하니 맥은 세삭하고 설태는 얇고 끈끈하였다. 선생은 ‘사습이 아직 깨끗해지지 않은 것이다’라고 하며 박하·우방자·패란·울금·곽향경·활석·저령·불수·하엽 등을 썼다. 27일째에야 백배가 돋기 시작하였는데, 작은 알갱이가 빽빽하고 빛이 마른 뼈 같았다. 옛사람은 이를 기액이 이미 고갈된 것이라고 하였으나, 선생은 오래 앓다가 이제 막 돋아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여겼다. 다시 앞의 법에 모근·노근·선의를 더하여 먹이니 온몸에 충분히 돋아 알알이 수정구슬 같았고, 열이 차츰 내렸다. 이삼 일 뒤에는 묽은 죽을 먹을 수 있었다.
壽州孫夫人年近六十忽身熱胸悶不暢延先生診視用辛涼紲肺之藥翌日胸前發出紅點而圓先生以為螢分之熱溫毒發痘也用生地紫草茸連翹黑梔丹皮茅根胸背前後又透約有數百粒漸起漿汁仍用犀角人中黃銀花丹皮一派清營之品收漿結疤而熱勢退再服解毒數劑而愈據云此痘安徽時有之寺後門大頭金官之子咳嗽壯熱胸悶煩躁三日後頭面及體遍發痧點內舍稀漿先生曰此溫熱挾濕故含水氣也並非水痘重用辛涼透泄繼用解毒之藥而愈
수주의 손부인은 나이가 예순 가까웠는데 갑자기 몸에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 않았다. 선생을 불러 진찰하고 맵고 서늘하여 폐기를 소통시키는 약을 썼다. 다음 날 가슴 앞에 둥근 붉은 점이 돋았다. 선생은 영분의 열, 곧 온독으로 두창이 돋는 것으로 보았다. 생지황·자초용·연교·검게 볶은 치자·목단피·모근을 쓰니 가슴과 등 앞뒤에 수백 알이 더 돋았고 점차 진물이 차기 시작하였다. 계속 서각·인중황·금은화·목단피 등 영분의 열을 맑히는 약을 쓰자 진물이 거두어지고 딱지가 앉으면서 열이 내렸다. 다시 해독약 몇 제를 복용하고 나았다. 듣기로는 이러한 두창이 안휘에는 때때로 있다고 한다. 절 뒷문에 사는 대두금관의 아들은 기침하고 열이 심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번조하였다. 사흘 뒤 머리와 얼굴과 온몸에 사반이 돋았고, 안에 묽은 진물이 들어 있었다. 선생은 ‘온열에 습이 끼었으므로 수기를 머금은 것이며, 수두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맵고 서늘하게 투설하는 약을 중하게 쓰고 이어 해독하는 약을 써서 나았다.
劉姓子年十餘歲伏邪秋髮寒熱起伏始一二日汗多以後肌膚乾枯不潤形神瘦弱至第八日延先生診之舌薄苔內脈象細數曰此童本元不足且不見汗第九日必透白㾦即透亦遲非二三日不能透足用簿荷牛蒡連翹黑梔豆豉杏仁豬苓澤瀉茅根枇杷葉竹茹佛手荷葉輕清宣泄之法服後胸前稀透白㾦再加蟬衣桔梗鬱金等背足亦透三日而伏熱退矣
유씨의 아들은 열몇 살이었는데, 잠복한 사기가 가을에 발하여 한열이 오르내렸다. 처음 하루 이틀은 땀이 많았으나 이후 피부가 메말라 윤택하지 않고 몸과 정신이 쇠약해졌다. 여드레째 선생을 불러 진찰하니 혀에는 얇은 태가 있고 맥은 세삭하였다. 선생은 ‘이 아이는 근본의 원기가 부족하고 땀도 나지 않으므로, 아흐레째 반드시 백배가 돋을 것이다. 돋더라도 더디어 이삼 일은 지나야 충분히 돋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박하·우방자·연교·검게 볶은 치자·두시·행인·저령·택사·모근·비파엽·죽여·불수·하엽으로 가볍고 맑게 선설하는 법을 썼다. 복용 뒤 가슴 앞에 백배가 성글게 돋았고, 다시 선의·길경·울금 등을 더하자 등과 발에도 돋아 사흘 만에 잠복한 열이 물러갔다.
琴雪軒某牙科之女病頓咳已四月不咳則巳咳則百餘聲不止氣不接續骨瘦如柴先生用麻杏石甘湯兩劑而愈年餘又病寒熱咳嗽痧點隱約不透先生偕門人丁士鏞同去診視脈象悶郁舌苔光紅壯熱口糜神情模糊曰此邪熱熾盛故痧點不能透達也時醫僅知透發但余須用犀角紫草情涼一派此藥非君家不開防時醫之訾議也其家信服之大便得解痧點外達再劑點齊三服而愈觀此則吾邑過玉書所著治痧書專用溫透者未可一概論也迎迓亭某茶肆主蘇人也其妻懷妊八月患伏邪煩躁不安神情倦怠面色青晦兩脈沈伏舌苔焦黑腹中不動者半月矣無力延醫先生診之曰此邪熱內燔胎元恐已不保若顧其胎命在旦夕川寒涼香開之劑服之胎下巳半體潰爛後用去瘀等劑化險為夷
금설헌의 어떤 치과의사의 딸은 돈해를 앓은 지 넉 달이었다. 기침하지 않을 때는 그만이지만, 기침하면 백여 차례나 멎지 않고 숨이 이어지지 않으며 몸이 장작처럼 말랐다. 선생이 마행석감탕을 쓰니 두 제로 나았다. 1년 남짓 뒤 다시 한열과 기침이 생겼는데, 사반이 희미하고 시원하게 돋지 않았다. 선생이 문인 정사용과 함께 진찰하니 맥이 답답하게 막혀 있고 혀는 번들거리며 붉었다. 열이 심하고 입이 헐며 정신이 흐릿하였다. 선생은 ‘사열이 치성하므로 사반이 밖으로 돋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 의원들은 투발시키는 것만 알지만, 나는 서각·자초 등 서늘한 약물을 써야 합니다. 이런 약은 당신 집이 아니면 처방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의원들의 비난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집안에서 믿고 복용시키니 대변이 통하고 사반이 밖으로 돋았다. 다시 한 제로 점들이 고르게 돋았고, 세 번 복용하여 나았다. 이를 보면 우리 고을 과옥서가 지은 치사서에서 온약으로 투발하는 방법만 쓴 것을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영아정의 어떤 찻집 주인은 소주 사람이었다. 그 아내가 임신 여덟 달에 복사로 번조하고 불안해하며 정신이 지치고 얼굴빛이 푸르고 어두웠다. 양쪽 맥은 침복하고 설태는 타듯 검었으며, 뱃속에서 태아가 움직이지 않은 지 반달이었다. 의원을 부를 형편이 없었는데 선생이 진찰하고 ‘사열이 안에서 타고 있으니 태아는 이미 보전하지 못하였을 듯합니다. 태아만 돌보려 하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라고 하였다. 한량하고 방향으로 규를 여는 약을 쓰니 태아가 나왔는데 이미 몸의 절반이 썩어 있었다. 뒤에 어혈을 없애는 약 등을 써서 위험에서 벗어났다.
先生鄰家女僕阿梅手腕作痛不能舉物先生細視其腕見脈門有紅絲一條長二三寸蜿蜒遊行半臂此紅絲疔也若過肩胛不可治矣用舊頭繩扎止以銀針刺紅絲兩端擠出紫血內服黃速解毒湯而愈又一婦生手指疔曾聞業師馬徵君云疔初起背上有紅點如蚊螫狀其數均奇非五即七須銀針刺破挑斷其中之絲則疔可以不成若過三五日其毒走散紅點隱去疔必成矣余依法尋得剌之果未成周源按此法巳刊入周氏集驗方中甚詳
선생 이웃집의 여종 아매는 손목이 아파 물건을 들 수 없었다. 선생이 손목을 자세히 보니 맥문에 붉은 실 같은 줄 하나가 있는데, 길이가 2~3촌이고 팔의 절반을 구불구불 지나갔다. 이는 홍사정이니 어깨뼈를 넘으면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오래된 머리끈으로 묶어 막고 은침으로 붉은 줄의 양끝을 찔러 자색 피를 짜내었으며, 안으로 황속해독탕을 복용시켜 나았다. 또 한 부인은 손가락에 정창이 생겼다. 일찍이 스승 마징군에게 들으니, 정창이 처음 생길 때 등 위에 모기 물린 자국 같은 붉은 점이 나타나는데, 그 수는 늘 홀수여서 다섯 개 아니면 일곱 개라고 하였다. 은침으로 찔러 그 안의 실 같은 것을 끊어야 정창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고, 사흘에서 닷새가 지나 독이 퍼지고 붉은 점이 사라지면 정창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나는 그 법대로 찾아 찔렀더니 과연 정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원이 살피건대, 이 법은 이미 『주씨집험방』에 매우 자세하게 실려 있다.
西門外棉花巷雷靜安右牙齦上發一粒子不紅而腫牙牙銷覺不利諸醫皆謂牙癰也溫君明遠囑偕至業師馬培之徵君處視之業師曰前醫皆不識此證耳此名牙民藥不可為矣兩月後牙關緊閉不能飲食必致餓斃後果然馬徵君孫女患氣喉頸項腫大徵君命用日者彈敝舊弦一條長如頸項大小使異姓六人綰六結連本人一結名七姓弦套入頸中時時移之上下若氣喉稍小其結亦逐漸收小一年而而愈奇方也其理殊雖索解 又方用錢錢草煎服亦效
서문 밖 면화항의 뇌정안은 오른쪽 잇몸 위에 알갱이 하나가 생겼는데 붉지 않고 부었으며, 이를 움직이는 것이 조금 불편하였다. 여러 의원은 모두 아옹이라고 하였다. 온명원 군이 함께 스승 마배지 징군에게 가서 보여 달라고 하였다. 스승은 ‘앞의 의원들은 모두 이 증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름은 아민이라 하며 약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두 달 뒤에는 이를 악물어 입을 열지 못하고 먹고 마시지 못하여 반드시 굶어 죽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뒤에 과연 그러하였다. 마징군의 손녀가 기후를 앓아 목이 크게 부었다. 징군은 전에 타서 낡은 현 하나를 목둘레만 한 길이로 가져다가, 성이 서로 다른 여섯 사람에게 매듭을 하나씩 짓게 하고 본인의 매듭 하나를 더하도록 하였다. 이를 칠성현이라고 하였다. 목에 걸고 때때로 위아래로 움직이되 기후가 조금 작아지면 그 매듭도 점차 작게 줄이게 하니, 1년 만에 나았다. 기이한 처방으로 그 이치를 참으로 풀기 어렵다. 또 다른 방법으로 전전초를 달여 복용해도 효과가 있다.
馬徵君為沈子達診治年四十餘納妾少艾患痿症服藥外令以桑葉去葉背筋絡濃煎時時服之半載而愈先生門人丁士鏞之戚病口歪偏右就診先生之師馬徵君用蓖麻子四十九粒麝香三分共搗成餅夏布包好放入左手掌心以好酒一杯燉熱將杯底罩於藥上令手伸直不一時即口歪牽正欣喜而歸
마징군이 심자달을 진료하였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고 젊고 아름다운 첩을 들인 뒤 위증을 앓았다. 약을 복용하게 하는 외에, 상엽의 뒷면에 있는 줄기와 잎맥을 제거하고 진하게 달여 수시로 마시게 하니 반년 만에 나았다. 선생의 문인 정사용의 친척은 입이 오른쪽으로 비뚤어져 선생의 스승 마징군에게 진료를 받았다. 마징군은 비마자 49알과 사향 3푼을 함께 찧어 떡처럼 만들고 삼베로 잘 싸서 왼쪽 손바닥 안에 놓았다. 좋은 술 한 잔을 따뜻하게 데운 뒤 잔 밑바닥으로 약 위를 덮고 손을 곧게 뻗게 하니, 얼마 되지 않아 비뚤어진 입이 당겨져 바로잡혔다. 기뻐하며 돌아갔다.
大市橋林姓有煙霞癖先寒熱繼則腹痛下痢紅白晝夜百餘次飲食不能下咽氣息奄奄當時醫士有汪黨之稱茶集於祟安寺議論此證或主香連丸或欲用駐車丸或四磨飲先生聞之竊笑其誤明日來請診視脈細舌乾黃曰此久痢氣陰兩傷時時登圊而無便者此虛坐努責非益氣養陰不可用人參白芍丹皮細生地等味服之病大轉機前方擴充數劑而愈
대시교의 임씨는 아편을 즐기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열이 생기고 이어 배가 아프면서 붉고 흰 이질을 밤낮으로 백여 차례 보았으며, 음식이 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숨이 겨우 붙어 있었다. 당시 왕당이라고 불리는 의원들이 숭안사에 모여 차를 마시며 이 증을 논의하였는데, 어떤 이는 향련환을 주장하고 어떤 이는 주거환이나 사마음을 쓰려고 하였다. 선생은 이를 듣고 그 잘못을 속으로 웃었다. 다음 날 진찰을 청하러 와서 살펴보니 맥은 가늘고 혀는 건조하며 누르렀다. 선생은 ‘이질을 오래 앓아 기와 음이 함께 손상된 것이다. 수시로 뒷간에 가지만 대변이 없는 것은 허하여 공연히 앉아 힘만 주는 것이니, 익기양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인삼·백작약·목단피·세생지황 등을 써서 먹이니 병세가 크게 좋아졌고, 앞의 처방을 확대하여 몇 제 더 쓰자 나았다.
木邑王燕庭醫士之母年已古稀外一日腹痛下痢無度神情倦怠其孫文夒延先生診視脈細數舌苔根濁而掯先生曰此痢不可與尋常症同治大年正元早虧食物不消兼有積滯用人參鬚枳實殼花檳神麴等先生曰此方非在尊府不開痢疾忌補補而且攻未免招物議詎服後大便通利腹痛亦止竟兩劑而愈
이 고을의 의사 왕연정의 어머니는 나이가 일흔을 넘었는데, 어느 날 배가 아프고 한없이 이질을 보며 정신이 지쳤다. 손자 문요가 선생을 불러 진찰하니 맥은 세삭하고 혀뿌리의 태가 탁하며 두껍게 붙어 있었다. 선생은 ‘이 이질은 보통 증상과 똑같이 치료하면 안 됩니다. 고령으로 정기가 일찍부터 부족한 데다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적체도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인삼수·지실·지각·화빈·신곡 등을 썼다. 선생은 ‘이 처방은 당신 집이 아니면 내지 않을 것입니다. 이질에는 보하는 것을 꺼리는데 보하면서 공격까지 하니 남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복용 뒤 대변이 잘 통하고 복통도 멎어, 두 제만으로 나았다.
