重廣補注黃帝 內 經素問序

臣 聞安不忘危 , 存不忘亡者 , 往聖之先務 。 求民之瘼 , 恤民之隱者 , 上主之深仁 。 在昔 , 黃帝之御極也 , 以理身緒餘 , 治天下 , 坐於明堂之上 , 臨觀八極 , 考建五常 , 以謂人之生也 , 負 陰 而抱陽 , 食味而被色 , 外有寒暑之相盪 , 內 有喜怒之交侵 , 天 昏 札瘥 , 國家代有 , 將欲斂時 , 五福以敷 , 鍚厥 庶 民 , 乃與歧伯上窮天紀 , 下極地理 , 遠 取諸物 , 近取諸身 , 更相問難 , 垂法以福 , 萬 世 於是 。 雷公之倫 , 授業傳之 , 而 《 內 經 》 作矣 。 歷代寶之 , 未有失墜 , 蒼周之興 , 秦和述六氣之論 , 具明於左史 , 厥後越人得其一二 , 演而述 《 難經 》, 西漢倉公傳其舊學 , 東漢仲景撰其遺論 , 晉皇甫謐刺而 為《 甲乙 》, 及隋楊上善纂而 為《 太素 》, 時則有全元起者 , 始 為 之訓解 , 闕第七一篇 。
신이 듣건대,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존속할 때에도 멸망을 잊지 않는 것은 옛 성왕들이 먼저 힘쓴 일입니다. 백성의 병고를 살피고 백성의 숨은 고통을 구휼하는 것은 훌륭한 군주의 깊은 인자함입니다. 옛날 황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몸을 다스리는 여력으로 천하를 다스리고, 명당 위에 앉아 팔방의 끝을 두루 살피며 오상(五常)을 고찰하여 세웠다. 사람이 태어남에 음을 등지고 양을 품으며, 맛을 먹고 색을 입으며, 밖으로는 추위와 더위가 서로 부딪치고, 안으로는 기쁨과 노여움이 서로 침범하며, 하늘이 어둡고 전염병과 병고가 생기는 일이 국가마다 대대로 있다고 여겼다. 이에 때에 맞는 오복(五福)을 거두어 펼쳐 그 백성들에게 내리고자 하여, 곧 기백과 함께 위로는 천문과 역수의 이치를 궁구하고 아래로는 지리의 이치를 다하며, 멀리는 여러 사물에서 취하고 가까이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여, 서로 묻고 논난하면서 법을 남겨 만세에 복을 주었다. 뇌공과 같은 무리들이 그 학업을 전수받아 전하였고, 이에 《내경》이 지어졌다. 역대에 이를 보배로 여겨 잃거나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창주(蒼周)가 일어났을 때에는 진화(秦和)가 육기(六氣)의 논의를 서술하였는데, 좌사(左史)에 자세히 밝혀져 있다. 그 뒤 월인(越人)이 그 한두 가지를 얻어 부연하여 《난경》을 저술하였고, 서한의 창공(倉公)은 그 옛 학문을 전하였으며, 동한의 장중경은 그 남은 논의를 편찬하였다. 진나라의 황보밀은 이를 찬집하여 《갑을경》을 만들었고, 수나라의 양상선은 찬집하여 《태소》를 만들었다. 이때 전원기라는 사람이 있어 처음으로 이에 훈해를 붙였으나, 제7 한 편이 빠졌다.
