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戲 , 霍亂而死者 , 可勝痛哉 。 夫霍亂 , 危急證也 。 霍亂而轉筋 , 則證之尤危尤急者也 。 人一病之 , 生者少而死者多 。 大抵皆不死於霍亂 , 而死於治霍亂之醫藥者耳 。 僻處窮鄉 , 赤貧如洗 , 偶病霍亂 , 猶有活者 。 以無醫藥之害 , 或僅藉外治飲水 , 反不致十死八九矣 。 夫醫藥之害 , 豈易言哉 。 今之為醫者 , 大半食古不化 , 指鹿為馬 , 好為大言以欺人 。 開口 《 傷寒論 》, 動手四逆湯 , 鹵莽減裂 , 似是而非 。 又有讀書不成 , 商買無資 , 從遊於庸惡陋劣之門 , 以訛傳訛 , 自以為是 。 不識人命攸關 , 峻藥妄投 , 輕病轉重 , 重者轉為不治 。 而一遇霍亂 , 不問是寒是熱 , 無不以丁附薑桂香燥溫熱之藥 , 服之而不死者 。 尠矣 , 病家亦以為如此溫熱 , 而猶不能生 , 直霍亂者之命數耳 。 特未知醫藥之害 , 甚於霍亂 。 遂致孤人之子 , 寡人之妻 , 而人家並不咎諸醫藥 。 而為醫者 , 能不動心乎 ? 且是證也 , 每於夏秋之間 , 甚則流人似疫 , 合境皆然 , 而莫甚於去年 , 往往有減門之染 。 謂非暑濕熱三氣之所釀 , 兼之醫藥之害 , 抑何至於斯析乎 。 余目擊病霍亂 , 而醫者之丁附薑桂 , 服之無不含冤而斃 , 每一念及 , 輒為心痛 。 茲姑縷述前人名論如干 , 則是寒是熱 , 朗若列眉 , 俾家置一編 , 庶幾人人盡知霍亂之原由 , 胸中早已澈底澄清 , 則斷不聽醫之模糊影響之談 , 而被丁附薑桂之害也 。 因名之曰 《 霍亂燃犀說 》。 斯說之是耶 , 非耶 , 天必知之 , 非也 , 天將奪我之算 , 而是也 , 天必假我數年矣 。 請鑑此說者 , 拭目以俟 。
아아, 곽란으로 죽는 이들을 어찌 이루 다 애통해하겠는가. 곽란은 위급한 증상이고, 곽란에 전근까지 있으면 더욱 위태롭고 급하다. 사람이 한번 앓으면 사는 이는 적고 죽는 이는 많다. 대체로 모두 곽란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곽란을 치료하는 의약 때문에 죽을 뿐이다. 외딴 시골에서 몹시 가난하게 살다가 우연히 곽란을 앓아도 살아나는 이가 있으니, 의약의 해가 없고 혹 외치와 물 마시기에만 의지하여 도리어 열 가운데 여덟아홉이 죽는 지경에는 이르지 않는다. 의약의 해를 어찌 쉽게 말하겠는가? 지금 의사들 대부분은 옛것을 받아들여도 소화하지 못하고 사슴을 말이라 가리키며 큰소리로 사람을 속이기 좋아한다. 입을 열면 『상한론』이고 손을 대면 사역탕이니, 거칠고 허술하여 그럴듯하나 옳지 않다. 또 공부에 성공하지 못하고 장사할 밑천도 없어 용렬하고 악하며 비루한 이의 문하를 따르고 잘못을 잘못으로 전하면서 스스로 옳다고 여기는 이도 있다. 사람 목숨이 달렸음을 모르고 강한 약을 함부로 투여하여 가벼운 병을 무겁게 하고 무거운 병은 불치로 바꾼다. 곽란을 만나면 한인지 열인지 묻지 않고 정향·부자·생강·계피 같은 향조·온열한 약을 쓰지 않는 이가 없으니, 이를 복용하고 죽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환자 집안도 이처럼 따뜻하게 했는데도 살리지 못했으니 곽란 환자의 운명일 뿐이라 여긴다. 의약의 해가 곽란보다 심함을 모르는 것이다. 마침내 남의 자식을 고아로 만들고 아내를 과부로 만들어도 그 집안은 의약을 탓하지 않으니, 의사 된 자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증상은 매번 여름가을 사이에 생기며 심하면 사람들에게 전염되어 역병처럼 온 고을이 그러한데, 지난해보다 심한 적이 없었고 흔히 집안이 줄어드는 감염이 있었다. 서·습·열 세 기운이 빚은 데다 의약의 해가 더해진 것이 아니라면 어찌 이런 지경에 이르겠는가? 나는 곽란을 앓는 이가 의사의 정향·부자·생강·계피를 복용하고 억울하게 죽지 않는 경우가 없음을 직접 보았으므로,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이제 앞사람의 이름난 논설 얼마를 하나하나 적어, 한인지 열인지 눈썹을 늘어놓은 듯 분명하게 하려 한다. 집집이 한 편씩 두어 모든 사람이 곽란의 원인을 알고 마음속에서 일찍 철저히 맑게 이해하면, 의사의 모호하고 근거 없는 말을 듣고 정향·부자·생강·계피의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곽란연서설』이라 이름하였다. 이 설이 옳은지 그른지는 하늘이 반드시 알 것이다. 그르면 하늘이 내 수명을 빼앗고 옳으면 반드시 몇 해를 빌려 줄 것이다. 이 설을 살피는 사람들은 눈을 씻고 기다리기 바란다.
光緒十四年戊子午月江左老瓠許起識於吳門竿術第二盦
광서 14년 무자 오월 강좌의 노호 허기가 오문 간술제이암에서 적다.