毛梓橋下鄒姓婦懷妊六月七月中旬腹痛下紅兩次極冬延陳君診治不效先生診其脈並不離經舌苔白膩用人參白朮荷葉蒂桑寄生自芍蘇梗陳皮砂仁黃耆等安胎之品血止而腰痠氣滯大便下血塊日二三次紅紫不一先生曰此腸胃有濕熱也雖與胎漏有別於懷妊終屬不宜用槐花炭川連黃柏子芩木香蘇梗分化濕熱調氣之品便紅減而未止再用槐花炭地榆炭子芩野苧根鮮藕節荷蒂蘇梗砂仁陳皮桑寄生佛手等而愈
모자교 아래의 추씨 부인은 임신 여섯 달이었는데, 7월 중순에 배가 아프고 두 차례 피가 매우 많이 나왔다. 진군을 불러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이 진찰하니 맥은 이경하지 않았고 설태는 희고 끈끈하였다. 인삼·백출·하엽체·상기생·백작약·소경·진피·사인·황기 등 안태약을 썼다. 피는 멎었으나 허리가 시큰하고 기가 막혔으며, 하루 두세 번 대변으로 핏덩어리가 나왔고 붉은색과 자색이 일정하지 않았다. 선생은 ‘장위에 습열이 있습니다. 비록 태루와는 다르지만 임신 중에는 끝내 좋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회화탄·천황련·황백·자금·목향·소경 등 습열을 나누어 삭이고 기를 조절하는 약을 쓰니 혈변이 줄었으나 멎지는 않았다. 다시 회화탄·지유탄·자금·야저근·신선한 우절·하체·소경·사인·진피·상기생·불수 등을 써서 나았다.
東門內表善妨巷殷君一清蘇州桃塢中學畢業生也任職上海工部局事病少腹作痛間及兩脅胸背得食則嘔甚至不能直立臥則氣土沖痛楚莫可言狀纏綿半載形神疲弱面色青灰江陰朱君用疏肝理氣一派香燥之藥服三十餘劑毫不見效又延他醫以為虛勞損證也似見小效一日來就診脈沉細舌苔薄白按腹板硬已七日不便得病以來便常艱少先生曰元氣雖虛定有乾結燥糞也非攻下不可但恐正元不支耳名服香燥之藥肝陰受傷腑實不通則其氣上泛為逆故嘔惡肝主筋本臟即燥則血不營筋擬先通腑取遍則不痛之義用人參鬚七分生大黃三錢元明粉一錢枳實二錢制香附三錢橘絡二錢製半夏三錢川雅連四分同淡吳萸三分炒竹茹一錢佛手二錢復診大便未解少腹仍痛再擬攻下生大黃三錢元明粉一錢元參三錢帶皮檳三錢瓜蔞皮三錢木香七分秦艽錢半沉香五分服從大便下燥結鞭糞尺許堅如鐵粗如小臂下時稍覺神疲腹痛隨止少腹仍板時吐酸水肝胃不和也再用和胃佐以潤腸藿香梗三錢法半夏三錢淡吳萸四分黃連二分同炒枳殼二錢帶皮檳三錢省頭草三錢細青皮一錢香附二錢橘白絡各錢半沉香五分磨沖另先服清導丸三粒(系西藥)服後又下燥屎如前按腹略軟惟嘔逆肝氣黃撐經絡稍有微痛中脘不運仿半夏茯苓湯加減製半夏五錢茯苓五錢枳殼二錢橘絡一錢炒天生術二錢沉香屑五分炒殼芽三錢左金丸一錢另醋炒高良薑七分酒炒制香附錢半煎服又下燥結與溏潤之糞不知凡計宿積從此清矣嘔逆亦止只以肝木剋土脾胃受傷當以培土抑木天生術三錢山藥三錢扁豆衣三錢白芍五錢萸肉錢半炙烏梅五分橘白絡各一錢製半夏三錢茯苓四錢檀香炒殼芽三錢白殘花一錢胃氣大醒每餐能食碗許但右脅稍覺微痛耳再從效法擴充野於朮三錢懷山藥三錢扁豆衣三錢白芍五錢橘絡一錢川斷三錢鬱金二錢萸肉錢牛歸身錢半甜杏仁二錢甘杞子二錢生殼芽三錢飲食加增惟右脅下稍覺作酸背旁痛處大如掌此係有留飲也當以蠲飲兼調脾胃茯苓五錢陳皮一錢橘絡一錢遠志二錢法半夏二錢扁豆衣三錢澤瀉三錢桑枝三錢神麴三錢秦艽錢半炒殼芽三錢荷葉邊一轉嗣後諸恙日退調理而瘳
동문 안 표선방항의 은일청 군은 소주 도오중학교 졸업생으로 상해 공부국에서 근무하였다. 아랫배가 아프고 때로는 양쪽 옆구리와 가슴, 등까지 아프며 음식을 먹으면 토하였다. 심하면 똑바로 서지 못하고 누우면 기가 위로 치받쳐 그 통증을 형언할 수 없었다. 반년 동안 이어져 몸과 정신이 쇠약하고 얼굴빛이 푸른 잿빛이었다. 강음의 주군이 소간이기하는 향기롭고 조한 약을 서른 제 넘게 썼으나 전혀 효과가 없었다. 또 다른 의원은 허로손증이라 하였는데 조금 효과가 있는 듯하였다. 어느 날 진찰하러 왔는데 맥은 침세하고 설태는 얇고 희었다. 배를 누르니 판자처럼 단단하였고 이미 이레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하였으며, 병이 생긴 뒤 줄곧 대변이 어렵고 적었다. 선생이 말하였다. ‘원기가 비록 허하지만 반드시 메마르게 굳은 대변이 있습니다. 공하하지 않을 수 없으나 정기가 버티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향기롭고 조한 약을 복용하여 간음이 손상되고 부가 실하여 통하지 않으므로 기가 위로 올라가 거슬러 구역질을 합니다. 간은 근을 주관하는데 본 장이 조하니 혈이 근을 기르지 못합니다. 먼저 부를 통하게 하여 통하면 아프지 않다는 뜻을 취하겠습니다.’ 인삼수 7푼, 생대황 3돈, 원명분 1돈, 지실 2돈, 법제한 향부자 3돈, 귤락 2돈, 법제한 반하 3돈, 천아련 4푼을 담오수유 3푼과 함께 볶은 것, 죽여 1돈, 불수 2돈을 썼다. 다시 진찰하니 대변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아랫배가 여전히 아파 다시 공하법을 세웠다. 생대황 3돈, 원명분 1돈, 현삼 3돈, 껍질째 쓴 빈랑 3돈, 과루피 3돈, 목향 7푼, 진교 1돈 반, 침향 5푼을 썼다. 복용 뒤 1척가량의 메마르고 굳은 대변이 나왔는데, 단단하기가 쇠 같고 굵기가 팔뚝만 하였다. 나올 때 조금 지치는 느낌이 있었으나 복통은 곧 멎었다. 아랫배는 여전히 단단하고 때때로 신물을 토하니 간위가 조화롭지 못한 것이었다. 다시 위를 조화롭게 하면서 장을 적시는 것을 보좌하였다. 곽향경 3돈, 법반하 3돈, 담오수유 4푼과 황련 2푼을 함께 볶은 것, 지각 2돈, 껍질째 쓴 빈랑 3돈, 성두초 3돈, 가는 청피 1돈, 향부자 2돈, 귤백·귤락 각 1돈 반을 쓰고 침향 5푼을 갈아 타서 복용하였다. 별도로 청도환 3알을 먼저 먹였는데 이는 서양약이었다. 복용 뒤 다시 앞과 같은 마른 대변이 나왔고, 배를 누르면 조금 부드러웠다. 다만 여전히 구역질하고 간기가 가로로 치받쳐 경락이 약간 아프며 중완이 운화하지 못하였다. 반하복령탕을 본떠 가감하였다. 법제한 반하 5돈, 복령 5돈, 지각 2돈, 귤락 1돈, 볶은 천생출 2돈, 침향가루 5푼, 볶은 곡아 3돈, 좌금환 1돈을 쓰고, 따로 식초에 볶은 고량강 7푼과 술에 볶아 법제한 향부자 1돈 반을 더하여 달여 복용하였다. 다시 메마른 대변과 무른 대변이 얼마나 나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나와 오래 쌓인 것이 이로부터 깨끗해졌고 구역질도 멎었다. 다만 간목이 토를 극하여 비위가 손상되었으므로 토를 북돋고 목을 억제해야 하였다. 천생출 3돈, 산약 3돈, 편두의 3돈, 백작약 5돈, 산수유육 1돈 반, 구운 오매 5푼, 귤백·귤락 각 1돈, 법제한 반하 3돈, 복령 4돈, 단향과 함께 볶은 곡아 3돈, 백잔화 1돈을 썼다. 위기가 크게 회복되어 매 끼니 사발 하나가량 먹을 수 있었고, 다만 오른쪽 옆구리만 조금 아팠다. 다시 효과를 본 방법을 확대하여 야우출 3돈, 회산약 3돈, 편두의 3돈, 백작약 5돈, 귤락 1돈, 천속단 3돈, 울금 2돈, 산수유육 돈·우(錢牛), 당귀신 1돈 반, 첨행인 2돈, 단 구기자 2돈, 생곡아 3돈을 썼다. 음식 섭취는 늘었으나 오른쪽 옆구리 아래가 조금 시큰하고 등 옆에 손바닥만 한 통증 부위가 있었다. 이는 유음이 있는 것이므로 담음을 제거하면서 비위를 조절해야 하였다. 복령 5돈, 진피 1돈, 귤락 1돈, 원지 2돈, 법반하 2돈, 편두의 3돈, 택사 3돈, 상지 3돈, 신곡 3돈, 진교 1돈 반, 볶은 곡아 3돈, 하엽의 가장자리 한 바퀴를 썼다. 이후 여러 증상이 날로 사라져 조리하고 나았다.
西鄉大孫巷孫婦年二十餘忽身熱四肢作痛日夜叫號其叔祖友亮延先生治之脈數而弦此痛風也暴痛屬火火性急故痛甚也用鮮生地四兩與丹皮絡石藤秦艽絲瓜絡等一服而痛止
서향 대손항의 손씨 부인은 스무 살이 넘었는데 갑자기 몸에 열이 나고 사지가 아파 밤낮으로 울부짖었다. 종조부 우량이 선생을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맥은 삭하고 현하였다. 이는 통풍이며 갑자기 생긴 통증은 화에 속하니, 화의 성질이 급하여 통증이 심한 것이었다. 신선한 생지황 4냥과 목단피·낙석등·진교·사과락 등을 썼더니 한 번 복용하고 통증이 멎었다.
南門外某姓肉店主病屍厥七日僵臥於床口噤目瞪神呆醫用香開又服制雄丹不效均云疾不可為也陳君子彥私淑先生有年矣問法於先生為擬一方用牛黃珠粉牙皂雄精菖蒲等品一劑神清能言再劑而愈自是陳君聲譽遍傳南地矣
남문 밖 어떤 정육점 주인이 시궐을 앓아 이레 동안 침상에 뻣뻣하게 누워 있었고, 입을 다물고 눈을 부릅뜨며 정신이 멍하였다. 의원이 방향개규약을 쓰고 제웅단도 먹였으나 효과가 없어 모두 치료할 수 없다고 하였다. 진자언 군은 여러 해 선생을 사숙해 왔는데, 선생에게 방법을 물으니 처방 하나를 세워 주었다. 우황·진주가루·아조·웅정·창포 등을 썼다. 한 제로 정신이 맑아지고 말을 할 수 있었으며, 다시 한 제로 나았다. 이로부터 진군의 명성이 남쪽 지방에 널리 퍼졌다.
張雪梅小孫女上下牙齦碎爛此名牙疳陽明之熱走入牙床之絡當以大劑治之磨犀角三分生石膏一兩五錢生大黃三錢丹皮三錢知母三錢絲瓜絡三錢人中黃一錢鮮竹葉三十斤蘆根二兩升麻三分綠豆三錢鮮生地一兩荷葉一角另贈以赤霜散加冰片西黃搽牙服藥後泄瀉二腐肉去已見新肉仍用清解之法前方加川連忍冬藤黑山梔去鮮地升麻竹葉生軍易熟軍外搽緣棗丹加冰片而愈
장설매의 어린 손녀는 위아래 잇몸이 헐어 문드러졌다. 이는 아감이라고 하니, 양명의 열이 잇몸의 낙맥으로 들어간 것으로 많은 양의 약으로 치료해야 한다. 갈아 쓴 서각 3푼, 생석고 1냥 5돈, 생대황 3돈, 목단피 3돈, 지모 3돈, 사과락 3돈, 인중황 1돈, 신선한 죽엽 30근, 노근 2냥, 승마 3푼, 녹두 3돈, 신선한 생지황 1냥, 하엽 한 모서리를 썼다. 또 적상산에 빙편과 서황을 더하여 주고 잇몸에 바르게 하였다. 약을 먹은 뒤 두 차례 설사하고 썩은 살이 떨어져 새살이 보였다. 계속 청해법을 쓰되 앞의 처방에 천황련·인동등·검게 볶은 산치자를 더하고 신선한 생지황·승마·죽엽은 빼며 생대황을 숙대황으로 바꾸었다. 겉으로는 연조단에 빙편을 더해 발라서 나았다.