迄唐寶應中 , 太僕王冰篤好之 , 得先師所藏之卷 , 大 為 次註 , 猶是三皇遺文爛然可觀 , 惜乎唐令列之醫學 , 付之執技之流 , 而薦紳先生罕言之 。 去聖已 遠, 其術晻昧 , 是以文注紛錯 , 義理混淆 , 殊不知 《 三墳 》 之餘 , 帝王之 高 致 , 聖賢之能事 , 唐堯之授四時 , 虞舜之齊七政 , 神禹修六府 , 以興帝功 , 文王推六子 , 以 敘 卦氣 , 伊尹調五味以致君 , 箕子陳五行以佐 世, 其致一也 。 奈 何以至精至微之道 , 傳之以至下至淺之人 , 其不廢絕 , 為 已幸矣 。
당나라 보응 연간에 이르러 태복 왕빙이 이를 독실하게 좋아하여 선사께서 간직하셨던 책을 얻고 대대적으로 차례를 정하여 주석하였다. 여전히 삼황이 남긴 글이 찬란하여 볼 만하였으나, 애석하게도 당나라 법령은 이를 의학에 넣어 기술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맡겼으므로 사대부들은 드물게 언급하였다. 성인의 시대와 이미 멀어져 그 학술이 어두워졌고, 이에 본문과 주석이 뒤섞이며 의리가 혼란해졌다. 이것이 《삼분》의 남은 글이고 제왕의 높은 뜻이며 성현의 능사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당요가 사시를 알려 주고, 우순이 칠정을 가지런히 하며, 신우가 육부를 다스려 제왕의 공업을 일으키고, 문왕이 육자를 추연하여 괘기를 차례 지으며, 이윤이 오미를 조화시켜 임금을 바르게 이끌고, 기자가 오행을 진술하여 세상을 도운 것은 그 뜻이 하나이다. 어찌 지극히 정밀하고 미묘한 도를 지극히 낮고 천박한 사람들에게 전하였는가. 폐절되지 않은 것만도 이미 다행이다.
頃在嘉祐中 , 仁宗 念 聖祖之遺事將墜于地 , 迺 詔通知其學者 , 俾之是正 , 臣 等承乏典校 , 伏 念 旬 歲, 遂乃捜訪中外 , 裒集 眾 本 , 䆮尋其義 , 正其訛舛 , 十得其三四 , 餘不能具 。 竊謂未足以稱 明詔 , 副 聖意 , 而又採漢唐書 錄、 古醫經之存於 世 者 , 得數十家 , 敘 而考正焉 。 貫穿錯綜 , 磅礡㑹通 , 或端本以尋支 , 或泝流而討源 , 定其可知 , 次以舊目 , 正繆誤者六千餘字 , 增注義者二千餘條 。 一言去取 , 必有稽考 , 舛文疑義 , 於是詳明 , 以之治身 , 可以消患於未兆 。 施於有政 , 可以廣生於無窮 。 恭惟 皇帝撫大同之運 , 擁無疆之休 , 述先志以奉成 , 興微學而永正 , 則和氣可召 , 災害不生 , 陶一 世 之民 , 同躋于壽域矣 。
지난 가우 연간에 인종께서는 성조께서 남긴 일이 장차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그 학문에 통달한 사람에게 명하여 바로잡게 하셨다. 신들이 부족한 재주로 교정을 맡아 엎드려 십 년 동안 생각하고 마침내 중앙과 지방을 두루 찾아 여러 판본을 모았다. 그 뜻을 깊이 살펴 잘못을 바로잡았으나 열 가운데 서넛을 얻었을 뿐, 나머지는 다 갖추지 못하였다. 삼가 생각하건대 밝은 조서에 부응하고 성상의 뜻을 받들기에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 다시 한나라와 당나라의 서목과 세상에 남아 있는 옛 의서를 모아 수십 종을 얻고 차례 지어 고증하였다. 서로 꿰뚫고 교차하여 종합하고 널리 회통하면서, 근본을 단서로 가지를 찾기도 하고 흐름을 거슬러 근원을 찾기도 하였다. 알 수 있는 것을 확정하여 옛 목록에 따라 배열하니, 잘못을 바로잡은 글자가 육천여 자이고 주석의 뜻을 보탠 것이 이천여 조목이었다. 한마디를 버리거나 취할 때에도 반드시 근거를 조사하여, 잘못된 글과 의심스러운 뜻이 이에 상세하고 명확해졌다. 이것으로 몸을 다스리면 병환의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 없앨 수 있고, 정사에 적용하면 생명을 기르는 은혜를 끝없이 넓힐 수 있다. 공경히 생각하건대 황제께서는 대동의 운을 받드시고 끝없는 아름다움을 누리시며, 선왕의 뜻을 이어 이루고 쇠미한 학문을 일으켜 영원히 바로잡으신다. 그러면 화기를 불러들이고 재해가 생기지 않게 하여 온 세상 백성을 교화하고 함께 장수의 경지에 오르게 하실 것이다.
國子博士 臣 高 保衡 、 光 祿 卿直秘閣 臣 林 億 等謹上 。
국자박사 신 고보형, 광록경 직비각 신 임억 등이 삼가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