曾南豐稱歐陽公曰蓄道德能文章而歐公之送余無黨文則以為修於身者未必能施於事施於事者或不能見於言三者之不可得而兼自古已然蓋若斯之難也鏞遊於夫子之門數年竊嘗有以觀其微矣夫子粹於醫而於學無所不窺涵泳於道德發越於文章行道數十年所治輒效縉紳耆宿名公鉅卿折節相推重即遠近人士雖未識 夫子之面而感知夫子之名焉每一診視鏞與及門季君鳴九趙君友漁均相侍側遇劇症往往口講指畫詳言其所以然必明辨再四至無憾乃已生平喜著述久而多散佚鏞等雖心識之愧未能一一纂錄也周君逢儒秉承小農先生家學而從遊於夫子閱時未久其手錄治驗已衰然成卷鏞曰此固 夫子之修於身施耶於事見於言者將於是乎見矣周君學好不倦儻積以歲月其所造寧止於是耶庸碌如鏞等能無愧然夫子會師事孟河御醫馬培之徵君世稱為盂河學派云
증남풍은 구양공을 칭찬하여 도덕을 쌓고 문장에 능하다고 하였다. 그런데 구양공이 여무당을 전송한 글에서는, 몸에 닦은 사람이 반드시 일에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에 시행한 사람이 혹 말에 드러낼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세 가지를 함께 갖추지 못함은 예로부터 그러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어려운 일인 것이다. 나는 부자의 문하에서 몇 해 동안 배웠으며, 그 미묘한 점을 살핀 바가 있다. 부자께서는 의학에 정통하시고 학문에도 두루 살피지 않은 것이 없으며, 도덕에 깊이 잠기고 문장으로 드러내셨다. 수십 년 동안 의도를 행하시며 치료한 것은 번번이 효과가 있었으므로 신사와 원로, 이름난 공경들이 몸을 낮추어 서로 추중하였다. 원근의 사람들도 부자의 얼굴을 알지 못하여도 그 이름을 듣고 감복하였다. 진찰하실 때마다 나와 동문 계명구 군, 조우어 군이 곁에서 모셨다. 위중한 병을 만나면 종종 말로 설명하고 손짓으로 가리키며 그 까닭을 자세히 말씀하셨는데, 반드시 여러 차례 명확하게 가려 미진함이 없어진 뒤에야 그치셨다. 평생 저술을 좋아하셨으나 오래되어 흩어져 사라진 것이 많았다. 우리도 마음에 기억하고 있으나 하나하나 모아 기록하지 못한 것이 부끄럽다. 주봉유 군은 소농 선생의 가학을 이어받고 부자께 배운 지 오래되지 않았으나, 손수 기록한 치료 경험이 이미 한 권을 이루었다. 나는 말하였다. ‘부자께서 몸에 닦고 일에 시행하며 말에 드러내신 것을 바로 여기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주군은 배우기를 좋아하여 지치지 않으니 세월이 쌓이면 그 성취가 어찌 여기에서 그치겠는가. 나처럼 평범하고 무능한 이들은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부자께서는 일찍이 맹하의 어의 마배지 징군을 스승으로 섬겼으므로 세상에서는 맹하학파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