乾德里甘號陳姓婦分娩橫生小兒不能轉身穩婆臠割而下已經二十餘日忽頭痛如劈日夜呼號甚至發痙先生診之兩脈弦數舌苔白膩胸悶不暢曰此去血過多風火上升適值盛夏又感暑熱恐其痛厥之變用石決明白芍菊花鉤鉤藿梗佩蘭蔻仁佛手荷葉菖蒲諸味一劑而痛大定惟少有胸悶再用芳香宣氣化濕而愈
건덕리 감호의 진씨 부인은 분만 때 태아가 가로로 놓여 몸을 돌리지 못하자 산파가 잘라서 꺼냈다. 스무 날 넘게 지난 뒤 갑자기 머리가 쪼개지는 듯 아파 밤낮으로 울부짖고 심하면 경련까지 하였다. 선생이 진찰하니 양쪽 맥은 현삭하고 설태는 희고 끈끈하며 가슴이 답답하고 시원하지 않았다. 선생은 ‘출혈이 너무 많아 풍화가 위로 오르는 데다 마침 한여름이라 서열을 감수한 것이니, 통증으로 궐증이 생길까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석결명·백작약·국화·조구등·곽향경·패란·두구인·불수·하엽·창포를 썼다. 한 제로 통증이 크게 안정되었고 가슴이 조금 답답한 것만 남아, 다시 방향으로 기를 펴고 습을 삭여 나았다.
西門外倉浜夏姓婦久患目疾黑珠潰爛不能視物將有傷明之勢先生開服羚羊角犀角濂珠元參川連鮮生地穀精草等外用真熊膽三分清水化烊點眼旬日而愈
서문 밖 창빈의 하씨 부인은 눈병을 오래 앓아 검은 눈동자 부위가 헐어 썩고 사물을 보지 못하였으며, 시력을 잃을 기세였다. 선생은 영양각·서각·염주·현삼·천황련·신선한 생지황·곡정초 등을 처방하여 복용하게 하고, 겉으로는 진품 웅담 3푼을 맑은 물에 녹여 눈에 점안하게 하니 열흘가량 지나 나았다.
伍麟趾婦產後病咳嗽身軟無力醫用肅肺去瘀等藥月餘不效先生診之脈細苔濁按少腹膨脹而急曰此濕熱成臌用疏通分化之法略見小效仍覺腹痛再用黑醜沉香木香櫞香皮烏藥蔻仁等四劑腹軟而不得便又用用樸大黃暢下燥糞少腹大軟逾數日因暑熱內蘊變為紅痢仍用大黃黃芩炙五穀蟲本香銀花炭等兩劑而痢止矣此病變幻莫測若專憑脈象恐不足恃也惟中書館筆店楊某之母年八十氣血已虧神倦目閉脈數有力舌質薄白自覺心藏罅裂氣機下陷而不上升大便不解下唇起一小泡手背作脹服冰瓜而渴不解先生曰此心經有火腸胃有實熱也用川連五分生石膏七錢連翹四錢生山梔三錢淡芩錢半鹽半夏二錢辰滑石五錢鮮荷葉一角金銀花露一兩鮮佛手錢牛全瓜簍四錢光杏仁二錢此證先生與源同往見其外狀並無熱象亦不煩躁惟下唇起泡渴喜飲冷故毅然而處此方一劑竟霍然
오인지의 아내는 산후에 기침하고 몸이 늘어지며 힘이 없었다. 의원이 폐기를 내리고 어혈을 없애는 약 등을 한 달 넘게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이 진찰하니 맥은 가늘고 설태는 탁하였으며, 아랫배를 누르면 부풀고 팽팽하였다. 선생은 ‘습열이 고창을 이룬 것입니다’라고 하고 소통시키고 나누어 삭이는 법을 써서 조금 효과를 보았으나 여전히 배가 아팠다. 다시 흑축·침향·목향·향연피·오약·두구인 등을 네 제 쓰니 배는 부드러워졌으나 대변을 보지 못하였다. 또 후박과 대황을 써서 마른 대변이 시원하게 나오자 아랫배가 매우 부드러워졌다. 며칠 뒤 서열이 안에 쌓여 붉은 이질로 바뀌었는데, 계속 대황·황금·구운 오곡충·목향·금은화탄 등을 두 제 쓰니 이질이 멎었다. 이 병은 변화가 헤아릴 수 없으니, 맥상에만 의지한다면 믿을 만하지 못할 것이다. 중서관 필점 양 아무개의 어머니는 여든 살로 기혈이 이미 부족하고 정신이 지쳐 눈을 감고 있었다. 맥은 삭하고 힘이 있으며 혀는 엷고 희었다. 스스로 심장에 틈이 벌어지고 기가 아래로 처져 올라오지 않는다고 느꼈으며, 대변이 나오지 않고 아래입술에 작은 물집 하나가 생겼으며 손등이 부었다. 차게 한 수박을 먹어도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선생은 ‘심경에 화가 있고 장위에 실열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천황련 5푼, 생석고 7돈, 연교 4돈, 생산치자 3돈, 담황금 1돈 반, 염반하 2돈, 진사를 배합한 활석 5돈, 신선한 하엽 한 모서리, 금은화로 1냥, 신선한 불수 돈·우(錢牛), 전과루 4돈, 껍질 벗긴 행인 2돈을 썼다. 이 증은 선생과 원이 함께 가서 보았는데, 겉모습에는 열증이 전혀 없고 번조하지도 않았다. 오직 아래입술의 물집과 차가운 것을 마시려는 갈증이 있었으므로 단호히 이 처방을 썼더니, 한 제로 곧 나았다.
盛巷某在上海汽車行為夥六月初忽起寒熱兩日熱退頓時足軟不能開步足肚不紅而脹手指麻木不能直伸回錫調治先生用分利濕熱之藥略效繼用雞鳴散加滅足肚作脹已減自能行走惟少力耳又來診治舌紅轉為白膩用溫經通絡之法如桂枝厚朴桑枝川斷金毛狗脊本瓜薏仁松節牛膝等服後苔化手指能伸而大拇指仍然不用先生曰此陽明有熱也去桂樸加石膏數劑後大指伸足力充觀此以見先生用藥之活潑
성항의 어떤 사람이 상해의 자동차 상점에서 일하였는데, 6월 초 갑자기 한열이 생겼다가 이틀 뒤 열이 내렸다. 곧 다리에 힘이 없어 걸음을 떼지 못하고 종아리는 붉지 않으면서 부었으며, 손가락이 저려 곧게 펼 수 없었다. 무석으로 돌아와 치료하였다. 선생이 습열을 나누어 배출하는 약을 써서 조금 효과를 보았고, 이어 계명산을 가감하여 쓰니 종아리의 부음이 줄어 스스로 걸을 수 있었으며 힘이 조금 부족할 뿐이었다. 다시 진료하러 왔을 때 붉던 혀에 희고 끈끈한 태가 생겼다. 계지·후박·상지·천속단·금모구척·목과·의이인·송절·우슬 등으로 온경통락하는 법을 썼다. 복용 뒤 설태가 걷히고 손가락을 펼 수 있었으나 엄지손가락은 여전히 쓰지 못하였다. 선생은 ‘양명에 열이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며 계지·후박을 빼고 석고를 더하였다. 몇 제 뒤 엄지손가락이 펴지고 다리에 힘이 충실해졌다. 이를 보면 선생이 얼마나 활발하게 약을 운용하였는지 알 수 있다.
西村裡談正生出外小溺返家驟然趺僕兩目斜視神識不清左乎足不能行動遺溺頭痛面油舌短脈伏苔膩先生診之曰此類中而兼伏熱也用至寶丹一粒以竹瀝六兩調服至天明神識較清再用平肝熄風化痰兩目巳不斜視神情更覺清楚脈有起色舌苔灰黑而潤惟舌縮如故再以芳香化濕消痰之劑大轉機能食稀粥惟友手足一時不能自如耳
서촌리의 담정생이 밖에 나가 소변을 보고 집으로 돌아와 갑자기 넘어졌다. 두 눈이 비스듬히 돌아가고 정신이 맑지 않으며 왼쪽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고 소변을 지렸고, 머리가 아프며 얼굴에 기름기가 돌았다. 혀는 짧아지고 맥은 숨어 잡히지 않으며 설태는 끈끈하였다. 선생은 ‘유중풍에 복열이 겸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지보단 1알을 죽력 6냥에 타서 복용하게 하니 날이 밝을 무렵 정신이 조금 맑아졌다. 다시 평간식풍하고 담을 삭이니 두 눈이 더는 비뚤어지지 않고 정신이 더욱 맑아졌으며, 맥이 회복되는 기미가 있고 설태는 회흑색이나 윤택하였다. 다만 혀가 오그라든 것은 여전하였다. 다시 방향으로 습을 삭이고 담을 없애는 약을 쓰자 크게 좋아져 묽은 죽을 먹을 수 있었고, 다만 손발을 당장 자유롭게 쓰지는 못하였다.
金小云校書素有煙癖忽胸悶難過面如油潤且兼青灰色兩足趾痛極呼號胸膺亦然先生曰此濕遏伏熱下走經絡也用宣泄肺氣芳香化濕兩劑面油減痛漸定胸悶如故用玉樞丹石菖蒲研末服佐以芳香等藥舌苔大化而轉紅色先生曰此濕化透熱於發也再用清泄之法而愈
교서 금소운은 평소 아편을 즐겼는데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웠다. 얼굴은 기름을 바른 듯 번들거리면서 푸른 잿빛이 섞였고, 양쪽 발가락이 몹시 아파 울부짖었으며 가슴도 그러하였다. 선생은 ‘습이 잠복한 열을 막고 있어 아래로 경락을 따라가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폐기를 선설하고 방향으로 습을 삭이는 약을 두 제 쓰니 얼굴의 기름기가 줄고 통증도 점차 안정되었으나 가슴 답답함은 여전하였다. 옥추단과 석창포를 가루 내어 복용시키고 방향약 등을 보좌하니 설태가 크게 걷히고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선생은 ‘습이 삭아 열이 밖으로 드러나려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다시 청설법을 써서 나았다.
西鄉某姓病濕溫神情迷糊舌苔黴黑脈伏麵包青滯先生診之知為痰濁遏伏熱邪處方中有肥皂子三錢值藥肄無此物典以牙皂搗碎煎服服後涕淚淋漓而神識遂清舌苔亦化病尋愈此因誤而得效亦云巧矣
서향의 어떤 사람이 습온을 앓아 정신이 흐릿하고 설태가 곰팡이처럼 검었으며, 맥이 숨어 잡히지 않고 얼굴빛이 푸르고 막힌 듯하였다. 선생이 진찰하여 담탁이 열사를 억눌러 잠복시킨 것으로 알고, 처방에 비조자 3돈을 넣었다. 마침 약방에 그 약이 없어 아조를 대신 찧어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복용 뒤 콧물과 눈물이 줄줄 흐르고 정신이 곧 맑아졌으며 설태도 걷혀 얼마 지나지 않아 나았다. 잘못으로 인해 효과를 얻었으니 또한 공교로운 일이다.
老寶華照相店張竹君勞力之後有人攝影正在布置自覺氣機不舒陡起呃逆日夜連聲不止已數日矣身體疲軟來乞診先生曰此痰熱阻滯氣機不宣為制刀豆柿蒂等古法隨取內痧散與嗅取嚏數十聲藥方書畢而呃止矣市公所孫君久與先生相知盛暑過先生寓所先生謂曰曷不備白痧散兩瓶以防不測不獨取嚏且能化痰旬日後孫君夫人疾勢極垂危不省人事牙關緊閉氣息奄奄已為料理後事忽憶及先生言試取臼痧散一瓶撬齒灌之頓吐痰數碗稍覺蘇省廷先生診治半月吐頑痰無數調治而愈
노보화 사진관의 장죽군이 힘쓰는 일을 한 뒤 손님이 촬영하러 와서 준비하던 중, 기가 순조롭지 않다고 느끼더니 갑자기 딸꾹질이 났다. 밤낮으로 소리가 이어져 멎지 않은 지 며칠이 되었고 몸이 지치고 힘이 없어 진료를 청하였다. 선생은 ‘담열이 막아 기가 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며 도두·시체 등의 옛 처방을 지어 주었다. 곧 내사산을 가져다 냄새를 맡게 하여 수십 차례 재채기하게 하였는데, 처방을 다 적자 딸꾹질이 멎었다. 시공소의 손군은 오래전부터 선생과 잘 알았다. 한여름에 선생의 거처를 방문하자 선생이 ‘예기치 못한 일에 대비하여 백사산 두 병을 갖추어 두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재채기를 일으킬 뿐 아니라 담도 삭일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열흘쯤 뒤 손군의 부인이 극히 위중해져 인사불성이 되고 이를 악물며 숨이 겨우 붙어 있어 이미 장례를 준비하였다. 문득 선생의 말이 생각나 백사산 한 병을 가져다 이를 벌리고 부어 넣어 보았다. 곧 담 몇 사발을 토하고 조금 정신을 차렸다. 선생을 불러 보름 동안 치료하자 끈질긴 담을 무수히 토해 내고 조리하여 나았다.
先生之媳錢世嫂懷妊五月病暑邪壯熱煩躁揚手擲足神識昏糊目定直視熱時身如炭炙赤身臥地者累日不熱則身冷如冰面色青灰人中掀起舌苔黃掯而膩腹中作痛號呼不已請諸道長診視均不敢立方先生囑極熱時用並底泥貼其胸腹泥為熱沸先服西瓜與薄荷絞汁數碗繼服川連佩蘭葉黑山梔運翹子芩鬱金菖蒲鮮荷葉蒂薄荷及牛黃清心丸前後共透紅白㾦九次枯皮滿榻西瓜汁共服廿餘個熱勢稍衰尚難把握先生子亦蘇世兄私與服枳實檳榔丸三錢恐病不起而胎在腹中也從此妊未足七月而呱呱墮地產後又變為五色痢日夜無度七日不減先生以為生機絕望矣與服桃仁承氣略見小效並以鴉片灰泡湯服之而痢漸稀調理月餘始安先生之孫因母病在腹不長十指剛及分科藐小殊甚以棉繭紙搓軟代溺布每日按鐘點用小竹管吸乳汁滴口中一月後稍能吮乳但兩目不開至明年元旦張視目光奕奕有神數年中張師母培養周至故身體頗為茁壯頴悟過人三歲能背誦明陽繼盛先賢男兒欲上凌煙閣第一功名不愛錢之句
선생의 며느리 전씨는 임신 다섯 달에 서사를 앓았다. 열이 심하고 번조하여 손발을 내던지며 정신이 혼미하고 눈을 고정하여 곧게 바라보았다. 열이 날 때는 몸이 숯불에 타는 듯하여 여러 날 맨몸으로 땅에 누웠고, 열이 없을 때는 몸이 얼음같이 차며 얼굴빛이 푸른 잿빛이고 인중이 들려 올라갔다. 설태는 누렇고 두껍게 붙어 끈끈하였으며 배가 아파 울부짖기를 그치지 않았다. 여러 선배 의원에게 진찰을 청하였으나 모두 감히 처방을 내지 못하였다. 선생은 열이 극심할 때 우물 밑 진흙을 가슴과 배에 붙이라고 하였는데 진흙이 열로 끓었다. 먼저 수박과 박하를 짠 즙을 몇 사발 마시게 하고, 이어 천황련·패란엽·검게 볶은 산치자·연교·자금·울금·창포·신선한 하엽체·박하와 우황청심환을 복용시켰다. 앞뒤로 홍배와 백배가 모두 아홉 차례 돋아 마른 피부가 침상에 가득하였고, 수박즙은 수박 스무여 개 분량을 마셨다. 열이 조금 약해졌지만 아직 안심하기 어려웠다. 선생의 아들 역소가 몰래 지실빈랑환 3돈을 먹였는데, 병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태아가 뱃속에 남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뒤 임신 일곱 달이 되기 전에 아기가 울면서 태어났다. 산후에는 다시 오색 이질로 바뀌어 밤낮으로 한없이 나오고 이레가 되어도 줄지 않았다. 선생은 살 가망이 없다고 여겼다. 도인승기탕을 복용시키니 조금 효과가 있었고, 아편재를 물에 우려 먹이자 이질이 점차 뜸해져 한 달 넘게 조리한 뒤에야 안정되었다. 선생의 손자는 어머니의 병으로 태중에서 자라지 못하여 열 손가락이 겨우 갈라져 구분될 정도였고, 몹시 작았다. 면견지를 부드럽게 비벼 기저귀 대신 쓰고, 매일 시간을 맞추어 작은 대나무 관으로 젖을 빨아 입안에 떨어뜨려 주었다. 한 달 뒤 조금 젖을 빨 수 있었으나 두 눈은 뜨지 못하였다. 이듬해 정월 초하루에 눈을 뜨고 보니 눈빛이 반짝이며 생기가 있었다. 몇 해 동안 사모 장부인이 지극하게 길렀으므로 몸이 꽤 튼튼해지고 총명함이 남달랐다. 세 살에 명나라의 선현 양계성이 지은 ‘사나이가 능연각에 오르려거든, 으뜸가는 공명은 돈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외울 수 있었다.
西鄉丁巷丁婦早年孀居膝下乏嗣年近不惑遍體發熱雖嚴寒之時祖裼裸程喜貼冷處他醫投清涼藥不效己數年矣先生以為心肝之鬱火方用羚羊角珠粉研末及元參合歡皮鹽水炒遠志鬱金等解鬱之品約服二十餘劑而完全不發熱矣
서향 정항의 정부인은 젊어서 과부가 되었고 자식이 없었으며 나이는 마흔 가까웠다. 온몸에 열이 나서 몹시 추운 때에도 옷을 벗고 몸을 드러내어 차가운 곳에 붙이기를 좋아하였다. 다른 의원들이 청량한 약을 주었으나 효과가 없는 지 이미 몇 해였다. 선생은 심간의 울화로 여겨 영양각과 진주가루를 함께 갈아 쓰고, 현삼·합환피·소금물에 볶은 원지·울금 등 울체를 풀어 주는 약을 처방하였다. 스무여 제를 복용하자 열이 완전히 나지 않게 되었다.
南門許海秋之媳從臍上至心下起一梗粗如拇指時時作痛來診適值酷暑先生用附桂吳萸乾薑等味不數劑而梗消此係寒濁凝結所致與古書所謂伏粱寒熱微有差別也
남문의 허해추의 며느리는 배꼽 위에서 명치 아래까지 엄지손가락만 한 굵기의 단단한 줄이 생겨 수시로 아팠다. 진찰하러 왔을 때 마침 몹시 더웠으나, 선생은 부자·육계·오수유·건강 등을 썼다. 몇 제 되지 않아 그 줄이 사라졌다. 이는 한탁이 엉겨 생긴 것으로, 옛 책에서 말한 복량한열과는 조금 다르다.
老縣前某婦產前子癇發痙欲死兩目直視雙手亂舞舌出二寸胎下不覺勢甚危殆先生用童便一味服三日而定調理乃痊
노현전의 어떤 부인은 출산 전에 자간으로 경련하여 죽을 것 같았고, 두 눈은 곧게 바라보며 양손을 마구 휘둘렀고 혀가 2촌이나 나와 있었다. 태아가 나왔어도 알지 못할 정도로 몹시 위태로웠다. 선생은 동변 한 가지만 써서 사흘 동안 복용시키니 안정되었고, 조리하여 완쾌하였다.
恆善堂祝某之室畏多男用藥料墮胎產後大寒戰慄臥床振動難過異常寒後發厥汗出如雨脈伏目定危在頃刻請先生診治謂曰此氣血交亂陰陽錯雜寒之不可溫之不能用藥棘手擬重用交加散加味一劑而愈
항선당 축 아무개의 아내는 자녀가 많아질까 두려워 약물로 낙태하였다. 그 뒤 크게 추워하며 떨었고, 침상에 누워서도 침상이 흔들릴 만큼 떨려 몹시 괴로워하였다. 한기가 지난 뒤에는 궐증이 생겨 비 오듯 땀이 나고 맥이 숨어 잡히지 않으며 눈을 고정하여 위급함이 눈앞에 닥쳤다. 선생에게 진료를 청하니 ‘기와 혈이 서로 어지럽고 음양이 뒤섞여 있으므로 차게 할 수도 따뜻하게 할 수도 없어 약을 쓰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교가산을 중하게 쓰고 가미하는 방법을 세웠는데, 한 제로 나았다.
先生前在三里橋施診局來一江陰人手提光粉一袋時時取食云不食則不安諸醫滿座均莫識其證先生曰此蟲證也名曰石蛔非使君等所能殺之用雄精等而愈
선생이 전에 삼리교 시진국에 있을 때 강음 사람 하나가 광분 한 자루를 손에 들고 찾아와 수시로 꺼내 먹으며, 먹지 않으면 편안하지 않다고 하였다. 자리에 의원들이 가득하였으나 모두 그 병을 알지 못하였다. 선생은 ‘충증으로 이름이 석회입니다. 사군자 같은 약으로는 죽일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웅정 등을 써서 나았다.
錢子才之女年十七歲身軀矮小一日嘔出赤蟲(蟲類九種之一)儼如精肉長半寸許其形如蟬有目色黑跳躍桌上先生曰此蟲生於睥胃之間由中脘氣虛飲食失宜濕熱所生丹溪有半月向上下之論古法不外甘以誘之苦以伏之酸以軟之攻以逐之就脈而論細弱便溏苔黃過熱非宜姑標本同治川連吳萸烏梅川黃柏白朮黃耆甘草蕪荑榧子生礬安胃丸後再健脾胃兼殺蟲之藥而安
전자재의 딸은 열일곱 살로 몸집이 작았다. 어느 날 적충을 토했는데, 아홉 종류의 충 가운데 하나로 살코기와 같고 길이는 반 촌가량이었다. 모양은 매미 같고 눈이 있으며 빛은 검었고 탁자 위에서 뛰었다. 선생은 ‘이 충은 비위 사이에서 생기며 중완의 기가 허하고 음식 섭취가 적절하지 않아 습열로 생겨난 것입니다. 단계에게는 보름을 기준으로 위아래로 향한다는 논의가 있습니다. 옛 방법은 단맛으로 유인하고 쓴맛으로 누르며 신맛으로 부드럽게 하고 공격하여 몰아내는 데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맥에 따라 논하면 세약하고 대변이 묽으며 설태가 누르니, 지나치게 열한 약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우선 표본을 함께 치료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천황련·오수유·오매·천황백·백출·황기·감초·무이·비자·생백반·안위환을 썼다. 그 뒤 비위를 튼튼하게 하면서 살충하는 약을 써서 안정되었다.
東河頭蒼許奇孫之弟年幼時患腹痛面色萎黃後患時瘧按之腹硬先生初以為有積滯也川枳實檳榔生大黃等服後便下一物狀似小燕窩螺紋盤旋蟲藏其中大者長一二寸小者寸許約有數百條從此痛止始知是蛔結痛也再用雷丸蕪荑雄精黃連黃柏等藥數劑而愈
동하두창의 허기손의 아우는 어릴 때 배가 아프고 얼굴빛이 누렇게 시드는 병을 앓았다. 뒤에 시학을 앓았는데 배를 누르면 단단하였다. 선생은 처음에는 적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지실·빈랑·생대황 등을 썼다. 복용 뒤 작은 제비집처럼 생기고 나선 무늬로 감긴 물체가 대변으로 나왔는데, 그 안에 벌레가 숨어 있었다. 큰 것은 길이가 1~2촌이고 작은 것은 1촌가량이었으며 수백 마리는 되었다. 이로부터 통증이 멎어 비로소 회충이 엉겨 생긴 통증임을 알았다. 다시 뇌환·무이·웅정·황련·황백 등을 몇 제 써서 나았다.
陳婦寄居寺後門王姓宅後年六十餘遍體肌肉生蝨不覺痛癢每日席上不知凡計先生於之曰此係濕熱釀成又年高氣弱正氣不能化濕濕蘊生蝨況脈細苔膩非易治也用人參鬚薏仁百部雷丸茅朮等品外用苦參百部黃柏豨薟濃煎洗浴其蝨乃滅
진부인은 절 뒷문의 왕씨 집 뒤에 얹혀살았고 나이가 예순이 넘었다. 온몸 피부에 이가 생겼으나 아프거나 가렵지 않았으며, 날마다 돗자리 위에 얼마나 떨어지는지 셀 수 없었다. 선생은 ‘습열이 빚어 낸 데다 나이가 많아 기가 약하여 정기가 습을 삭이지 못하고, 습이 쌓여 이가 생긴 것입니다. 더구나 맥이 가늘고 설태가 끈끈하니 쉽게 치료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하였다. 인삼수·의이인·백부·뇌환·모출 등을 쓰고, 겉으로는 고삼·백부·황백·희렴을 진하게 달여 씻고 목욕하게 하니 이가 없어졌다.
某姓婦素有外痔一日病暑熱起伏先生將伏邪治愈後而痔發更甚痛如刀割臥床不起視其痔大如茄色灰黑勢將翻花晝夜呼號其家人慾舁入醫院剖割而不果先生開黃柏龍膽草淡芩槐花升麻苦寒之品服數劑見效再加制軍犀角苦參火麻仁郁李仁又服數劑外川熊膽冰片蚌水豬膽汁西牛黃調敷腫脹消而痛止後川補中益氣法十餘劑而收縮如常矣至今數年未發東河頭巷曹君年已花甲氣體豐腴據云小便龜頭翻花小溲艱難或云腎岩或云徽瘡數年不效後至醫院將玉莖齊根割去愈後回家一二日左腿橫痃大發蔓延腫脹且多脂水腎囊下突生一梗長約寸許粗如小指頭尖而微紅延先生診視曰此刀割之後濕毒未清攻入海底之上一時恐難消散重用黃柏澤瀉及赤豬芩龍膽草牛薏仁丹皮淡芩銀花甘草等詎料二三劑後其梗全消橫痃亦愈
어떤 부인은 평소 외치가 있었는데 어느 날 서열로 한열이 오르내렸다. 선생이 복사를 치료하여 낫게 한 뒤 치질이 더욱 심해져 칼로 베는 듯 아프고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살펴보니 치핵이 가지처럼 크고 회흑색이며 꽃처럼 뒤집혀 벌어지려는 기세였다. 밤낮으로 울부짖자 가족들은 병원으로 옮겨 절개하려 하였으나 실행하지 못하였다. 선생은 황백·용담초·담황금·회화·승마 등 고한한 약을 처방하였다. 몇 제를 복용하여 효과가 보이자 법제한 대황·서각·고삼·화마인·욱리인을 더하여 몇 제를 더 복용시켰다. 겉으로는 웅담·빙편·조개에서 얻은 물·저담즙·서우황을 개어 발랐더니 부종이 가라앉고 통증이 멎었다. 뒤에 보중익기법으로 열몇 제를 쓰니 평소처럼 오그라들어 들어갔고, 지금까지 몇 해 동안 재발하지 않았다. 동하두항의 조군은 환갑이고 몸이 풍만하였다. 듣기로는 귀두가 꽃처럼 뒤집혀 벌어지고 소변이 나오기 어려워, 어떤 이는 신암이라 하고 어떤 이는 휘창이라 하였는데 몇 해 동안 낫지 않았다고 한다. 뒤에 병원에 가서 음경을 뿌리째 잘라 냈다. 회복되어 집에 돌아온 지 하루 이틀 만에 왼쪽 넓적다리에 횡현이 크게 생겨 부기가 퍼지고 진물이 많았으며, 음낭 아래에 길이가 1촌가량이고 굵기가 새끼손가락만 한 줄이 갑자기 생겼다. 끝이 뾰족하고 조금 붉었다. 선생을 불러 진찰하니 ‘칼로 잘라 낸 뒤 습독이 깨끗해지지 않아 해저 위쪽으로 공격해 들어간 것이니 당장 흩어지기 어려울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황백·택사를 중하게 쓰고 적복령·저령·용담초·생의이인·목단피·담황금·금은화·감초 등을 더하였다. 뜻밖에 이삼 제 뒤 그 줄이 완전히 사라지고 횡현도 나았다.
西門老縣前謝姓婦年二十餘生女後久不育每交媾陰戶流血如注含羞就診先生曰此非氣不固血系君相之火過動故肝不藏血也擬濂珠黃柏黃連白芍烏梅玄參連翹黑梔等服之安然無盡
서문 노현전의 사씨 부인은 스무 살이 넘었고 딸을 낳은 뒤 오래도록 다시 임신하지 못하였다. 성교할 때마다 음부에서 피가 쏟아지듯 나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진료를 받았다. 선생은 ‘기가 혈을 잡아 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군화와 상화가 지나치게 움직여 간이 혈을 저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염주·황백·황련·백작약·오매·현삼·연교·검게 볶은 치자 등을 쓰니 편안해지고 탈이 없었다.
榮姓婦陰戶奇癢不堪其夫述此求計於先生先生用雄精熊膽明礬川連等研末成條插入陰戶不逾時而癢止此肝經濕熱生蟲故苦燥殺蟲之品立見奇效聞先生之師馬徵君亦用此力已愈多人
영씨 부인은 음부가 견딜 수 없이 가려웠다. 남편이 이 일을 말하며 선생에게 방법을 구하였다. 선생은 웅정·웅담·명반·천황련 등을 가루 내어 막대 모양으로 만들어 음부에 넣게 하였더니, 오래지 않아 가려움이 멎었다. 이는 간경의 습열로 벌레가 생긴 것이므로, 쓰고 조하며 살충하는 약으로 즉시 기이한 효과를 본 것이다. 듣기로 선생의 스승 마징군도 이 방법으로 이미 많은 사람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河埒口蔣姓遍發瘡毒體無完膚形神消瘦先生偕門人鄒致和同往致和幼讀醫書並在他處學習內外科五六年始入房見其形狀驚而卻走先生用枯礬末數兩麻油調敷遍體兩星期而愈繼有黃泥橋薜姓子病遺精北門王醫用固澀補藥十餘劑不獨精不能固遍體腫脹發瘡濃水淋漓兩手不能握箸舌苔光絳先生曰此濕火灼陰也用鮮首烏黃柏黃連黃芩丹皮等外治同前法濃瘡即愈遣精亦止後見其人氣體甚豐腴也
하륵구의 장씨는 온몸에 창독이 생겨 성한 피부가 없고 몸과 정신이 쇠약해졌다. 선생은 문인 추치화와 함께 갔다. 치화는 어려서 의서를 읽었고 다른 곳에서 내과와 외과를 대여섯 해 배웠지만, 방에 들어가 그 모습을 보자 놀라 물러갔다. 선생은 고백반 가루 몇 냥을 참기름에 개어 온몸에 바르게 하니 두 주 만에 나았다. 이어 황니교의 설씨 아들이 유정을 앓았다. 북문의 왕 의원이 고삽하고 보하는 약을 열몇 제 썼는데, 정액이 그치지 않을 뿐 아니라 온몸이 붓고 종기가 나서 고름이 줄줄 흐르고 양손으로 젓가락을 잡을 수 없었으며 혀는 태가 벗겨지고 짙게 붉었다. 선생은 ‘습화가 음을 태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신선한 하수오·황백·황련·황금·목단피 등을 쓰고 겉으로는 앞의 방법과 같이 치료하니 고름 나는 종기가 곧 낫고 유정도 멎었다. 뒤에 보니 몸이 매우 풍만하였다.
光緒庚子秋先生與凌君伯升明經赴滬寓大東輪船局一日晚鮑君朗州以包車迎先生至棋盤街妓療診病有妓頭痛如劈頃刻無停呼號萬狀甚至暈眩傾僕諸醫用平肝熄風不效先生診其脈洪舌絳曰此非肝陽是毒火上炎也下部陰處必碎爛無疑始則隱諱繼以實情相告因囑其女傭以骨簪卷棉花拭去其腐用西黃熊膽珠粉豬膽汁調糊少加冰片灌入服方用犀角鮮生地銀花龍膽草黃柏生粉草仙遺糧大劑一帖而頭眩止再帖而頭痛若失矣又有一妓云肛門作痛自覺發碎診之見肛門兩邊白腐如大拇指先生曰此瀉毒未盡留毒於肛旁是名蝴蝶梅也用大黃犀角川黃連黃柏等服之外糝銀青散數日而愈
광서 경자년 가을, 선생은 능백승 명경과 상해로 가 대동윤선국에 머물렀다. 어느 날 저녁 포랑주 군이 인력거로 선생을 맞아 기반가의 기루로 모셔 가 진료를 청하였다. 한 기녀는 머리가 쪼개지듯 아파 잠깐도 멎지 않고 온갖 모양으로 울부짖으며, 심하면 어지러워 쓰러졌다. 여러 의원이 평간식풍법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이 진찰하니 맥은 홍하고 혀는 짙게 붉었다. ‘간양이 아니라 독화가 위로 타오르는 것입니다. 아래쪽 음부가 틀림없이 헐어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처음에는 숨겼으나 뒤에는 사실대로 말하였다. 이에 여종에게 뼈비녀에 솜을 감아 썩은 것을 닦아 내게 하고, 서황·웅담·진주가루를 저담즙에 풀어 반죽하고 빙편을 조금 더하여 넣게 하였다. 복용 처방은 서각·신선한 생지황·금은화·용담초·황백·생분초·선유량을 많이 썼다. 한 첩에 어지럼이 멎고, 다시 한 첩에 두통이 씻은 듯 사라졌다. 또 한 기녀가 항문이 아프고 헐어 있는 것 같다고 하였다. 살펴보니 항문 양옆에 엄지손가락만 한 흰 부패 부위가 있었다. 선생은 ‘독이 다 빠지지 않아 항문 곁에 남은 것이며, 호접매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대황·서각·천황련·황백 등을 복용시키고 겉으로 은청산을 뿌리게 하니 며칠 만에 나았다.
北柵日許某之孫年十四面色黃瘦小溲時帶白膩時常鼻塞似傷風狀他醫診之服發散藥先生細審其鼻孔內左有瘜肉甚大右孔較小先生曰此兒正元素虧氣虛濕熱下注是為膏淋況風熱上蒸於肺鼻為肺竅故瘜肉生焉但瘜肉本可用水螄散點之因許君子己早亡只此一孫未便用猛烈品以老式永片一味研末點之方用辛夷白朮川萆薢海金沙黃柏澤瀉桑白皮黑山梔桔梗等逾數日又來診視在鼻瘜肉已縮小呼吸順利矣錄此後先生諭源曰臨證宜細心詳察不可草率從事此病本非奇異惜皆未得要領慎之
북책구의 허 아무개의 손자는 열네 살로 얼굴이 누렇고 여위었으며, 소변에 때때로 희고 끈끈한 것이 섞였다. 늘 코가 막혀 감기에 걸린 듯하였으므로 다른 의원은 진찰하고 발산약을 먹였다. 선생이 콧속을 자세히 살펴보니 왼쪽에는 식육이 매우 크고 오른쪽 콧구멍에는 비교적 작은 것이 있었다. 선생은 ‘이 아이는 본래 정기가 부족하여 기가 허하고 습열이 아래로 흘러내리니 고림입니다. 더구나 풍열이 위로 폐를 훈증하고, 코는 폐의 구멍이므로 식육이 생긴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식육에는 본래 수사산을 점칠 수 있었으나 허군의 아들이 일찍 죽고 이 손자 하나뿐이므로 강렬한 약을 쓰기 어려웠다. 옛 방식의 영편 한 가지만 가루 내어 점치게 하였다. 처방은 신이·백출·천비해·해금사·황백·택사·상백피·검게 볶은 산치자·길경 등을 썼다. 며칠 지나 다시 진찰하러 왔을 때 코의 식육이 작아지고 호흡이 순조로웠다. 이를 기록한 뒤 선생은 원에게 일렀다. ‘진료할 때는 마땅히 세심하게 자세히 살펴야 하며 경솔하게 처리해서는 안 된다. 이 병이 본래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모두 요점을 얻지 못하였으니 삼가야 한다.’
水警廳第一隊長合肥劉性媳年十七歲容貌雅秀軀幹不長自結縭後日漸瘦削寒熱咳嗽飲食稀少言語音低經事不利己五月矣他醫用肅肺之藥不效先生以為破瓜太早有傷正元此虛咳也用黃耆黨參歸身首烏桂枝白芍雞血藤續斷甜杏仁氣血並補等品出入兩服而寒熱退咳嗽減形容亦轉豐腴覆方加細生地丹參藏紅花月季花阿膠蜜炙馬兜鈴等以通其月事
수경청 제1대장인 합비 유씨의 며느리는 열일곱 살로 용모가 단아하고 고왔으나 몸이 다 자라지 않았다. 혼인한 뒤 날로 여위고 한열과 기침이 생겼으며 음식을 적게 먹고 말소리가 낮아졌다. 월경이 순조롭지 않은 지 이미 다섯 달이었다. 다른 의원이 폐기를 내리는 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었다. 선생은 첫 성관계가 너무 일러 정기를 손상시킨 허해라고 보았다. 황기·당삼·당귀신·하수오·계지·백작약·계혈등·속단·첨행인 등 기혈을 함께 보하는 약을 가감하였다. 두 번 복용하자 한열이 물러가고 기침이 줄었으며 몸도 다시 살이 붙었다. 다시 처방할 때는 세생지황·단삼·장홍화·월계화·아교·꿀에 구운 마두령 등을 더하여 월경을 통하게 하였다.
西門張巷張伸若長媳懷妊六月夏日多啖西瓜至九月重九前寒熱交作未得暢汗濕遏熱鬱已服開泄芳香表散等劑並不見退反□語風動痙厥胸悶循衣摸床兩旬後延先生診治脈左弦數右尺不應舌苔掯黑潤而帶青灰語蹇而不能抵齒神情時迷呼之目微張頃又似睡面色㿠白淡黃稍有齒垢先生曰此邪熱遏伏痰濁蒙閉內陷之象也幸脈不沉細有娠用藥殊形棘手若因礙胎而不用恐難保其生命方用皂英子制膽星省頭草竹黃川貝母煆石決明鉤鉤鬱金藿梗蘇梗荷蒂另制膽星石菖蒲礞石伽楠香研末服後下轉矢氣胸膈頓寬神情清楚不似前日之似睡苔亦稍化略能分矚家務明日加茅朮川樸生熱薏米鮮佩蘭而舌苔更化惟仍潮而浮黑更覺蔓延先生以為濕松熱欲外達仍為濕遏之象也再加重製茅朮佐以芳香泄化滲濕等品渠翁亦知醫調理而愈
서문 장항의 장신약의 큰며느리는 임신 여섯 달로, 여름에 수박을 많이 먹었다. 9월 중양절 전에 한기와 열이 번갈아 생겼으나 땀이 시원하게 나지 않아 습이 막고 열이 울체되었다. 이미 열어 내보내고 방향으로 표를 흩는 약 등을 먹었으나 나아지지 않고, 도리어 □어와 풍동·경련·궐증이 생기며 가슴이 답답하고 옷을 더듬고 침상을 만졌다. 스무 날 뒤 선생을 불러 진료를 받았다. 맥은 왼쪽이 현삭하고 오른쪽 척맥은 응하지 않았으며, 설태는 검게 두껍게 붙어 윤택하고 푸른 잿빛이 섞였다. 말이 어눌하고 혀가 치아에 닿지 못하며 정신이 때때로 혼미하였다. 부르면 눈을 조금 떴다가 곧 다시 잠든 듯하였고, 얼굴빛은 창백하고 옅게 누르며 이에 때가 조금 있었다. 선생은 ‘사열이 억눌려 잠복하고 담탁이 덮어 막아 안으로 함몰된 모습입니다. 다행히 맥이 침세하지는 않으나, 임신 중이라 약을 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태아에 지장이 있을까 하여 약을 쓰지 않는다면 생명을 보전하기 어려울 듯합니다’라고 하였다. 조협자·제담성·성두초·죽황·천패모·불에 달군 석결명·조구등·울금·곽향경·소경·하체를 쓰고, 따로 제담성·석창포·몽석·가남향을 가루 내어 복용하게 하였다. 복용 뒤 아래로 기가 내려가 방귀가 나고 가슴과 횡격막이 곧 시원해졌으며, 정신이 맑아져 전날처럼 잠든 모습이 아니었다. 설태도 조금 걷히고 집안일을 조금 분부할 수 있었다. 다음 날 모출·천후박·생의미와 익힌 의미·신선한 패란을 더하자 설태가 더 걷혔으나 여전히 습하고 검은색이 겉에 떠 있어 더욱 퍼진 듯하였다. 선생은 습이 풀리고 열이 밖으로 나가려 하나 여전히 습에 막힌 모습으로 보았다. 다시 법제한 모출을 증량하고 방향으로 설화하고 습을 스며 나가게 하는 약물을 보좌하였다. 그 시아버지도 의학을 알아 조리하여 나았다.
西門申新紗廠工人婦素有肝氣煩躁嘔惡南門王君以為氣膈症延先生診之先生曰此非膈症是伏邪晚發胃火沖逆而上用姜炒川連及豆卷藿梗黑山梔蓮翹枳實竹茹蘆根嘔逆減而寒熟起伏煩躁脈象細郁脘腹板硬先生以為積阻氣滯用生大黃元明粉花檳等便黑色宿糞嘔止熱輕略用達邪得微汗而退
서문 신신사창의 노동자 부인은 평소 간기가 있어 번조하고 구역질하였다. 남문의 왕군은 기격증으로 여기고 선생을 불러 진찰하게 하였다. 선생은 ‘격증이 아니라 복사가 늦게 발하여 위화가 거슬러 위로 치미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생강과 함께 볶은 천황련과 두권·곽향경·검게 볶은 산치자·연교·지실·죽여·노근을 썼다. 구역질은 줄었으나 한열이 오르내리고 번조하였으며, 맥은 가늘고 막힌 듯하고 명치와 배가 판자처럼 단단하였다. 선생은 적체가 막고 기가 정체된 것으로 보아 생대황·원명분·화빈 등을 썼다. 검은 숙변이 나오자 구토가 멎고 열이 가벼워졌으며, 사기를 밖으로 내보내는 약을 조금 써서 약간 땀이 나자 물러갔다.
江陰巷陶氏婦病濕溫始延龔醫用茅朮川林燥藥服二十四劑不效神情委頓氣息奄奄先生診之舌苔厚白而干曰此冒陰傷也陰傷則苔無以化方中用鮮石斛一兩大養其陰苔頓化病轉機能食稀粥調理而愈米業某有嗜好病暑濕龔醫診之屢燥無效乃延先生診見其形瘦骨立面色㿠白無華此係中陽已衰故舌苔濁膩不化也用乾薑等溫劑舌苔漸化效驗神速
강음항의 도씨 부인은 습온을 앓았다. 처음 공 의원을 불러 모출·천후박 같은 조한 약을 스물네 제 복용하였으나 효과가 없고 정신이 지치며 숨이 겨우 붙어 있었다. 선생이 진찰하니 설태가 두껍고 희면서 말라 있었다. ‘위음이 손상된 것입니다. 음이 손상되면 설태가 삭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처방에 신선한 석곡 1냥을 넣어 음을 크게 기르니 설태가 곧 걷히고 병세가 좋아져 묽은 죽을 먹을 수 있었으며, 조리하여 나았다. 쌀 장사를 하는 어떤 사람은 기호가 있었고 서습병을 앓았다. 공 의원이 진찰하여 거듭 조한 약을 썼으나 효과가 없자 선생을 불렀다. 살펴보니 몸이 뼈만 남도록 말랐고 얼굴빛이 창백하며 윤기가 없었다. 이는 중양이 이미 쇠하여 설태가 탁하고 끈끈하며 걷히지 않는 것이었다. 건강 등의 따뜻한 약을 쓰자 설태가 차츰 걷혔고 효험이 매우 빨랐다.
周師季梅長孫病後狂食神色自若某醫謂是佳兆與食可也西醫亦云無妨先生診其脈沉細欲絕謂為除中決其不起後果然其母因痛子情切時時抑鬱於甲子五月身熱胸悶兩耳發尖遍體肌膚皆痛請先生診視曰此氣鬱化火生風也並有伏熱挾濕挾積用開鬱化濕之品藿香佩蘭枳實檳榔玉樞丹石菖蒲等一劑而氣機暢達二劑熱退積下再診諸恙均退而遍體肉瞤先生曰古書論肉瞤血虛者多此非也乃氣火流行於肌膚之間耳仍用解鬱清熱而愈
주계매 선생의 맏손자는 병후에 음식을 마구 먹었으나 얼굴빛과 정신은 태연하였다. 어떤 의원은 좋은 징조이니 먹여도 된다고 하였고 서양 의사도 괜찮다고 하였다. 선생이 맥을 짚으니 침세하고 끊어지려 하였다. 제중이라고 하며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는데 뒤에 과연 그러하였다. 그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깊어 늘 울적해하였다. 갑자년 5월에 몸에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며 양쪽 귀가 뾰족해지고 온몸의 피부와 살이 모두 아팠다. 선생에게 진찰을 청하니 ‘기가 울체되어 화로 변하고 풍을 일으킨 데다, 복열에 습과 적체가 끼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곽향·패란·지실·빈랑·옥추단·석창포 등 울체를 열고 습을 삭이는 약을 썼다. 한 제로 기가 시원하게 통하고 두 제로 열이 물러가며 적체가 내려갔다. 다시 진찰하니 여러 증상은 모두 사라졌으나 온몸의 살이 떨렸다. 선생은 ‘옛 책에서 살 떨림을 논할 때 혈허라고 한 것이 많지만, 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화가 피부와 살 사이를 돌아다니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계속 울체를 풀고 열을 맑히는 약을 써서 나았다.
太溯濱鄉某年疫癘盛行請先生診視家族鄰里以為最危險者先生藥之立愈有少年病最輕群以為無慮者先生一見即斷不治蓋見懸曬病者之衣及病人口鼻眼角均有蠅蚋紛集揮之不去臟腑先敗之徵兆藥不可為矣後果不起
태호 물가의 한 마을에 어느 해 역려가 크게 돌아 선생에게 진료를 청하였다. 가족과 이웃이 가장 위험하다고 여긴 환자는 선생이 약을 쓰자 곧 나았다. 한 소년은 병이 가장 가벼워 모두 걱정할 것이 없다고 하였으나, 선생은 한 번 보고 곧 치료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널어 말리는 환자의 옷과 환자의 입·코·눈가에 파리와 날벌레가 어지러이 모여들어 쫓아도 떠나지 않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장부가 먼저 무너진 징조이므로 약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뒤에 과연 회복하지 못하였다.
相國之裔嵇某踡臥舌乾唇焦發熱不語脈細欲絕醫用寒涼不應先生以其踡臥知寒格於外以附桂等進至夜半病者暴臊躍床而起明晨遂改用白虎湯病良已後□知友人病者私吸阿芙蓉膏值癮發故踡臥云
상국의 후손 혜 아무개가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고, 혀와 입술이 타듯 마르며 열이 나고 말하지 않았고 맥이 가늘어 끊어지려 하였다. 의원이 한량약을 썼으나 반응이 없었다. 선생은 몸을 웅크리고 누운 것을 보고 한이 밖에서 막고 있다고 판단하여 부자·육계 등을 먹였다. 한밤중에 환자가 갑자기 초조해하며 침상에서 뛰어올랐다. 다음 날 아침 곧 백호탕으로 바꾸자 병이 잘 나았다. 뒤에 벗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환자는 몰래 아부용고를 피웠고 마침 갈망이 발하여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고 한다.
書院弄搖車灣童姓婦與夫口角服火柴頭兩匣巳服西藥嘔吐不效適其夫至先生家先生藏有金汁一小瓶囑其回家灌服胸中暴躁煩灼頓除再服綠豆銀花犀角解毒之品應手取效又有洛社某婦服火柴頭先生亦用犀角人中黃銀花甘草綠豆等大劑肌膚髮出紅點壘壘前方加大黃丹皮大青川連等而愈
서원롱 요거만의 동씨 부인은 남편과 말다툼한 뒤 성냥 머리 두 갑 분량을 먹었다. 이미 서양약으로 구토를 시도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마침 남편이 선생의 집에 왔는데, 선생은 금즙 작은 병 하나를 가지고 있어 집에 돌아가 먹이라고 일렀다. 가슴속의 심한 초조와 타는 듯한 번조가 곧 사라졌고, 다시 녹두·금은화·서각 등 해독하는 약을 먹이자 즉시 효과가 났다. 또 낙사의 어떤 부인이 성냥 머리를 먹었을 때도 선생이 서각·인중황·금은화·감초·녹두 등을 많은 양으로 썼다. 피부에 붉은 점이 잇따라 돋자 앞의 처방에 대황·목단피·대청·천황련 등을 더하여 나았다.
南門外竇仲卿年三十餘甲子秋行房之明日食麵一碗陡然腹痛臍極收引汗出如雨誤以為痧也延針科刺之屢針無效三日痛仍如故汗亦不止用炒熱麩皮熨之仍不見松且便泄如蟹沫診其脈沈細舌苔白膩先生決其為寒也陽氣不足中下焦陰寒凝結不散方用酷炒高良薑酒炒制香附製附子煨木香神麴鬱金吳萸炒白芍法半夏沉香老桂木外用白胡椒肉桂麝香少許研末貼臍囑其勿用鵓鴿傷害生命一劑已
남문 밖의 두중경은 서른이 넘었다. 갑자년 가을 성관계를 한 다음 날 국수 한 사발을 먹고 갑자기 배가 아프며 배꼽 부위가 몹시 당기고 비 오듯 땀이 났다. 이를 사증으로 잘못 알아 침과 의원을 불러 여러 번 침을 놓았으나 효과가 없었다. 사흘이 되어도 통증은 여전하고 땀도 멎지 않았다. 밀기울을 뜨겁게 볶아 찜질하여도 풀리지 않고, 대변은 게거품 같은 설사였다. 맥을 짚으니 침세하고 설태는 희고 끈끈하였다. 선생은 한증으로 판단하였다. 양기가 부족하여 중초와 하초의 음한이 엉겨 흩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식초에 볶은 고량강, 술에 볶아 법제한 향부자, 법제한 부자, 잿불에 구운 목향, 신곡·울금·오수유·볶은 백작약·법반하·침향·오래된 계목을 썼다. 겉으로는 백호초·육계·사향을 조금 가루 내어 배꼽에 붙였고, 비둘기를 써서 생명을 해치지 말라고 일렀다. 한 제로 그쳤다.
西門內太平巷某媼年七十三每值夜半子時氣逆喘促起坐至天明其氣稍平汗出不止微咳稍有痰不得吐診脈細軟舌上少苔其孫問先生曰此何故耶曰子時者陰靜陽動之時高年陰分已虧陰不斂陽故氣促汗出仿高鼓峰用六味地黃丸一兩五錢坎氣青鉛小麥白芍牡蠣等同煎服數劑而安
서문 안 태평항의 어떤 노부인은 일흔세 살로, 밤중 자시만 되면 기가 치밀고 숨이 가빠 일어나 앉았다가 날이 밝아야 조금 가라앉았다. 땀은 그치지 않고 기침이 약간 있었으며 담이 조금 있으나 뱉어 내지 못하였다. 맥은 가늘고 연하며 혀에는 태가 적었다. 손자가 선생에게 까닭을 물었다. 선생은 ‘자시는 음이 고요해지고 양이 움직이는 때입니다. 고령으로 음분이 이미 부족하여 음이 양을 거두지 못하므로 숨이 가쁘고 땀이 납니다’라고 하였다. 고고봉의 방법을 본떠 육미지황환 1냥 5돈에 감기·청연·소맥·백작약·모려 등을 함께 달여 복용시키니 몇 제로 안정되었다.
光復門外王文魁年四十餘面色㿠白浮腫少腹堅硬氣逆喘急徹夜不寐咳嗽痰多兩脈沉細舌質淡白始用旋覆代赭坎氣及冬瓜皮雞金散等而喘急如故先生曰此係腎陽不足氣不攝納脾不溫運效也因用細辛四分製附子五分炒棗仁三錢帶皮苓五錢炒蘇子二錢老桂本四分青鉛一兩製半夏三錢甜杏仁連皮三錢枇耙葉去毛三片沉香三分服後氣喘大平夜得安臥面腫亦退舌質轉紅右脈似覺有力惟咳嗽未止前方去棗仁枇杷葉沉香加巴戟肉三錢姜皮七分坎氣一條三劑喘平腫退
광복문 밖의 왕문괴는 마흔이 넘었고, 얼굴빛이 창백하고 부었으며 아랫배가 단단하였다. 기가 치밀고 숨이 가빠 밤새 잠들지 못하고 기침과 담이 많았다. 양쪽 맥은 침세하고 혀는 담백하였다. 처음에는 선복화·대자석·감기와 동과피·계금산 등을 썼으나 숨이 가쁜 것은 여전하였다. 선생은 ‘신양이 부족하여 기를 받아 거두지 못하고 비가 따뜻하게 운화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세신 4푼, 법제한 부자 5푼, 볶은 산조인 3돈, 껍질째 쓴 복령 5돈, 볶은 소자 2돈, 오래된 계목 4푼, 청연 1냥, 법제한 반하 3돈, 껍질째 쓴 첨행인 3돈, 털을 제거한 비파엽 3장, 침향 3푼을 썼다. 복용 뒤 천증이 크게 안정되고 밤에 편안히 누울 수 있었으며 얼굴의 부기도 내렸다. 혀는 붉어지고 오른쪽 맥은 힘이 생긴 듯하였으나 기침이 아직 멎지 않았다. 앞의 처방에서 산조인·비파엽·침향을 빼고 파극육 3돈, 생강 껍질 7푼, 감기 1줄을 더하니 세 제로 천증이 가라앉고 부종도 내렸다.
西門外陳打鼓弄口嘉太米行高君甲子七月吐瀉交作轉筋不止名曰霍亂此係清濁不分揮霍撩亂也兩日後吐瀉雖止不寒獨熱胸痞煩躁頻頻噦惡呃忒音底陽縮溲少而酸臭神識時清時迷脈來至數糊小舌苔中心干黃兩邊微潤四肢厥冷過節汗出如雨風動抽搐清陽之氣窒痹暑熱濁痰交滯於中種種疊見無非險象茲擬熄風化痰升清降濁之法用磨羚羊角五分石決明二兩川貝母三錢晚蠶沙荷葉包五錢藿梗三錢宣木瓜七錢柿蒂七個刀豆子三錢鬱金三錢枇耙葉去毛五斤另雄精二分血珀三分豬牙皂五釐制膽星三分石菖蒲三分研末用荷花露二兩溫熱調服再診風定神清呃止汗減且能安眠醒後胸悶煩臊如故四肢雖屬轉溫有時發冷午後稍覺倦迷所吐稠痰如膿況易動怒一怒起呃四肢稍搐片時即定脈象右手弦數左手覺軟舌苔糙黃體雖豐腴實則外強中虛濁痰瀰漫三焦清氣不能流利暑熱引動肝火也病情尚險風動神糊猶恐不免再擬熄風化痰清泄暑熱磨羚羊角四分至寶丹一粒二昧同荷花露先調服川雅連吳萸湯炒一錢川貝母三錢天竹黃三錢柿蒂十個鬱金三錢竹茹四錢珍珠母二兩炒枳實二錢海浮石一兩瓜蔞皮五錢九節菖蒲七分枇杷葉去毛五斤西瓜翠衣一兩竹瀝二兩沖另煎羊羚角七分煎一炷香頻願與服因症急而羚羊角久煎出味恐不及待故先服磨後服煎也三診病機已轉佳象脈象大起舌苔亦化惟胸脘尚悶還是痰濁交蒸清陽之氣失於舒展肺主一身之氣可以通調水道下輸膀胱肺氣熱鬱膀胱氣化不宣小溲故不爽利時欲起坐胃不和則臥求安也飲食宜慎用黃芩黃連瀉心湯復以芳香化濁略參熄風法川連鹽水炒一錢淡芩二錢川貝母三錢石決明二兩玄精石四錢鹽半夏二錢竹茹三錢辰滑石七錢赤豬苓各三錢竹葉捲心三十片通草二錢另犀角尖三分西月石二分雄精一分半石菖蒲三分鬱金三分血珀三分研細用竹瀝一兩荷花露一兩和勻溫熱調服病勢日退用芳香化濁調理而痊
서문 밖 진타고롱 어귀의 가태미행 고군이 갑자년 7월에 구토와 설사가 함께 일어나고 근육이 끊임없이 뒤틀렸다. 이를 곽란이라 하니, 청탁이 나뉘지 않아 어지럽게 뒤섞인 것이다. 이틀 뒤 구토와 설사는 멎었으나 오한 없이 열만 나고, 가슴이 막히고 번조하며 자주 메스꺼워하고 딸꾹질하였다. 목소리는 낮고 음경이 오그라들며 소변이 적고 시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정신은 맑았다 혼미했다 하였고, 맥의 박동수는 분명하지 않고 작았으며 혀 가운데의 태는 마르고 누렇고 양쪽은 조금 윤택하였다. 사지는 관절을 넘어 차가워졌고 비 오듯 땀이 났으며 풍이 동하여 경련하였다. 청양의 기가 막히고 서열과 탁담이 중초에 함께 정체되어 여러 증상이 거듭 나타났으니, 모두 위험한 징후였다. 이에 식풍화담하고 청기를 올리며 탁기를 내리는 법을 세웠다. 갈아 쓴 영양각 5푼, 석결명 2냥, 천패모 3돈, 하엽에 싼 만잠사 5돈, 곽향경 3돈, 선목과 7돈, 시체 7개, 도두자 3돈, 울금 3돈, 털을 제거한 비파엽 5근을 썼다. 따로 웅정 2푼, 혈박 3푼, 저아조 5리, 제담성 3푼, 석창포 3푼을 가루 내어 하화로 2냥을 따뜻하게 데운 데 타서 먹였다. 다시 진찰하니 풍이 안정되고 정신이 맑으며 딸꾹질이 멎고 땀이 줄었으며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깬 뒤에는 가슴 답답함과 번조가 여전하였고, 사지가 비록 따뜻해졌으나 때로 차가워지며 오후에는 조금 피곤하고 혼미하였다. 토하는 끈끈한 담은 고름 같았고 쉽게 화를 냈으며, 한 번 성내면 딸꾹질이 나고 사지가 조금 경련하다가 잠시 뒤 안정되었다. 오른쪽 맥은 현삭하고 왼쪽 맥은 연하게 느껴졌으며 설태는 거칠고 누르렀다. 몸은 풍만하나 실제로는 겉만 강하고 속은 허하여 탁담이 삼초에 가득하고 청기가 잘 흐르지 못하며 서열이 간화를 끌어 움직이는 것이었다. 병세가 아직 위험하여 풍이 동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을 여전히 면하기 어려울 듯하였다. 다시 식풍화담하고 서열을 맑혀 내보내는 법을 세웠다. 갈아 쓴 영양각 4푼과 지보단 1알, 이 두 약을 하화로에 타서 먼저 먹였다. 오수유 달인 물로 볶은 천아련 1돈, 천패모 3돈, 천축황 3돈, 시체 10개, 울금 3돈, 죽여 4돈, 진주모 2냥, 볶은 지실 2돈, 해부석 1냥, 과루피 5돈, 구절창포 7푼, 털을 제거한 비파엽 5근, 서과취의 1냥을 쓰고 죽력 2냥을 타서 복용하였다. 따로 영양각 7푼을 향 한 대가 탈 동안 달여 수시로 먹였다. 병세가 급한데 영양각을 오래 달여 약성이 우러나기를 기다리기 어려울까 하여, 먼저 간 것을 먹이고 뒤에 달인 것을 먹인 것이다. 세 번째 진찰에서는 병의 경과가 이미 좋아지는 모습으로 바뀌고 맥이 크게 회복되었으며 설태도 걷혔다. 다만 가슴과 명치가 아직 답답한 것은 여전히 담탁이 서로 훈증하여 청양의 기가 펴지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폐는 온몸의 기를 주관하고 수도를 통하게 조절하여 아래로 방광에 보내는데, 폐기에 열이 울체되고 방광의 기화가 펴지지 않으므로 소변이 시원하지 않았다. 때때로 일어나 앉으려 하였다. 위가 조화롭지 못하면 누워서 편안함을 구한다는 것이다. 음식을 조심해야 한다. 황금황련사심탕을 쓰고 다시 방향화탁법을 더하며 식풍법을 조금 겸하였다. 소금물에 볶은 천황련 1돈, 담황금 2돈, 천패모 3돈, 석결명 2냥, 현정석 4돈, 염반하 2돈, 죽여 3돈, 진사를 배합한 활석 7돈, 적복령·저령 각 3돈, 죽엽의 감긴 속잎 30장, 통초 2돈을 썼다. 따로 서각첨 3푼, 서월석 2푼, 웅정 1푼 반, 석창포 3푼, 울금 3푼, 혈박 3푼을 곱게 갈아 죽력 1냥과 하화로 1냥에 고루 섞어 따뜻하게 먹였다. 병세가 날로 물러가 방향화탁법으로 조리하여 완쾌하였다.
徐君漸吉先生侄倩也甲子中秋後病寒熱骨節疼痛頭昏不止始服疏散之藥繼則壯熱胸悶時時太息熱甚昏糊如醉如癡終日言語不休先生日此因勞倦乏力外感邪熱痰熱擾亂蒙閉清陽方用枇杷葉鬱金膽星枳實法半夏海浮石簿荷秦艽竹茹陳皮石菖蒲黑山梔連翹另三石丸(即月石礬石礞石)一錢服後至天明神情清爽寒熱皆退下午恣食雞肉餛飩葷油等物又見四肢微寒咳嗽頻吐黃痰再用清肅肺金清化痰熱如神麴山查以消雞面之積而愈
서점길 군은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갑자년 중추절 뒤 한열을 앓아 뼈마디가 아프고 머리가 계속 어지러웠다. 처음에는 소산약을 먹었으나 이어 열이 심하고 가슴이 답답하며 때때로 한숨을 쉬었다. 열이 심할 때는 혼미하여 취한 듯 바보 같은 듯하였고 종일 쉬지 않고 말하였다. 선생은 ‘과로하여 힘이 없는 데 외부의 사열을 감수하였고, 담열이 어지럽혀 청양을 덮어 막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비파엽·울금·담성·지실·법반하·해부석·박하·진교·죽여·진피·석창포·검게 볶은 산치자·연교를 쓰고, 따로 삼석환 1돈을 먹였다. 삼석환은 곧 월석·반석·몽석이다. 복용 뒤 날이 밝을 무렵 정신이 맑아지고 한열이 모두 물러갔다. 오후에 닭고기·훈둔·동물성 기름 등을 마음껏 먹자 다시 사지가 조금 차고 기침하며 누런 담을 자주 토하였다. 다시 폐기를 맑혀 내리고 담열을 맑혀 삭이며, 신곡·산사 등으로 닭고기와 밀가루 음식의 적체를 소화시켜 나았다.
先生之孫孕七月即生生後七日頓時不能飲乳牙齦腫硬俗謂生黃延挑黃者刺之仍如故時鄰人趙姓之僕來診病先生偶告之僕曰得毋七星黃乎近喉上聘必有白點至七粒者不治若四五粒猶可救須用銀針挑破即愈邀其至家視上齶果有白點五粒用銀針刺出惡血頃刻間照常飲乳矣世有初生小兒患此者幸加之意焉
선생의 손자는 임신 일곱 달에 태어났다. 태어난 지 이레 만에 갑자기 젖을 먹지 못하고 잇몸이 붓고 단단해졌는데, 세속에서는 황이 생겼다고 하였다. 황을 찔러 주는 사람을 불러 찔렀으나 여전하였다. 마침 이웃 조씨의 하인이 병을 진찰받으러 왔기에 선생이 우연히 이야기하였다. 하인이 ‘혹시 칠성황이 아닙니까. 목구멍 가까운 위 입천장에 반드시 흰 점이 있을 것입니다. 일곱 알에 이르면 치료하지 못하나 네댓 알이면 아직 구할 수 있습니다. 은침으로 터뜨리면 곧 낫습니다’라고 하였다. 집으로 데려가 살펴보니 위 입천장에 과연 흰 점 다섯 알이 있었다. 은침으로 찔러 나쁜 피를 빼내니 순식간에 평소처럼 젖을 먹었다. 세상에 갓난아이가 이 병을 앓는 일이 있으니 부디 유의하기 바란다.
老棚下茶肆小兒初生十日兩內股及褶衣縫小便紅腫去皮日夜啼哭不能吮乳先生曰此胎火也與黴毒□猻疳有別但芽童不禁受此痛楚殊為可慮先生用大黃川連銀花煎湯興服另以外科解毒丹加西黃滲之未滿一時小兒安臥如常且能吮乳兩日全愈因其效速故錄之
노붕하 찻집의 아이가 태어난 지 열흘 되었는데, 양쪽 넓적다리 안쪽과 옷이 접히는 부위, 소변을 보는 곳이 붉게 붓고 피부가 벗겨져 밤낮으로 울며 젖을 빨지 못하였다. 선생은 ‘태화입니다. 매독이나 □손감과는 다릅니다. 다만 갓난아이가 이런 아픔을 견디지 못할 것이 매우 염려됩니다’라고 하였다. 대황·천황련·금은화를 달여 복용시키고, 따로 외과해독단에 서황을 더하여 뿌렸다. 한 시각도 되지 않아 아이가 평소처럼 편히 자고 젖도 빨 수 있었으며, 이틀 만에 완전히 나았다. 효험이 빨랐기에 기록한다.
尤重患雞肫疳膀胱濕熱下注也滑石車前子赤芍豬苓廣皮黃柏山萆薢
우중은 계순감을 앓았는데, 방광의 습열이 아래로 흘러내린 것이다. 활석·차전자·적작약·저령·광피·황백·산비해를 쓴다.
書院弄蔡姓婦未病之前言語稍覺不倫繼則寒熱大作神識昏糊狂呼有大大蛇來兩手環轉日夜不休有時大呼三老爺具呈伸冤兩目翳封甚至裸體奔匿桶中延醫診之足加醫頭與牛黃清心丸至寶丹口如龍噴後請鄧君診視以為痰火擾亂神明與大黃一兩元明粉五錢數服無效險象迭呈或以為武癡也不飲不食已五六日矣其夫惶恐欲備後事時先生與蔡姓同居適家人病是時在五月杪市上枇杷已少先生命購一簍與食而分半與蔡姓蔡婦食之味甘美屢次索食其夫又覓得數蔞日夜與食病轉機兩目之翳亦退諒系肝本太旺枇杷屬金能潤心肺兼平肝木故見效如是十年後秋間又診始病伏邪寒熱交作舌苔濁膩質絳有旬日矣用芳香清暑之品寒熱減輕其人飲食不慎恣食各物忽轉為癲狂兩目失神徹夜不寐喃哺自言有時謾罵赤身裸體不避親疏先生診之曰此痰火擾亂神明心神不安也用馬寶一分濂珠二分辰砂三分膽星三分天竹黃三分石菖蒲三分研末竹瀝二兩徐徐灌服一劑神清癲狂遂已
서원롱의 채씨 부인은 병이 나기 전부터 말이 조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이어 한열이 크게 일어나고 정신이 혼미해져 커다란 뱀이 온다고 미친 듯 소리쳤으며, 두 손을 빙빙 돌리기를 밤낮으로 쉬지 않았다. 때로는 삼노야를 크게 부르며 글을 올려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하였다. 두 눈은 예막으로 덮였고 심지어 벌거벗고 달려가 통 안에 숨기도 하였다. 의원을 불러 진찰하였는데 발 쪽에서 의사의 머리를 건드렸고, 우황청심환과 지보단을 먹이면 입에서 용이 뿜듯 내뿜었다. 뒤에 등군을 불러 진찰하니 담화가 정신을 어지럽힌 것으로 보아 대황 1냥과 원명분 5돈을 주었다. 여러 번 먹였으나 효과가 없고 위험한 증상이 거듭 나타나 어떤 이는 난폭한 치광이라고 하였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지 이미 대여섯 날이었다. 남편은 두려워하며 장례를 준비하려 하였다. 당시 선생은 채씨와 함께 거주하였고 마침 가족이 병들었다. 5월 말이라 시장에 비파 열매가 이미 적었으나, 선생은 한 바구니를 사다 먹게 하고 절반을 채씨에게 나누어 주었다. 채씨 부인은 맛이 달고 좋다며 여러 번 달라고 하였고, 남편이 다시 몇 바구니를 구해 밤낮으로 먹였다. 병세가 좋아지고 두 눈의 예막도 사라졌다. 아마 간목이 지나치게 왕성하였는데 비파가 금에 속하여 심폐를 적시고 간목도 평정하므로 이처럼 효과가 난 것이다. 10년 뒤 가을에 다시 진찰하였다. 처음에는 복사로 한열이 번갈아 일어나고 설태가 탁하고 끈끈하며 혀는 짙게 붉은 지 열흘이 되었다. 방향으로 서열을 맑히는 약을 쓰자 한열이 줄었다. 그런데 음식을 조심하지 않고 여러 가지를 마음껏 먹다가 갑자기 전광으로 바뀌었다. 두 눈에 생기가 없고 밤새 자지 못하며 혼자 중얼거리고 때로 욕을 하였으며, 벌거벗고 친소를 가리지 않았다. 선생은 ‘담화가 신명을 어지럽히고 심신이 편안하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마보 1푼, 염주 2푼, 진사 3푼, 담성 3푼, 천축황 3푼, 석창포 3푼을 가루 내어 죽력 2냥에 타서 천천히 먹였다. 한 제로 정신이 맑아지고 전광이 멎었다.
光復門外某婦患異疾每夜恍惚似有人與之交六年有餘矣四肢乏力腹中作痛形神萎悴據云與夫同寢輒有人擊其夫兩臀夫寤後隱隱覺痛現青色倦怠七日方已先生診之曰此陽氣不足陰邪乘之當發越陽氣以制陰邪用當歸二錢青蒿三錢雷丸三錢鬼箭羽三錢木香七分香附二錢石菖蒲五分防風湯炒黃耆三錢純陽正氣丸錢半先服另硃砂三分雄精二分研末調服外用雄精研末塗陰處並遍灑床帳是夜又來離床尺許不敢近明日復來診用扶陽抑陰遵大易之旨人參鬚一錢辰茯神五錢青蒿二錢雷丸三錢酸棗仁三錢辰砂拌燈心三尺鬼箭羽三錢龍齒四錢珠砂安神丸三錢另真獺肝一分雄精二分金箔一張研末服是夜與一婦人同來勸解曰與我銀錠若干則不來矣病者見其從窗欞更換黑衣而去從此遂絕今已氣體強壯矣又鄉間一婦亦患此疾來時覺枕邊呼呼有聲且有腥氣貼身冰冷此係蛇精為祟亦用前法而愈
광복문 밖의 어떤 부인은 이상한 병을 앓아 밤마다 누군가 자신과 성교하는 듯 몽롱한 상태가 된 지 6년이 넘었다. 사지에 힘이 없고 배가 아프며 몸과 정신이 시들고 초췌하였다. 말하기를 남편과 함께 자면 누군가 남편의 양쪽 엉덩이를 때리고, 남편이 깬 뒤에는 은근히 아프고 푸른 멍이 나타나며 피로가 이레나 지나야 사라진다고 하였다. 선생이 진찰하고 ‘양기가 부족하여 음사가 틈탄 것이니, 양기를 펴서 음사를 제어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당귀 2돈, 청호 3돈, 뇌환 3돈, 귀전우 3돈, 목향 7푼, 향부자 2돈, 석창포 5푼, 방풍 달인 물로 볶은 황기 3돈을 쓰고, 순양정기환 1돈 반을 먼저 먹였다. 따로 주사 3푼과 웅정 2푼을 가루 내어 타서 복용시키고, 겉으로는 웅정 가루를 음부에 바르고 침상과 휘장에도 두루 뿌렸다. 그날 밤 다시 왔으나 침상에서 1척쯤 떨어져 감히 가까이 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다음 날 다시 진료를 받았다. 양을 돕고 음을 억제하여 『역』의 뜻을 따랐다. 인삼수 1돈, 진사를 입힌 복신 5돈, 청호 2돈, 뇌환 3돈, 산조인 3돈, 진사에 버무린 등심 3척, 귀전우 3돈, 용치 4돈, 주사안신환 3돈을 쓰고, 따로 진품 달간 1푼, 웅정 2푼, 금박 1장을 가루 내어 먹였다. 그날 밤에는 한 부인과 함께 와서 달래며 ‘은덩이를 얼마간 주면 다시 오지 않겠다’고 하였다고 한다. 환자는 그가 창살에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떠나는 것을 보았으며, 이로부터 완전히 끊어져 지금은 몸이 튼튼해졌다. 또 시골의 한 부인도 같은 병을 앓았는데, 올 때 베개 곁에서 훅훅 소리가 나고 비린내가 있으며 몸에 닿으면 얼음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이는 뱀의 정괴가 해를 끼치는 것으로 보고 역시 앞의 방법을 써서 나았다.
北鄉四丫濱某姓駕舟為業其子八歲病溫邪咳嗽不揚神識時糊時清脈象悶郁苔絳延謝醫診治不效一日其子忽高聲曰例不到城去請沈奉江先生一劑可愈矣父訝之曰此先生不知在何處於答曰至祟安寺問訉是耳吾乃西漢王也爾家事可以歷歷言之備述家事甚悉閤家毛髮悚然來寓請診且道其所以然到鄉則龔君錫春先在焉遂擬辛涼宣泄兼用至寶丹半粒果一劑而愈竊思此童素不相識而此濱未會診過何由知先生之名此理殊難索解
북향 사아빈의 어떤 사람은 배를 모는 것을 업으로 하였다. 여덟 살 아들이 온사를 앓아 기침이 시원하지 않고 정신이 혼미했다 맑았다 하며, 맥은 답답하게 막히고 혀는 짙게 붉었다. 사 의원을 불러 치료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어느 날 아들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왜 성안에 가서 심봉강 선생을 모셔 오지 않습니까. 한 제면 나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아버지가 이상히 여겨 ‘그 선생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하자, 아들은 ‘숭안사에 가서 물으면 됩니다. 나는 서한왕입니다. 당신 집안일을 하나하나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집안일을 매우 자세히 늘어놓았다. 온 집안이 머리털이 쭈뼛할 만큼 놀라 선생의 거처에 와 진찰을 청하며 그 경위도 말하였다. 시골에 도착하니 공석춘 군이 먼저 와 있었다. 이에 맵고 서늘하게 선설하는 방법을 세우고 지보단 반 알을 겸하여 쓰니 과연 한 제로 나았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 아이는 본래 선생과 서로 알지 못하였고 이 마을에서 진료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선생의 이름을 알았겠는가. 이 이치는 참으로 풀기 어렵다.
西門陳午亨側室病先生診之脈細而鬱舌苔薄白神情清楚驟云余有淚流至頰視之無也忽云額上奇癢忽云心中難過頃刻不安先生曰此因夫亡憂思鬱結神志不寧有鬼憑之也(即莫枚士研經言所云鬼□之屬)用解鬱鎮心安神之品略效不旬日聞人云自縊死矣僅用腰帶繁壁間竹上作縊狀足未離地帶未束緊眼不突舌不出是月鄰居縊死者有五人之多觀此則鬼神之道不可不信亦不可偏信也
서문의 진오형의 첩이 병들어 선생이 진찰하였다. 맥은 가늘고 막힌 듯하였으며 설태는 얇고 희고 정신은 맑았다. 갑자기 ‘눈물이 뺨까지 흐릅니다’라고 하였으나 살펴보면 없었고, 갑자기 이마가 몹시 가렵다거나 가슴속이 괴롭다고 하는 등 잠깐도 편안하지 않았다. 선생은 ‘남편이 죽어 근심과 생각이 맺히고 정신이 편안하지 않아 귀신이 붙은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곧 막매사의 『연경언』에서 말한 귀□의 부류이다. 울체를 풀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신하는 약을 써 조금 효과가 있었으나, 열흘이 되기 전에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는 말을 들었다. 허리띠를 벽 사이의 대나무에 매어 목맨 모양을 하였을 뿐, 발은 땅에서 떨어지지 않고 띠도 꽉 조여지지 않았으며 눈도 튀어나오지 않고 혀도 나오지 않았다. 그달 이웃에서 목을 매어 죽은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었다. 이를 보면 귀신의 도리는 믿지 않을 수도 없고 한쪽으로만 믿을 수도 없다.
陳婦寄寓迎溪橋下壬戍冬天初寒大雪霏霏檐際永掛尺許路少行人陳婦至河邊濯物失足跌入河中數十分鐘載沉戴浮為行人所見呼眾援出遍體皆是米塊氣息全無用剪撕去衣服以腹楞於笆斗底上稍去積水其鄰居急來請先生用乾薑附子桂枝吳萸大熱之劑投之氣復稍回明晨又去診視滿口吐血先生曰此非服熱藥之故系笆斗楞傷所致仍用大熱藥頻服稍能米飲氣機條達面有色澤矣旬日後來寓診視咳嗽氣促先生曰此受大寒之後寒嗽病成矣治之不易用麻黃附子桂枝細辛等兩劑而愈年餘遷居西門外六月出收會款黃昏時又至前墮河處溺死從可知生死有定數且有定處非吾人所得知也
진부인은 영계교 아래에 임시로 살았다. 임술년 겨울 추위가 막 시작되었을 때 큰 눈이 펑펑 내리고 처마에는 고드름이 1척가량 달려 있었으며 길에 행인이 적었다. 진부인이 강가에서 물건을 씻다가 발을 헛디뎌 물에 빠졌다. 수십 분 동안 가라앉았다 떠올랐다 하다가 행인이 보고 사람들을 불러 건져 냈다. 온몸에 얼음덩이가 붙고 숨이 전혀 없었다. 가위로 옷을 찢어 벗기고 배를 바두 바닥에 걸치게 하여 고인 물을 조금 빼냈다. 이웃이 급히 선생을 청하러 왔다. 건강·부자·계지·오수유 등 매우 뜨거운 약을 먹이자 숨이 조금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진찰하니 입으로 피를 많이 토하였다. 선생은 ‘뜨거운 약을 먹은 탓이 아니라 바두 모서리에 상한 탓입니다’라고 하였다. 계속 매우 뜨거운 약을 자주 먹이자 미음을 조금 마실 수 있고 기가 잘 통하며 얼굴에 윤기가 생겼다. 열흘 뒤 거처로 와서 진찰받았는데 기침하고 숨이 가빴다. 선생은 ‘큰 추위를 받은 뒤 한수가 생긴 것이니 치료하기 쉽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마황·부자·계지·세신 등을 두 제 써서 나았다. 1년 남짓 뒤 서문 밖으로 이사하였는데, 6월에 계금을 거두러 나갔다가 해 질 무렵 전에 강에 빠졌던 곳에 다시 이르러 익사하였다. 이로써 생사에는 정해진 운수뿐 아니라 정해진 장소도 있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凌學攽之夫人病肝胃氣痛先生治之而愈案云厥陰脈起大敦絡抵少腹下脘為肝之部十月為陽之盡陰盛陽衰厥氣橫逆上侮胃土則嘔惡不喜飲食脈象弦細虛寒無疑須交一陽來復方能霍然茲本經旨肝欲散急食辛以散之本靜則土亦安高良薑制香附製附子青皮陳皮煨木香穀芽白芍吳萸四分同炒臺烏藥另篳茇一分半蔻仁二分猺三分沉香二分研末飯丸復診天寒陽伏陰氣當權厥陰為陰中之至陰緣以質本虛寒遇冷即痛況脾胃素多痰濁肝木上侮土也再用制香附乾薑橘絡細青皮煨木香公丁香砂仁半夏烏藥炒萊菔子小茴香另公丁香沈香蔻仁猺桂研末飯丸
능학반의 부인이 간위기통을 앓았는데 선생이 치료하여 나았다. 의안은 다음과 같다. 궐음맥은 대돈에서 일어나 아랫배에 이어지고, 하완은 간의 부위이다. 10월은 양이 다하는 때로 음이 성하고 양이 쇠하여 궐기가 가로로 거슬러 위로 위토를 업신여기므로 구역질하고 음식을 즐기지 않는다. 맥이 현세하니 허한임이 의심 없다. 한 줄기 양이 돌아오는 때가 되어야 완전히 나을 수 있다. 이에 경전의 뜻을 따라, 간은 흩어지기를 바라므로 급히 매운 것을 먹여 흩어 준다. 목이 고요해지면 토도 편안해진다. 고량강·법제한 향부자·법제한 부자·청피·진피·잿불에 구운 목향·곡아·백작약, 오수유 4푼과 함께 볶은 대오약을 쓴다. 따로 필발 1푼 반, 두구인 2푼, 요(猺) 3푼, 침향 2푼을 가루 내어 밥으로 환을 만든다. 다시 진찰하였다. 날씨가 차서 양이 숨어 있고 음기가 권세를 잡았으며, 궐음은 음 가운데 지극한 음이다. 바탕이 본래 허한하므로 찬 기운을 만나면 곧 아픈데, 더구나 비위에 평소 담탁이 많아 간목이 위로 토를 업신여긴다. 다시 법제한 향부자·건강·귤락·가는 청피·잿불에 구운 목향·공정향·사인·반하·오약·볶은 나복자·소회향을 쓴다. 따로 공정향·침향·두구인·요계(猺桂)를 가루 내어 밥으로 환을 만든다.
西水關鴻源之母舌尖不能轉掉言語不清口乾額上火冒脈息左寸似無兩尺脈細而數先生曰此心氣不足津液不能上承陰虛陽升舌瘖症也用熟地潼沙苑益智仁(鹽水炒)阿膠丹皮女貞子石斛石菖蒲柏子仁蓮心紅棗趙某咳血音嘶己久木擊金傷肺痿已成生氣殘矣方用北沙參竹茹毛燕冬瓜子丹皮枇杷葉知母杏仁藕節白芨
서수관 홍원의 어머니는 혀끝을 움직이지 못해 말이 분명하지 않고 입이 마르며 이마에 불기운이 치솟았다. 왼쪽 촌맥은 없는 듯하고 양쪽 척맥은 가늘고 삭하였다. 선생은 ‘심기가 부족하여 진액이 위로 받들지 못하고 음허로 양이 상승한 설음증입니다’라고 하였다. 숙지황·동사원자·소금물에 볶은 익지인·아교·목단피·여정자·석곡·석창포·백자인·연심·홍조를 썼다. 조 아무개는 피를 기침하고 목소리가 쉰 지 오래되었다. 목이 금을 쳐서 상하게 하여 폐위가 이미 이루어졌고 생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처방은 북사삼·죽여·모연·동과자·목단피·비파엽·지모·행인·우절·백급을 쓴다.
錢少和世丈子癰與疝氣有別實則異名同類經云男子任脈為病內結七疝巢元方立癃㿉之名㿉者內里膿血是也癃者小泄不通之謂也左睪丸屬肝脈象弦急氣逆口乾高年恐父痛厥現在小溲三日不利腎子脹痛外皮紅腫濕熱下注也姑先通調水道水道不通濕熱愈形阻滯矣赤芍車前子滑石石決明黃柏龍膽草甘草梢竹茹川楝橘核通草薏仁萆薢
전소화 어른의 자옹은 산기와 구별되나 실제로는 이름만 다르고 같은 부류이다. 경전에 남자의 임맥에 병이 들면 안에서 일곱 산이 맺힌다고 하였다. 소원방은 융퇴라는 이름을 세웠는데, 퇴는 안에 고름과 피가 있는 것이고 융은 소변이 통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왼쪽 고환은 간에 속한다. 맥이 현급하고 기가 치밀며 입이 마르니, 고령에 통궐이 생길까 염려된다. 현재 소변이 사흘 동안 잘 나오지 않고 고환이 붓고 아프며 겉피부가 붉게 부었으니 습열이 아래로 흘러내린 것이다. 우선 수도를 통하게 조절해야 한다. 수도가 통하지 않으면 습열이 더욱 막힌다. 적작약·차전자·활석·석결명·황백·용담초·감초초·죽여·천련자·귤핵·통초·의이인·비해를 쓴다.
蔣右肺主氣脾主運肝主疏泄客冬感受寒邪以致咳嗽今已久嗽傷陰矣金忌
장씨 부인. 폐는 기를 주관하고 비는 운화를 주관하며 간은 소설을 주관한다. 지난겨울 한사를 감수하여 기침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오래 기침하여 음을 손상하였다. 금은 꺼린다.
駁岸觀看堂某嫗年九十六壯熱神糊延先生診視脈細弱苔光先生曰大年精血枯槁雖有外感未便過於疏散非扶正達邪不可用人多須一錢蘇葉川旦母菖蒲鬱金等一劑而神識清再劑熱退
호안의 관간당에 사는 어떤 노부인은 아흔여섯 살로, 열이 심하고 정신이 혼미하여 선생에게 진찰을 청하였다. 맥은 세약하고 혀는 태가 벗겨져 있었다. 선생은 ‘고령으로 정혈이 메말랐으므로 외감이 있어도 지나치게 소산해서는 안 됩니다. 정기를 돕고 사기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인삼수 1돈, 소엽·천패모·창포·울금 등을 썼다. 한 제로 정신이 맑아지고 다시 한 제로 열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